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역자 후기까지 총 133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이 얇은 책을 붙들고 한참을 끙끙거렸다. 서문을 접하고 나서부터 뭔가 찌릿 전해져오는 느낌에 ‘뭐지? 이 책?’ 하며 집중했지만 무작정 읽어내려가기에는 어쩐지 아까운 내용. ‘당신’이라 지칭하는 사람은 작가가 염두에 둔 어떤 이인 것 같기도 하면서 왠지 ‘나’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해서 조금은 몽환적인 상태에서 진행되었던 독서.

 

읽는다는 건 따지고보면 수수께끼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해지는지 우리로선 알 길이 없다.

p 12

읽는다는 건 어떻게 보면 수수께끼,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새삼 놀랍다. 같은 광기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읽는다는 행위에 대한 집착. 무엇을 위해 읽고 무엇을 위해 책에 대한 감상을 남기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마치 처음부터 한편의 작품이었던 것처럼 <숨겨진 삶>에서 밝혀진다.

아직도 소설이냐고, 남편은 놀라곤 한다. 그녀는 입을 다문다. 그 물음에 답하려면 왜 소설을 읽는지, 하는 의문에 먼저 답해야겠기에. 왜 여자들이 그런 기벽에 열중하는지, 독서에 시간을 낭비하는지 말이다. 내가 책을 읽는 건, 고통이 제자리를 찾게 하려는 거예요, 라는 진정한 답변을 이해할 사람이 누굴까.

p 88

<숨겨진 삶>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자신의 고통이 무엇인지 과연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까. 어쩐지 나는 그녀가 자신이 왜 고통스러워하는지 그 이유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나처럼. ‘왜 아프냐고, 그런 게 어째서 아프냐고 묻지마. 난 아파, 그게 아파. 그런데 가끔은 그게 왜 아픈지 나도 모르겠는 때가 있어. 그런 폭풍이 휘몰아칠 때의 내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책이 필요해. 책이.’ 라고 외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독서와 글쓰기, 이 두 가지가 작가를 구원했을까.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처럼 책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나. <인터뷰>에서 말하는 사랑이 신의 사랑이라는 생각도 드는 한편, 단순히 그것만은 아닐 거라는 인상을 받았다. 책과 글쓰기에 매혹된 사람만 들을 수 있는 광명의 소리. 작가는 예전에 내가 들었던 그 소리를 들었을까.

 

당신의 눈 속, 삶의 저변. 즉 근원에 가 닿는 또 다른 독서만이 당신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당신 안에 자리한 책의 뿌리로 직접 가닿는 독서. 하나의 문장이 살 속 깊은 곳을 공략하는 독서.

p 48

 

읽으면서 아무리 곱씹어봐도 모르겠는 내용들도 더러 있었지만 가슴에 와서 박히는 문장들은 하나같이 나를 울컥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래서인지 이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문장을 썼을까,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작가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꽤 오랜만. 당신은 여전히 ‘가난한 삶’ 속에서 글을 쓰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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