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인간
샤를로테 케르너 지음, 조경수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장기이식을 받은 사람의 식성이 달라지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며 예전에는 없던 능력이 갑자기 생기게 되는 경우를 종종 들은 적이 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의 것이 아닌 그 심장과 눈과 많은 장기들에까지도 기억은 파고들어 있는 것일까. 기억과 전혀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장기들의 경우도 그러한데 우리의 사고를 총괄하고 지식과 기억의 창고인 뇌를 이식한 경우는 어떨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과연 머리인가, 몸인가? [걸작인간] 은 이 하나의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던 중 사고를 당한 열 여덟의 요제프 메치히. 그는 몸은 멀쩡하지만 뇌사상태에 빠져 있다. 교통사고를 당한 삼십대의 게로 혼 후텐. 화가였던 그는 뇌는 멀쩡하지만 오른손은 절단되었고 왼손은 뭉그러졌으며 온 몸에 화상을 입은 상태다. 프로메테우스 재단의 레나-마리아 크라프트는 두 사람의 보호자로부터 동의를 얻어 요제프의 몸을 게로에게 이식한다. 즉 몸은 요제프이나 머리는 게로인 상태. 화가였던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게로였지만 요제프의 몸을 이식받은 후부터 요제프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결국 게로 안에는 원래의 게로와 몸의 주인 요제프, 그리고 그 두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인격체인 '신인간'이 출현하게 되고 급기야 게로의 아내인 이본느를 떠나 레나와 사랑에 빠지기에 이른다. 

일본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변신] 이라는 책에서도 역시 뇌 이식수술을 다룬다. 강도에 의해 뇌를 크게 다친 청년에게, 총을 맞고 죽은 그 강도의 뇌를 이식한 내용으로 그 후 청년의 의식과 행동이 어떻게 변화해가는가를 섬뜩하게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변신] 에서는 [걸작인간] 에서처럼 머리를 통째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뇌의 일부만을 이식한 것으로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어 보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몸과 나의 머리가 결합된다니, 상상할 수는 있으나 어쩐지 쉽게 실현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의학기술이 발달하여 인간의 생명이 많이 보호받고 있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뇌에 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고들 한다. 아주 잠깐이라도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그 기능을 멈춰버리는 뇌. 강한 듯 하지만 민감하고 연약한 그 뇌를 이식하고, 몸을 이식받는 시대도 곧 오겠지만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생각해본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해도 좋은 것일까.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움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머리 따로, 몸 따로인 새로운 인체는 어쩐지 거부감이 느껴진다. 물론 예전에는 장기이식 자체도 문제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어떻게든 자식과 남편을 살리고 싶다는 일념 하에 어려운 결정을 한 요제프의 어머니와 게로의 아내. 그러나 만약 내가 게로였다면 어쩐지 그가 걸었던 길을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기분이 든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몸보다는 뇌가 그 사람을 더 많이 지배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 몸을 이식받은 사람에게 새롭게 출현한 '신인간'을 등장시킨다. 인간에게 있어 몸이 중요한가, 영혼이 중요한가가 논의되는 것처럼 뇌가 중요한가, 아니면 뇌 아래의 몸이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해주었다. 지금 글을 쓰는 나의 손가락은 뇌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손가락 자체의 의지인 것일까. 

과연 어떻게 결말을 맺을지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지만 '신인간'과 레나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약간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몸과 뇌, 진정한 자아를 생각해보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괜찮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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