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의학자 - 의학의 눈으로 명화를 해부하다 미술관에 간 지식인
박광혁 지음 / 어바웃어북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 중 가장 기대를 품고 읽은 책이 바로 [미술관에 간 의학자] 다. 박광혁 저자의 책은 [히포크라테스 미술관]을 통해 한 번 읽은 적이 있는데, 명화 속에서 발견한 의학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밖으로 드러나는 육체적인 질병부터 타인은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마음 속 생채기까지, 그림을 통해 만난 '진료실 밖 의학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의학 이야기인만큼 전세계를 휩쓸었던 전염병 이야기가 빠질 수 없겠다. 그 중 대표적인 두 가지를 꼽으라면 '페스트'와 '스페인 독감' 아닐까. 1347-1351, 불과 4,5년 사이 유럽 전역에 퍼진 페스트로 유럽 인구의 30-50퍼센트가 목숨을 잃었다. 대재앙이 진행되는 이 시기 동안 수많은 유대인들이 희생당해야 했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 사회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페스트를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하느님의 응징이라고 생각했고, 공포를 느낀 사람들의 광기의 화살이 유대인들을 향한 것이다.

 

하지만 '페스트'보다 '스페인 독감'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에곤 실레의 그림 때문이었다.


 

행복한 세 가족을 그린 에곤 실레의 <가족>. 아내 에디트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에 겨운 나머지, 조카를 모델 삼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얼굴을 그려 그림을 완성했다. 실레의 작품들 중 온전한 가족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은 이 작품이 유일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가 스페인 독감에 걸려 배 속의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나고, 실레 또한 그 3일 뒤 사망하게 된다. 행복한 가정의 미래를 꿈꿨을 실레의 덧없는 바람. 스페인 독감이 덮친 그의 인생을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프다.

 

마음을 저릿하게 만드는 그림이 한 점 더 있다. 생후 2개월부터 아기에게 네 차례 접종하는 DPT 예방접종. 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예방접종이 이리 많은 지도 몰랐고, 이 세 가지 중 들어본 것은 파상풍과 백일해 뿐. 디프테리아는 무척 생소했다. 프랜시스 고야가 이 디프테리아를 주제로 그린 <디프테리아>를 보면 아기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아버지의 조급함과 걱정이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주로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어 수많은 아기들의 목숨을 빼앗아갔다는 디프테리아. 점묘법을 창시한 신인상파 화가 조르주 쇠라와 그의 아들, 그리고 우리나라의 이중섭도 아들을 디프테리아로 잃었다니, 충격이었다. 지금은 1913년 백신이 개발되어 비교적 보기 어려운 병이 되었다지만, 저 그림을 볼 때마다 마음 한 켠이 아려올 것 같다.

 

신화를 통해 드러나는 콤플렉스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이오카스테 콤플렉스'. 어머니가 남편을 배척하고 오히려 아들에게 집착하여 심지어 성적으로 애착을 느끼는 증상이라니,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아주 오래된 영화인 <올가미>에 등장했던 그 무서운 어머니가 어쩌면 이오카스테 콤플렉스가 아니었을까. 아들에게 집착한 나머지 며느리를 죽이려고 했던 시어머니. 제대로 본 것은 아니지만 이미지를 떠올릴 때마다 그런 시어머니를 만나면 어쩌나 걱정(?)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책에 소개된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두 다 재미있었다. 이아손에게 배신당하고 자신의 손으로 아이들을 살해한 메데이아에서 '의학'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는 것, 이발사 일과 진료를 병행했던 외과의사의 흔적이 오늘날 이발소를 상징하는 빨강, 파랑, 흰색에 남아있다는 것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삶과 죽음이 고스란히 반영된 그림들. 화가들이 그려냈던 과거의 모습이 현재까지 남아 여전히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