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정치를 하다 - 우리의 몫을 찾기 위해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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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 린드그렌에게 문학과 정치는 "아무리 위험해도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었다. "편안히 살면 안 될 까닭"을 묻는 이들에게 그녀는 1973년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서 분명한 답을 제시한 바 있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지. 그러지 않으면 쓰레기와 다를 게 없으니까."

 

p 34


 

1945년 출간된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으로 일약 스타가 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평소 그녀는 "나 혼자 있고 싶어요. 홀로 있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삶이 주는 상처에 대한 면역력이 약합니다."라며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확보할수록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고 믿은 작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세상과 연을 끊고 살았던 것은 아니며, 오히려 세상에 있어서의 작가 역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는 스웨덴의 사회민주당원이었지만 1970년대 후반 사회민주당의 조세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기 시작한다. 반동분자로 불리면서 원색적인 비난까지 받았으나, 후에 사회민주당이 비사회주의 정당들의 연합 정권에서 밀려났을 때도 담담하게 입장을 밝힌 후 작가인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을 뿐이었다. 전 세계에서 최초로 스웨덴에서 체벌 금지와 부모 폭력 금지 법안이 공포될 수 있도록 호소했으며, 법의 테두리 안에서 동물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근간을 마련한 '린드그렌 법' 제정의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몽고메리 버스에서 백인에게 양보를 거부한 로자 파크스의 일화는 유명하다. 아이들이 읽는 인물 이야기에도 등장할 정도다. 흑인에 대한 차별 및 부당 행위를 참지 않고 '악법 폐지야말로 세상을 가장 빨리 도 확실하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로자 파크스는, 버스 분리 탑승 제도를 하루 빨리 폐지시키기 위해 승차 거부 운동을 시작한다. 이 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경찰에 연행되고 수모를 당하지만, 그녀는 결국 1956년 12월 21일 흑백 통합 버스 제도를 이끌어냈다.

 

"햇빛 아래에서 꼼짝 않고 무기력하게 하품이나" 하면서 살지 않기로 다짐한 오리아나 팔라치. 그녀는 특정 권력 혹은 권력자들이 사람들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없도록, 그리고 함부로 처벌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지 못하도록 저항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며 언론인의 책무라는 사명을 가지고 목숨을 건 글들을 발표한다.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는 판화를 통해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형상화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인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임무라고 받아들였던 케테 콜비츠. 그리고 위인전에서만 읽었던 나이팅게일과 헬렌 켈러까지.

 

이들 여성들의 공통분모는 '전문' 정치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자신들의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인간의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가를 깊이 고민했던 여성들. 물론 '정치가'라는 직함을 달고 활약한 인물들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던 여성들은 자신들이 했던 그 모든 일이 결국에는 '정치'라는 길로 이어지게 했던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는 것. 불의를 참지 않는 것. 아픔을 딛고 서서 한걸음이라도 발자국을 떼는 것. 사람답게 사는 길을 생각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여성들이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를 통해 여성에게 있어 글쓰기와 독서, 사유가 어떤 의미인지를 짚어나갔던 장영은님의 [여성, 정치를 하다]는, 21명의 여성들을 통해 '왜 한 여성이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정치에 뛰어들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해보게 한다. 왜 여성인가. '페미니즘'이라는 거창한 용어를 내세우지 않아도 '여성'에 주목하는 일은, 남성 정치가가 이루러낸 일들에 대해 감탄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여성'과 '정치'라는 단어만으로도 눈살을 찌푸릴 다수의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다. 나는 정치가인 남성이 이룩한 쾌거들에 대한 기록도 기꺼이 읽고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어쩌면 그런 책들은 별다른 홍보 없이도 쉽게 누군가에게 읽힐 것이다. 제목에 굳이 '남성'이라는 말이 들어가지도 않을 것이다. 그 사소한 차이가 바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언젠가는 '여성' 이 한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한 '인간'으로서 이룩한 일들로 평가받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오랫동안 멸시받고 비난받았음에도 '쓰레기처럼 살지 않기 위해' 편안한 삶을 선택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 출판사 <민음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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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부, 달 밝은 밤에 케이팩션 1
김이삭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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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몸으로 시신들의 검험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한성부 수사파 아란. 판한성부사 정수헌의 서녀로 '알려진' 아란은 오직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집에 기거하고 있다. 부모의 목숨을 앗아간 정수헌의 목을 옭아맬 증거를 잡기 위해. 사사로운 감정에서 시작된 검험이었지만, 이제 검험은 그녀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일이 되었다. 오늘도 무당골 '들'에서 의심스러운 시신의 검험을 시작한 아란은 중인 김윤오의 신분으로 살고 있는 성녕대군 이종과 우연히 마주치고, 사헌부 감찰관으로서 한성부를 감찰하러 온 그와 재회한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지는 또 한 사람. 명나라에 공녀로 가 내명부 최고 수장인 한려비가 된 여식 덕에 조선 제일가는 권세를 지닌 한씨 가문의 차남이자 개차반이라 불리는 한석이 가세하여 목멱산에서 발생한 수상한 화재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부모를 잃은 아란이 검험을 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높으신 분들에 의해 날조된 진상. 억울하게 비명에 간 부모와 범인으로 몰려 함께 저승길로 떠난 안율의 아비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아란은 '들'에 아무렇게나 묻힌 시신들에 더 집착한다. 다른 사람들의 귀에는 가닿지 않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아란의 귀에만은 생생하게 들려왔기 때문에.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진실을 덮으려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모진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원수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불쌍한 사람들의 넋을 위로해주려는 아란의 측은지심도 한몫 했던 것이다.

 

 

 

아주 오래 전 방영했던 드라마 <별순검> 때부터 조선 시대 벌어진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다. 지금처럼 세련된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사건을 해결해왔을까, 그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마치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성의 지위가 지금처럼 인정받지 못했던 시대, 드라마 <별순검>과 이 책의 주인공은 모두 여성이다. 특히 아란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오히려 생명의 위협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시신을 검험해온 지금까지의 경험을 무기로 어떻게든 운명을 개척해나가려는 당찬 여인!! 그런 그녀 앞에서는 개차반이라 불리던 한석도 깨갱하며 물러나고, 대수대명으로 살아난 김윤오 또한 경외심을 품을 수밖에 없게 된다.

 

 

 

시대물이라 약간 어려운 용어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니 놓을 수가 없어서 결국 밤을 새워 읽고 말았다. 사실 김윤오와의 로맨스를 살짝 기대했는데, 이 작품은 로맨스보다는 사건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그 부분이 조금 아쉬운 정도. 모든 것이 마무리된 채 함께 길을 떠나게 된 김윤오와 아란. 그들이 맞닥뜨릴 다음 사건이 궁금하다. 부디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 출판사 <고즈넉이엔티>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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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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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까지 총 133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이 얇은 책을 붙들고 한참을 끙끙거렸다. 서문을 접하고 나서부터 뭔가 찌릿 전해져오는 느낌에 ‘뭐지? 이 책?’ 하며 집중했지만 무작정 읽어내려가기에는 어쩐지 아까운 내용. ‘당신’이라 지칭하는 사람은 작가가 염두에 둔 어떤 이인 것 같기도 하면서 왠지 ‘나’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해서 조금은 몽환적인 상태에서 진행되었던 독서.

 

읽는다는 건 따지고보면 수수께끼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해지는지 우리로선 알 길이 없다.

p 12

읽는다는 건 어떻게 보면 수수께끼,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새삼 놀랍다. 같은 광기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읽는다는 행위에 대한 집착. 무엇을 위해 읽고 무엇을 위해 책에 대한 감상을 남기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마치 처음부터 한편의 작품이었던 것처럼 <숨겨진 삶>에서 밝혀진다.

아직도 소설이냐고, 남편은 놀라곤 한다. 그녀는 입을 다문다. 그 물음에 답하려면 왜 소설을 읽는지, 하는 의문에 먼저 답해야겠기에. 왜 여자들이 그런 기벽에 열중하는지, 독서에 시간을 낭비하는지 말이다. 내가 책을 읽는 건, 고통이 제자리를 찾게 하려는 거예요, 라는 진정한 답변을 이해할 사람이 누굴까.

p 88

<숨겨진 삶>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자신의 고통이 무엇인지 과연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까. 어쩐지 나는 그녀가 자신이 왜 고통스러워하는지 그 이유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나처럼. ‘왜 아프냐고, 그런 게 어째서 아프냐고 묻지마. 난 아파, 그게 아파. 그런데 가끔은 그게 왜 아픈지 나도 모르겠는 때가 있어. 그런 폭풍이 휘몰아칠 때의 내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책이 필요해. 책이.’ 라고 외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독서와 글쓰기, 이 두 가지가 작가를 구원했을까.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처럼 책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나. <인터뷰>에서 말하는 사랑이 신의 사랑이라는 생각도 드는 한편, 단순히 그것만은 아닐 거라는 인상을 받았다. 책과 글쓰기에 매혹된 사람만 들을 수 있는 광명의 소리. 작가는 예전에 내가 들었던 그 소리를 들었을까.

 

당신의 눈 속, 삶의 저변. 즉 근원에 가 닿는 또 다른 독서만이 당신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당신 안에 자리한 책의 뿌리로 직접 가닿는 독서. 하나의 문장이 살 속 깊은 곳을 공략하는 독서.

p 48

 

읽으면서 아무리 곱씹어봐도 모르겠는 내용들도 더러 있었지만 가슴에 와서 박히는 문장들은 하나같이 나를 울컥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래서인지 이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문장을 썼을까,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작가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꽤 오랜만. 당신은 여전히 ‘가난한 삶’ 속에서 글을 쓰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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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심리 수업 365 1일 1페이지 시리즈
정여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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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님의 글을 처음 만난 것은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헤세]를 통해서였다. 글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어렵게만 여겼던 헤세가 마치 마음 속으로 걸어들어온 듯한 기분. 자신의 내면의 상처를 고백하면서, 담담하게 헤세에 대해 서술해나가는 글쓰기가 신선하면서도 아프게 다가왔다. 그녀는 이런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홀로 고민하고 눈물을 흘렸을까. 혹자는 이런 그녀의 글쓰기를 신파라고, 상처팔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수많은 책에서 발견했던 '상처를 딛고 일어서라'라는 강철같은 메시지가 아닌 상처를 품었음에도 성장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제대로 발견한 듯한 느낌이었다.

 

'대체 너는 무슨 상처를 가지고 있느냐'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 상처의 실체도 잘 모른다'는 대답밖에 할 수가 없다. 어느 때는 나에게 과연 상처가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조차 있다. 그럼에도 가슴 속에 쌓인 울분과 슬픔의 정체는 대체 뭐란 말인가. 과거의 일을 떠올리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때가 있고,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되어서는 안됐어!'라며 홀로 아픔을 곱씹게 되는 때가 있다. 감정의 널뛰기가 너무 피로해서 '그냥 생각하지 말자!'라고 결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나의 독서는 어쩌면 이것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상처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 그래서 손 내밀어 주는 듯한 정여울님의 글에 가슴으로 반응하게 되었는지도.
 

 

'부모가 결코 통제할 수 없는 나만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아이가 궁극적으로는 더욱 자유롭고 창조적인 상상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p53

 

어머니와의 관계를 고백하는 저자를 보면서, 나와 내 아이들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아이들의 초자아에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강박과 스트레스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다. 나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해본다.

 

화가 날 때마다 '물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는 저자. 나는 기분이 좀 안 좋거나, 아이들에게 화가 나려고 하면 샤워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부분 몸이 피로해지는 오후 시간. 샤워를 하면 상쾌해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다시 마음에 에너지가 가득 차는 느낌이다. 책에서는 그런 행위가 분노를 치료하는 확실한 '몸짓 테라피'라고 언급되어 있어 신기했다. 나의 노력이, 내가 사용해 온 방법이 인정받는 느낌이랄까.

 

책을 읽으면서 자꾸 눈물이 났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눈물이 난다. 내 마음 속 어딘가에 똘똘 뭉쳐 있는 무언가를 건드리는 것일까. 한편 한편의 이야기는 짧지만 들어 있는 내용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음 테라피가 필요한 요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고 잠시 쉬어가는 여유를 되찾게 되기를.

 

** 봄볕서평단으로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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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 - 채광석 서간집
채광석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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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처럼 전해지는 책이라니, 기대되고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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