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소사이어티
내털리 제너 지음, 김나연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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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만날 수 있는 행운 중 하나는 같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만 찾는다면 쉽게 이루어질 일처럼 보이지만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다. 한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이 간직한 우주가 있듯, 하나의 작품에 갖는 독자의 감상들도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만해도 지인이 감동깊게 읽었다고 한 책을 읽고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일도 있고, 내가 주변에 추천해준 책을 그들은 별 느낌 없이 읽어넘길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어떤 작가를 좋아한다는 점 하나로 똘똘 뭉칠 수 있다면, 책덕후에게 그보다 더 멋진 일이 어디 있겠는가.

 

햄프셔주, 초턴 마을의 사람들이 뭉칠 작가라면 오직 한 명, 바로 제인 오스틴이다. 나도 무척 애정하는 작가 중 하나. 어쩌면 혹자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여성들의 연애와 결혼을 다루는 전형적인 통속소설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고, 그 판단에 어느 정도 수긍하는 바이지만, 또 그것이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겠다. 통속소설이 꼭 나쁜 의미인 것만은 아니고 작가의 팬으로서 그의 작품에는 통속소설, 연애소설로만 치부하기에는 부족한 무언가가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여전히 알 방도는 없으나, 어쩌겠나. 그저 읽어보라는 진부한 권유밖에 할말이 없는 것을.

 

내가 만약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주변에 권한다면 어떤 추천의 말을 사용할까. 당장 생각나는 것은 제인 오스틴이 그리는 시대의 분위기가 나의 마음에 쏙 든다는 것. 연애와 결혼에 대해 고민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현실 여성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연애와 결혼이야말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재미있다'는 점이다. '재미'를 제외하고 책을 읽는 이유를 논할 수 있는가!

 

[제인 오스틴 소사이어티]는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제인 오스틴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똘똘 뭉쳐 그녀가 남긴 자취를 보호하기 위한 과정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각자 자신만의 상처를 간직한 채 어떻게든 이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큰 감동과 위안을 전달하면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인용하며 대화를 나누고 그녀를 기리기 위해 모임을 만든 그들을 보면서 진정 부러움을 느꼈다. 내가 어떤 작품의 문장이나 상황을 인용해서 대화를 시작하면 이해해줄 이 근처에 누가 있으려나.

 

어떤 사람은 어떤 작가와 그 작품에 애정을 느끼는 것에, 그 작가가 남긴 소장품에 소유욕을 갖는 것에 어리둥절할지도 모른다. 옆지기만 봐도 '책이 대체 왜 그렇게 좋은가'라며 잘 이해를 못하는 눈치니까.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 좋으니까 좋지. 마음이 간다는 것, 그것만이 진실이다!!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그리고 책덕후에게 안성맞춤인 소설. 아니, 표지도 어쩜 이리 어여쁘게 잘 나왔는가 말이다! 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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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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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의 결말이 쓰여 있습니다.

이 작품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당한 줄 알았던 여자가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에게 슬쩍 기대보려다 원래의 연인에게 돌아가는 이야기'. 요는, 여주인공 나스쩬까가 나쁜 여자라는 것이다. 고독한 몽상가인 '나'의 마음을 빼앗은 것은 죄가 아니나, 유약한 그의 마음을 이용해 배신당-했다고 생각한-한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려고 했던 것. '나'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인지 연민인지 우정인지 애매모호한 단어들을 쏟아내며 '나'를 뒤흔들어놓은 것. '나'를 선택하겠다고 하면서, 배신한 줄 알았던 남자가 돌아오자 단번에 그에게 돌아가버렸다. 아니 그러면서 키스는 왜 하냐고, 왜!! 이런 어이없는 여자를 보았나!!

 

[벨낀 이야기]를 읽고 러시아 문학에 도전해도 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안고 시작한 [백야]. -아름다운 밤이었다. 우리가 젊을 때에만 만날 수 있는 그런 밤이었다-라는 시적인 문구에 홀랑 반해, 이것은 분명 대작이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웬걸. 몽상가인 '나' 덕분인지 의식의 흐름대로 쓰인 듯한 문장에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런 '나'가 운하의 난간에 기댄 채 서 있던 나스쩬까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옳거니! 이제부터 시작이렷다! 생각하고 책을 고쳐잡았건만,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한 전개에 울분만 치솟고 만다. '나'의 마음이 어떤지 이미 다 알고 있었으면서 그를 쥐락펴락 농락한 나스쩬까. 결국 '나'는 나스쩬까에게 어장관리만 당하고 만 것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 것은 장황한 문장과 과장된 감정 표현들이었다. 순수한 독자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분명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맞다. 잔혹하게 배신당했으나 '나'가 사랑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므로. 하지만 어떤 감정이라도 자꾸 말로 표현하거나 과장되게 드러내려고 하면 그 깊이는 오히려 얕아지고 마는 법. 나스쩬까와 '나'에게는 분명 애절한 연심이었을텐데도, 나는 이 두 사람 모두 '감정을 연기하는' 배우들처럼 보였다. 서정적으로 다가오기보다 '이 둘 왜 이리 시끄러워! 그만 좀 이야기해!'라고 버럭 하고 싶었을 정도였다고 하면 이해가 되시려나.

 


 

 

<열린책들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는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이미 읽었던 작품도 달리 보이고, 읽지 않은 작품들은 마치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에 읽는 과정 자체가 무척 즐거웠다. 그런데 이 [백야]에서 턱 막히는 느낌이다. 이것은 아마도 독자와 작품의 합이 맞지 않는 경우일텐데, 이 경우에는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 좋았던 것은 딱 하나. 첫문장. 크. 첫문장은 진짜 좋았는데, 딱 내 취향이었는데. 가만. 혹시 내가 순수함을 잃은 건가. 내가 너무 세상에 찌든 것인가. 그렇다 해도 나스쩬까가 나쁜 여자라는 의견은 굽히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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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돈의 역사 - 명화로 읽는 돈에 얽힌 욕망의 세계사
한명훈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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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그림을 ‘돈‘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사용해 바라볼 수 있다니, 기대됩니다! 꿩먹고 알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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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소사이어티
내털리 제너 지음, 김나연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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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 모임은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무슨무슨 협회 이렇게 해야 되나......"
"간단하게 제인 오스틴 소사이어티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애덤이 목청을 높였다.
p 168

내성적인 성향의 애덤이 이렇게 흥분한 모습을 보이다니!! 그에게 '제인 오스틴'이 어떤 의미인지 이 대목만 봐도 찌인하게 느껴진다. 단지 어떤 작가와 그 작가의 작품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하나가 되어 똘똘 뭉친 사람들! 진심으로 부럽습니다아~아픔을 딛고 성장하는 사람들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 제인 오스틴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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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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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의 말>이 등장하길래 대체 어떤 상황인가 싶었더니, [벨낀 이야기]는 이반 뻬뜨로비치 벨낀이라는 한 남자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다섯 가지 이야기가 실린 단편집-이라는 설정이다. 고인의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벨낀은 가문의 재정적인 상황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으나 정직하고 온순한 젊은이로 많은 원고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그것들은 대부분 실화로 여러 사람들에게서 벨낀이 직접 들은 이야기이기는 하나 등장 인물들의 이름만큼은 벨낀이 직접 지은 것이라고. 감기가 열병으로 도져 세상을 떠난 벨낀. 여기에 그가 기록한 다섯 가지 이야기가 있다.

 

뿌쉬낀이나 똘스또이 등 러시아 작가들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고, 몇 편의 작품을 읽어보기도 했지만 다른 고전 작품들에 비해 살짝 멀리했던 이유는 등장인물들의 그 긴 이름 때문이기도 했다. 이반 뻬뜨로비치 벨낀은 물론, 작품들에 등장하는 아드리안 쁘로호로프, 이반 뻬뜨로비치 베레스또프 등 각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여기에 러시아=추운 나라 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작품들에서 모두 추위가 느껴졌던 것은 나만의 착각이겠지. 게다가 어쩐지 어려울 것 같다는 선입견 때문에 세트 중에서도 가장 손이 안 갈 것 같아 '에라,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심정으로 집었는데, 어라??!! 너무너무 재미난 것이다! 아서 코난 도일 저리 갈 만큼의 반전들과 입을 다시게 만드는 긴장감 등으로 초반의 우려와는 달리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다섯 편의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지막 한 발>. 과연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조마조마. 생각지도 못한 반전에 전율까지 느끼면서 엄지 손가락이 저절로 올라간다. 인물의 심리 묘사는 물론 이야기의 구성까지 완벽한 작품이라! 이 작품이 맨 앞에 실려 있었기 때문에 다음 작품들에까지 높은 기대를 가질 수 있었던 듯 하다.

 


 

 

신기하게도 두 어편의 작품은 또 다른 어떤 작품들을 떠올리게 했다. <장의사>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귀족 아가씨-시골 처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하나같은 느낌. <장의사>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망령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한 남자가 등장하는데, 그는  후에 자신의 집에 우글거리는 망령들로 인해 두려움에 떨게 된다. 내용도 구성도 완전히 다르지만 [크리스마스 캐럴]이 떠올랐던 것은 '망령'이라는 소재 때문이었을까.

 

<귀족 아가씨-시골 처녀>는 경쾌하면서도 발랄한 분위기의 작품으로 원수였던 두 가문의 이야기를 그렸다. 한쪽 가문의 아가씨가 다른 가문의 자제를 만나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시골 처녀로 분장한 후 밀회를 즐기며 애정을 키워가는데, 어떤 사건을 계기로 별안간 두 가문의 원한이 사라져버린다. 이에 두 자식들을 결혼시키기로 합의한 아버지들에 의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위기에 처한 아가씨. 작가가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결말은 뻔한 것으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소재나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유쾌한 분위기가 생각나는 이야기들이었다.

 

학창시절 분명 [대위의 딸]을 읽어본 기억은 나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때도 분명 어려운 이름과 지명들 때문에 매운 맛 좀 본 게 아니었을까. 뿌쉬낀의 작품이 이리 재미있을 줄이야! 다음에는 장편에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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