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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인 볼가강의 영혼 ㅣ 클래식 클라우드 27
정준호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평점 :

늘 행복과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던 <클래식 클라우드>시리즈. 시리즈가 선택한 27번째 인물은 바로 '차이콥스키'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 '차이콥스키' 하면 떠올랐던 것은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같은 발레, 그리고 <비창>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약간은 알고 있었지만 출생이나 가정환경, 성장과정, 교류했던 인물들에 대해서는 전혀 지식이 없는 상태였어요. 그림도 관련 지식이나 화가가 처했던 상황 등을 알면 더 깊게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번 기회를 통해 '차이콥스키'라는 인물과 그 음악에 대해 마음 깊이 알고 싶다는 마음이 한가득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저는 처음부터 조금 당황했습니다. 러시아식 이름이나 지명과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머리속에 쏙쏙 들어오지가 않더라고요. 챕터 하나하나를 두 세번, 정말 열심히 읽었습니다! 쓰담쓰담.
1840년 봇킨스크에서 태어난 차이콥스키의 본명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저자에 의하면 러시아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하나가 가운데 이름이라고 해요. 러시아의 가운데 이름은 아버지 이름의 형용사로, 차이콥스키는 '일야의 아들 표트르'라는 의미입니다. 안면은 있으나 예는 차려야 한다면 정중하게 성이 아닌 이름과 부칭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은 꿀팁입니다.
차이콥스키는 세 번 결혼했던 아버지의 두 번째 아내 알렉산드라 소생입니다. 한 살 어린 여동생 알렉산드라는 차이콥스키의 가장 친한 동무로, 그는 후에 그녀의 일곱 살짜리 아들 블라디미르 다비도프에게 <슈만풍의 스물네 개 소품, 어린이 앨범>곡을 만들어주기도 했어요. 아버지는 세 번째 아내 옐리자베타에게서 쌍둥이 아나톨리와 모데스트를 얻었는데요, 막내 모데스트는 차이콥스키와 가장 가까웠고, 훗날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과 <이올란타>의 대본을 썼으며, 형이 죽은 뒤에는 클린에 박물관을 세웠고, 첫 번째 차이콥스키 전기를 세 권으로 펴내기도 했답니다. 흔히 이복형제-하면 사이가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 차이콥스키와 모데스트의 경우는 무척 특별했던 것으로 보여요.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차이콥스키의 동성애 성향마저 모데스트에게 그대로 이어졌던(?) 이유도, 형을 너무나 사랑하고 경배했던 동생의 마음 때문 아니었을지, 조심스레 홀로 추측해봅니다.
차이콥스키가 처음부터 음악 활동을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법률학교에 입학하지만, 어머니와 함께 글린카의 <차르에게 바친 목숨>을 본 뒤 큰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 뒤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 그의 위대한 음악 인생이 마침내 시작된 겁니다.
책을 읽다보면 '우크라이나'라는 지명이 유독 눈에 자주 들어옵니다. 추운 겨울 모스크바나 상트페레트부르크를 떠나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곳이었을까요.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옥토와 온화한 자연환경에 감명을 받은 차이콥스키는 그의 <교향곡 제2번>의 첫 악장과 끝악장에 우크라이나 민요를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우크라이나에서 곡을 구상하고 스케치했습니다. <교향곡 제3번>도 우크라이나에서 작곡했다니, 차이콥스키의 우크라이나 사랑을 곡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차이콥스키의 운명적인 인연을 꼽자면 폰 메크 부인이 단연 1위가 아닐까요. 평생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한 적 없이 오직 수백 통의 서신을 통해 마음을 나눴던 두 사람. 어쩌면 두 사람 사이에 낭만적인 기류가 흘렀던 것이 아닐까, 상상하지 않을 수 없지만 동성애 성향을 지니고 있던 차이콥스키였던지라 정신적인 애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듯 합니다. 그런 그가 여성과 가정을 꾸렸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자신에게 구애하는 밀류코바를 뿌리치지 못하고 결혼을 감행하지만, 결국 이 가정은 한 달만에 무너지고 말아요. 이 당시 차이콥스키는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을 작곡하고 있었는데, 밀류코바는 만나 주지 않는다면 자살하겠다는 협박성 편지를 계속 보냈고, 그는 자신의 작품 속 타티아나가 오네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냈다가 매정하게 거절당한 부분이 마음에 걸려 결국 밀류코바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형제간의' 사랑을 약속했다니, 차이콥스키의 복잡한 심정이 잘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이제 차이콥스키하면, 자연스레 푸시킨을 떠올리게 됩니다. 푸시킨의 운문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에 대한 가장 중요한 해석이자 주석이라 평가받는 차이콥스키의 동명의 오페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량 예브게니 오네긴의 이야기로 무도회와 결투, 카드게임 등 러시아 문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핵심 요소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작품 속에서 결투로 친구 렌스키를 죽인 오네긴과, 역시 결투로 인해 세상을 떠난 푸시킨의 일화가 묘하게 오버랩되면서 삶의 아이러니함도 느껴집니다. <스페이드의 여왕> 도한 푸시킨의 작품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곡은 차이콥스키가 평생 가장 존경했던 모차르트에게 헌정한 것이라고 해요.
차이콥스키가 발표한 곡마다 찬사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호두까기 인형>마저 초연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가 남긴 기록을 보면, 청중들의 반응이야 물론 신경이 쓰였겠지만, 차이콥스키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늘 쉼없이 작곡했던 차이콥스키. 오페라나 발레와 같은 대작을 쓰면서도 상대적으로 작은 곡도 동시에 작곡했던 그는, 먼거리를 이동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이런 그의 마지막이 정말 동성애로 인한 '명예 자살'이었을까요. 그의 사인이 콜레라 때문이 아니라, 차이콥스키와 조카 다비도프가 불륜 관계라는 고발장이 접수되고 명예 자살을 강요받았다고 하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무척 가슴 아픈 일입니다. 위대한 음악가를 그렇게 허무하게 보내다니요.
이 책에서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소개된 음악들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QR코드 같은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요즘 클래식을 다룬 책들은 대부분 QR코드가 함께 실려 있어서 바로바로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좋았는데, 아무래도 이 책에 소개된 음악들은 직접 검색을 해야할 것 같아요. 어쩌면, 차이콥스키를 알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이라는 저자의 의도였을까요. 저자의 충만한 차이콥스키 열광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 저도 이제 한걸음 정도는 차이콥스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 듯한 기분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