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나가고 나도 집을 구해서 

이사를 하게 되고 나자마자 냉장고가 고장났다. 

냉장고를 쓸 수는 있는 고장이라서 이사한 다음 그 집에서 냉장고를 사겠다 계획이긴 한데 

고장난 냉장고 쓰는 것도 꽤 고달픈 일이다. 이 냉장고는 10년전 중고로 구입했고 그 때 이미 아마 10년 이상 되었을 것이었다고 짐작한다. 사실 처음부터, "고장!"까지는 아니라도 어설프게 (냉장실이 냉동실 같아졌다가 아니었다가를 반복하는 거 같은) 작동했고 이번 본격 고장 전 꽤 오래 고장나 있었다. 냉동실에서 냉장실로 물이 새고 그 물이 냉장실에서 언다는 문제. 이 문제는 냉장고를 다 비운 다음 전원을 빼고 냉장고 안을 완전히 건조시키면 대부분 해결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결을 하겠다는 의도가 있긴 했으나 차일피일 하지 않으면서 적어도 2년 세월이 흘렀. 


냉장고를 살 수도 있긴 했는데 (냉장고 살 돈이 없던 건 아니엇....) 버틸 때까지 버티다 오늘에 이름. 

아무튼 냉동실에서 물이 새어 냉장실에서 언다는 문제는 버티다 보니 어느 날 거의 해결이 되어 있기도 했다. 냉장고가 자체 교정. 그러다 이번 본격 고장으로, 냉장고 문이 닫히지 않게 되었다. 지금 물채운 병으로 막아두면서 쓰고 있다. 냉장고 문을 열 때 물병을 치우고 냉장고 문을 닫으면 물병으로 막아 둠. 


냉장고 문 열기를 아주 삼가하게 됨.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에만 열게 되는 중이다. 


이사갈 집은 새 냉장고를 설치하고 싶어지는 집이다. 바닥도 벽도 깨끗하고 공간이 냉장고를 위한 공간이 있다. 

지금 집은, 바닥이나 벽이 더러웠던 건 아니지만 그냥 대충 아무렇게나 막 지은 10-12평 집이라서 냉장고를 둘 공간이 없는 집. 아무튼 새 냉장고에는 과일과 물, 밥(얼리는 밥) 언제나 넉넉히 채워두고, 조용한 집에서 그것들을 먹으면서, 모든 시간을 소중하게 감사히 쓰면서 ㅎㅎㅎㅎㅎ 읽고 싶고 읽어야 하는 책들 집중해서 읽고 써야 하는 글들도 집중해서 쓸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역시 이렇게 서재에 쓰는 것이 (무엇에 대해 쓰든) 

일기에 쓰는 것과는 다르게 정신분석 효과가 있긴 있다. 

이렇게 서재 포스팅을 하면서, 글쓰기에 착수하는 그 상태, 그 상태에 조금씩 가까이 가는 거 같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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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3-24 2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몰리님 글 읽는 거 진짜 너무 좋아요. 이상하게 힐링돼요. 이사도 응원하고 글쓰기도 응원합니다!

몰리 2021-03-25 08:0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만세!
우리 함께 만수무강합시;다;!
 



연말에 내겐 꿈의 학술지에 속했던 곳에 보냈던 원고가 

좋은 평, 좋은 결과를 받고 얼마 전 돌아왔는데 

다시 보내기 전 몇 가지 수정하고 보태야 할 내용이 있다. 에디터가 일러준 대로. 


빨리 해서 보내야 빨리 발표되고 

빨리 발표되어야 이, 지금까지 살아온 정처없이 표류하는 삶이 아니라 

정처있는 ; 삶을 시작할 가능성이 확보될 텐데 

너무너무너무너무 힘이 들어서,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일이 반복되는 중. 

양이 많은 것도 아니고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해서 아주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집중해서 생각하고 문장을 쓰는 그 상태로 진입이 안되는 중이다. 여러 이유로 (집 구하러 다닌 것도 포함해서) 

번아웃 상태에 가깝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그 상태로 진입하는 게 이렇게 힘든 거였나, 진짜? 하게도 된다. 

이게 필요하고 오늘치 써야 할 내용은 이것이다 -- 이렇게 모니터 메모보드나 작업일지에 적어두면 

(아니 적어두지 않아도) 그렇다고 생각하면 바로 그 작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그 착수가 안되는 중. 

너무 지쳤기 때문에 안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아닌 다른 이유가 있는 거 같다. 정신분석이 요구되는. 

.................. 아 오늘도 늠늠 절실히 착수하려 했으나 하지 못하며 하루가 감. 

이렇게 적어보면서 조금씩 해소되는 것. 조금씩 진행되는 정신분석. 그 덕분에 내일, 아니면 내일 모레 

착수가 가능해지기. 그리고 빠르게 끝내기. 그럴 수 있기를 기대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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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2021-03-24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논문쓰고 연구실적 쌓는 입장에서 공감이 되네요... 안정된 환경에서 연구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

몰리 2021-03-24 19:54   좋아요 2 | URL
에고 감사합니다! 내일부터 본격 작업 착수하려고
지금 치유의 ㅎㅎㅎㅎ 서재 포스팅을 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자를 위한 기도를 만들어도 될 거 같아집니다!

유부만두 2021-03-27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어져요.

몰리 2021-03-28 07:16   좋아요 1 | URL
전 수퍼시니어 동영상 보고 나서
앞으로 2-30년 뒤, 21년에 알라딘 서재하던 우리들이 ㅎㅎㅎㅎ
은발이 되어 처음 만나고
10년대 말, 20년대 초를 회상하면서
같이 유람도 다니고, 창던지기도 하고 ;;;;
그러면 좋겠다... 같은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과 아주 다른 세상이겠죠?
 




그 동안에도 당장 필요하지 않은 책들 다수 사들였는데 

그 중 이것도 있다. 이 책은 알라딘에서는 팔지 않고 분도 출판사 홈페이지로 가야 살 수 있다. 

3만원 이상 무료배송이어서 (배송비 내고 원하던 것만 사는 것이 현명하겠지만 현명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무료배송하기 위해 3만원 이상을 만들어야 함) 수도원에서 만든 묵주도 구입하고 아래의 책도 구입.



해방신학의 영성(인상)




셋 다 받아서 내내 오직 보관중일 뿐이긴 하다. 

성지순례에 관심이 생긴 건 유튜브에서 성지순례하는 남자 채널 보고 나서. 

초딩 ; 시절 가본 유명한 성지들, 수도원들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이 채널 보면서는 

무려..... 지금 내게 차가 필요한 이유, 성지순례, 라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앉아 있었다. 차가 있다면 

한 달에 한 번은 성지순례 가겠다, 가고 싶다고까지. 


성지순례에 관심 있고 한국에서 천주교 역사에 관심 있고 

독실한 ㅎㅎㅎㅎㅎ 신도이기까지 한 누가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과 내가 불편하지 않게 어울릴 수 있다면

같이 성지순례 다니면서 종교, 신학, 기독교, 한국 천주교 성인들, 외국 성인들, 성 아우구스티노, 토마스 아퀴나스 등을 주제로 무한히 얘기한다면 좋겠다 같은 생각이 여러 번 들기도 했다. 무한히 얘기하기 위해 공부한다면 좋겠다. 같은. 


저 아래 포스팅에 썼던 어린 시절 성당의 신부님. 

성당 다녔던 어린이들 전부를 사랑하신 분이었다. (.....) 음 뭐랄까 이런 얘기는 웃음 없이는 하기 힘든 

얘기 같긴 한데, 하여튼 진짜로 그러셨던 분. 진정 우리들의 목자이셨. ;;;;; 

앞으로 사는 동안 신부님께 돌려드릴 것도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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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2021-03-24 12: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은 바람이 있는데, 현실적으로는 나이 들고 은퇴한 이후에야 그런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ㅎㅎ

몰리 2021-03-24 13:23   좋아요 3 | URL
일단 서울 순례길부터 다녀보려고 생각은 하는데 아 정말 이것도
실행은; 아마 무진장 오랜 시간 뒤에나 가능할 거 같다고 예상하게 됩니다.
저도 노인이 되면 다른 노인들과 ㅎㅎㅎㅎㅎ 성지순례 다니겠다는 상상도 하게 되었습니다.

라파엘 2021-03-24 13:36   좋아요 2 | URL
대학생 시절에 중세철학 수업은 매 학기 한과목씩 꼭 수강했었는데, 은퇴하고 성지순례 다닐 때 대화하기 좋도록 틈틈이 더 공부해야겠어요. 같은 생각을 가지신 분을 만나서 반갑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자취방. 하면 생각나는 방 중엔 

80년대 신림동 사촌오빠의 방이 있는데, 사촌오빠는 

전국수석 혹은 차석 그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랬다 해도 놀랍지 않을 엄청난 학력고사 성적으로 

샤대 가신 분이었다. 집안에서 최초로 대학을 가면서 샤대 가셨던 막내 삼촌 이후 사촌오빠가 한번 더. 

그리고 나의 오빠가 (....) 그랬던 80년대. 80년대말. 


지금 내게 샤대는 뭐 그냥 그렇; 그렇고 그렇;은 아니고 그렇게 대단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고딩이던 80년대엔 아니었고, 사촌오빠가 살던 집에 처음 가보았을 때, 그 집에 있던 무엇이든 금빛 후광을 

거느린 것처럼 보이던 그 느낌은, 지금도 소환하려면 소환이 되는 느낌이다. 모두가 신비하게 보이던 그 집. 부자인 

나의 고모가 사촌오빠에게 아낌없이 돈 쓰게 해주었던 그 집. 




그 집과 비교하면 (심지어 80년대의 그 집과 비교해도) 아주 못한 내가 이사갈집. ;;;;; 

그럼에도, 조용히 흥분하게 되고 흥분이 지속되는 내가 이사갈 집. ;;;;;;; 

그 집 다음의 집은 내집어어야한다고, 책만이 아니라 옷도 더 잘 보관할 수 있는 내 소유의 집이어야한다고 

생각하게 함에도, 그럼에도 일단은 그 집이 이 집 다음 내가 살 집임을 기억하면 자다가도 웃고 있을 내가 이사갈 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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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1-03-24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다섯손가락 앨범 (그것도 LP) 이 등장하네요. 제 친정에 가면 저 앨범 아직도 있어요 (요즘 말로 다섯손가락 찐팬이었답니다).
이사 앞두고 심난하시기도 하고 짐 정리하다보면 지난 날 되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그러시겠어요.

몰리 2021-03-24 07:10   좋아요 0 | URL
당시 사촌 오빠네 집에도 이게 있었던 거 같아요. 여러 LP들 중에서 이것.
환하고 넓었던 집. 대학생은 이런 집에서 사나, 잠깐 환상(망상)에 빠지게 했던 집.
지난 세월 돌이켜보게도 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고
사실 돈 걱정이 없다면 오히려 이사를 ㅎㅎㅎㅎ 자주 다닐 거 같아지기도 하고 그래요.
젊었을 때라면 그랬을 거 같은. 이제는 다시 생각하면 정착 쪽으로 기울어지지만.
 



지금 사는 집은 들어올 때 부동산과 집주인 말에 따르면 14평이었다. 

아닌 거 같은데? 한 10평인 거 같은데? 14평이면 뭐랄까 1인용 의자를 어느(아무) 구석에나 두어도 되는 공간이고 

10평이면 그게 무리인 공간으로 생각한다면 14평이 아닌데? 


등기부 등본에 따르면 14평은 과장;이었고 11.99평 정도 되는가 보았다.

그런데 집 보러 온 분들 중 집이 넓다고; 감탄한 분들이 있었다. 어떤 분들은 (두 분이 집을 보러 왔는데) 

"어이구 대궐이네 대궐이여" 눈을 반짝이며 이 집안을 성큼성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보시기도 했다. 

일곱 걸음쯤 나오나. 어휴. ㅎㅎㅎ 아. 하튼. 


이 작은 집에 이렇게 많은 책들을 사서 두고 있었다. 

어디 있나는 알지만 안보이고 꺼내기 힘들어서 볼 수 없던 책들이 많다. 그것들을 이제 보이는 곳에 두고 

궁금하면 바로 꺼내볼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하면, 조용히 흥분되는 것임이다. 


Eams chair. 

Frasier에서 프레이저가 자랑하던 임스 체어. 

서울 변두리 구옥을 위한 임스 체어를 찾아내려는 검색이 진행되는 중. 




이직의 꿈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이직이 어렵다면 퇴직. 내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퇴직은 ;;;;; 곧 실현 예정이다. 

변두리 매력적으로 수리된 90년대식 (방이 크면 조크든여; 아무리 수리됐어도 90년대가 자동 소환되는) 집에서 

복숭아 ;;;;; 크고 맛있는 복숭아 먹으면서 좋은 문장들을 쓰고 있겠다면 좋을 21년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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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3-23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말이죠. 360회전 가능한 어두운 오렌지색 체어 소유자입니다. ㅋ 원하시는 체어 득템하시고, 퇴직도 곧 실현하시길. ㅎ

몰리 2021-03-23 23:10   좋아요 0 | URL
의자 사진 올려주셔야! ; 저 지금보다 살림이 피면 ㅎㅎㅎㅎ 무엇보다 의자에 큰돈 쓸거같아집니다. 의자가 좋으면 가능해지는 것들에 대해........ (쩜쩜쩜;;;).

2021-03-24 0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4 0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