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1cm - 너를 안으며 나를 안는 방법에 관하여
김은주 지음, 양현정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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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군이 백곰양을 발견했을 때 그녀는 네잎클로버를 발견한 것을 기뻐하며 어떤 좋은 일이 생길지 기대하고 있었다. 곰군은 백곰양이 어느 산에서 왔을지 궁금했다. 사랑의 시작이다. 어디에 사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계절과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세세한 것 하나까지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것. 그리고 사랑이 깊어지면 상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포기하기도 한다. 내가 추워도 연인을 위해 자켓하나쯤 가뿐히 벗어줄 수 있고, 소질없다 여겼던 요리에 몇 시간 동안 매진해 도시락 하나를 겨우 만들어내기도 하고, 음식점에서 나올 때 사랑하는 사람의 신발을 신기 좋게 정리해주기도 한다. 그렇게 깊어지는 감정. 어떤 감정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빛바래지기도 하지만, 어떤 감정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변함없이, 혹은 예전과는 다른 빛깔을 내며 이어져있기도 한다.

곰군과 백곰양의 사랑과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표현한 [너와 나의 1cm]. <1cm 시리즈>의 팬이라 이번 책이 더 반갑기도 하지만 '너를 안으며 나를 안는 방법에 관하여'라는 제목에 오랜만에, 마음 속으로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온다. 사랑 이야기에, 사실 긴 말은 필요하지 않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상대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전부일지도. 밀당이라거나 썸이라거나 하는 순간적인 감정의 변화가 아닌, 오래 지속되고 평화로운 감정을, 사람들은 여전히 그리워한다. 읽으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곰군과 백곰양의 러브 스토리.

아무리 힘든 일을 겪은 날이라도 위로해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 날은 괜찮다. 나는 속상한 일이 있어도 오래 생각하고 묵혀서 잘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인데, 짝꿍은 퇴근하면 그날 있었던 소소한 일들을 이야기해준다. 그것이 좋은 일이었든, 나쁜 일이었든. 나쁜 일인 경우 나는 신나게 욕(!)을 해주는데, 그것은 짝꿍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는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같이 신명나게 욕을 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거다. 그래야 가뿐한 얼굴로 다음 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뭐, 가끔 짝꿍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나의 행동을 설명(?)하려고 해 나에게 혼(!)날 때도 있기는 하지만.

이상형이 뭐냐고 물으면 이러이러하다, 라고 대답하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이 이상형이 되어버리는 신비한 세상. 약간 마르고 지적인 타입을 좋아하던 나였는데, 우리 짝꿍은 아기 배를 가진, 웃으면 눈이 반달처럼 휘어지는 곰이다. 아, 곰군처럼 털이 북슬북슬하기도 하다. 크핫.

맛있는 것을 먹으면 꼭 생각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야식을 잘 안 먹던 나였는데, 이상하게 결혼하고 나니 밤에 같이 먹는 게 넘나 맛있다. 곰군처럼 '아직 말랐는데'라고 이야기하는 대신, 서로 살쪘다며 살 빼라고 투닥투닥하지만, 같이 먹으면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부부가 된 이상, 늙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이 다 크고 나이를 먹으면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짝꿍은 희망사항이 있다. 나이를 먹어 흰머리가 수북해져도 겨울이면 둘이 함께 보드를 타는 것. 으아. 운동치, 몸치인 나에게 너무 어려운 주문이지만, 어쩌랴. 짝꿍같은 화려한 기술은 못배워도 언덕에서 내려오는 수준이라면 지금도 가능하니 그저 그 수준으로 쭈욱, 계속하면 되지 않을까. 나는, 어찌됐든 늙어도 서로 손잡는 것을 어색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이가 되기를 기대한다.

아무 생각없이 그저 툭툭 읽을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이번 책은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나간 인연들, 짝꿍과의 만남,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법, 앞으로 맞게 될 수많은 에피소드들. 작은 곰돌이들을 둘이나 낳았지만 여전히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삶의 굽이굽이마다 근심과 시련은 존재할 것이고, 다툼과 갈등이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지금 함께하는 이 평화로운 시간이, 행복하다. 따뜻포근한 글과 그림이 기분좋은 책.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안아주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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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드뷔시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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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를 꿈꾸며 사촌 루시아와 함께 레슨을 받던 고즈키 하루카는 신진 피아니스트인 미사키 요스케와 처음 만났다. 은행원인 아버지와 평범한 주부인 어머니, 만화가를 꿈꾸는 이상주의자 삼촌,조상대대로 물려받아온 땅을 팔아 벼락부자가 된 할아버지와 함께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는 하루카는 이미 특대생 자격으로 유명한 사립학교에 입학허가를 받아놓은 상태. 부모님이 외할머니의 1주기를 치르기 위해 집을 비운 사이, 별채에 큰 화재가 일어나고, 그곳에서 잠을 자던 할아버지와 루시아, 하루카에게 화마가 덮쳐온다. 세 사람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하루카지만 온 몸에 큰 화상을 입고 피아니스트로서의 미래도 불투명해진 그녀 앞에 미사키 요스케가 레슨을 맡아주겠다며 나서고 하루카는 콩쿠르 우승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처절한 훈련을 시작한다. 한편 할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된 하루카에게 또다시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급기야 살인사건까지 벌어지면서 그녀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나에게는 마성의 작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인 나카야마 시치리의 데뷔작 [안녕, 드뷔시]가 블루홀6에서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제8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이미 절판으로 구할 수 없어 안타까웠는데, 이렇게 개정판으로 볼 수 있게 되다니 정말 기쁘다.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로 일본에서는 이미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작품 중 하나로 현재는 다섯 번째 소설인 [다시 한 번 베토벤]을 연재 중이라고 한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팬이라면 '미사키'라는 성이 낯설지 않을텐데, 바로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와 법정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는 미사키 검사의 아들이다. 예전 작품에서 묘사된 적도 있는, 법조인으로서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지만 돌연 음악인의 길을 택해 아버지와 절연한, 바로 그 미사키 요스케. [안녕, 드뷔시]에서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하루카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꿰뚫어보며 범인을 유추하는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떠오르는 미스터리 제왕의 작품이지만, 이 작품은 미스터리의 형식을 빌린 한 소녀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화마로 인해 소중한 가족들을 잃고, 자신의 몸마저 화상으로 인해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되었다. 기본적인 생활의식의 수행은 물론 피아노조차 칠 수 없었던 하루카는 미사키 요스케의 레슨을 받고 비로소 진정으로 피아노를 친다는 것, 피아니스트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 피아노 선율에 담아내는 하루카의 모습은, 비록 글자와 지면임에도 그 열정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작가의 클래식과 피아노 주법에 대한 풍부한 지식은, 이 작품이 소설이 아니라 클래식과 피아노 연주에 관한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작가가 현재까지 보여준 인간의 '악의'는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어쩌면 이 작품을 시초로) 드러난다. 별안간 엄청난 재산의 상속녀가 된 하루카를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 자유롭지 못한 손가락으로나마 연주하려는 그녀의 열정을 비웃는 동급생들, 하루카의 온전치 못한 몸을 호기심과 멸시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무리들 등 장애를 가진 하루카가 뛰어넘어야 할 산은 높고도 험하다. 가족을 잃은 그녀 앞에 무감각하게 마이크를 들이미는 잔인한 기자도 등장한다. 사회 정의와 법률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역설해 온 작가가, 이 작품에서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의 모습을 묘사하며 역시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안녕, 드뷔시]의 '안녕'은 일본어의 '사요나라'였다. 나는 당연히 다시 피아노를 시작하게 된 하루카가 건네는 반가운 인사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원문 표기를 보고 의아하게 여겼는데, 결말 부분을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피아노 연주 묘사와 소개된 클래식의 곡명을 읽다보니 저절로 검색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음악을 들으며 읽으면 그 매력이 배가 되는 작품. 앞서 소개된 여러 시리즈와는 달리 치열한 법정물이나 미스터리는 아니었지만 미사키 요스케만의 매력이 가득 담긴 작품이었다. 앞으로 발표될 그만의 이야기들이, 당연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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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하유지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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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이라니, 흥, 제목을 보고나니 코웃음이 나왔다. 당연히 질투다. 난 눈 깜짝할 사이 서른 몇이 되었는데. 지금 서른셋이라면 못할 것이 없을 것 같다. 꼭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지나온 시간들은 그것대로 애달프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 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일까. 서른셋 오영오가 가진 미련과 아쉬움은 무엇이었을까.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도 출판사에서 문제집 편집일을 하는 영오가 야근을 하며 떠올린 사람은 작년 가을 세상을 떠난 아버지. 엄마가 폐암으로 먼저 돌아가신 뒤 그나마 데면데면했던 관계가 완전히 멀어져버린 부녀사이. 그런데 아버지가 세들어 살던 집주인으로부터 유품이 있다는 연락을 받는다. 남아있는 것은 엄마가 사용하던 압력솥과 그 안에 들어있는 수첩 하나. 거기에는 영오의 이름과 홍강주, 문옥봉, 명보라 세 명의 이름이 적혀있다.

 

야근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영오를 기다리는 것은 텅 빈 원룸 하나. 어머니쪽 친척도, 아버지쪽 친척도, 그 누구도 없는 무미건조한 그녀의 일상에 홍강주, 이 남자가 저벅 들어섰다. 생전 영오의 아버지가 두 사람을 이어주고 싶어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강주의 말과 뻔뻔한 그의 태도를 보니 영오는 어이가 없다. 그럼에도 맛있는 중국집을 안다며 앞장서서 걷는 그의 뒤를 어느새 따라가고 만다. 수첩의 존재를 안 강주는 당사자인 영오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녀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며 나머지 두 사람을 찾아보자고 한다. 찾아서 무얼 하게? 의아한 영오지만 이번에도 어쩐지, 강주가 하자는대로 나머지 두 사람 중 문옥봉씨를 먼저 만나러 간다.

 

강주가 들어서기 전 영오의 인생에 한 명이 있기는 하다. 중학교 3학년, 졸업을 앞둔, 영오의 아버지가 경비 일을 하던 새봄중학교 학생인 공미지. 영오가 편집한 문제집에 대해 문의를 한 것을 계기로 미지는 가끔 영오의 직통번호로 전화를 하고, 영오는 전화를 받고, 그렇게 둘의 대화와 인연이 이어진다. 공미지 학생은 고등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 조금은 독특한 공미지 학생은 친구가 없고, 친구가 없는 것을 아닌 척 더 이상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고, 또 미지에게 일어났던 어떤 일은 더 이상 학교가 매력적인 곳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그런 미지를 엄마인 신여사는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미지는 예전에 가족들이 살던 개나리아파트 2동 702호로 돌아왔다. 옆집 703호에는 조금은 괴팍한 두출 할아버지와 고양이 버찌가 산다.

난 이제 알지도 못하는 애들하고 일 년씩 이 년씩

묶여지내지 않을 거야.

친구 없는 걸 불편해하는 척하면서 나하고만 친해지는 짓,

그만둘래.

내 맘에 드는 사람들하고 친해지고 싶어.

난 그 사람들을 네모 말고 동그라미 속에서 찾을 거야.

엄마도 알지?

교실은 네모나고 지구는 둥글다는 거.

 

나이가 많든 적든, 영오든 강주든, 미지든 두출할아버지든 상처 없는 인생이 없다. 인간관계에 서투르고 마음을 내보이는 것에 주저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다가서고 두드린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배려없는 말과 행동에 상처받고, 나의 독특함이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한다. 오영오와 홍강주가 수첩 속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여정에 흥미를 느끼고 그들의 뒤를 주시하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그 시간들을 통해 무언가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들이 찾는 것이 무엇이든 현실 속에서 우리가 찾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공미지 학생과 두출 할아버지의 우정 같지 않은 우정에 흐뭇한 미소를 띠게 되는 것도, 어딘가에 분명 내 마음 한 자락 알아주는 이가 있을 것임을 믿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하유지. 낯선 작가의 이름 석 자다. 그냥저냥 청춘 이야기겠지, 흥, 콧방귀를 뀐 내 코가 아플 정도로 소설은 무척 재미있었다.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그저 그런 이야기겠거니 여겼던 작품에 감동받으면, 그 감동은 배가 되어 다가온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지. 그녀의 존재가 반갑다. 앞으로 또 어떤 작품들로 경쾌하게 다가올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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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한효정 옮김 / 단숨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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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깨어난다. 노아라고 불리는 그의 기억 속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처음 마주한 세상은 총상을 입은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 준 베를린의 노숙자 오스카. 그는 이 세상이 보이지 않는 손들에 의해 지배되고 조종되고 있다는 자신만의 공상을 믿으며 그 힘을 피해 지하 세계에 숨어 사는 인물이다. 마닐라 독감으로 전 세계 인구의 목숨이 위협받는 하루하루, 혹한의 추위 속에서 노아는 우연히 신문에 실린 그림을 본 후 잊고 있던 기억의 일부가 되살아난 노아. 신문사와 연결된 노아는 셀린이라는 여기자의 지시에 따라 오스카와 함께 아들론 호텔로 향하고, 뭔가 맞지 않는 점을 감지한 그들 앞에 킬러가 나타난다. 한편 거대한 부를 축적한 제약회사 CEO이자 인권활동가인 재파이어는, 마닐라 독감의 백신인 제트플루를 더 이상 서구사회에 제공하지 않고 개발도상국에만 지급한다고 발표하고, 연회장을 빠져나가는 그를 향해 한 발의 총알이 날아온다.

 

인구과잉 문제는 오래전부터 소설이나 영화 속 화제로 언급되어 왔다. 기후변화, 바이러스 감염, 전쟁 등으로 인해 지구의 인구 수는 조만간 급격한 변화를 맞이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는데, 심리 스릴러의 달인인 제바스티안 피체크는 질병을 소재로 인구과잉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지구 상의 인구는 넘치고, 과소비와 방출되는 쓰레기는 점점 심각해지며, 한쪽에서는 제대로 먹지 못해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는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 앞으로 몇 년 뒤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구가 지닌 원자재에는 한계가 있고, 지금까지와 같은 생활을 충당하기란 힘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인구 수를 인위적으로라도 줄여 지구를 정화시키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는 재파이어의 이론은 일견 타당하게도 들린다. 하지만.

학살이 선택지가 될 수 없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어요.

성경 속에서 노아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 인물이었다. 신이 내린 홍수라는 형벌을 피해 거친 물살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다시 삶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은 과연 깨끗하기만 했을까. 시작은 산뜻하고 정리된 것처럼 느껴져도 시간이 지난 후 같은 문제가 또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는가. 만약 지구가 또 몸살을 앓게 되면 다시 인위적으로 인구의 수를 조정해도 되는 것일까. 확실히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심각하다. 쓰레기 폐기는 국제적으로 문제시되고 있고, 한정된 자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진다. 작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들이 생활방식을 바꾼다고 해서 당장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작가는 또, 자신 또한 무엇이 해결책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우리는 파멸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이미 오래전에 모든 걸 잃어버렸을지도요.

그래도 난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내가 죽음을 막았던 그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우리가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 알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차이를 만드는 거예요.

 

누군가는 진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는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으면서 이런 글을 쓰다니 무책임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이런 이야기를 읽고 공포심과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보고, 무언가를 바꿔야겠다 결심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본다면 어떨까. 그 한 사람이 모여 70억명이 된다면.

 

이번 작품은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작품 중에서도 색다르다. 챕터마다 반전을 선사하며 놀라움을 안겨준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정신의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 심리를 파고드는 스릴러를 주로 발표해왔던 것에 비해 스릴러의 형시을 빌려 사회적인 문제를 들춰내고 의식적으로 모른 척 해왔던 범지구적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운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앞으로 어떤 작품을 발표할 지 이 작가의 행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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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보내는 노래 창비 노랫말 그림책
유희열 지음, 천유주 그림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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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창비에서 나오는 그림책에 빠져 있습니다! 이번에는 희열님이 참여하셨다니 당연! 읽어봐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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