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러시 - 우주여행이 자살여행이 되지 않기 위한 안내서
크리스토퍼 완제크 지음, 고현석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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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위대한 개츠비 -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항상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인간은 현재의 삶을 딛고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저마다 개별적 삶을 살면서도 타인과 또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 시대를 이루고그것이 되풀이되고 순환되는 과정을 거쳐 역사를 이루며 발전하는 인간의 삶이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별자리는 저마다 거리와 밝기가 다른 별들로 구성되어 있다또한각각의 별들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제각기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하지만 별들은 인간의 가시거리를 아득하게 넘어서는 먼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각각의 별들의 위치와 움직임을 감지해내지 못하고 고정되어 있는 하나의 군집된 별자리로 인식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도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직선적 사건이 아닌별자리처럼 시공간이 뒤섞인 원심형의 배열에 가깝다. 동시대에서 같이 호흡하면서도 온전히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고 누군가는 과거의 한때에 머무르고또 누군가는 현재를 넘어 미래를 향해 있는 것은 인간이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 (Kronos)' 보다 주관적이고 심리적 시간인 ‘카이로스 (Kairos)'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하는 것인 동시에 미래를 꿈꾸고 호흡하게 하는 두 번째 심장이다상실과 결핍몰이해라는 인간의 현실적 한계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계 속에서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한 조각의 진실과 삶의 의미를 구하려 애쓰는 인간의 삶이 군집을 이룬 채 살아가는 별들과 서로 닮아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예전부터 우주를 대상으로 하는 SF 소설을 좋아했다. 현실에서 느끼는 상실감과 결핍에서 벗어나 저 반짝이는 아득한 공간을 향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또한, 세월의 흔적을 걷어내고 바라보면 SF 소설의 주인공들도 저마다가 직면한 세계에 맞서 살아가는 우리와 똑같은 존재라는 동질감도 느낄 수 있었다. SF가 그리는 미래의 어느 시점은 그 아득한 시간의 간극이 걷히면 또 다른 우리의 모습으로 남는다언젠가 우리도 현재와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한 누군가와또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존재와 공존하면서 전혀 다른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TO INFINITY AND BEYOND!)”

 

우리가 바라는 모든 꿈은 계속할 용기만 있다면 모두 이루어진다고 말한 월트 디즈니의 말을 대변하듯이 디즈니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에서 버즈 라이트이어는 무한한 공간 저 너머를 향한 꿈과 희망을 설파하고 있다. 현실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는 집단적 경험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맨 오브 라만차에서 보았듯이   사람만 믿는 이야기일지라도  꿈이 강렬하고 진실하기만 하다면 꿈은 공유되고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반대로 고리끼의 희곡 밑바닥에서는 희망은 누구에게나 절실한 것이지만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장밋빛 희망은 더 깊은 절망으로 이끄는 '()'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밑바닥 삶들 앞에 어느 날 찾아온 노인은 희망이 되지만 노인이 사라진 후 희망에 가득 차 있던 이들은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면서 꿈과 현실의 간극만큼의 충격을 안고 이전보다 더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때로는 희망도 어떤 이들에겐 독이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진정한 절망은 '헛된 희망'을 동반하는 것이다.

 

우주기술과 우주탐사는 미래파의 도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지금, 그리고 여기의 문제인 것이다.” (p. 365)

 

아이직 아시모프 이후 우주탐사에 관한 최고의 책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스페이스 러시>우주 여행이 자살 여행이 되지 않기 위한 안내서라는 부제처럼 우주라는 공간을 냉철한 시각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책이다. 현시점에서 인류가 확보한 과학기술을 통해 어떤 것이 가능하고, 어떤 것은 다소 문제가 있으며, 어떤 것은 그저 헛된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SF에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허황된 희망들, 예를 들어 워프 속도로 여행하는 텔레포트 (순간이동)이나 테라포밍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의 환경을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것) 등을 통해 지구 밖에서 지구 보다 호화롭게 살 가능성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다.

 

NASA의 수석작가로도 활동한 저자 크리스토퍼 완제크는 지구에 야기되고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또는 곧 위험이 닥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지구를 떠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스페이스 러시>라는 제목이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저자는 정부간 체제의 우월성을 가리는 경쟁의 무대에서 벗어나 민간 기업들이 우주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며 경쟁하는 뉴 스페이스의 시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인류가 물에 다리를 놓고 하늘에 길을 냈듯이 언젠가는 인류가 자연스럽게 우주로 진출해 진화를 향한 대담한 첫 걸음을 내딛을 것이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시점을 기준으로 본다면 인간의 우주탐사는 지구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구에서의 인류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테드창의 소설 <거대한 침묵>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한 앵무새들이 인류에게 “잘 있어사랑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지만 무심한 인류는 이마저도 인지하지 못한 채 지성을 가진 외계 생명체를 찾기 위해 광대한 우주를 향해 고정되어 있는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에만 귀를 기울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이처럼 우리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편견과 집착에 사로잡혀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거나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트럼프의 아르테미스 계획의 허황됨을 비판하면서 현재의 지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우주를 바라봐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보며 지식의 최대 적은 무지함이 아니라 허황된 지식이라는 스티븐 호킹의 말이 떠올랐다저자가 <스페이스 러시>를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에 떠밀리지 말고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아닐까그것이 비록 광속이나 워프 항법의 속도에 한참 못 미치는 저속이라고 하더라도 그 방향만 정확하다면 말이다.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그곳에 매번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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