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
가이도 다케루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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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빛이 감도는 표지에 어쩐지 마음이 산란하다. 보통 붉은 빛은 따뜻하다고 여겨지는데 이 책 표지에서는 차갑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표지 오른쪽에서 문을 통과해 꼬물꼬물 나오는 사람들이 인간의 형상이 아니라 자꾸만 하나의 세포처럼 보이는 것은 나의 착각일까. 

그의 바티스타 시리즈를 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사실 이 시리즈의 첫 작품인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보다는 [나이팅게일의 침묵]을 먼저 읽었는데 약간의 코믹한 분위기와 함께 미스터리, 병원에서 일어나는 감동적인 일화를 그려낸 데 반했다. 의료지식도 풍부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외과의사를 거쳐 현재는 병리 의사로 근무하는 사람이다. 주로 병원을 무대로 한 소설을 쓰는 그의 소설에서는 '병원'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삭막한 이미지가 아닌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데 [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 또한 그런 책들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가이도 다케루는 이 작품에서 불임, 저출산 등의 사회 문제를 주로 이야기하지만 그 저변에는 '생명의 신비'라는 불가사의하면서도 아름다운 세계가 숨어 있다.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팔과 손이 각각 하나, 다리도 오른쪽 왼쪽 모두 있다. 방송에서 가끔 보여주는, 갖춰야 할 것을 갖추지 못하고(단어 선택에 무척 고심했음을 알아주세요)  태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 그래, 이렇게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도 감사하자'라는 마음을 갖게 되지만 그것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나로 있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찔한 확률도 벌어진 일인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쿄 데이카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는 소네자키 리에. 그녀는 발생학 강의를 하는 동시에 마리아 불임 클리닉에 비상근 의사로 출근하고 있는데 인공수정 전문가인 그녀에게 다섯 명의 임산부가 찾아온다. 자연 임신한 아마리 미네코와 아오이 유미, 간자키 다카코와 인공수정한 아라키 히로코, 그리고  55세의 야마자키 미도리. 같은 대학에서 부교수로 일하는 기요카와는 55세의 임부인 야마자키 미도리가 대리모이며 리에가 대리모 출산에 관여했다는 소문을 듣고 사실을 확인하기 시작한다. 

사회고발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읽기 시작했지만 리에가 말하는 출산에 관계된 문제는 심각하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되어야 할 기회가 불임 부부들에게 적다는 것, 출산은 병이 아니기 때문에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된다는 사실에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 외에도 소중하게 생명을 다뤄야 할 병원에서 알력다툼이 벌어지고, 이익만을 위해 기관과 기관이 움직여 진실을 은폐하는 현실이 무섭게 느껴졌다. 

대리모의 문제도 법적으로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이를 낳은 사람이 엄마인가, 난자를 제공한 사람이 엄마인가' 라는 문제에서는 아이를 낳은 사람이 엄마로 정해진다고 한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온갖 변수가 많을텐데 가뜩이나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를 한 줄의 법문으로 정해놓을 수 있는 것인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리모 문제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대리모에 관한 사항이 좀 더 현실적이고 중요하게 다뤄진다면,  우리가 우선해야 할 것은 누가 부모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태어난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 속에서도 생명은 태어난다. 아이가 무뇌아라는 것을 알고도 세상의 한 줄기 빛을 보여주고 싶어한 아마리 미네코와 팔이 없는 아이를 낳으면서도 출산을 통해 인간으로서, 엄마로서 성장해가는 아오이 유미의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생명의 신비'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바티스타 시리즈에 비해 이 책의 분위기는 그다지 밝지 않다. 그러나 얼음 마녀라 불리는 소네자키 리에의 손에서 태어난 아기들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생명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밝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 그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을 우리는 출산이라 부른다. 고귀하고 숭고한 출산과 관련된 모든 일들이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에 의해 변질되거나 억압받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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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인간
샤를로테 케르너 지음, 조경수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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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이식을 받은 사람의 식성이 달라지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며 예전에는 없던 능력이 갑자기 생기게 되는 경우를 종종 들은 적이 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의 것이 아닌 그 심장과 눈과 많은 장기들에까지도 기억은 파고들어 있는 것일까. 기억과 전혀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장기들의 경우도 그러한데 우리의 사고를 총괄하고 지식과 기억의 창고인 뇌를 이식한 경우는 어떨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과연 머리인가, 몸인가? [걸작인간] 은 이 하나의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던 중 사고를 당한 열 여덟의 요제프 메치히. 그는 몸은 멀쩡하지만 뇌사상태에 빠져 있다. 교통사고를 당한 삼십대의 게로 혼 후텐. 화가였던 그는 뇌는 멀쩡하지만 오른손은 절단되었고 왼손은 뭉그러졌으며 온 몸에 화상을 입은 상태다. 프로메테우스 재단의 레나-마리아 크라프트는 두 사람의 보호자로부터 동의를 얻어 요제프의 몸을 게로에게 이식한다. 즉 몸은 요제프이나 머리는 게로인 상태. 화가였던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게로였지만 요제프의 몸을 이식받은 후부터 요제프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결국 게로 안에는 원래의 게로와 몸의 주인 요제프, 그리고 그 두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인격체인 '신인간'이 출현하게 되고 급기야 게로의 아내인 이본느를 떠나 레나와 사랑에 빠지기에 이른다. 

일본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변신] 이라는 책에서도 역시 뇌 이식수술을 다룬다. 강도에 의해 뇌를 크게 다친 청년에게, 총을 맞고 죽은 그 강도의 뇌를 이식한 내용으로 그 후 청년의 의식과 행동이 어떻게 변화해가는가를 섬뜩하게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변신] 에서는 [걸작인간] 에서처럼 머리를 통째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뇌의 일부만을 이식한 것으로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어 보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몸과 나의 머리가 결합된다니, 상상할 수는 있으나 어쩐지 쉽게 실현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의학기술이 발달하여 인간의 생명이 많이 보호받고 있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뇌에 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고들 한다. 아주 잠깐이라도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그 기능을 멈춰버리는 뇌. 강한 듯 하지만 민감하고 연약한 그 뇌를 이식하고, 몸을 이식받는 시대도 곧 오겠지만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생각해본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해도 좋은 것일까.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움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머리 따로, 몸 따로인 새로운 인체는 어쩐지 거부감이 느껴진다. 물론 예전에는 장기이식 자체도 문제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어떻게든 자식과 남편을 살리고 싶다는 일념 하에 어려운 결정을 한 요제프의 어머니와 게로의 아내. 그러나 만약 내가 게로였다면 어쩐지 그가 걸었던 길을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기분이 든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몸보다는 뇌가 그 사람을 더 많이 지배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 몸을 이식받은 사람에게 새롭게 출현한 '신인간'을 등장시킨다. 인간에게 있어 몸이 중요한가, 영혼이 중요한가가 논의되는 것처럼 뇌가 중요한가, 아니면 뇌 아래의 몸이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해주었다. 지금 글을 쓰는 나의 손가락은 뇌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손가락 자체의 의지인 것일까. 

과연 어떻게 결말을 맺을지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지만 '신인간'과 레나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약간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몸과 뇌, 진정한 자아를 생각해보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괜찮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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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나의 힘 - 에너지를 업up시키는 분노관리법
아니타 팀페 지음, 문은숙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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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에서 방영된 프로그램 중에 -다큐프라임, 인간의 두 얼굴-이라는 다큐가 있었다. 인간이 정해진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를 실험하고 관찰한 내용이었는데, 그 중에는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을 상대로 대문자 E를 자신의 이마에 크게 한 번 써보게 하는 실험도 있었다. 자신이 봤을 때 E가 똑바로 보이게 그리는 사람, 남이 봤을 때 E가 똑바로 보이게 그리는 사람의 두 유형으로 분류되는데 나는 후자에 속했다. 심리학자에 의하면 나처럼 후자에 속하는 사람은 남의 눈을 의식해서 행동을 하는 경향이 강하며 팔랑귀의 소유자다. 심리학자의 설명을 듣고 가슴 한 쪽이 뜨끔했음은 물론이다. 

다른 사람의 눈과 상황을 살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타인에게 화를 내는 것이 서툴다. 그저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타인의 요구를 들어주거나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며, 가끔은 그렇지만 NO 라고 말하는 것은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타인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한 탓이라고 여겨지는데, 같은 맥락에서 나의 분노를 다른 사람이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분노란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그다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그 분노를 긍정적으로 생각한 한 권의 책이 있다. 

제목부터 어쩐지 통쾌하다. '분노는 나의 힘' 이라. 가까운 사람에게 분노를 잘 표현하게 된다는 저자의 말처럼 내가 화를 내고 신경질을 내는 대상은 주로 가족, 그 중에서도 '엄마'였다. 엄마라면 나의 이런 기분을 모두 받아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일까. 나의 화살을 모두 맞아버린 엄마의 기분은 생각지도 않고 내 가슴 속에 꾹꾹 눌러둔 어둠의 기운을 모두 내쏘아버린 시절이 있었다. 뒤늦게 찾아오는 감정은 후회, 그것도 마치 진창에 몸이 빠져버린 것 같은 캄캄한 후회 뿐이었다. 때문에 분노를 나의 힘으로 전환시키기보다 에너지 소모, 감정의 소모로 사용했던 나에게 이 책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책은 모두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노의 현상, 원인, 본격적인 설명에 들어가기 전 분노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분노는 나의 일상>, 분노를 표출하고 분노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는 방법을 풀어놓은 <분노는 나의 편>, 그리고 분노를 진정한 나의 힘으로 바꾸기 위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행동지침을 역설한 <분노는 나의 힘> 까지, 저자는 '분노학계'의 강자라 여겨질만큼 체계적으로 분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특히 두 번째 장이 인상적이었는데 자신의 감정을 그림으로 그려보기, 분노일기 쓰기, 건강한 자기가치 의식 세우기 등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어렵지 않은 내용들이 많다. 

저자의 이론 중에서 마음에 든 것은 '분노'를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멸하고 피해버리는 '분노'를 인간의 당연한 감정으로 받아들이며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점에서 안락함을 느낀다. 지금까지 내가 느꼈던 분노가 합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구나, 그 상황에서 내가 화가 나고 분노를 느낀 것은 당연한 일이었구나 라고 편안히 생각하게 된 것이다. 부끄러운 면을 인정하고 그것도 나라고 미소짓게 해준다는 점에서 좋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화나씨, 열나씨의 사례들은 내가 혹은 다른 누군가가 한 번쯤은 겪어봤을 감정의 파편들이었다. 그 파편에 맞아 아픈 가슴을 숨기려고만 하지 말고 당당하게 꺼내보일 수 있도록  '분노'를 나의 힘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생각해야겠다. 예민하고 어렵게 느껴질만한 주제를 귀여운 삽화들이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특히 곰을 글러브로 때리는 장면이나 불을 내뿜는 표지 그림이 마음에 든다. 작지만 강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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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본즈 모중석 스릴러 클럽 16
캐시 라익스 지음, 강대은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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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 철을 미국드라마 <본즈> 와 함께 보냈다. 수사물을 좋아하지만 케이블에서 방영되던 <본즈>를 보고 어쩐지 나와 맞지 않는 듯 하여 미뤄둔 것이 몇 개월. 그러다 미국드라마의 새 시즌이 방영되기를 기다리면서 영 볼 프로그램이 마땅치않아 보기 시작한 것이 바로 <본즈> 다. 처음에 나는 여주인공 템퍼런스 브레넌의 극 중 이름이 정말로 '본즈'인 줄 알았더랬다. 아무튼, 나와 그녀의 만남은 시작되었고( 솔직히 부스는 브레넌보다 덜 멋지다;;) 급기야 헤어나오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드라마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템퍼런스 브레넌은 뼈를 연구하고 그것을 토대로 범인을 검거하는 데는 프로지만, 인간관계 면에서는 빵점인 인물이다. 심리학에서 여성들의 공통점이라 부르는 '남에게 공감하기'는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 없고, 친구가 괴로워하거나 고민상담을 해올 때조차 엉뚱한 말로 사람을 당황시킨다. 눈 하나 꿈쩍 않고 범인을 향해 총을 쏘아대는가하면, FBI인 부스의 행동을 따라 용의자의 뺨을 철썩철썩 때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런 점이 또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사람은 모든 일을 완벽히 해낼 수 없다는 명제의 살아있는 증거라고나 할까. 

그렇게 나를 열광하게 만든 브레넌 박사의 수사물이 책으로 나왔다는데 읽지 않을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부스 대신 라이언이라는 연인이 등장하지만 '브레넌 박사가 나온다는데 그 정도야'라고 생각하며 책을 펼쳐든 순간, 이런, 한숨부터 나온다. 성서 이야기다. 브레넌 박사가 예수의 유골을 분석한단다. 미리 밝혀두지만 나는 이제 '성서 다시보기' '성서 파헤치기' 이야기는 멀리하고 싶다. 바로 며칠 전에 '성서 다시보기' 책을 또 한 권 읽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더 강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붙잡고 읽기 시작했다. 

하나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머리에 총 두 방을 맞고 사망한 유대인 남자. 그를 부검하는 브레넌 박사에게 정체불명의 한 남자가 해골이 찍힌 이상한 사진을 건넨다. 로마인과의 항쟁 끝에 유대인 967명이 자살한 마사다 유적.  브레넌 박사는 친구 제이크의 도움으로 그 사진이 마사다 유적과 관련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유골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연인 라이언과 함께 이스라엘로 향한다. 

[다빈치코드]가 출간된 이후로 성서 뿐만 아니라 예수에 관한 여러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예수는 죽지 않았고 부활하지 않았다는 둥, 결혼해서 자식을 남겼다는 둥, 확인할 수 없는 의문들만 난무한다. 이 책 또한 그런 의문들 중 하나에서 출발했다. 예수의 가족무덤, 예수의 유골. 성서와 예수를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그렇듯 이 책 또한 명쾌한 해석을 내리며 끝맺지 않는다. 허구의 사건을 소재로 한 이야기보다 답답하게 느껴지는 결말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역시 '성서 다시보기' 책들은 아직 미흡한 것 같다. 

다만 TV로만 보던 브레넌 박사의 활약을 책으로 만날 수 있어 좋았다는 점은 인정한다. 드라마보다 생동감과 현실감은 떨어지지만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사건을 따라가다보면 책의 내용이 내 머릿속에서 드라마로 재구성되곤 했다. 짧게 끊어지는 문장들은 또 다른 긴장감을 조성한다. 성서와 예수를 소재로 하는 특성상 그녀보다는 친구 제이크의 지식이 살짝 더 빛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CSI나 여타의 수사물과는 달리 <본즈>에서는 사람의 뼈를 다뤄 사건의 증거와 실마리를 찾아낸다. 사람의 몸이 여러가지를 말해준다는 점은 섬뜩하면서도 신비한 일인 것 같다. 단순히 '사건의 희생자'로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비록 뼈로 변해버렸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었더니 갑자기 드라마 속 브레넌 박사가 그리워진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된만큼 나는 다시 그녀를 보러 가련다.  캐시 라익스의 전작 [본즈]를 옆에 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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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일 1 - 불멸의 사랑
앤드루 데이비드슨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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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일은 고딕 성당의 외벽을 장식하는 괴물형태의 물받이 조각상을 말한다 (가고일 2 P343)- 처음에는 가고일이 뭔가 싶었다. 좋아하는 보라색이 들어간 매혹적인 표지 탓에 '가고일'도 분명 로맨틱하고 깊이가 있는 뜻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고일이라고 크게 쓰여진 제목 위에 '불멸의 사랑'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었으니까. 작가는 친절하지 않게도 독자들에게 가고일이 무엇이라고 콕 집어 내보이지 않는다. 그저 책을 읽어나가면서, 혹은 옮긴이의 말을 통해 그제서야 '아, 그거! '라고 떠올릴 뿐이다. 어쨌든 가고일은 이상한 날개를 달고 건물 기둥의 한 켠을 붙잡고 있는 듯한 괴상한 모습을 한 석상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주인공은 가고일만큼이나 흉측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전직 포르노 배우인 그는 술에 취해 운전을 하다 사고를 냈고 전신이 불에 탔다. 여러 여자를 애닳게 했던 아름다운 외모도 불과 함께 사라졌다. 오랫동안 혼수상태로 지냈고 몇 번의 수술을 거쳤으며 고통스러운 치료과정을 경험해야하는 그 앞에 마리안네 엥겔이라는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는 그에게 700년 동안 계속되어온 자신의 사랑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화살로 시작되었고 화살로 끝을 맺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온 사랑을.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라고 하는 띠지의 문구를 100% 믿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불멸의 사랑이라고 해도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변질되고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 종국에는 처음과 같은 사랑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원하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그러면서도 진부하다고 치부해버리는 '사랑'이야기에 완벽히 빠져들 수는 없을 거라 짐작했는데, 나는 책을 집어들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두 권을 내리 읽어버렸다. 

이 책의 매력은 마리안네와 그의 사랑 외에도 마리안네가 들려주는 네 가지 사랑 이야기에 있다. 병에 걸린 아내를 따라 죽음을 선택한 대장장이, 혼자 바다에 나갔다가 실종된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 폭압적인 다이묘에 의해 사랑을 강탈당하고 비구니로 살다 끝내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생매장당한 여인, 허락받지 못할 사랑을 했으나 사랑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한 남자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가 마리안네의 입을 통해 현실 속에 재현된다. 

마리안네가 들려준 이야기 속의 사랑들은 단 한 편도 '누구와 누구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고 끝나지 않는다. 모두 자신의 사랑을 위해 희생할 뿐 영원한 행복을 약속받지 못했다. 어쩌면 그 네 가지의 이야기가 마리안네와 그의 사랑의 결말을 암시해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사랑이 과연 비극인가 싶기도 하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일생동안 혹은 죽어서까지 그 사랑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그들의 인생은, 마리안네와 그의 삶은 힘들었으나 아름다웠던 것이 아닐까. 

그들이 처음 만나 700년이 지난 지금의 마리안네의 직업은 조각가다. 아무 특징없는 돌 속에서, 생명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돌 속에서 새로운 존재를 창조해낸다. 수많은 가고일들을.  그 가고일들이 마리안네에 의해 창조되었다면 그는 사고와 화상이라는 과정을 통해 가고일이 되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으면서 사랑을 오직 오락으로만 여겼던 그 앞에, 사고와 화상은 생명을, 마리안네라는 단 하나의 사랑을 데려다 주었다. 비록 70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으나 그 시간의 깊이만큼 그의 사랑은 앞으로도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이리저리 돌고돌아온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안타깝고 아련했으나 무척 재미있었다. 기대 이상이었기에 아주 만족한다. 단테의 [신곡] 을 도입한 글의 전개도 멋있었고, 시공간을 뛰어넘는 그들의 사랑이 아주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것만 같다. 고통과 희생, 구원을 통해 피어난 그들의 사랑 덕분에 마음이 촉촉해져 온다.

 



 이것은 화살이 내 가슴에 들어온 세 번째 사건이 될 터이다. 첫 번째는 나를 마리안네 엥겔에게 데려다 주었다. 두 번째는 우리를 갈라놓았다.

 세 번째는 우리를 재결합할 것이다. (가고일 2 p339)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여전히 계속된다. -아이 러브 유, 아이시테루, 에고 아모 테, 티 아모, 예흐 엘스카 시흐, 이히 리베 디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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