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엔 이런 일이 있었다. 

4시 넘어서 저녁을 먹는데 마지막 몇 숟가락 먹기가 쉽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 밥 양을 꽤 줄였기 때문에, 

끼니마다 먹는 양 자체 많지 않은데 (그래도 살은.....;;; 그대로. 많이 먹어도 그대로. 적게 먹어도 그대로) 다 먹질 못함. 그리고 30분쯤 후 왜 어지럽다? 울렁거리는 느낌이지 않나 이것은? 하다가 욕실 세면대를 붙잡고 꾸역꾸역. 울컥울컥..;; 


그리고 재난이 시작되었다. 오늘 오전 8시까지. 

아파서 잠들 수 없는 밤을 한 30일 이어 보낸 느낌. 깨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기어서 욕실가기 30회? 

보리차 마시면서 진정되고 있지만 어제 오전까지 알던 세상에서 (이 세상이 뭐 그리 좋은 세상도 아니지만) 

쫓겨나, 리얼 헬로 보내졌음. 정신이 좀 수습되면서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았는데 (정로환은, 일본군에게 지급되었던 지사제에 러시아 정벌을 기념하며 붙여진 이름이라는 둥), 요약하면: 육체는 슬프다. 약하다, 역겹다 등등을 포함하여, 슬프다. 


방학의 계획은 이랬다. 

여름학기를 하지 않는다면 매일 오전에 글을 쓰고 오후엔 공부하기. 

여름학기를 한다 해도, 새벽에 일어나니까 아침 먹고 나서 2-3시간은 쓰고 수업 갔다 와서 저녁엔 공부하기. 

여름학기는 1학기가 끝나자마자 시작했고, 내일 모레면 끝나긴 하지만, 정신없음과 힘듬 속에서 (힘들게 하는 여러 일들이 당연히 있다) 계획은 숲으로........ㅋㅋㅋ;;;; 


건강한 편이라 이런 미미한 고생도 잘 몰랐던 거라서,

지금 심정이, 그래 아직 내가 죽을 때가 아니라며 다시 기회를 주었나 봄 저위의 누군가 : 이렇다. 간밤엔, 이러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누구에게 먼저, 연락이 가지? 내가 발견되는 건 내일 모레쯤 이미 부패가... 청소는 해두고 죽어야하는데... 


저런 생각을 matter of factly 한다는 것이, 나이듦의 증거. 



*작정하고 다이어트하던 때도 가지 못했던 체중, 

그리로 하룻밤만에 옴. 지금 집의 체중계는 구식이고 파운드 단위인데, 

파운드 표시로 가운데 숫자가 바뀌었다. 4-5파운드가 하룻밤만에 줄어듬. 

설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금식하라고 하던데 (구글 검색 결과들에 따르면)

오늘 저녁부터는 밥은 아니라도 죽 정도면 먹어도 될만큼 지금 거의 회복된 느낌임에도, 놀라운 이 감량 앞에서, 금식의 유혹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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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엔 이거 들어보았다. 99년 당시 스탠포드 역사학과에 있었던 메리 루이즈 로버츠의 "토론 수업 잘하는 법." 검색해 보니 그는 지금 위스컨신 매디슨 역사학과 재직. 스티븐 내들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오... 였던 매디슨. 


teaching은 예술, 혹은 기예인데 그래서 몇 가지 중요한 원칙 정도를 빼면 그걸 가르친다는 건 불가능하고, 

오직 teacher 스스로가 경험을 통해 알아가는 거라고 한다. 그래서 로버츠는 자신의 경험에서 얘길 시작하는데, 퀘이커 교도가 세운 고등학교 출신이며 그 고등학교에서 가르쳤던 게 그녀의 최초의 강의 경험. 퀘이커교에는 누구에게나 "inner light"가 있다는 믿음이 있고, 개인이 갖는 존엄성에 대한 이 믿음이 그 학교 교육 철학의 중요한 일부였다. 고교 수준에서는 인간을 가르치지만, 대학 수준에서는 과목을 가르친다... 는 흔한 믿음이 있지만,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방향에서 이 구분을 없애고자 하고 이게 퀘이커교 교육철학이 내게 남긴 유산같은 것. 가르침은 언제나 개인에게, 그라는 전인("whole person")에게, 그의 내면의 빛을 향해야 한다. : 이런 얘기가 강연 시작하면서 나오는 얘기. 


이런 얘기 한국에서 하면, 냉소가 주된 반응일 것 같다. 그런데 아직 미국에선 (99년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그리고 스탠포드 같은 학교에서면, 당연한 얘기지만 중요하니까 수시로 공유할 가치 있음...... (끄덕끄덕), 이 정도지 않을까. 


재미있는 비교가 있다. 

로버츠는 스탠포드 오기 전에 브라운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했고, 

박사과정 강의조교를 하면서 브라운 대학 학생들의 특징을 보았다. 이들은 아주 진지하게 지적인 추구에 몰두하는 학생들이다. 그들과 대조되게 스탠포드 학생들은, 가장 탁월한 학생들일지언정 결코 지식인은 아니다. 브라운 학생들은 지적인 추구에 열중하는 나머지 과제를 하지 않는다. 스탠포드 학생들은 과제를 언제나 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삶의 일부를 구성하는 임무 수행 정도의 비중이다. 


"니체의 300 페이지를 읽는 과제를 내면, 브라운 학생들은 100페이지만 읽어오고, 

그만큼 읽고 나서 너무 우울해 더 읽을 수 없었다고들 말한다. 스탠포드 학생들은 모두가 300페이지 전부를 읽어오지만, 

아무도 우울을 체험하지 않는다." : 이 두 학교 사이에, 정말 이렇게 말하면 될 어떤 차이가 있을 것같다. 그게 꼭 브라운과 스탠포드 아니라도 동부의 작은 대학과 캘리포니아의 큰 대학 사이에, 이 비슷한 차이 있을 듯. 



*아침 먹고 중간고사 채점을 시작했는데 이제 반쯤 했다. 점심 먹고나서 더 하면 저녁먹기 전에 끝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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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에 악스트, 우상의 황혼. 두 권 주문해서 조금 전 받았다. 

<악스트>에 "몽유병의 여인을 기다리는 급진 낭만강경파의 복싱 프롤로그"라는 에세이가 있는데, 

작가는 이응준이고 아마 연재되는 것인지 "이응준의 4차원 에세이 해피 붓다"라고 글 제목 위에 적혀 있다. 내용은... 홍대에서 몽유병의 여인이라는 와인 비스트로를 운영하는 F형과 맥주를 마시면서, 정한심양을 기다림. 


"나는 누군가 내 글을 읽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분노가 없고, 오히려 요즘은 읽어서는 안 되는 인간들이 읽는 것이 기분 나쁠 지경이다" 


읽다가 이런 문장이 나와서, 잠시 웃음. 

미국의 젊은 작가 브래드 리스티가 운영하는 작가 대담 팟캐스트 Otherppl이 있다. 이미 중견이 된 작가들도 아주 가끔 출연하지만 리스티의 지향은 막 첫 책을 낸(낼) 신인 작가들.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그걸 어떻게 극복했는지. 성장 환경은 어떤 것이었으며 영향을 준 다른 작가는 누구들인지. 이런 얘기. 꽤 인기있는 팟캐스트고 시작한지 지금 4년째인가, 몇년전부터 '지금 핫한 팟캐스트'로 여러 곳에서 선정되었다. 나는 15-16년 겨울에 자주 들었는데 어느 날 게스트 작가에게 그가 질문하기를, 첫 책이 나온 후 아마존에 가서 독자 리뷰들을 수시로 보게 되지 않던가? 그리고 독자 리뷰들이 올라오면 기쁘지만 그 내용엔 대체로 실망하지 않았나? 이런 소린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거야?? 


게스트 벙쪄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같았던 순간, 

그가 무마하기 위해 하던 말이 그것이었다. "내 첫 책, Attention. Deficit. Disorder. 이 책으로 내가 안다고! My book resonates with idiots." 거의 무마되지 않고 둘 사이의 어색함이 끝날 때까지 완전히 걷히지는 않았던 것같은 그런 에피가 있었다. 게스트 작가는, 독자에게 얼마나 고마운가, 나는 독자에게 영원히 빚을 졌다.. 강경하고 순수하게 이런 입장이었을 것이다. 


이응준의 위의 문장 읽고, "내 책은 바보들과 공명한다"던 리스티가 생각났음. 

리스티의 팟캐스트 애청하면서 그의 책도 사보았는데, 책은... ㅋㅋㅋㅋㅋ;;;; 아...;;;; 

그러나 제목은, 나쁘지 않다. 같은 제목으로 걸작도 상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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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찌히 대학에서 니체의 지도교수였던 프리드리히 리췰이 쓴 파격적인 추천서. 논문이 없었고 그러니 학위도 없었음에도 바젤 대학에 취직할 수 있게 했던 추천서. <포터블 니체>에 카우프만이 쓴 "해제"에 일부 번역되어 있다. 7-8쪽. 


39년간 대학에 있었지만 이 청년만큼 뛰어난 학생을 가르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학생이 내 연구에 기여한 것도 이 청년의 경우가 처음이다. 신의 가호에 따라 이 청년이 오래 살게 된다면, 나는 그가 독일 문헌학의 일급의 학자로 이름을 떨칠 날이 오리라 예언한다. 강하고, 힘에 넘치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용감한 청년이다. 비슷한 성격을 가진 다른 사람들도 놀라게 할 정도로 그렇다. 말을 명료하고 솜씨있게 하며, 조용하고 자유롭게 사고를 전개하는 부러운 재능을 갖고 있다. 그는 영웅이며, 그가 그럴 생각이 없음에도 라이프찌히에 있는 젊은 세대 문헌학자들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하루라도 빨리 그의 강의를 듣고 싶어한다. "아니 이 사람은 지금 사람이 아니라 "현상"을 말하고 있잖아"라고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그는 정말이지 "현상"이다. 그러나 그는 같이 있으면 유쾌하고 겸손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 추천서에 꼭 필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그는 뛰어난 음악가이기도 하다.


바젤 대학이 니체를 임용하기로 하자 리췰은 또 하나의 추천서를 쓴다. 


니체는 정치 성향이 강하지 않은 청년이다. 독일의 위대함에 동조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프러시아주의에 빠지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자유로운 시민/영적 활동을 지지하며, 따라서 스위스 대학인 귀대학에 잘 적응하고 살아갈 것이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여태까지 그의 연구는 그리스 문학사, 특히 그리스 철학사에 초점을 두어왔다. 그러나 나는, 대학의 실질적인 요구가 있을 경우, 그가 가진 뛰어난 재능으로 다른 분야에서도 최고의 성공을 거둘 것임에 조금도 의심이 없다. 하고 싶은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청년이다. 



19세기 독일에서 문헌학이 지금 한국이나 미국에서 인문학 특히 문학연구와 비슷한 면이 당연히 있겠지만, 

지금 인문학엔 없고 없었고 상상하기 힘든 면도 있었을 것같다. 거의 "과학"이지 않았을까? "독일 문헌학의 일급의 학자" 리췰의 이 말은, 자연과학에서 과학자들이 가질 법한 확신이 담긴 말이 아니었을까. 내 예측은 실현될 것이고 아무도 이의를 갖지 못할 것이다 같은 확신. 


니체의 외모가 평범했으며 여자들에게 인기는 전혀;;; 없었다.. 고 모든 전기가 말하기 때문에, 

니체는 "현상"이다... 는 리췰의 말이 더 상상을 자극하기도 한다. 똑같은 말을 해도 니체가 하면 (다른 청년 문헌학자들에 비해) 뭔가 아주 대단히 다르게 들릴 때가 많았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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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자체의 속성은 아니지만 어쨌든 현재의 경향으론, 

어법에선 굳어 있고 의미에선 구속력이 없는, 어찌 봄 모순처럼 보일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어의 이런 면이, "정신의 삶"이란 걸 한국어에 담기 어렵게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실은 많다. 얼마 전부터 자주 생각하는 주제. 


Entitled Opinions에서 게스트가 대학원생이었던 에피도 하나 있는데, 스탠포드 물리학과 박사과정이었던 Kathryn Todd(여학생. 물리학 전공 여학생이면 그냥 바로, 리스펙트....)가 게스트고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주제였던 에피. 오늘 아침 이거 들으면서 생각했다. 일단 이런 말들을 번역으로라도 한국어 안으로 끌고 와서, 해봐야하지 않을까. 






오프닝에서 이런 말을 한다: 

Everyone is entitled to his or her opinion. That's what das Man says. But is it true? 

Is everybody entitled to an opinion? That's a question we're not gonna resolve here today. All I know is that on this show everyone is entitled to my opinions and to the opinions of my guests. 


We're not miserly here. We're in fact exceedingly generous with our opinions. 

We're here to instruct and delight, and to talk about literature. 

So, is everybody in? Is everybody in? The symposium is about to begin.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누구나 자기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누구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까? 이건 오늘 우리가 해결할 질문은 아닙니다. 나는 다만, 모두가 나의 의견을 그리고 내 게스트들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만 압니다. 


우린 전혀 인색하지 않아요. 아니 우린, 우리 의견을 아주 넘치게 퍼줍니다. 

우리의 목적은, 가르치며 또 기쁨을 주는 것이죠. 그리고 문학에 대해 얘기하는 거에요. 

그럼, 다들 들어왔나요? 모두 들어왔나요? 잠시 후 심포지엄을 시작하지요. 


(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 ;;;;;;;;;;;; --> 이러면서 옮겨 보았다. ㅜㅜㅜㅜ 이것도 포함). 


어쨌든 이 오프닝과 그에 비교할만한 그 비슷한 내용의 한국어판을 상상하면서, 

영어의 경우엔 언어와 정신의 삶이 유연하게 동행해 왔지만, 한국어는 (영어와 비교한다면) 무슨 2인3각 경기같은? 거의 언제나 둘 사이에 강요(억지), 삐걱임이 있는. 그렇지 않나 했다. 사실 opinion 이런 기초 어휘들은 물론이고, to instruct and delight 같은 구절도, 영어로 쓰이면 그냥 바로 정신의 한 편이지만 한국어로 옮겨지면 그렇지 않지 않나? "가르치고 기쁨을 주려 해요." 이것과 정신 사이엔 어느 쪽에서든 좁혀야 할 거리가 있지 않나? 


정신의 삶이라는 게 겨우 존재하는 정도인 것과, 누구에게든 "책임"을 제대로 지우고 묻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은 실상 같은 일 아닌가? 


아아아.......;;; 횡설수설은 그만두고, 

한국판 Entitled Opinions가 있으면 좋겠다. 미국판이 그러듯이 게스트가 교수들 위주인 건 여기선 힘들 것같으니, 

호스트도 게스트도 대학생이거나, 아니면 호스트는 대학원생 게스트는 그게 누구든이거나. 미국판이 그러듯이 문학과 철학에 중점, 그러나 생명 윤리나 컴퓨터 공학이나 대학의 사명, 인문학의 사명 (다루어졌던 것들이다. 대학의 사명은 스탠포드 총장이었던 존 헤네시가 게스트, 인문학의 사명은 헤이든 화이트가 게스트) 다양한 주제에 대해, 정신의 삶을 위한 대화. 


최승자와 <이 시대의 사랑>에 대해,

부산의 매력에 대해, 

고양이의 매력에 대해, 

야구의 매력에 대해, 그런 대담을 듣고 싶고 

미국판처럼 긴 세월에 걸쳐 주제 목록이 작성되는 것도 상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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