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물리학자 - 명화에서 찾은 물리학의 발견 미술관에 간 지식인
서민아 지음 / 어바웃어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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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나를 무척이나 고생스럽게 했던 과목이 있다. 바로 수학과 물리!! 아무리 책을 들여다보고 외워봐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시험 당일날 아침까지 끙끙대게 만들었던, 그 당시의 나로서는 이 과목들을 만든 사람들을 저주(?)라도 하고 싶게 만든 공포의 과목들이었다. 오죽했으면 괜히 애꿎은 물리 선생님을 원망했을까. 결국 '찍자!!'라는 자세로 임할 수밖에 없었던 시험. 대학에 진학하면서 가장 기뻤던 것 중 하나가 더 이상 수학과 물리를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명화 분야에서 만난 물리학이라니!! 첫 페이지를 펼치기도 전에 거부감으로 손이 벌벌 떨릴 지경이다. 과연 내가 이 책을 완독할 수 있을까, 무척 걱정스러웠는데 오잉??!! 물론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들도 등장했지만 전체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을 때 [미술관에 간 화학자 : 두 번째 이야기] 도 함께 읽고 있었는데, 두 권의 책을 같이 읽으면서 느낀 것은 화학과 물리학에서도 독자적으로 다루고 있는 분야가 분명 존재하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 책들을 읽으면서 명암법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나는 명암법 하면 이제 카라바조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15세기 초에 이탈리아의 화가 마사초가 자신의 작품 <에덴 동산에서의 추방>에서 선보였던 명암법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스푸마토 기법으로 진일보시켰고, 카라바조는 테네브리즘이라는 기법으로 발전시켰다. 테네브리즘은 이탈리아어로 어둠을 뜻하는 'tenebra'에서 유래한 것으로, 어둠을 밝히는 빛을 연구, 분석한 결과를 회화에 적용한 것이다. 이를테면 그림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나 사물에만 빛을 비춰 강조하고 그 밖의 부분은 어둡게 그리는 것으로, 밝고 어두움을 통해 그림 속 인물의 심리 상태까지 나타내기도 한다. 카라바조의 수많은 그림들 중 이번에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이었다.


 

내기 운동경기 끝에 살인을 저지른 카라바조는 체포되었다가 3일만에 탈옥했고, 죽기 전까지 4년 동안 도망자 신세로 지내야 했다. 그 와중에도 주옥같은 그림을 그린 카라바조. 목이 잘린 골리앗은 죽기 직전 카라바조의 자화상이고, 다윗은 젊은 카라바조의 자화상이다. 저자는 카라바조를 향해 묻는다. '당신에게 미술은 무엇'이냐고. 나도 그에게 묻고 싶다. 도망다니면서까지도 붓을 놓지 않았던 것은 그림에 대한 열정인가, 삶을 향한 미련인가,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에 대한 애증인가.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를 읽으면서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은 '마르크 샤갈'이라는 화가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름이야 들어 알고 있었지만, 김춘수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통해서였을 뿐이고, 심지어는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카페 이름으로나 익숙한 정도였다. 그런데 책에서 소개된 그림들을 보니 취향저격. 특히 벨라와의 사랑을 그린 작품들은 정말 인상적이다.


 

<생일날>은 두 사람이 결혼하기 얼마 전인 7월 7일 샤갈의 생일 풍경을 그리고 있다. 자신의 생일에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벨라에게 감동한 샤갈의 마음이, 하늘에 둥실 떠올라 곡예를 하듯 얼굴을 돌려 여인에게 키스하는 남자로 그려져 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놀란 얼굴의 벨라. 피어나는 젊은 연인들의 사랑은 붉은 바닥으로 대변되고, 방안을 가득 채운 붉은 열기도 사랑의 절정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서 잠시 과학 이야기를 하자면, 샤갈이 그림에서 즐겨 쓰던 색은 빛의 삼원색이라고 알고 있는 빨강, 파랑, 초록과 색의 삼원색인 사이안, 마젠타, 노랑이다. 빛의 삼원색인 빨강, 파랑, 초록을 섞으면 생성되는 이차색이 색의 삼원색이 된다. 즉 파랑+초록은 청록색(사이안), 빨강+파랑은 자홍색(마젠타), 빨강+초록은 노란색(노랑)이 된다. 샤갈이 그림에서 자주 사용한 세 가지 색은 빛을 인지하는 시각, 즉 망막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색들이다. 망막에는 원추세포와 간상세포라는 두 가지의 시세포가 있는데, 원추세포는 망막의 중앙부에 많이 분포하고 색을 식별한다. 어두울 때는 간상세포가 주로 활동하고 밝을 때는 원추세포가 주로 활동한다고 한다.

 

여러 책들의 표지에서 많이 보았던 그림, 바로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다.


 

사막 한 가운데에서 집시 여인이 만돌린을 연주하다 지쳐 잠이 들었다. 그 옆으로 사자 한 마리가 다가오지만, 어쩐 일인지 이 사나운 동물이 그냥 지나쳐 간다. 긴박한 상황이지만 느껴지는 것은 오히려 따스함. 달빛이 모든 것을 부드럽게 감싸안는 듯한 느낌이다. 앙리 루소의 모든 그림은 각각 하나의 '꿈'을 그리고 있다.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것, 만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은 꿈이라는 잠재의식으로 표출되고 형상화된다. 정글 수풀과 야생 동물, 사람을 주로 그렸던 루소의 그림은 모두 그의 꿈 이야기다. 그의 마지막 꿈은 1910년 작품 <꿈>. 그의 그림 안에서, 늘 등장인물들과 감상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저 달, 달이 참 마음에 든다.

 

언급한 그림들 외에도 나노입자, 퀸텀닷, 메타물질, 불확정성의 원리 등 물리학으로 풀어낸 명화 이야기가 가득하다. 과학자의 시선으로는 경이로운 현상들을 쉽게 풀이해주고, 휴일이면 붓을 든다는 화가의 시선으로는 그림 속 숨겨진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 그 안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리학에 대한 거부감까지 줄어들게 만들어 준 책. 평생 간직하고픈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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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화학자 2 - 명화에 담긴 과학과 예술의 화학작용 미술관에 간 지식인
전창림 지음 / 어바웃어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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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학창시절 배웠던 과학 과목 중 그나마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화학이었다. 물리나 지구과학은 그 원리를 이해하지 않으면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과는 달리, 화학이나 생물같은 과목은 어떻게든 노력해서 암기하면 됐으니까. 그런 기억 때문인지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 중 [미술관에 간 의학자]와 함께 제일 부담없이 펼쳐들 수 있었던 책 중 하나. 첫 번째 이야기에서도 저자의 그림에 대한 감상과 그 지식의 꼼꼼함에 감탄하면서 읽어내려갔기 때문인지 기대를 품고 두 번째 이야기도 만날 수 있었다.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를 읽으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용어들이 있다. 바로 명암법을 가리키는 '스푸마토 기법'과, '키아로스쿠로 기법'. 전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사용했던 방법으로 공기 원근법이라고도 불리는데, 쉽게 말하자면 멀리 있는 것을 희미하게 그리는 방법이다. 후자는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 입체감과 원근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명암효과를 가져오는 빛은 화학에서 다루는 중요한 연구분야로, 빛을 흡수한 물질의 화학반응, 혹은 화학반응에 따라 일어나는 발광현상 등을 연구한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 를 통해 알게 된 다양한 물감의 종류들. 보티첼리의 <봄>에서 저자의 눈길을 끄는 것은 '템페라'라는 물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안료를 녹이는 용매제로 주로 계란이 이용되었는데, 계란이나 벌꿀 등을 용매제로 활용하여 색채를 띤 안료가루와 혼합해 만든 물감이 템페라다. 템페라가 발견되기 전에는 석고 위에 수성물감을 스미게 하는 프레스코를 주로 썼는데, 프레스코는 색감이 탁해 그림을 정교하게 그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또한 석회를 물에 개어 만들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석회반죽이 말라서 사용이 곤란해지기도 했다. 템페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벗겨지는 단점이 있지만, 프레스코에 비해 색상이 선명해 좀 더 정교한 묘사를 가능하게 했다.


 

보티첼리의 <봄>을 바라보는 꼼꼼한 시선도 매우 인상적이다. 갓 태어난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 봄의 여신 플로라, 서풍의 신 제피로스, 하늘에 떠 있는 큐피드와 화면 왼쪽의 세 여자와 한 남자, 그리고 제피로스가 잡으려 하는 반라의 여신이 그려져 있다. 클로리스가 제피로스에게 붙잡혀 둘이 결합하여 플로라로 변신하였다. 플로라의 다른 이름이 '프리마베라(봄)'이다. 대지가 봄바람(서풍)을 받아 꽃을 피우면 봄이 된다. 이 그림에는 변하기 전의 클로리스와 변한 뒤의 플로라가 함께 그려져 있다. 클로리스와 플로라의 연결고리는 클로리스의 잎에서 흘러나오는 꽃이다. 이 꽃이 그대로 플로라의 옷의 꽃장식이 되었다.

 

그림 왼쪽의 세 여자는 삼미신으로 가장 화려한 오른쪽 신은 쾌락을, 가운데 여신은 순결을 뜻한다. 순결은 쾌락과 대립하지만 세 번째 여신이 둘을 화해시켜 아름다움이 완성된다. 머큐리는 천상과 지상을 오르내리며 신과 인간 사이를 중계하는 역할을 한다. 머큐리는 메디치 가의 수호신이기도 한데, 메디치라는 가문의 이름과 의학을 나타내는 메디신은 어원이 같다. 머큐리는 악한 침입자를 막는 뱀이 꼬여 있는 지팡이 카두세우스를 들고 비너스가 다스리는 왕국을 수호하는데, 이것은 지금도 의학의 상징으로 쓰인다. 백합 문양의 손잡이가 달린 칼을 차고 있는데, 이 백합은 메디치 가문의 문장이다.

 

그림을 보면서 특히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었는데 루벤스의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와 앵그르의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이 그것이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살이 넘치는' 루벤스의 그림들.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에서도 관능적이면서도 천박하지 않은 역동적인 포즈는 근육을 만들어 살갗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풍만한 여성들의 뽀얀 피부는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소묘가 회화의 본령이라고 여겼던 앵그르는 우아한 곡선미를 통해 여성의 누드를 예술적으로 승화하고자 했다. 그는 로마에 있을 때 여체 그리기에 몰두했는데,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이 이 때 그려진 걸작이다. 앵그르 특유의 곡선 미학이 돋보이는 대표작이다. 색채 사용을 최대한 억제하면서도 여인의 살갗을 생생하게 부각시켰다.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여인의 육체. 여성인 나도 그림을 보면서 이리 두근거리는데, 그림이 그려졌을 당시 사람들이 느낀 감상은 어땠을까!

 

유독 인상적인 그림이 많은 이 책에서 마지막으로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 그림은 모딜리아니의 <큰 모자를 쓴 잔느 에뷔테른>이었다. 가장 슬픈 화학작용으로 사랑을 꼽은 저자는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비극적인 사랑에 집중했다.

 

어쩔 수 없이 모딜리아니를 등진 잔느. 하지만 그의 죽음 이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버린 잔느의 이야기는, 특히 두 살도 되지 않은 첫째와 뱃속에 있었던 8개월 된 둘째 아이를 생각하니 슬픔이 배가 되는 듯 하다.


 

잔느의 영혼까지 다 느끼지 못했기에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는 모딜리아니. 후에 그린 <[눈동자를 그린] 잔느 에뷔테른의 옆 모습>에는 잔느의 눈동자가 그려져 있다. '천국에서도 당신의 모델이 되어줄게요'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잔느와 모딜리아니는 과연 천국에서 다시 만났을까.

 

고흐의 <해바라기>가 갈색으로 시든 이유, 기상학자들이 밝힌 뭉크의 <절규> 속 붉은 하늘, 고야의 검은 그림들, 엑스레이로 밝혀진 명화 속 수수께끼 등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림이 그려진 배경과 화가의 사연, 역사적인 내용들까지 버무려져 그림 속 화학 이야기가 한층 풍성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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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바꾼 결정적 만남 생각이 자라는 나무 4
이광희 지음, 정훈이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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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들여다보면 인물들이 화합하거나 반목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한다. [한국사를 바꾼 결정적 만남]에서는 그런 인물들을 19회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궁예 vs 왕건, 이성계 vs 정도전, 최명길 vs 김상헌 처럼 대립한 경우도 있고, 이황 vs 기대승처럼 멋진 콤비로 끝을 맺은 경우도 있다. 그런데 목차만 봐도 좋게 끝난 경우가 별로 없다. 어쩌면 요즘처럼, 원래 정치란 대립으로 시작해서 대립으로 끝나는 것일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이황 vs 기대승의 일화가 유독 기억에 남은 것은 그들이 사단칠정에 대해 논쟁을 벌였으면서도 서로에 대해 존경심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리학의 나라였던 조선. 유학자들은 제대로 된 성리학을 정립하기 위해 논쟁을 벌이곤 했는데, 이황과 기대승은 '인간의 선한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라는 주제를 놓고 무려 8년이나 논쟁을 계속했다고 한다. 그들의 논쟁은 서로를 향한 비난이나 공격이 아니었다. 이황은 스물 여섯 살이나 어린 기대승이 자신의 논리에 반박하자 그저 내치지 않고 귀기울여 들었고, 어쩌면 무례하다 여길 정도로 들이대는 기대승을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주었다. 첫 만남 이후 이황이 기대승에게 보낸 다정한 편지를 시작으로, 그들의 서신 왕래는 이황이 사망하기 한 달 전까지 무려 13년 동안 이어졌다. 이들이야말로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의 논리를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대화를 나누며 올바른 길을 가고자 했던 진정한 선비들의 귀감이 아니었을까.



분명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아하!'했던 사람들도 있다. 바로 영화 <남한산성>에도 등장했던 최명길과 김상헌이다. 임진왜란을 겪은 지 30여년이 지난 후 조선은 또다시 병자호란을 겪게 된다. 결국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와 신하들은 청나라 군대와 맞서 싸울 것인가, 아니면 화의를 할 것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 청과 계속 맞서 싸우자는 '척화파'의 중심에는 김상헌이, 화친하자는 '주화파'의 중심에는 최명길이 있었다. 영화에서는 두 사람의 입장에 따른 두 사람의 고뇌가 깊이 배어나와서, 그들의 주장이 비단 개인의 일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과연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청의 압박감, 추위, 허기를 이기지 못한 조선은 결국 청과 화친을 맺기로 결정하고,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다. 영화에서는 김상헌이 자결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지만, 역사 속에서 두 사람은 청나라의 수도 심양 감옥에서 재회한다. 서로의 입장 차이를 인정하면서 시를 주고받으며 상대를 인정한 두 사람. 후세의 평가는 최명길에게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이 책이 궁금했던 이유는 근현대 인물 또한 다루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김옥균 vs 민영익을 시작으로, 여운형 vs 김규식, 신채호 vs 김원봉, 김구 vs 이승만, 박정희 vs 김대중 등을 통해 평소 난해하게만 생각했던 근현대사의 일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문득 예전에 한 지인이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인 인물은 '김원봉'이라고 이야기했던 일이 생각난다. 일제 강점기에 일어났던 수많은 독립 운동. 그 가운데 일제 강점기 내내 가장 큰 현상금이 걸렸던 독립운동가는 의열단을 이끄는 단장 김원봉이었다. 당시 현상금 100만 원, 현재 기준으로 약 300억원이라니, 어마어마한 숫자다. 김원봉은 요인 암살과 일제의 주요 기관을 파괴하는 것으로 일제에 투쟁했다. 암살과 파괴를 기본으로 투쟁하던 김원봉은 의열단의 정신을 드러낼 선언문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으면서 신채호를 만나게 된다. 신채호가 써 준 <조선 혁명 선언>에 감탄한 김원봉과 의열단의 활동은 더욱 격렬해졌으며, 김구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인물과 그 인물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더듬어가는 역사의 발자취는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다가온다. 중간중간 삽화가 재치있게 그려져 있어 더욱 이해를 돕는다.



** 출판사 <푸른숲주니어>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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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의학자 - 의학의 눈으로 명화를 해부하다 미술관에 간 지식인
박광혁 지음 / 어바웃어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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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 중 가장 기대를 품고 읽은 책이 바로 [미술관에 간 의학자] 다. 박광혁 저자의 책은 [히포크라테스 미술관]을 통해 한 번 읽은 적이 있는데, 명화 속에서 발견한 의학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밖으로 드러나는 육체적인 질병부터 타인은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마음 속 생채기까지, 그림을 통해 만난 '진료실 밖 의학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의학 이야기인만큼 전세계를 휩쓸었던 전염병 이야기가 빠질 수 없겠다. 그 중 대표적인 두 가지를 꼽으라면 '페스트'와 '스페인 독감' 아닐까. 1347-1351, 불과 4,5년 사이 유럽 전역에 퍼진 페스트로 유럽 인구의 30-50퍼센트가 목숨을 잃었다. 대재앙이 진행되는 이 시기 동안 수많은 유대인들이 희생당해야 했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 사회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페스트를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하느님의 응징이라고 생각했고, 공포를 느낀 사람들의 광기의 화살이 유대인들을 향한 것이다.

 

하지만 '페스트'보다 '스페인 독감'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에곤 실레의 그림 때문이었다.


 

행복한 세 가족을 그린 에곤 실레의 <가족>. 아내 에디트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에 겨운 나머지, 조카를 모델 삼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얼굴을 그려 그림을 완성했다. 실레의 작품들 중 온전한 가족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은 이 작품이 유일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가 스페인 독감에 걸려 배 속의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나고, 실레 또한 그 3일 뒤 사망하게 된다. 행복한 가정의 미래를 꿈꿨을 실레의 덧없는 바람. 스페인 독감이 덮친 그의 인생을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프다.

 

마음을 저릿하게 만드는 그림이 한 점 더 있다. 생후 2개월부터 아기에게 네 차례 접종하는 DPT 예방접종. 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예방접종이 이리 많은 지도 몰랐고, 이 세 가지 중 들어본 것은 파상풍과 백일해 뿐. 디프테리아는 무척 생소했다. 프랜시스 고야가 이 디프테리아를 주제로 그린 <디프테리아>를 보면 아기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아버지의 조급함과 걱정이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주로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어 수많은 아기들의 목숨을 빼앗아갔다는 디프테리아. 점묘법을 창시한 신인상파 화가 조르주 쇠라와 그의 아들, 그리고 우리나라의 이중섭도 아들을 디프테리아로 잃었다니, 충격이었다. 지금은 1913년 백신이 개발되어 비교적 보기 어려운 병이 되었다지만, 저 그림을 볼 때마다 마음 한 켠이 아려올 것 같다.

 

신화를 통해 드러나는 콤플렉스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이오카스테 콤플렉스'. 어머니가 남편을 배척하고 오히려 아들에게 집착하여 심지어 성적으로 애착을 느끼는 증상이라니,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아주 오래된 영화인 <올가미>에 등장했던 그 무서운 어머니가 어쩌면 이오카스테 콤플렉스가 아니었을까. 아들에게 집착한 나머지 며느리를 죽이려고 했던 시어머니. 제대로 본 것은 아니지만 이미지를 떠올릴 때마다 그런 시어머니를 만나면 어쩌나 걱정(?)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책에 소개된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두 다 재미있었다. 이아손에게 배신당하고 자신의 손으로 아이들을 살해한 메데이아에서 '의학'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는 것, 이발사 일과 진료를 병행했던 외과의사의 흔적이 오늘날 이발소를 상징하는 빨강, 파랑, 흰색에 남아있다는 것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삶과 죽음이 고스란히 반영된 그림들. 화가들이 그려냈던 과거의 모습이 현재까지 남아 여전히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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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인 볼가강의 영혼 클래식 클라우드 27
정준호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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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행복과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던 <클래식 클라우드>시리즈. 시리즈가 선택한 27번째 인물은 바로 '차이콥스키'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 '차이콥스키' 하면 떠올랐던 것은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같은 발레, 그리고 <비창>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약간은 알고 있었지만 출생이나 가정환경, 성장과정, 교류했던 인물들에 대해서는 전혀 지식이 없는 상태였어요. 그림도 관련 지식이나 화가가 처했던 상황 등을 알면 더 깊게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번 기회를 통해 '차이콥스키'라는 인물과 그 음악에 대해 마음 깊이 알고 싶다는 마음이 한가득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저는 처음부터 조금 당황했습니다. 러시아식 이름이나 지명과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머리속에 쏙쏙 들어오지가 않더라고요. 챕터 하나하나를 두 세번, 정말 열심히 읽었습니다! 쓰담쓰담.

 

1840년 봇킨스크에서 태어난 차이콥스키의 본명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저자에 의하면 러시아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하나가 가운데 이름이라고 해요. 러시아의 가운데 이름은 아버지 이름의 형용사로, 차이콥스키는 '일야의 아들 표트르'라는 의미입니다. 안면은 있으나 예는 차려야 한다면 정중하게 성이 아닌 이름과 부칭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은 꿀팁입니다.

 

차이콥스키는 세 번 결혼했던 아버지의 두 번째 아내 알렉산드라 소생입니다. 한 살 어린 여동생 알렉산드라는 차이콥스키의 가장 친한 동무로, 그는 후에 그녀의 일곱 살짜리 아들 블라디미르 다비도프에게 <슈만풍의 스물네 개 소품, 어린이 앨범>곡을 만들어주기도 했어요. 아버지는 세 번째 아내 옐리자베타에게서 쌍둥이 아나톨리와 모데스트를 얻었는데요, 막내 모데스트는 차이콥스키와 가장 가까웠고, 훗날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과 <이올란타>의 대본을 썼으며, 형이 죽은 뒤에는 클린에 박물관을 세웠고, 첫 번째 차이콥스키 전기를 세 권으로 펴내기도 했답니다. 흔히 이복형제-하면 사이가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 차이콥스키와 모데스트의 경우는 무척 특별했던 것으로 보여요.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차이콥스키의 동성애 성향마저 모데스트에게 그대로 이어졌던(?) 이유도, 형을 너무나 사랑하고 경배했던 동생의 마음 때문 아니었을지, 조심스레 홀로 추측해봅니다.

 

차이콥스키가 처음부터 음악 활동을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법률학교에 입학하지만, 어머니와 함께 글린카의 <차르에게 바친 목숨>을 본 뒤 큰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 뒤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 그의 위대한 음악 인생이 마침내 시작된 겁니다.

 

책을 읽다보면 '우크라이나'라는 지명이 유독 눈에 자주 들어옵니다. 추운 겨울 모스크바나 상트페레트부르크를 떠나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곳이었을까요.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옥토와 온화한 자연환경에 감명을 받은 차이콥스키는 그의 <교향곡 제2번>의 첫 악장과 끝악장에 우크라이나 민요를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우크라이나에서 곡을 구상하고 스케치했습니다. <교향곡 제3번>도 우크라이나에서 작곡했다니, 차이콥스키의 우크라이나 사랑을 곡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차이콥스키의 운명적인 인연을 꼽자면 폰 메크 부인이 단연 1위가 아닐까요. 평생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한 적 없이 오직 수백 통의 서신을 통해 마음을 나눴던 두 사람. 어쩌면 두 사람 사이에 낭만적인 기류가 흘렀던 것이 아닐까, 상상하지 않을 수 없지만 동성애 성향을 지니고 있던 차이콥스키였던지라 정신적인 애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듯 합니다. 그런 그가 여성과 가정을 꾸렸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자신에게 구애하는 밀류코바를 뿌리치지 못하고 결혼을 감행하지만, 결국 이 가정은 한 달만에 무너지고 말아요. 이 당시 차이콥스키는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을 작곡하고 있었는데, 밀류코바는 만나 주지 않는다면 자살하겠다는 협박성 편지를 계속 보냈고, 그는 자신의 작품 속 타티아나가 오네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냈다가 매정하게 거절당한 부분이 마음에 걸려 결국 밀류코바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형제간의' 사랑을 약속했다니, 차이콥스키의 복잡한 심정이 잘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이제 차이콥스키하면, 자연스레 푸시킨을 떠올리게 됩니다. 푸시킨의 운문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에 대한 가장 중요한 해석이자 주석이라 평가받는 차이콥스키의 동명의 오페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량 예브게니 오네긴의 이야기로 무도회와 결투, 카드게임 등 러시아 문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핵심 요소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작품 속에서 결투로 친구 렌스키를 죽인 오네긴과, 역시 결투로 인해 세상을 떠난 푸시킨의 일화가 묘하게 오버랩되면서 삶의 아이러니함도 느껴집니다. <스페이드의 여왕> 도한 푸시킨의 작품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곡은 차이콥스키가 평생 가장 존경했던 모차르트에게 헌정한 것이라고 해요.

 

차이콥스키가 발표한 곡마다 찬사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호두까기 인형>마저 초연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가 남긴 기록을 보면, 청중들의 반응이야 물론 신경이 쓰였겠지만, 차이콥스키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늘 쉼없이 작곡했던 차이콥스키. 오페라나 발레와 같은 대작을 쓰면서도 상대적으로 작은 곡도 동시에 작곡했던 그는, 먼거리를 이동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이런 그의 마지막이 정말 동성애로 인한 '명예 자살'이었을까요. 그의 사인이 콜레라 때문이 아니라, 차이콥스키와 조카 다비도프가 불륜 관계라는 고발장이 접수되고 명예 자살을 강요받았다고 하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무척 가슴 아픈 일입니다. 위대한 음악가를 그렇게 허무하게 보내다니요.

 

이 책에서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소개된 음악들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QR코드 같은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요즘 클래식을 다룬 책들은 대부분 QR코드가 함께 실려 있어서 바로바로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좋았는데, 아무래도 이 책에 소개된 음악들은 직접 검색을 해야할 것 같아요. 어쩌면, 차이콥스키를 알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이라는 저자의 의도였을까요. 저자의 충만한 차이콥스키 열광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 저도 이제 한걸음 정도는 차이콥스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 듯한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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