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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인 케미스트리 1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그 공포,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의 카피문구이다. 소설은 주인공 김지영씨의 이상행동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담당의사가 그녀의 삶을 되돌아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김지영씨는 계집질 안 하고, 마누라 때리지 않은 게 어디냐고, 그 정도면 괜찮은 남편이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할머니와 아들이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고, 그게 가족 모두의 성공과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어머니로부터 여자는 위험한 길, 위험한 시간, 위험한 사람은 알아서 피해야한다고.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고 배우며 자랐다. 태어나면서 부여 받은 주민등록번호는 여성은 2번이었고, 초등학생 때의 학급번호도 남자부터였다. 남자부터 급식을 먹었고, 반장도 남자가 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학창시절 남성으로부터의 스토킹, 언어폭력은 그 자체의 고통과 더불어 사회 문화적 분위기를 이해 못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으로 이중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여성에게 가혹한 취업시장에서 홍보대행사에 어렵게 입사하여 악착같이 살아남지만, 아이를 가진 후 버티지 못하고 퇴사한다. 생활도, 일도, 꿈도, 심지어 자신까지 전부 포기하고 힘들게 아이를 키우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건 '맘충'이라는 비난이었다. 그녀는 결국 그녀 주변의 여성들에게 빙의하는 이상증세를 보이게 된다.
"차별과 억압, 편견, 온갖 사회적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여성 화학자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 엘리자베스 조트의 이야기“
<82년생 김지영>이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그 공포, 피로, 당황, 놀람,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라고 한다면, 보니 가머스 작가의 <레슨 인 케미스트리>는 “1950-60년대라는 그 엄혹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마음 속 절벽들을 지속적으로 허물어내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세상의 변화를 위해 온기 어린 손을 건냈던 한 인물과 그 가족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더 구체적이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차별과 억압, 편견, 온갖 사회적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여성 화학자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 엘리자베스 조트의 이야기"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전통과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부조리와 불합리, 숨이 막힐 것 같은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가정환경 속에서 동성애자였던 오빠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엘리자베스는 역경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독학으로 학사를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한다. 그녀의 실력보다는 외모에 관심을 보인 대학원 지도교수는 성폭행을 시도하고, 그 후 가해자인 지도교수는 자리를 보전하지만, 정작 피해자인 엘리자베스는 박사과정에서 쫓겨나는 부조리를 경험한다. 어렵사리 들어간 연구소에서도 동료들은 그녀를 동등한 화학자가 아닌 연구 보조원이나 사무 직원으로 취급하고, 남성 과학자들은 그녀의 성과를 가로채고, 비혼모라는 이유를 내세워 그녀를 해고한다. 연구소에서 일하는 동안 엘리자베스는 영혼의 동반자 캘빈을 만나지만, 불의의 사고로 사랑했던 연인 마저 떠나보낸다. 엘리자베스는 명석한 화학자였지만, 여성과학자가 거의 전무했던 1950-60년대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성 화학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았고, 우연한 기회에 맡게된 요리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요리야말로 ‘새 에너지를 창조하고 새 세대를 번성시키는 진지한 화학 실험’이라며 대중과 시청자들이 꿈을 향한 변화의 첫걸음을 내딪을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는다.
"화학은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룹니다. 화학은 바로 삶입니다." - 2권 p. 87 -
절망적인 상황은 없고, 오로지 절망하는 인간만이 있을 뿐이라는 엘리자베스의 무한 긍정의 마인드는 그녀의 전공인 화학과 환상적인 케미를 만들어내며 대중에게 선한 영향력을 선사한다. 흔히 화학은 어렵고 복잡하고, 생소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우리 삶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것들, 먹는 음식, 공기, 입는 옷, 쓰는 물건, 심지어 생각까지 모두 화학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만 년에 걸쳐 인류의 변화와 발전을 가능하게 한 DNA나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걸 가능케 해주는 신경전달 물질과 대사물질들이 모두 화학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세계 최대의 화학 학술단체인 미국화학회(ACS)가 “화학물질이 아닌 것을 가져와라, 그러면 원하는 만큼의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아무도 그러한 물건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다. 화학은 바로 삶이라는 엘리자베스 조트의 말처럼 화학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게 해주고 변화와 혁신의 새바람을 일으키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화학자인 엘리자베스가 요리 프로그램 진행자가 된 것, 그리고 요리야말로 ‘새 에너지를 창조하고 새 세대를 번성시키는 진지한 화학 실험‘이라는 엘리자베스의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저는 그냥 가정주부예요."
"세상에 그냥 가정주부란 없습니다. 가정주부 일 말고 또 무엇을 하시죠?" - 1권 p. 356 -
"요리는 화학입니다. 화학은 생명이지요. 모든 것을 바꾸는 여러분의 능력, 자신을 바꾸는 능력도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2권 p. 28 -
가사일을 돌부는 평범한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저녁시간대 요리프로그램의 시청자들은 요리와 화학이라는 주제를 넘어 그들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잊고 지냈던 꿈을 이루기 위해 한걸음씩 나아간다. 아들 다섯을 둔 주부는 개흉 심장수술을 하는 외과의사라는 가슴 한켠에 밀어놨던 꿈을 이루기 위해 의대 예비과정에 입학하고, 다른 주부들도 저마다 처한 환경 속에서 야간학위과정에 등록하면서까지 꿈을 향한 배움의 꿈을 놓지 않는다. 다이어트 보조제 대신 조정운동을 하라는 엘리자베스의 조언에 남성 일색이던 조정 클럽이 여성들로 북적이기도 한다. 놀라운가? 이 모든 변화가 픽션에서만 가능한 비현실적인 것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우리는 화학적으로 언제나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라는 엘리자베스 조트의 말을 들으면 이 놀라운 변화의 동력은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이 놀라운 결과로 이끌었는지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또한 엘리자베스는 일반적인 주부는 전혀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며 주부들에게 가사노동에 대한 긍지를 불어넣는다. 삶에는 튼튼한 토대가 필요하고, 가정에서는 바로 주부의 존재가 구심점이 되어 안정적인 사회생활 및 미래를 위한 도약에 든든한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조트의 이야기는 폭넓은 공감대 형성을 기반으로 보편성을 얻는다. 사실 출산과 육아, 가사와 직장 등에서 벌어지는 성차별과 부조리들은 비단 1950-60년대 미국에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세대를 거쳐 변하지 않고 보편적으로 다가왔던 일상이 얼마나 차별적이고 불합리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해준다.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애플TV에서 드라마화까지 결정될 정도로 많은 지지와 공감을 얻은 이유는 2022년 현재 우리 주위에도 보편적인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아픔과 상처를 겪고 있는 수많은 "소외된 우리"들이 있기 때문 아닐까? 사실 "엘리자베스 조트"는 우리가 꿈꿔온 이상화된 판타지에 가깝다.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조트의 긍정적인 마인드와 굳은 의지는 우리가 갖지 못했던 혹은 보호해주지 못했던 우리 과거의 모습이기도 하고, 새로운 시대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우리의 진화된 모습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 조트”는 우리가 가질 수 없었던 과거이자 도달해야할 미래다.
"당신 정말 육아휴직 갈꺼니?“
세상에 태어난 딸에 대한 축하인사 다음으로 회사의 경영지원부문 임원이 내게 건넨 말이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위해 회사는 남성육아휴직을 일정기간 의무화하기로 하였지만 아직 안정적으로 정착이 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의 인사와 복지정책을 총괄하는 경영지원부문 임원의 농담인 듯 진담인 듯 건넨 말 한마디는 내게 항거할 수 없는 압박이었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었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 약속,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는 걸 일상에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이는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평범한 남자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는 것의 고충을 느끼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이는 내가 ‘페미니즘‘이라는 화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가시화되고 권력화된 악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 선의로 포장된 무례가 누적된 결과가 아닐까?
선생은 매드의 블라우스에 분홍색 꽃을 핀으로 꽂아주려 했다.
"파란색 꽃을 꽂아도 될까요?"
매들린이 묻자 선생님은 대답했다.
"안돼. 파란색은 남자아이용이고, 분홍색이 여자아이용이란다." - 1권 p. 310 -
주변의 수많은 "소외된 우리"들은 일상의 부조리 앞에서 눈을 감고 입을 닫고 살았다. 기득권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를 잃을까 전전긍긍할 때 피해자들은 삶의 전부를 잃을 각오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로와 보복, 무력감 속에서 괴로워해야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로서 나는 딸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선택지가 주어지길 바란다. 딸이 성장해나가면서 가장 많이 받게 될 질문 중 하나는 꿈과 장래희망에 대한 것일 것이다. 아이에게 꿈이 무엇인지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묻는 건 상당히 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이 담고 있는 의미는 딸이 성장해가면서 '너는 도화지와 같아서 어떤 그림으로든 완성될 수 있단다. 너의 무한한 가능성을 맘껏 펼쳐보렴'에서 "이제는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지 정해야 하지 않겠니?"로 바뀌어 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여자인 네가 그걸 한다는 게 가능할까?"로는 변질되지 않길 바란다.
삶의 작은 순간들이 누적되어 한 사람의 일생을 구성하듯 세상의 변화도 생각보다 작은 부분에서 시작될 수 있다. 나는 딸이 태어나고 회사에 남성 육아휴직을 신청하였다. 이는 물론 태어난 아이를 위해 앞으로 일정부분 여성이 아닌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될 아내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또 다른 여성으로서 살아갈 내 딸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이 조직 구성원들의 부정적 인식을 전환시켜 육아휴직제도가 안정화되고 나아가 조직문화가 개선되는데 미약하나마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쉽사리 변하지 않는 세상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아내와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삶이 빛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엘리자베스 조트"들의 희생과 헌신이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작지만 끊이지 않는 목소리들이 '새 시대를 열어갈 에너지를 창조하고 새 세대를 번성시키는 진지한 화학 실험'의 촉매제가 될 것임을 믿는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엄마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여성들의 삶에 행복이 깃들길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