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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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사 책방 시리즈> 일곱 권 중 두 번째로 선택한 책은 이수태 작가님의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앞서 읽은 [만인의 인문학]과 동시에 읽기 위해 비교적 무게감이 적다고 생각되는 책을 골랐다. 페이지 수도 별로 안 되고 에세이라는 말에 덜컥 집어들었으나, 어쩐 일인지 처음 생각했던대로 쭉쭉 읽어나가기가 쉽지만은 않은 책이었다고 할까. 읽다보니 갑자기 가슴이 덜컹, 하거나 갑자기 느껴지는 아련함에 어쩔 줄 모르겠는 마음을 부여잡고 멍-했던 순간들도 더러 있어 당황하게 만들었던 책. 평범함 삶 속에서 발견해낸 작가만의 빛나는 순간들, 혹은 아쉽고 그리운 순간들이 담겨 있다.

 

조그마한 손해를 감수하는 일은 생각하면 하나의 일탈이다. 그것은 단 한 발자국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평균적 가치관에 저항하며 구축된, 다소 고독한 가치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그 한 발자국을 확보할 수 있는 자를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비록 한 발자국을 물러섰지만 그의 앞에는 몇 배나 더 넓은 영지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p 45

 

이 책에 담긴 글들은 이를테면 이런 글들이다. 우리가 그냥 놓치고 지나가는 어떤 것들에 대한 술회. 한 번쯤 생각은 해보았으나 그걸로 끝, 글로는 적어보지 못했던 삶의 단상. 위의 인용문과 같은 내용을 언젠가의 나도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저 단순히 '조금 손해본다고 나쁠 것은 없다'고 스쳐지나갔던 생각들이 작가의 펜 아래에서 구체화된 것 같은 기분. 짧고 간결한 문구로 삶에 관한 철학을 논하는 젊은 세대들에 비하면 투박한 느낌이 배어나오는 듯도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겸손한 자세로 귀기울이게 된다고 할까.

놓쳐버린 이 별에서 인생이라든가 삶과 죽음이라는 숙명적인 이미지를 느끼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이 별이 인간의 한 생애와 맞먹는 76년이라는 독특한 주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핼리 혜성에 마음이 있다면 혜성은 다시 지구 가까이 돌아왔을 때 그가 76년 전에 보았던 인류의 대부분이 무덤 속에 누워 있고 그들의 낯선 후손이 저마다의 행복과 슬픔 속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광경을 고즈넉이 굽어볼 것이 아닌가.

p 105

 

이 대목 읽는데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고 울컥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무엇!! 마치 SF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 고독함. 적막감. 외로움. 쓸쓸함. 다음 번 핼리 혜성을 볼 수 있는 해는 2061년이라는데, 그 때즘 되면 아마도 나는 물론 나의 가까운 이들도 대부분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 자신을 보았던 사람들은 아무도 남지 않는 이 지구 위를 날아갈 핼리 혜성. 삶이란, 죽음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면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평소에는 막연히 생각했던 죽음이나 삶 같은 것들이 핼리 혜성이라는 구체적인 것과 비교되니 더 아련하고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 받았던 부모의 사랑을 생각하고 먼저 떠나간 친구를 향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저자는, 휴대폰 사용을 하지 않는 것으로 '반자본주의자'의 모습을 유지하고 이사를 하면서도 착취와 살육의 현장에 있는 것 같다며 몸을 떠는 사람이다. 순수한 듯 하면서도 '삶이 공허하고 외롭다는 것을 아는 것도 큰 지혜'라는 것을 깨달은 원숙한 사람. <논어>를 예찬하는 그가, 과연 그 책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얻었는지 조만간 정성들여 읽어봐야겠다. 쉽게 읽히나 이런 저런 생각을 곱씹게 만드는 저자의 글 속에서 그의 소박한 향기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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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날의 거장 열린책들 세계문학 271
레오 페루츠 지음, 신동화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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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늦도록 잠 못 이룰 이야기라니, 캬!! 딱 제 취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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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모그!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70
주디스 커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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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박깜박 고양이 모그가, 가족들 곁을 떠나 먼 여행을 떠납니다. 제목에서부터 심상치 않다 생각했는데, 이런 영원한 이별이라니요!! 남은 가족들이 슬픔을 어찌 견딜까 먹먹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어요.

 


 

나이가 많아서 지치고 힘들었던 모그. 자신의 몸조차 무겁게 느껴졌던 모그는 영원히 잠듭니다. 그런데, 영혼이 된 모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 있었죠.

 


 

모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들. 자신을 그리워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모그는 미소를 지어요. 자신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만족감이었을까요?

 


 

그런 가족들에게 새 식구가 찾아옵니다. 너무나 작고 겁이 많은 아기 고양이. 무엇에든 놀라 도망치는 고양이 때문에 가족들은 슬픔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보여요.

자신의 밥그릇에 우유를 따라주는 가족들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모그. 이지의 외침에 또다시 도망쳐버리는 아기 고양이를 보고 멍청하다며 혀를 찹니다.

 

과연 아기 고양이는 이 집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모그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요?

 

모그의 죽음 이후, 가족들은 새 생명의 출현으로 잠시나마 모그의 부재를 잊게 됩니다. 모그 또한 처음에는 아기 고양이를 못마땅해하지만 가족들은 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아기 고양이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죠.

 

약간의 도움이 있다면 아기 고양이가 잘 적응할 거라 생각하며 나름의 도움을 주는 모그. 모그의 도움으로 아기 고양이는 마침내 '가족'이 되었지만 다비는 영원히 모그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슬픔으로 가득찬 내용일 거라 짐작했지만 슬픔을 이기고 또 다른 삶이 이어지는 따스하고 다정한 이야기. 비록 죽음으로 헤어지게 되었지만 우리 만남의 이유는 서로 사랑하고 위안이 되어주는 것이었음을 일깨워주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저희 첫째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냐고, 엄마랑 아빠가 죽으면 어떡하냐며 특히 죽음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 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엄마랑 아빠가 떠나더라도 너희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이렇게 모그처럼 항상 너희를 지켜봐줄 거라고 따뜻하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아직은 아이가 어려서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이 두려움과 슬픔의 대상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들이 더 많이 사랑하고 서로를 아끼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겠죠.

 

오늘 하루, 소중한 사람을 마음껏 사랑하면서 '사랑한다'고 속삭여주세요.

 

** 출판사 <북극곰>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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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 - 2차 세계대전 당시, 인간성과 용기를 최후까지 지켜 낸 201인의 이야기
피에로 말베치.조반니 피렐리 엮음, 임희연 옮김 / 올드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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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탕스-하면 떠오르는 것은 먼저 프랑스다. '저항'을 뜻하는 프랑스어이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활동을 가장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 [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에 실린 이들은 이탈리아인이다. 1943년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이 소련에 패배하고, 같은 해 7월 연합군이 시칠리아 섬에 상륙하면서 이탈리아 본토 침공이 가시화되자, 그 동안 파시즘을 내세워 나라를 통치하던 무솔리니는 실각하고 만다. 그러나 1943년 이탈리아는 연합국과 휴전 협정을 맺게 되는데 그 후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의 도움을 받은 나치 독일 군대가 이탈리아 북부를 장악한다. 독일은 수감 중이던 무솔리니를 구출해 내 '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이라는 괴뢰정부의 수반으로 앉혔고, 결국 이탈리아는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남부와 파시스트들이 장악한 북부 사이의 내전 상태로 들어간다.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군대와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우기 위해 생겨난 다양한 레지스탕스 활동. 이 책은 그러한 저항운동을 펼쳤던 사람들이 붙잡혀 사형을 당하기 전 남긴 삶의 마지막 기록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면, 남기고 싶은 말은 과연 무엇일까. 그들의 경우 여지없이 '사랑'이었다. 부모님을 향한 사랑, 이런 처지가 되어 먼저 떠나는 것에 대해 구하는 용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자긍심, 아내와 아이를 향한 애정. 놀랍게도 그들의 편지에서는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는 글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곧 세상을 떠나게 될 이가 남아있는 이들을 위해 위로를 건네고, 자신의 죽음으로 슬퍼하지 말기를, 이 죽음을 자랑스러워 해주기를 부탁한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시기를 다루는 드라마나 소설에 대해 옆지기와 대화를 나눌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우리라면 과연 저렇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 라는 점이다. 설사 독립운동을 한다 해도 고문을 당하다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남김없이 말해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가슴은 뜨겁고 입으로는 정의를 부르짖는다해도 실제로 죽음을 코앞에 둔다면 나는 어떤 인간으로 변해있을까. 혹은 변하지 않을까. 늘 궁금하다. 독립투사들은 물론, 평범한 사람들마저 레지스탕스 활동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고 죽음마저 불사하게 만들었던 그 힘. 그 마음. 그런 마음들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책 앞부분에 실린 편지의 주인공들, 201인의 이름만 보아도 코가 시큰해진다. 이 목차 자체가 하나의 비석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눈물로만 이 책을 기억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지글들을 통해 느껴지는 그들의 마음을 기억하면서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나 또한 비겁한 인간이 되지 않기를,소중한 사람들 앞에서 누구보다 떳떳한 인간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 출판사 <올드벤>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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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깨끗하게 살아온 것을 자부하던 바리사이 대신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던 죄 많은 세리에게서 의로움을 보았다. 공자는 앎의 실체를 더 많은 앎에서가 아니라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찾았다. 잘못을 넘어서는 것에 있어서도 그는 마찬가지 논리였다. 심지어 선의 실질도 구악, 즉 불선이 갖는 겸허한 자인에서 구했을 뿐이었다.

p 255

 

 

알 듯도 같고 모를 듯도 같은 저자의 공자와 예수에 대한 찬사. 마지막을 공자와 예수로 장식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저자를 이토록 감동하게 만들었는지 점점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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