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여울님의 글을 처음 만난 것은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헤세]를 통해서였다. 글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어렵게만 여겼던 헤세가 마치 마음 속으로 걸어들어온 듯한 기분. 자신의 내면의 상처를 고백하면서, 담담하게 헤세에 대해 서술해나가는 글쓰기가 신선하면서도 아프게 다가왔다. 그녀는 이런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홀로 고민하고 눈물을 흘렸을까. 혹자는 이런 그녀의 글쓰기를 신파라고, 상처팔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수많은 책에서 발견했던 '상처를 딛고 일어서라'라는 강철같은 메시지가 아닌 상처를 품었음에도 성장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제대로 발견한 듯한 느낌이었다.
'대체 너는 무슨 상처를 가지고 있느냐'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 상처의 실체도 잘 모른다'는 대답밖에 할 수가 없다. 어느 때는 나에게 과연 상처가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조차 있다. 그럼에도 가슴 속에 쌓인 울분과 슬픔의 정체는 대체 뭐란 말인가. 과거의 일을 떠올리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때가 있고,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되어서는 안됐어!'라며 홀로 아픔을 곱씹게 되는 때가 있다. 감정의 널뛰기가 너무 피로해서 '그냥 생각하지 말자!'라고 결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나의 독서는 어쩌면 이것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상처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 그래서 손 내밀어 주는 듯한 정여울님의 글에 가슴으로 반응하게 되었는지도.
'부모가 결코 통제할 수 없는 나만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아이가 궁극적으로는 더욱 자유롭고 창조적인 상상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어머니와의 관계를 고백하는 저자를 보면서, 나와 내 아이들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아이들의 초자아에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강박과 스트레스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다. 나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해본다.
화가 날 때마다 '물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는 저자. 나는 기분이 좀 안 좋거나, 아이들에게 화가 나려고 하면 샤워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부분 몸이 피로해지는 오후 시간. 샤워를 하면 상쾌해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다시 마음에 에너지가 가득 차는 느낌이다. 책에서는 그런 행위가 분노를 치료하는 확실한 '몸짓 테라피'라고 언급되어 있어 신기했다. 나의 노력이, 내가 사용해 온 방법이 인정받는 느낌이랄까.
책을 읽으면서 자꾸 눈물이 났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눈물이 난다. 내 마음 속 어딘가에 똘똘 뭉쳐 있는 무언가를 건드리는 것일까. 한편 한편의 이야기는 짧지만 들어 있는 내용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음 테라피가 필요한 요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고 잠시 쉬어가는 여유를 되찾게 되기를.
** 봄볕서평단으로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