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신장판 5 - 듄의 이단자들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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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의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이제 좀 익숙해질만도 된 것 같은데,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때마다 매번 혼란스럽다. 특히 이번 [듄의 이단자들]에서는 지금까지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끌고 나갔던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누군가 대신, 베네 게세리트와 명예의 어머니, 틀레이랙스인들, 골라가 되어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던컨 아이다호와 그런 던컨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훈련을 맡은 마일즈 테그, 벌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녀 시이나 등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여러 인물들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인지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1권을 제외하고는 워낙 심오한 가치관과 이념을 서술하는 작품이다보니 내 머리속도 혼돈.

 

신황제 레토가 모래벌레가 되어 사라진 후, 시간은 흘러 어느 덧 1,500년 후. 비옥했던 아라키스는 이제 다시 사막의 모습으로 돌아가 라키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권력과 이익을 위해 서로를 견제하는 무리 속에 던컨 아이다호가 있다. 그의 죽음 이후 최초로 골라가 등장했을 때는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지만, 이제는 정확히 몇 번째인지도 모를 골라로 재탄생되는 그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아무리 예전의 기억을 각성한다고 해도 그는 예전의 던컨인가 아닌가, 하는 의문부터 항상 누군가와의 '교배'로 이용되기 위해 되살아난다는 설정에는 연민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에게 존재하는 고대의 유전자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인지, 이번 편에서도 시이나와의 원하지 않는 관계를 종용당하는 모습에 안쓰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자신은 종마가 아니라며 거칠게 분노하는 던컨.

 

그런데 5권에서는 던컨에게만 '종마'로서의 의무가 주어진 것은 아니다. 한때 레이디 제시카가 몸 담고 있었던 베네 게세리트에는 이제 '각인사'라는 임무를 수행하는 여성들이 존재한다. 각인은 바로 '성적인 각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각인사들은 정해진 남자를 유혹하고 아이를 낳는다. 그것도 몇 번이나. 상대를 황홀경에 빠트려야 하므로 존재하는 체위도 수백가지에 이른다는 설정에서는 다소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그들은 또 한번, 폴 무앗딥 같은 퀴사츠 해더락을 원하는가. 그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제 그들도 퀴사츠 해더락이나 예언자 등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앞을 바라보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명예의 어머니 또한 베네 게세리트와 같은 행동을 취했던 것인지 베네 게세리트 대모들은 그들을 향해 '매춘부'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격돌. 이 싸움으로 인해 이제 벌레는 한마리만 남고 베네 게세리트도 참사회로 도망친다. 끝나지 않은 싸움과 어쩐지 석연치 않은 마무리로 뒷맛이 개운하지가 않다.<듄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의문은 풀려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더해진다. 6권에서는 속 시원히 결말을 맺어주시기를! 작가님이 병으로 인해 세상을 뜨시면서 갑작스럽게 종결되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새삼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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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러운 세상 속 둘만을 위한 책 - 혼자가 좋은 내가 둘이 되어 살아가는 법 INFJ 데비 텅 카툰 에세이
데비 텅 지음, 최세희 옮김 / 윌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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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제이슨과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은 데비!!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결혼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요. 내향적인 성향이 강하다 못해 강박적이고 예민하며, 무엇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비가 과연 어떤 결혼생활을 이루어낼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제이슨이 있잖아요. [소란스러운 세상 속 혼자를 위한 책]에서 이미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 제이슨이었기 때문에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는데요, 결혼생활 중 소소한 다툼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니까요. 자, 그럼 그들의 생활을 쪼오큼만 들여다보기로 할까요!

 

책을 시작하기 전에 '날 사랑하고 지지해주며, 완벽한 차를 타주는 동반자 제이슨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라고 적힌 문구를 보는데 왜 제가 울컥한 거죠. 사랑과 지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또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사랑과 지지라는 가면을 쓰고 비판과 조롱을 멈추지 않기도 하거든요.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데비에게 이 '사랑과 지지'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기에 순간 그만 눈물이 났습니다. 이 문장 하나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보다 더 강력한 힘을 내뿜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결혼생활 7년차에 접어들다보니 공감가는 내용도 많고 부러운 점도 있고, 웃음 나는 에피소드도 있었어요. 남편이라는 말이 입에 붙지 않아서 '남자친구'라는 단어가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던 결혼 초기의 어색함을 저도 기억합니다. 그런데 지출 예산을 짜는 데비, 이렇게 부러울 수 있나요??!! '책에 대한 지출'은 무제한이라고 설정해놓았지만, 과연 아기가 생기면 어떨지. 저도 신혼 초기에는 읽고 싶은 책 부담없이 그냥 샀던 것 같은데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아이들 책을 사느라 제 책을 구매하는 비율이 줄었거든요.

 

서로 다른 장소에서 각자의 일을 하다가 저녁에야 만나 함께 저녁을 먹는 이들의 풍경, 매우 안정되고 평화로워 보입니다. 저희는 평화로운 저녁 식사를 들기보다는 평화로운 야식을 먹어요! 아이들 둘 재우고 가끔 먹는 야식의 맛이란, 천상의 맛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언제나 듬직해 보이던 제이슨에게도 약점이 있었네요! 엄청 큰 벌레가 들어왔다면서 데비를 부르는 제이슨! 이것만은 옆지기와 똑 닮았네요. 옆지기는 한 몸집 하는데도 불구하고 벌레가 나타나면 저를 부르느라 아주 난리가 납니다. 별 수 있나요. 옆에서 아이들도 같이 소리를 지르니 엄마가 나설 수 밖에요!

 

 

제가 웃음이 아주 빵 터진 에피소드가 둘 있었는데요, 그 중 하나가 밖에서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은 제이슨을 데비가 추궁하는 장면이었어요. 이렇게 맛있는 것을 어떻게 혼자 먹을 수 있냐며 제이슨의 목을 조르는(?) 데비의 모습에 제가 겹쳐 보였거든요. 늘 집밥을 먹고, 특히 저녁은 곰돌이들 식단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저로서는 옆지기가 특식이라도 먹은 날에는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라고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리 억울한지. 흐흐흐흐. 다른 하나는 치킨 너겟을 사왔다는 제이슨의 말에, 잠시 토라져 있던 데비가 화를 푸는 모습이었어요. 역시 상대의 마음을 풀어주는 데는 그 사람이 원하는 일을 해주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정말 대반전이었어요! 임신 사실을 알고 눈물을 흘리는 데비와 그런 그녀를 포근히 감싸주는 제이슨. 데비의 눈물에는 기쁨도, 앞으로의 삶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담겨 있었던 거겠죠. 이제 둘이 아니라 셋이 함께 꾸며갈 일상과 책 이야기. 혼자 있기를 좋아했던 데비가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면서 둘이 되고 이제 셋이 된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동적입니다. 아기와 함께 하는 데비와 제이슨의 모습도 꼭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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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신장판 5 - 듄의 이단자들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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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듄 시리즈 중 가장 혼란스럽고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마무리였던 것 같다. 베네 게세리트와 명예의 어머니들의 싸움은 6권으로 이어질 것 같은데, 중심되는 인물 없이 이 사람 저 사람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왔다갔다 하니 조금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여태까지는 아트레이데스 가문에 집중해서 어려워도 심오한 뭔가를 깨우쳐가는 느낌이었는데, 이번 편은 뭔가 아쉽다. 다음 권은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힘을 내서 마지막 권으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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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열전
박시백 지음, 민족문제연구소 기획 / 비아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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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로 알려져 있던 인물들 중 나를 가장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은 이광수, 최남선 같은 문학인들의 변절이었다. 교과서에서 보고 접했던만큼 그들로 인한 배신감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무엇이 그들을 친일의 길을 걷게 만들었을까. 문학인이라면, 적어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어떤 길 위에 서 있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한 문학인의 기준이 너무 엄격한 것인가.

나라면 어땠을까. 안락한 생활, 재산, 사회적 지위가 과연 나를 친일의 길로 이끌었을까. 읽는 내내 참 가슴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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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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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지는 한참 되었는데 글이 쉽게 쓰이지 않았다. 그런 책들이 종종 있다. 마음 속 감정을 차마 꺼내지 못해 답답함에 가슴만 쾅쾅 치게 만드는 책. 한 줄 적고 지우고, 한 줄 적고 지우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내려놓았는데 어쩌다보니 시간이 흘러 결국 재독까지 하게 되었다. 이 작품이 과연 재독까지 할만한 작품인가 묻는다면, 글쎄. 개인의 취향이므로 확고한 답을 내놓지는 못하겠지만, 처음 읽을 때도 먹먹했던 가슴은 두 번째 읽을 때도 여전히 먹먹했고, 책과 리뷰와 육아와 살림으로 가득한 내 시간을 돌아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얼마 전 부고 문자를 받았다. 10년도 전에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그 남편분의 메시지. 나보다 고작 한 살이 많고, 아이의 나이도 우리 첫째와 비슷해서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무척 친했던 것도 아니고 그 분이 전근가신 후 따로 연락을 취했던 것도 아니건만 동년배의 때이른 죽음에 받은 충격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사람 목숨이란 참으로 덧없는 것이구나,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 생이 허무하기도 하구나. 표면적으로는 어찌어찌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마음 속 균열은 생각보다 오래간 듯 그 어떤 것에도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 심지어 책 읽는 것마저도 힘겨웠을 정도였으니까. 이 책을 읽어 무엇하나, 이걸 읽은들 내가 뭘 알기나 할 수 있을까-그런 생각만으로 책탑을 바라보기만 했던 순간들.

 

시간이 흘러 읽어야 할 책이 쌓여갔고 할 수 없이 다시 책을 손에 든 그 때, 그 많은 책들 사이에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이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였다. 다른 책들을 미뤄두고 홀린 듯 다시 이 책을 손에 들었다. 조산사였던 할머니 요네를 필두로 가족 3대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마치 물 흘러가듯 조용히 묘사되어 있다. 큰 감정의 파동 없이 그들의 삶과 죽음에 관해 보여주는 이 작품은, 일본작품의 느낌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런 분위기다. 크게 소리내어 이야기하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도 스며드는 무언가. 굳이 이것이 무엇이다-라고 정의하지 않아도 그 속에 푹 파묻혀 있게 만드는 무언가.

 

원제가 [빛의 개]이고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하는만큼 홋카이도견과 주인공 3대의 집에서 키우는 개들의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그들도 그들의 가족들처럼 태어나고 자라고 무지개 속으로 사라졌다. 출판사에서는 어째서 원제 대신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라는 제목을 지은 걸까. 내가 이 작품에서 생각한 '집'은 우리가 살고 생활하는 현실의 집이 아니었다. 언젠가 우리가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는 그 어딘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우리가 빛이 되어, 공기가 되어 돌아갈 어딘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에서 죽음은 특별한 것, 생소한 것, 공포스러운 것이 아니라 탄생과 하나 되어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다.

 


하지메가 아유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대자 산소마스크 너머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을 하고 있다.

영차, 영차를 되풀이하는 것처럼 들렸다.

환상의 뭔가를 나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산길이나 어딘가를 오르고 있을까.


p401

 

우리가 돌아갈 집은 어디일까. 그 집으로 가기 전까지 결국 우리는 이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삶의 끝자락에서 돌이켜보면 찬란하게 빛났을 인생이라는 것.

 

부디, 다들 건강하세요. 잘 살고 계세요.

 

겨울이 되고 날씨가 추워지면 또 한 번 읽어보고 싶다. 홋카이도가 나와서 그런지 겨울에 차가운 공기를 가슴 가득 안고 읽으면 맞춤일 것만 같은 느낌.

 

**출판사 <비채>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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