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 감시, 조종, 거짓에 맞서 싸운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영웅들
매슈 대니얼스 지음, 최이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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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결성 43년 동안 18,000만장의 앨범 판매, 그래미상 22회 수상, 빌보드앨범 차트 18, UK 앨범 차트 110,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이는 전설적인 밴드 U2가 써내려온 기록들이다. 얼마 전 U2의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이 있었다. 공연의 모든 순간들이 감동적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울트라바이올렛 Ultraviolet이 흘러나오던 순간이었다. ‘울트라바이올렛전 세계의 여성들이 (남성의) 역사를 (여성의) 이야기로 다시 써내려 가는 그 날이 인권의 가치가 인간의 악함을 몰아내는 진정 아름다운 날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노래다.

 


U2의 리더 보노가 세계 여성들이 단결하여 역사를 새로 써 허스토리 (Herstory)’로 만드는 날이 바로 뷰티풀 데이라고 외치자 스크린의 히스토리 (History)‘허스토리(Herstory)’로 바뀌며 한국을 비롯해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여성들이 화면에 등장했다.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한국 최초의 민간 여성 비행사 박경원, 대한민국 1호 여성 변호사 이태영 박사, 국내 최연소 축구 국제심판 홍은아 교수 등이었다. 또한, 노래를 마치며 아직도 완전히 평등하다고 볼 수 없는 여성들을 위해서 U2가 한글 자막으로 전한 메시지는 너무나 큰 감동이었다.

 

우리 모두가 평등할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

 


 

U2의 메시지를 보면서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지막 챕터 누군가 자유롭지 못하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가 떠올랐다. 본서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은 억압과 고통을 기술의 힘으로 극복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저 소수의 개별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존엄성을 지키는 세계적인 흐름이 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를 도구로 활용하면 사실상 모든 사람이 디지털 다윗이 될 수 있고, 우리 시대의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104

 

디지털화의 진전으로 인해 이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인 권력을 가진 인물이나 대중에 영향력을 미칠수 있는 인플루언서가 아닌 평범한 개인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지리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인터넷과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효과적으로 타인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시킬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책의 두 번째 챕터의 재난, 여성, 빈자, 저항과 관련한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에 불러일으킨 새로운 바람들은 마치 본서에서 언급한 간디의 유명한 말 당신은 조용히 세상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고 있는것 같았다.

 

하나 하나가 모두 놀라운 스토리였지만 그중에서도 누구나 사건의 방관자가 아닌 목격자로서 또, 조력자로서 목소리를 내며 세상을 변화시킨 우샤히디 (Ushahidi)’ 사례가 가장 인상 깊었다. 2007년 케냐에서 벌어진 부정선거를 둘러싼 유혈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 것은 사회사업가들이었다. 이들은 이 비극을 막기 위해 우샤히디라는 정보 공유 플랫폼을 만들었다. 우샤히디는 스와힐리어로 증언혹은 목격자를 의미한다. 이는 케냐 국민을 돕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장소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협력하는 걸 가능하게 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참여하여 만든 협력 플랫폼은 재난, 부패사례 보고, 환경오염, 부정선거 등으로 점점 더 광범위한 상황에서 사용되는 클라우드 맵이 되었다.

 

페이스북 기반의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혈액은행이자 의료분야의 최대 크라우드 소싱 플랫폼인 소셜블러드가 진행한‘#블리드호프 (#Bleedhope)’ 해시태그 운동도 감동적인 사례였다. 소셜 블러드는 영리 목적이 아닌 고난에 처한 사람을 도우려는 순수한 동정심으로부터 비롯된 한 개인의 선량한 행위가 인류의 혈액 지도를 만들고, 모든 사람이 피로 연결되는 세상을 만들어낸 놀라운 사례다. 그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더 많은 사람이 동참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벌인 다양한 캠페인에는 인류애가 없었다면 가능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가 중대한 일에 대해 침묵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종말을 고하기 시작합니다. 결국에 우리의 기억에 남는 것은, 적들의 말이 아닌 친구의 침묵이 될 것입니다." - 마틴 루터 킹 -

 

마틴 루터 킹의 말처럼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가 시간이 없거나 용기가 없다는 핑계로 손쉬운 방관자의 길을 선택할 때 벌어지는 폭력과 차별에 주목한다. 또한 그 혐오와 사회 부조리가 자신을 향할 수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례의 공통점은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세상을 변화시킨 것은 규모도 크고 자금도 많은 정부기관이나 유엔이 아니라 평범한 개인들, 선한 사마리아인들이었다는 점이다. 나아가 이러한 착한 사마리아인들의 활동은 유엔과 다른 국제구호기구가 개별적으로 해왔던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디지털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사회 부조리에 침묵하지 않고 소셜 미디어와 애플리케이션으로 이슈해결을 위해 행동하는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개인들이라 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에서 혁명 초기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권력층의 배반과 함께 행동하지 않는 대중의 무기력함 또한 풍자의 대상으로 삼았다. 혁명의 이념이 지배층의 권력욕으로 변질되지 않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대중들의 비판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전체주의와 독재는 지배층만의 산물은 아니며, 오히려 권력에의 무비판적순응이 역사의 진화를 가로막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나이가 들자 도살업자에 팔려가 죽임을 당한 말 복서는 비판의식 없는 어리석은 충성심의 상징이다. 한나 아렌트의 주장처럼 악은 대중들의 무지와 무관심, 그리고 사유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될 수 있고, 대중의 침묵은 결과적으로 체제에의 동조로 작용한다.

 

이제까지의 역사는 남성성이 중심이 된 승자의 역사였다.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간 이름 없는 사람들, 수많은 개인들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과연 역사의 페이지에 그들의 몫도 있을까? 하지만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은 디지털시대 역사의 주역은 그동안 세계와 인류를 위한 진심을 보이고 사라져간 수많은 우리들,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평범한 개인들이 될 것임을 예견하고 있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의 우리를 만드는 진정한 영웅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위대한 힘의 존재기반은 깨어있는 시민들에게 있으며, 이는 핍박과 분열, 갈등이 빚어낸 시대의 소음 속에서 일순간에 타오른다는 걸 깨닫게 해준 또 하나의 사례를 알고 있다. 바로 대한민국을 찬란하게 밝혔던 촛불혁명이다.

 

201610월 광화문을 밝힌 촛불은 174월까지 이어졌고, 촛불은 전국 150여개 시군으로, 전 세계 31개국 71개 도시로 퍼져나갔다. 누군가는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했지만, 1,700만여개의 빛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을 이끌어내며 찬란하게 빛났다. 독일의 공익정치 재단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에 참여한우리 국민을 2017'에버트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특정 국가의 국민이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상이 제정된 이래 최초의 사례였다. 재단은 민주적 참여권의 행사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는 생동하는 민주주의의 필수적 요소이기 때문에 집회에 참여한 모든 분들을 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다. 하지만 위대한 사람들은 용감하게 꿈을 품고 자신의 나약함과 한계를 뛰어넘는 삶을 산다.“ 26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일은 자신의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과 같다.“ 25는 말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원칙을 지키며, 진실과 정의, 인간 고유의 본성을 회복하기 위해 타인을 향해 작지만 흔들림 없는 발걸음을 묵묵히 내딛으며 온기를 담은 손을 뻗는 것 아닐까쉽사리 변하지 않는 사회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사람'''이 빛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의 놀라운 사례들이 이미 증명하고 있듯 세상의 변화는 생각보다 작은 부분에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인권은 우리가 사는 집 가까이에 있는 작은 장소, 그러니까 너무나 작아서 세계 지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곳에서 시작됩니다. 이곳은 개인의 세계입니다. (...) 거기에서 보편적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다른 어느 곳에서도 지켜질 수 없습니다. 집 가까이에서 보편적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시민들이 합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40), - 엘리너 루스벨트, 세계 인권 선언 10주년 기념 연설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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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잠 2019-12-22 2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듯 하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잭와일드 2019-12-23 08:55   좋아요 0 | URL
관심과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