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여행을 멈추다 - 멈추는 순간 시작된 메이의 진짜 여행기
메이 지음 / 삼성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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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꼈던 때가 언제인가 싶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때가 되면 일을 하고, 또 때가 되면 잠을 자고 또 다른 아침을 맞는다. 그러한 날이 365일. 위험한 것은 그러한 하루하루를 아무 자각없이, 그저 숨을 쉬면서 무의미하게 흘려 보내버리는 것이다. 늘상 잠과 들러붙어 있던 내가, 내 몸만큼이나 꾸물꾸물한 서울 하늘 아래에서 인도로 날아가 버린 순간,  세상은 찰나에 변했다. 인도에 의해서. 씩씩하게 살아있는 메이에 의해서. 

 메이. 자꾸 부르니 마치 내 친구 같다. 내 친구 맞다. 그녀도 늘상 졸려병에 걸려 있었으니, 우리는 잠을 매개로 한 친구다. 다만 나는 아직도 졸려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비몽사몽이지만, 그녀는 그 잠을 떨치고 인도로 달려갔다. 인도에서 여행을 하던 메이는 인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람을 만나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지니를 만나면서 변화해간다. 인도에서 골랄끼또리아라는 마을에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바위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최초의 집에서 잠들면서 그렇게 그녀는 인도인이 되어갔다.


 지니는 동네 아이들도 잘 돌봤다. 지저분한 아이들을 잡아다 샴푸로 머리를 감기고 얼굴에 화장품을 발라주었다. 아픈 아이들을 병원으로 보내기도 했다. 심지어는 동네 개들 몸에 있는 벼룩까지 잡아주었다. 이 모든 일은 지니가 정말 그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사람들과 섞여 그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모습은 나로 하여금 찬사와 질투를 불러일으키게 했다. 그녀를 보면서 느낀 것은 돕는다는 건 뭔가를 주는 행위가 아니라 그들을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정말로 사람들을 좋아했다-p108
메이! 너도 그래! 너도 지니와 똑같아! 책을 읽으면서 지니의 모습을 바라보는 메이의 생각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겁쟁이인 나는 어디로 떠나는 것조차 두렵다. 그냥 문 밖으로 가방 하나 달랑 지고 떠나면 된다지만, 나는 떠나기 전에 이것도 챙겨야 하고, 저것도 챙겨야 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 전부 싸 짊어 지고 가야 직성이 풀린다. "떠난다"는 건, 단어 하나로 끝나는 말이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건 무척이나 어렵다. 그런데 메이는 이미 발길을 옮겼으니, 그 용기야말로 내가 가장 얻고 싶은 것이었다. 떠나기까지 했으면서, 게다가, 인도에 머물러 그들과 생활까지 한다! 메이, 너는 욕심쟁이야. 이미 그들과 생활하면서, 그들과 사랑을 나누면서,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사람을 많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손을 내젓고 있잖아. 사랑하는 방법이 다를 뿐 너는 이미 지니와 똑같으면서.


 크리슈나님, 제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나요? 언덕에 길을 내고 공원을 만든다는 게 말이 돼요? 그렇게 하는 게 사람들을 돕는 게 맞아요? 나 자신도 주체하지 못하면서 어리석게 구는 건 아닐까요? 일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버려요. 왜 여기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요? 왜 사람들은 생각만큼 우리를 안 도와줄까요? 이런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p134
여행을 떠나면 나는 홀가분해질 줄 알았다. 그래서 떠나고 싶었다. 주위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고, 나 홀로 자유롭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여행을 하면 발길이 옮겨지고, 그 발길이 닿은 곳에 무수한 사람이 있다.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한, 관계를 맺지 않는 건 숨을 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렵다. 메이 또한 인도에 가서까지 고민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한국에서나 할 법한 고뇌와 번민은 어디에서나 계속된다. 하지만 그것이 삶은 아닐까? 내가 살아있고, 숨 쉬고 있고, 다른 사람과 관계맺기가 계속되는 한 다른 사람에 대한 나의 고민도 계속될 것이다. 골랄끼또리아 사람들과 웃고 울던 메이가, 때로는 그들의 따뜻함에 감동받고, 때로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에 사랑을 느끼며, 때로는 골랄끼또리와 사람들의 예상치 않은 치사함에 상처받으면서도 인도에 계속 머물렀던 건, 이미 그들이 메이의 안에서 가족이 되어 있기 때문이겠지.


 오르차에서 만난 사람들, 남에게 시간을 나눠주고 뭔가를 해주려는 사람들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어. 그 사람들은 참 행복해 보였거든. 그런 얼굴을 볼 때마다 의문이 생겼지. "나는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나 많은 시간을 쏟았는데도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하고. 당연하지. 그 동안 나는 나를 위해서만 시간을 썼으니까. -p224
남을 돕고, 남을 생각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윗구절을 보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 동안 나는 남을 돕는 그 순간도 사실은 그들을 위해 쓴 시간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만 쓴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런 일을 했어, 음, 좋아" 의 자기만족. 좋은 일을 했을 때 자기만족이 완전히 배제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일을 할 때의 우선순위가 남인가, 나인가에 따라 누구를 위한 시간이었는지가 분명해진다. 메이와 람, 지니. 그들은 마을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을 보며 즐거워했고, 더 많은 것을 베풀어주고 싶어했다. 나도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책을 읽는 동안 정말 행복했다. 마치 전원드라마를 연상하게 하는 마을 사람들과 귀여운 아이들은 이미 내 마음 속에서 친근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면에 감춰진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이 자연스럽게 전해져왔다. 얼마 전 읽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과 같은 알싸함이 내 마음을 감싼다. 어려운 사람들, 어려운 아이들. 언젠가는 이렇게 글로만 그들을 애달파할 것이 아니라 나도 메이처럼 진정으로 떠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책 중간중간의 그림과 재미있는 인도어들은 정말 좋다! 앞으로 계속 인도어만 사용할 것 같다. 이것이 진짜 여행서다. 여행서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아~나도 인도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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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메레르 3 - 흑색화약전쟁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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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행복하다!>  테메레르를 읽으면 언제나 이 말이 곧잘 튀어나온다. 읽으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은 많지만, <이 책이 있어서 정말 좋다, 이 책의 존재를 내가 몰랐더라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정도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 내 책장에 꽂혀 있는 테메레르 1,2 권과 방금 읽은 테메레르 3권은, 물론 내가 2007년 만난 최고의 책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책 한 권에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있다니, 신기할 따름. 

 1권이 테메레르의 탄생과 활약을 그리고 2권이 테메레르의 고향인 중국에서의 험난한 여정을 그렸다면, 3권은 중국에서 영국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모험들을 좀 더 생생하게 나타냈다. 중국에서 영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던 로렌스는 용알을 공수해오라는 영국정부의 명령에 따라 실크로드를 지나 이스탄불로 향한다. 공포의 모래폭풍과 사막의 도적들의 습격을 받으며 가까스로 이스탄불에 도착하지만, 그들의 음모에 의해 결국 부화시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용알 두 개를 훔치게 된다. 급히 영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프러시아와 프랑스군의 전투에 예기치 않게 참가하게 된 로렌스와 테메레르는 프러시아의 계속된 패배에 어려움을 겪지만, 결국 적군들을 따돌리고 영국을 향한 힘찬 날개짓을 시작한다. 

 1,2권과 달리 3권에서는 좀 더 모험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프랑스군과의 전투신은 물론, 중국에서 이스탄불을 향한 여정과 이스탄불에서 탈출하는 모습 또한 두 손에 땀이 날 정도로 생생하다. 공간의 이동이 심하고, 등장하는 인물은 1,2권 못지 않게 많아 산만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내가 직접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을 정도로 장면 하나하나가 살아있다. 게다가 테메레르와 로렌스의 사랑(?)은 여전히 굳건해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척 흐뭇했다. 판타지를 싫어했던 내가 테메레르에 빠져든 요소가 바로 그들의 우정이니, 서로를 위해주는 그런 대목이 없다면 테메레르의 재미는 분명히 반감될 것이다!  

 3권에서는 주목해야 할 인물(?)이 셋이나 등장한다. 2권에서 용싱왕자의 용이었던 리엔과, 새로 태어나는 용 이스키에르카, 그리고 사막을 건너는 로렌스 일행을 안내한 타르케이다.  용싱왕자가 죽고 복수심에 불탄 리엔은 결국 프랑스로 날아가 로렌스와 테메레르를 공격한다. 책 중간에 리엔이 테메레르에게 엄청난 저주의 말을 퍼붓는 대목이 있는데, 내가 테메레르 편이기는 하지만 리엔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얀 용으로 태어나 중국에서 천대 받던 리엔을 아껴준 사람이 용싱왕자 뿐이었으니, 그 분노의 깊이는 어림하고도 남는다. 불행했던 리엔의 삶이 앞으로의 테메레르와의 관계를 통해 평화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새로 태어난 용 이스키에르카는 이스탄불에서 훔쳐 온 알 중 하나였다. 산만하기는 하지만 깜찍한 면도 있고, 입에서 불을 뿜는 성질이 내가 예전 상상하던 용의 이미지와 똑 닮아서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 타르케는 초반에 의심스러운 행동을 계속하지만, 은근 매력있는 인물로 앞으로 로렌스와의 진한 우정을 통해 마음을 열어갈 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3권이 나왔으니, 전쟁은 이제 점점 구체적인 양상을 띨 듯 하다. 1,2권에서 다소 소홀했던 전쟁신이 3권에서는 거의 1/3을 차지할 정도니 앞으로 나올 4,5,6권에서는 영국과 프랑스와의 대결 비중이 커질 것이라 생각된다. 테메레르의 급진적 개혁 사상은 여전하고, 그런 테메레르를 아끼는 로렌스이니 용들의 삶의 개선과 그로 인한 의회와의 갈등 등을 생각하면 아직도 즐길 요소는 충분히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1,2권에 비해 3권의 번역은 좀 더 구수~해졌다. 궁둥이라는 표현, 테메레르의 툴툴거리는 모습, 상처를 치료받는 테메레르가 귀엽게 비명을 지르는 표현, 어느 것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가장 흥미진진했지만, 전쟁이 주역의 자리를 차지해 가다보니 그만큼 희생되는 사람도 많아져 가슴이 아팠다. 이후로는 부디 내가 아끼는 등장인물들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주기를, 나오미 노빅이 함부로 휙휙 내던져 버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3권을 막 읽고 난 후인데, 어서 빨리 4권이 나왔으면 좋겠다. 아니, 4,5,6,권이 한꺼번에 촤르륵 쏟아졌으면 싶다. 출판사에 직접 찾아가 밤샘작업을 하도록 감독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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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때까지
시바사키 토모카 지음, 김활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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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을 읽을 때마다 우리와는 조금 다른 그들의 정서에 머릿속에 <?>가 나타날 때가 있다.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감정의 주인이 우리라면, 쿨한 듯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끈질기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일본의 정서가 아닐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임) 특히 연애소설을 읽을 때면 담백하면서 간결한 문체에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정말 연애인 건지, 아니면 단순한 순간의 감정인 건지 매우 혼란스럽다. 

 첫사랑. 첫사랑이 있든 없든, 단어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이 달콤해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려보면 영화 <러브레터>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나카야마 미호 주연,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러브레터>.  고2때 본 이 영화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하얀 눈 밭에서 꼬옥 숨을 참고 있던 그녀와 아련한 첫사랑의 비밀을 알아버린 또 다른 그녀. 숨을 헉 하고 몰아쉬게 만든 마지막 그 장면. 그렇다. 첫사랑은 아련하고 달콤하면서도 마음 아픈,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그리움과도 같다. 

 [다시 만날 때까지] 는 이러한 첫사랑을 주제로 한다. 수학여행 마지막 밤, 장난삼아 한 심리테스트의 정답으로 자신의 이름을 말한 같은 반 학생 나루미를 유마는 내내 마음에 두고 있었다. 6년 후 유마는 휴가를 내 동경에서 일하고 있는 나루미를 찾아간다. 하지만 나루미와 시간을 보내기는 커녕,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나루미를 스토킹하는 소녀 나기코와 동경을 여행하게 되고, 어느 덧 유마가 다시 돌아갈 날이 다가오는데..

 
<?> . 마지막 책장을 덮은 뒤 나에게 남은 것은 첫사랑의 안타까움과 아련한 느낌이 아니라 이 물음표였다. 내 마음을 온통 뒤흔들고, 설레임에 가득차게 했던 문구 [첫사랑, 그 순수함과 안타까운 엇갈림을 노래한 동화같은 소설] 은 좀 과대포장된 것이 아닌가 싶다. <러브레터>의 아련함과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은 온데간데 없다. 자신이 좋아했던 남자를 스토킹하는 소녀와 함께 동경을 여행하는 매우 쿨한(?) 여주인공과, 자신을 스토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 집에 들이는,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첫사랑과, 남자친구가 있으면서도 여전히 나루미를 스토킹하는 소녀만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스토킹소녀가 이야기하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을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도 문제다.  내 정서가 그들과 맞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작가가 의도한 것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딱 하나 이해되는 것이 있다면 유마의 감정이다.


 말로 표현해버리면 줄곧 품어왔던 느낌은 그저 단순한 형태로 바뀌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저 고교시절의 수많은 추억 중의 하나로 남고 말 것이다.
아마도 나루미에 대한 감정이 그만큼 소중했기에 유마는 말로써 그 감정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모두 표현하기에는 단어가 부족했을 테니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 그것만이 이 책에서 나타내고 있는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었다.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나, 주변의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한 점은 내가 실제로 그 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일본의 연애소설과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 모양이다. 쿨한 그녀들의 마음에 내 마음은 절대 공감할 수 없었으니까. 

 p.s

일본의 단어의 유래를 알게 되어 기뻤다!


에도시대는 무사와 상인이 각자의 마을(町)에 나누어 살았는데, 지명에서 이 한자를 '쵸'라고 읽는 곳은 상인 등이 사는 지역이고, 오카치마치(御徒町)와 같이 '마치'라고 읽는 곳은 무사가 사는 마을입니다.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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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슬픈 오후
존 번햄 슈워츠 지음, 김원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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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느낌은 어떨까. 중학교 때 이후로 나는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어렸을 때 처음으로 느낀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는 물론 나의 죽음도 포함되어 있지만, 내가 사랑하는 주위 사람들의 죽음 또한 들어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슬픈 이별은 이별의 시간도 갖지 못하게 하는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에 의한 것. 멀쩡히 걷고 말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것. 

 뺑소니 사고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순간적인 죽음>이다. 그 곳에는 마치 칼로 자른듯한 생과 사가 존재한다. 이 책은 그런 뺑소니 사고를 둘러싼 두 가족의 이야기다. 에단의 가족은 어느 일요일 오후 피크닉을 즐기고 돌아오다 한 주유소에 차를 세운다. 길가에 홀로 서 있던 아들 조시가 사고를 당해 즉사하지만, 사고를 낸 차량은 그 자리에서 도주하고 만다. 그 후로 에단과 그의 아내 그레이스, 딸 엠마의 남겨진 삶이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다. 사고를 낸 드와이트. 함께 타고 있던 아들 샘 때문에 얼떨결에 사고현장을 떠나게 되지만, 이후 완전하다고 할 수 없었던 그의 삶 또한 점점 번민과 고민의 나락으로 떨어져만 간다. 

 이 책은 피해자의 입장에서만 줄곧 서술하다가 나중에 범인이 잡혀 응징하는 여느 소설과는 확연히 다르다. 피해자인 에단과 그레이스, 가해자인 드와이트의 입장에서 그들의 심리를 낱낱이 파헤친다. 같은 나이였던 아들을 둔 두 아버지. 살아있는 동안 못해준 것이 가슴에 사무치고, 하루하루를 유령처럼 살게 되는 삶 속에서 남겨진 가족들을 생각해야만 하는 에단과 자신의 죄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아들을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드와이트의 두 마음이 모두 아프도록 이해되어 버린다. 그 안에서 엄마의 입장인 그레이스의 시점은 책의 분위기를 더욱 극적으로 몰고간다. 그레이스의 절규, 그레이스의 슬픔. 같은 여자라서 그런지 책을 읽다보면 나는 에단이기보다는 오히려 그레이스가 되어 있었다. 

 한 때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놓고 죽는 것이 더 슬플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살아내야 하는 삶이 더 슬픈 것인지, 생각한 적이 있다. 양쪽 모두 정말 뼈에 사무치도록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역시 남겨진 사람들 쪽이 더 가여운 삶이 아닐까.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기억, 느낌, 몸에 닿던 느낌들. 그 모든 것이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 어느 곳에서도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진실. 남은 사람들은 모든 아픔들을 감내해야만 한다. 

 책은 더디게만 읽혔다. 어쩌면 뒤에 나올 내용이 무엇일지 알고 있었고, 묘사된 사람들의 아픔들이 내 마음에 모두 들어와 나를 힘들게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마지막을 읽으면서 내가 에단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드와이트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했다고는 하지만, 뺑소니는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가장 비겁한 행동이다. 앞으로는 길가에 걸린 "목격자를 찾습니다"라는 현수막을 예전처럼 건조한 눈으로는 바라보지 못할 것 같다. 

 두 가족의 마음 아픈 이야기가 내 가족과 평범한 일상울 소중하게 생각하게 해 주었다. 후회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해도, 그 후회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나누고 싶다.  나를 사랑해 준 가족에게 몇 초라도, 다만 1초라도 이별의 말을 건네고 떠날 수 있다면, 나는 그 죽음 또한 축복받은 것이라 여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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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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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장을 덮은 지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지도에서 찾아야 겨우 위치를 알 수 있는, 저 지구편 어디에서 오늘도 하루를 힘겹게 살아내고 있을 그들에 대해 감히 내가 한 마디 한다는 것은 너무나 주제넘는 일이다. 지금 그들의 가슴에 남아있는 것은 한 줌의 슬픔일까, 혹은 그 보다도 더 작은 희망일까. 아니면 그들의 삶에서 영원히 얻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되는 것에 대한 절망일까. 지금 내 가슴에는 슬픔과 어찌할 수 없이 휘몰아치는 복잡한 감정들만이 뒤섞여 있다. 

 이 이야기는 마리암과 라일라, 두 여자의 이야기다. 아니, 운명이 허락했다면 다른 모든 여자들이 빠짐없이 겪었을지도 모르는 삶의 이야기다.


 나는 타지크 족, 너는 파쉬툰 족, 저 남자는 하자라 족, 저 여자는 우즈베크 족, 이러한 것들이 난센스지. 우리는 모두 아프간이야.
아프간. 이 하나의 말로 모든 사람을 설명할 수 있었던 그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소련의 침공으로. 그 다음에는 적군이 물러간 자리에서 한 나라의 국민들끼리. 마리암.아버지에게 부끄러운 자식이었고, 그 때문에 고향에서 먼 카불로 강제 시집을 보내졌다. 나이도 많고, 폭력적이고, 예의라고는 없는 구두장이 라시드에게. 라일라. 사랑하는 연인 타리크와 가족들이 있었지만, 결국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뱃속에 타리크의 아이를 임신한 채 홀로 남았다.  아이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라시드의 두 번째 부인이 된다. 마리암의 거칠고 이기적인 남편 라시드의.


 내 딸아, 이제 이걸 알아야 한다. 잘 기억해둬라.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 바늘처럼, 남자는 언제나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단다. 언제나 말이다.
두 여인의 삶에 참혹한 그림자를 드리운 건 전쟁이었지만, 그 고통을 더 심화시킨 것은 그녀들의 남편 라시드였다. 때때로 남자에게 있어 여자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라시드에게 마리암과 라일라는 아들을 낳는 도구, 식사를 챙겨주는 식모, 청소와 빨래를 담당하고, 화가 날 때 때려도 괜찮은 하찮은 존재다. 우리의 보수적인 사상에도 아직 남아있지만, 여자는 남자의 부수물이라는 생각의 처음은 대체 어디였을까. 전쟁 속에 홀로 남겨진 여인들의 삶이 눈물로 얼룩져 있었어도 따뜻하고 다정한 남편이 있었다면 마리암의 삶은 어린시절의 아픔을 떨치고 행복한 인생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고,  라일라 또한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 앞에 운명을 내려놓는 것은 신의 뜻이지만, 결국 그 운명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은 사람이다. 그 결정자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일 때 인생의 비극은 시작된다. 가끔 인터넷에서 접하게 되는 이슬람 국가에서의 여자들의 삶을 나는 단순한 기삿거리로 넘겨버렸다. 그 기사 속에서 가련한 여인들은 다른 사람 (남편, 부모, 형제)에 의해 결정된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나에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니 그리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을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야 깨닫는다. 나에게도 일어났을지도 모를 사건이었다고.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은 내가 좋은 일을 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우연에 지나지 않을 일이라고. 어쩌면 내가 그 곳에 태어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고. 

 마리암과 라일라에게 있어 결국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힘겨운 삶을 견뎌낼 힘을 주는 <찬란한 태양>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녀들에게는 이제 그 빛을 오래도록 아프간에 비춰 줄 수 있는 두 명의 아이들이 있다. 아무도 그네들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 수는 없지만 마리암과 라일라, 결코 하찮은 인생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추억을 간직하고 끝없이 인내하며 결국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승화시킨 아름다운 삶.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던 성실했던 삶. 지도자가 되지 못해도, 신문에 시끌벅적하게 등장하는 유명인사는 되지 못해도 우리 모두의 인생은 충분히 찬란하게 빛날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쉽사리 책장에 책을 꽂을 수 없다. 여간해서는 별 다섯개를 주지 않는 내가 별 다섯 개를 주어도 아깝지 않은,  100개라도 주고 싶은 근래 읽은 책 중 최고의 책이다.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좋은 책은 쓸 말을 많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작품에 대해 더 이상 내 생각을 모두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마음으로 느끼고 생각할 뿐이다. 책을 통해 배우는 세상은 허구의 아무 쓸모없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내 마음을 감동으로 적시고, 책과 관계된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급기야는 인터넷을 뒤져 아프간에 대해 조사하게 만드는 것. 진정한 문학의 힘은 여기에 있다. 오늘 나는 또 조금 성장한 느낌이 든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작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셀 수도 없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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