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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 - 고종의 밀사 헐버트의 한국 사랑 대서사시
김동진 지음 / 참좋은친구 / 2019년 10월
평점 :
기해년 2019년은 2 ‧ 8 독립선언과, 3 ‧ 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였다. 2019년에 나는 100년의 그 때처럼 동경 재일본 한국 YMCA에서 열린 2 ‧ 8 독립선언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1919년 2월 8일 그렇지. 그땐 우리에게는 오직 독립뿐, 좌도 우도 없었다.'
기념식에서 2 ‧ 8 독립선언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나라 잃은 식민지 청년들의 독립을 향한 순수한 열망을 느꼈다. '사람', 그리고 '삶'은 좌우 이데올로기의 시각만으로는 결코 재단할 수 없는 것이고, 여기서 벗어나야만 '사람'을, 또 '삶'의 실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인데, 우린 언제부턴가 이를 잊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
2019년은 이념에서 벗어나 '사람'을, 또 '삶'을 향한 진심을 보여준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헐버트 (Homer B. Hulbert) 박사의 70주기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헐버트 박사의 70주기를 기념하여 헐버트 박사 기념 사업회 회장인 김동진씨는 헐버트 박사의 일대기를 정리한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를 발간하였다. 이전에도 김동진씨는 최초의 헐버트 평전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과 헐버트 박사의 논문 57편을 우리말로 옮긴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를 저술한 바 있다.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는 한국은 물론 미국과 일본에 남아 있는 헐버트 박사의 드러나지 않은 행적을 추적하여 그의 생애를 총괄적으로 정리하였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3 ‧ 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는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을 '국민 참여 기념사업' 도서로 선정하였다.
헐버트 박사는 조선 최초의 근대식 관립학교 '육영공원'의 교사를 역임한 교육학자였고,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저술한 한글학자였다. 또한, 최초의 종합역사서이자 근대 역사학의 출발점으로 평가 받는 '한국사(The History of Korea)'와 한민족의 역사, 문화, 생활상을 집대성하고, 을사늑약의 부조리를 표출한 '대한제국의 종말(The Passing of Korea)'를 저술한 역사학자이기도 했다. 헐버트는 YMCA를 탄생시킨 선교사이자 계몽주의자이기도 했다. 헐버트는 YMCA는 선교를 넘어 교육, 계몽을 포괄하는 사회단체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헐버트가 기초한 한국 YMCA 헌장의 핵심내용은 'YMCA의 목적은 교육, 계몽, 선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한국인들을 위해 싸울 것이다. 그들은 모든 권리와 재산을 빼앗겼다. 나는 죽을 때까지 그들을 대변할 것이다." (P. 325)
헐버트 박사가 남긴 여러 행적들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한국인들 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다는 건 헐버트 박사를 대표하는 수식어처럼 그의 모든 행적 저변에 깔려 있는 한국과 한민족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단순한 사랑을 전하는 것에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헐버트는 그의 일생을 걸고 투쟁했다. 맹목적으로 한자만을 고집하던 사대부들의 보수성에 맞서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하며 한글 전용을 주장했고, 주권침탈의 야욕을 드러냈던 청나라, 러시아, 일본에 한국을 대변하여 맞섰다. 이를 위해 언론을 통해 고국인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한국과 한민족의 사회 문화적 우수성을 알렸다. 헐버트 박사가 1889년 한글의 우수성을 뉴욕트리뷴지에 기고하며 한글의 자모를 최초로 소개했다는 사실과 을사늑약 저지를 위해 고종 황제와 전보를 주고받았다는 기사(뉴욕타임스)는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처음 공개하는 사실들이다. 또한, 헐버트 박사는 을사늑약의 무효화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를 위한 고종 황제의 특사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독립운동의 역사는 투쟁과 부역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고통스럽고 핍박 받는 현실 속에서도 시대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고 응답했던 사람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까지도 기꺼이 감수했던 이들이 있었던 반면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이들도 존재했다. 한국인들마저 국가와 민족에 반하는 삶을 택한 엄혹한 시기에 한국에 아무런 의무가 없는 한 이방인에 불과했던 헐버트 박사는 어떻게 자신과 가족의 삶까지 희생하며 이렇게까지 한국과 한민족을 위해 행동할 수 있었을까? 한민족의 한과 얼이 서려 있는 구전 민요 '아리랑'의 가사를 최초로 채록하고 서양 음계로 채보한 사람이 헐버트 박사라는 사실은 그 진실의 조각을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는 하나의 단서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원칙이 승리보다 중요하다.'는 헐버트가의 가훈으로부터 형성된 그의 인간애가 한국과 한민족 특유의 '정(情)'을 만나 언어와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결과를 이끌어낸 것이 아닐까?
헐버트는 자신이 보유한 다양한 학문에 대한 스펙트럼을 한국에 기꺼이 공유해주었고, 행동하는 지성으로서 한국의 시대적 아픔에 공감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 헐버트 박사는 올바른 가치관의 형성도 중요하지만 그 가치관을 실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임을 그의 삶을 통해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헐버트의 삶에 대해 1909년 안중근 의사는 "한국인이라면 헐버트를 하루도 잊어서는 아니 되오!"라고 말했고, 그의 사후 7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저자 김동진은 "헐버트야말로 조선의 척박한 현실을 마다 않고 한민족에 동화한 진정한 한민족의 벗이자, 바른 삶의 좌표를 행동으로 제시한 가치관적 영웅이었다."고 응답하고 있다.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단편적 사건들의 단순 합이 아니라 시대를 구성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요소들의 총체인 동시에 이들이 빚어낸 유기적 결합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역사의 진정한 주역은 어쩌면 민족과 국가를 위한 진심을 보이고 사라져간 민중들,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민중들이 아닐까? 민중이란 특정 계급이나 계층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국가와 사회를 이루며 역사를 구성하는 유동적인 계급, 계층의 연합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민중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학생, 노동자, 농민, 상인들은 당시 시대상황을 정확히 꿰뚫어보지는 못했지만, 어떤 사건이나 교육을 계기로 민족의 앞날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행동하였고, 이를 통해 역사의 진보를 이루어내었다. 이렇게 교육 및 계몽을 통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위대한 힘의 존재기반은 민중에게 있으며, 이는 핍박과 분열, 갈등이 빚어낸 시대의 소음 속에서 일순간에 타오른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준 이들이 있었다. 푸른 눈의 한국인, 한국인 보다 한국과 한민족을 더 사랑했던 헐버트 박사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에게 헐버트 박사의 삶이 갖는 의미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하나의 그림이 있다. 바로 윌리엄 터너의 명화 <전함 테메레르>다.
영화 <007 스카이폴>에는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뒤로하고 나이가 들어 노쇠한 스파이 제임스 본드가 내셔널 갤러리에서 한 점의 그림을 응시하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쓸쓸한 뒷모습을 여과 없이 노출하며 그가 바라본 그림은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였다. 테메레르는 절체절명의 위기순간에 조국을 구하고 영국의 전성기를 이끈 영웅이었다. 1805년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은 나폴레옹의 유럽제패를 저지하고 자국을 수호하기 위해 트라팔가 해전에 임한다. 전장에서 테메레르는 위기에 처한 영국의 기함 (flagship) 빅토리호를 구하고 두 척의 배까지 나포하는 전적을 올린다. 이를 기반으로 한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는 19세기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들었다.
윌리엄 터너의 그림에 표현된 테메레르는 찬란하게 빛났던 트라팔가에서의 모습이 아닌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구시대의 유물로 쇠락한 모습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빛낸 존재였지만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덩치 큰 범선은 작은 증기선에 의해 예인되며 해체되기 전 마지막 항해를 하고 있다. 은퇴의 기로에 선 스파이는 그림 속 범선을 보며 세월의 무게와 시대의 변화를 읽었던 것일까? 인간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서도 이렇게 처절하고 애잔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새삼 놀라고 감동받았던 기억이 있다.
윌리엄 터너와 그의 대표작 <전함 테메레르>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를 대신하여 2020년부터 영국 20파운드 지폐의 새로운 모델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전함 테메레르>는 BBC에서 선정한 가장 위대한 영국 그림으로 꼽히기도 했다. 터너와 그의 작품 <전함 테메레르>가 영국인들에게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트라팔가 해전 승리후 런던에는 트라팔가 광장이 조성되었고 광장의 중앙에는 승장 넬슨 제독의 동상이 세워졌다. 넬슨이 승선했던 기함 빅토리호는 포츠머스 해군기지에 영구 보존되고 있다. 반면 1838년 영국 해군은 테메레르호를 런던의 운수업자에게 팔아넘겼고 배를 산 운수업자는 배를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템즈 강가로 산책을 나간 터너는 이 위대한 선박의 마지막 항해를 그림으로 남겼던 것이다.
트라팔가에서 테메레르는 넬슨 제독의 생명을 구하진 못했지만 조국 영국을 구했다. 테메레르의 빅토리호 구원이 없었다면 19세기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아닌 저물어가는 일몰이었을지도 모른다. 윌리엄 터너는 시대를 빛내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영웅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를 보냈다. 모두가 기억하는 넬슨 제독, 빅토리호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테메레르도 있었다고… 그것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존재에 대한 최대의 찬사는 그를 오래도록 기억해주는 것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간 이름 없는 민중들,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역사의 페이지에 그들의 몫도 있을까? 헐버트 박사는 그의 생전 소망대로 서울 마포 양화진에 묻혔다. 외국인 최초의 사회장이었고, 이듬해인 1950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태극장이 추서되기도 했다. 또한, 2013년 7월에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고, 2014년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과 2015년 서울아리랑페스티벌, 제1회 '서울아리랑 상'에 추서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그에 대한 예를 다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윌리엄 터너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그를 기억해주어야 한다. 그의 정신과 투쟁, 숭고한 희생은 <전함 테메레르>가 되기 충분하다. 헐버트 박사는 자랑스러운 우리 과거의 일부분인 동시에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삶을 희생해가며 세상의 진보를 위해 고독한 걸음을 내디딘 이름 없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웨스터민스터 사원 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했다는 헐버트 박사는 이제 한국인의 가슴 속에 묻혀 영원히 불멸의 생을 이어갈 것이다. 이것이 우리 한국인들이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예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