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
가이도 다케루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붉은 빛이 감도는 표지에 어쩐지 마음이 산란하다. 보통 붉은 빛은 따뜻하다고 여겨지는데 이 책 표지에서는 차갑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표지 오른쪽에서 문을 통과해 꼬물꼬물 나오는 사람들이 인간의 형상이 아니라 자꾸만 하나의 세포처럼 보이는 것은 나의 착각일까. 

그의 바티스타 시리즈를 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사실 이 시리즈의 첫 작품인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보다는 [나이팅게일의 침묵]을 먼저 읽었는데 약간의 코믹한 분위기와 함께 미스터리, 병원에서 일어나는 감동적인 일화를 그려낸 데 반했다. 의료지식도 풍부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외과의사를 거쳐 현재는 병리 의사로 근무하는 사람이다. 주로 병원을 무대로 한 소설을 쓰는 그의 소설에서는 '병원'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삭막한 이미지가 아닌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데 [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 또한 그런 책들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가이도 다케루는 이 작품에서 불임, 저출산 등의 사회 문제를 주로 이야기하지만 그 저변에는 '생명의 신비'라는 불가사의하면서도 아름다운 세계가 숨어 있다.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팔과 손이 각각 하나, 다리도 오른쪽 왼쪽 모두 있다. 방송에서 가끔 보여주는, 갖춰야 할 것을 갖추지 못하고(단어 선택에 무척 고심했음을 알아주세요)  태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 그래, 이렇게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도 감사하자'라는 마음을 갖게 되지만 그것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나로 있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찔한 확률도 벌어진 일인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쿄 데이카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는 소네자키 리에. 그녀는 발생학 강의를 하는 동시에 마리아 불임 클리닉에 비상근 의사로 출근하고 있는데 인공수정 전문가인 그녀에게 다섯 명의 임산부가 찾아온다. 자연 임신한 아마리 미네코와 아오이 유미, 간자키 다카코와 인공수정한 아라키 히로코, 그리고  55세의 야마자키 미도리. 같은 대학에서 부교수로 일하는 기요카와는 55세의 임부인 야마자키 미도리가 대리모이며 리에가 대리모 출산에 관여했다는 소문을 듣고 사실을 확인하기 시작한다. 

사회고발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읽기 시작했지만 리에가 말하는 출산에 관계된 문제는 심각하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되어야 할 기회가 불임 부부들에게 적다는 것, 출산은 병이 아니기 때문에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된다는 사실에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 외에도 소중하게 생명을 다뤄야 할 병원에서 알력다툼이 벌어지고, 이익만을 위해 기관과 기관이 움직여 진실을 은폐하는 현실이 무섭게 느껴졌다. 

대리모의 문제도 법적으로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이를 낳은 사람이 엄마인가, 난자를 제공한 사람이 엄마인가' 라는 문제에서는 아이를 낳은 사람이 엄마로 정해진다고 한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온갖 변수가 많을텐데 가뜩이나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를 한 줄의 법문으로 정해놓을 수 있는 것인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리모 문제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대리모에 관한 사항이 좀 더 현실적이고 중요하게 다뤄진다면,  우리가 우선해야 할 것은 누가 부모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태어난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 속에서도 생명은 태어난다. 아이가 무뇌아라는 것을 알고도 세상의 한 줄기 빛을 보여주고 싶어한 아마리 미네코와 팔이 없는 아이를 낳으면서도 출산을 통해 인간으로서, 엄마로서 성장해가는 아오이 유미의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생명의 신비'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바티스타 시리즈에 비해 이 책의 분위기는 그다지 밝지 않다. 그러나 얼음 마녀라 불리는 소네자키 리에의 손에서 태어난 아기들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생명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밝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 그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을 우리는 출산이라 부른다. 고귀하고 숭고한 출산과 관련된 모든 일들이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에 의해 변질되거나 억압받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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