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호~오랜만에 엄청난 작품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여간해서는 스릴러에  별 다섯 개를 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줄 수만 있다면 많은 별을 주고 싶을 정도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 띠지의 광고문구에 '흥!'하고 콧방귀를 거세게 뀌기는 했다. 스티븐 킹과 히가시노 게이고 팬이 열광한 경이적인 걸작이라는 둥, 영미권 최고의 소설상인 맨 부커상에 후보로 선정되었다는 둥, 신뢰해 마지 않는 일본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의 해외부문 1위라는 둥, 이런이런, 듣기만 해도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 동안 띠지 문구에 속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닌 관계로 50% 정도만 믿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와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내 마음을 콱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이 책 때문에 그 잠 많던 제가 밤잠을 포기했다구요! 

1933년 하얀 설원에서 고양이를 사냥하는 두 형제. 동생을 먼저 보내고 남아있는 형을 공격하는 한 남자. 1953년, 스탈린 치하의 소련. 교육, 의료, 안전 등 모든 것을 제공하는 대신 과다한 노동과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당하는 시대. 국가 안보부 요원 레오 데미도프는 그런 세상을 보호하기 위해 불온사상 유포, 명령불복종, 반대세력 결성 등 국가를 위협하는 모든 범죄를 제압하고 범죄자들을 색출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 속에 한 번 균열이 생기면 멈출 수 없는 법. 어느날 체포했던 남자가 범죄자가 아니라 단순한 수의사에 불과했다는 진실을 깨달으며 레오의 마음 속에는 충성에 대한 의심이 싹트고, 동료의 살해당한 아들을 단순사고로 처리한 데 대한 자책감에 시달린다. 그의 심적변화를 눈치챈 동료에 의해 강등되어 다른 도시로 전출된 그는, 예전의 모든 것을 버리고 공식적으로 범죄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소련에서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노동자의 천국이라 불리며 모든 것을 제공하지만 국가에 대한 의심이나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소련의 모습은 주인공 레오가 근무하는 MGB본부인 루비안카와 같다. 신분증이 발급된 사람 이외에는 언제 어떻게 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루비안카. 그 곳은 다른 생각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소련 그 자체이며 결코 열리지 않을 닫힌 문이다. 

조심스럽고 불안하게, 언제 어디서 잡혀갈지 모를 공포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며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하는 레오가 심적변화를 일으키는 부분은 그래서 더 극적이고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를테면 영웅의 탄생을 기원하는 마음이랄까. 그것은 영화 <이퀼리브리엄>에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던 존 프레스톤(그는 약으로 인해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이 처음으로 약을 버리며 체제에 반항하던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느낌과 같았던 듯 하다. 정말 영화를 보는 것처럼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심장이 팔딱팔딱 뛰는 기분이 매우 만족스럽다. 

1930년대 우크라이나의 대기근 시대를 배경으로 시작되고 구 소련의 실제 연쇄 살인범을 모델로 한 이 작품은 살인범을 추적해가는 과정도 재미있지만 소련의 공포정치 아래에서 건조하게 맺어졌던 레오와 그의 아내 라이사의 관계가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도 크다. 사랑조차 생각해야 알 수 있고, 권력에 대한 공포로 청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관계가 온갖 모험을 겪으면서 진정한 사랑의 감정으로 충만해가는 모습은 마치 사건이 해결된 뒤 변화가 일어날 소련의 모습을 예고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외에 그들을 도와주는 많은 사람들과 숙명적인 라이벌 관계 등 긴장과 재미를 조성하는 모든 요소가 알맞게 버무려져 있다. 

책을 읽어나가면 작품의 제목인 [차일드 44]가 무슨 뜻인지 곧 깨닫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몸을 부르르.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는 이 작품이 계속 눈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 느낌은 눈이 가진 포근함이 아니라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차가움과 슬픔, 날카로움이었다.  범인에 대해서도 연민을 품을 수밖에 없게 하는 외로움. 온갖 감정을 느끼게 하고 말 그대로 손에서 절대 뗄 수 없게 만든 이 작품, 영화도 기대된다. <이퀼리브리엄>에서 주연을 맡았던 크리스찬 베일이 레오 역을 연기한다면 은근 잘 어울릴 듯도 한데. 이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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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야 가의 전설 - 기담 수집가의 환상 노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5
츠하라 야스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귀신이 등장하는 무서운 영화나 책을 싫어하면서도 이상하게 일본 요괴 이야기나 기담에 끌리는 이유는 뭘까. 꽤 오래전부터 궁금하게 생각해 왔지만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주로 원한이나 복수 등으로 표현되는 한국의 정서와는 달리, 무작정 나타나 사람을 위협하고 해를 끼치는 서양과도 달리, 일본의 이야기에는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어쩌면 그렇지 않은 이야기는 일부러 피했을지도;;)  무서운 이야기지만 무서움만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으스스한 본래의 목적을 잊은 것도 아닌 적당한 분위기의 신비하고 괴이한 녀석들인 것이다.

 

일본 요괴나 기담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 [샤바케] 나 만화 [백귀야행] 을 보면 기담이라는 것이 꼭 먼 세상의 이야기인 것만은 아닌 듯 하다. 우리 생활 속에 녹아들어있지만 정작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것들, 딱히 무서워해야 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들이 늘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꿈, 이승과 저승, 실제와 허상을 명백히 구분할 수 없는 그런 환상의 세계를 쓰하라 야스미는 코믹하면서도 으스스하게,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섭지만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은 사루와타리(20대 중에 불운한 일을 여러 번 당했다고는 하나 서른이 넘은 지금도 일정한 직업이 없는 놈팡이에 불과한) 와 백작 (물론 별명으로 생업이 괴기소설 집필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으로 자동차의 기억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상한 터널에서 우연히 만난 후 같이 두부를 먹으러 다니며 기이한 이야기를 취재하는 형식을 띄고 있다.

 

똑같은 얼굴들로 가득한 집과 고양이 등을 한 여자, 벌레를 먹는 남자, 쥐와 게에 관한 이야기, 결계와 쌍둥이에 대한 터부와 관습, 사루와타리가 힘든 일을 겪은 후로 경험하게 되는 환상과 고뇌의 이야기들이 매번 색다른 분위기로 다가온다. 이 작품들은 평범한 일상 중의 독특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괴기만화가 생각나게도 하며, 만화 [백귀야행]을 연상시키도 하는 등 단정지을 수 없는 매력들로 가득하다.

 

매력은 이야기들 뿐만 아니라 캐릭터에서도 뿜어져 나오는데, 괴기소설 작가인 백작과 되는대로 살아가는 듯한 사루와타리 콤비. 두부를 먹으며 맛있다고 서로 눈물을 흘리고 취재동행을 부탁하며 곤약으로 사루와타리를 구슬리는 백작의 모습은 이것이 기담집인가 만담집인가 헛갈릴 정도로 코믹하다. 중간중간에 숨어있다가 얼굴을 내미는 익살적인 문장들도 무척 마음에 든다. 독특한 것은 이야기들의 주인공이 백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어느 순간 사루와타리가 백작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백작이 사루와타리에게 건넨 말로도 알 수 있다. "사루와타리 씨는 이 세상 것이 아닌 걸 불러내곤 하니까요. 늘 그렇습니다."(p260)

 

추리소설의 창시자이자 환상소설의 대가인 에드거 앨런 포에 종종 비견되곤 한다는 쓰하라 야스미는 <아시야 가의 몰락>과 <송장벌레>로 포를 향한 자신의 경외심을 잘 보여주었다고 한다. <어셔 가의 몰락>과 <황금벌레>의 오마주이든 뭐든,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모두 무척 만족스러웠다. 독자인 나로서는 그것이면 충분하다. 사루와타리와 백작의 모험이 [피카르디의 장미]라는 작품에서 이어진다는데 으흠, 출간되어 주지 않으면 당연히 곤란하다고 엄포를 놓고 싶다. 이것저것 길게 말했지만 전하고 싶은 것은 단 하나. 재미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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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위원회 모중석 스릴러 클럽 20
그렉 허위츠 지음, 김진석 옮김 / 비채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 범인이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풀려났다. 나에게는 그를 처단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을 잃은 사람의 슬픔과 분노, 법의 이름으로 심판받지 못한 범인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 이나 수많은 드라마를 통해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소재다. 하지만 늘 그렇듯 해답은 없는 듯 하다. 직접적으로 복수하지 않는 한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놓여진 선택지는, 범인을 용서하거나 가슴 속에 그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담은 채 죽은 이를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 어떤 선택지든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겠지만.
 
일곱 번째 맞은 딸의 생일날, 사랑스런 딸 지니의 시체를  확인해야 했던 팀 랙클리의 슬픔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총 735페이지에 이르며 두께가 3.5cm는 되어 보이는 이 무거운 이야기는 크게 3부로 나눌 수 있다. 딸 지니의 죽음으로 비롯된 팀과 아내 드레이의 고통과 괴로움이 1부, 증거가 모두 갖춰져있고 유죄임이 분명한데도 풀려난 범인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하는 모임 '위원회'와의 접촉과 그 안에서의 팀의 활동이 2부, 지니의 죽음과 관련된 비밀을 쥐고 있는 위원회와 팀의 대립, 사건 해결이 마지막 3부. 그리고 이야기의 줄기는 다시 위원회의 활동과 지니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로 나누어진다.
 
삶과 죽음, 법과 정의, 그 안에 내포된 인간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어쨌거나 우리에게는 '법'이라는 것이 있고 질서있는 생활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 더 크게 인간의 마음을 할퀴고 지나가는 때도 있다. 이야기 속에서처럼 가해자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풀려났을 때 상처받은 유가족의 마음은 어디서 구원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가해자가 벌을 받아도, 그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남겨진 상처는 아물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기억은 생이 끝날 때까지 그들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텐데.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그것이 위안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우리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 없는 일이다. 결국 우리는 '주위 사람'이니까. 답은 당사자만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팀이 자신만의 답을 발견한 것처럼.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 복수한다고 해서 슬픔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정의라는 것은 그게 뭐든 간에 우리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 (p558)
 
보통의 스릴러가 사건-복수-해결의 구성을 보이는 데 반해, 이 작품은 팀과 드레이의 슬픔과 갈등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아이를 잃은 부모가 어떻게 고통받는지, 그 고통 속에서 서로는 커녕 자신조차 껴안을 수도 없을만큼 얼마나 슬퍼하는지, 그 상실과 괴로움의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이 때문에 책의 진행이 더디게 느껴질 정도지만 그런 묘사가 오히려 고뇌에 찬 팀의 행보에 안타까움을 더하는 듯 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 이 비명과 절규, 고통과 분노로 채워져 있다면 [살인위원회]는 그에 비해 좀 더 이성적이고 냉철하다. 물론 팀과 드레이의 고통이 비춰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시야를 넓혀 사회제도와 범죄, 잘못된 법적 판단, 죄를 지은 자들의 개심 가능성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할까. 제목과 핏빛 표지로 자극적으로 다가오지만 절대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는 스릴러.
 


     
   
"속죄라고요. 젠장. 난 지금까지 내가 그런 걸 시도하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그래서?"
"아무튼 그건 좋아요. 그렇지만 아저씨 역시 연구를 좀 더 하는 게 낫겠어요. 속죄라는 것 말이에요. 왜냐하면 아저씨가 나를 직접 본 뒤에 "이런, 이 녀석은 내가 확실히 생각하던 것만큼 나쁜 놈은 아니군. 나와 별로 다르지 않잖아'하고 생각하셨다면 아저씨는 조금도 배운 게 없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속죄라는 건 완성할 수 있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죠. 그리고 전 속죄라는 게 뭔지 몰라요. 단지 내가 이 길을 계속 걸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렇게 해온 거라고요." -p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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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 도둑 - 김주영 상상우화집
김주영 지음, 박상훈 그림 / 비채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저는 여전히. 동화책을 좋아합니다. 글쎄요. 어디가 어떻게 좋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또 그냥 좋아! 라고 밖에 할 말이 없어요. 저는 좀 그런 편이에요. 무작정 좋고, 무작정 마음에 들어하죠. 누가 '넌 그 사람이 왜 좋아? 넌 그게 왜 좋아?'라고 물으면 '그게 꼭 이유가 필요해?' 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건 이를테면 누가 손을 확 끌어당기는 느낌과 비슷해요. 마음이 그렇게 이끌리는걸요. 그렇게 좋아하게 된 것들의 특징은 거의 포근하고 따뜻하다는 데 있어요. 아이 참, 잔혹동화는 제외하구요. 제가 좋아하는 동화나 고전들은 뭐랄까, 그리움 같은 것이 마음 깊은 곳에서 넘실넘실 타고 올라오게 만들어요. 어쩌면 그런 느낌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해요. 히. 

동화나 우화, 그림이 있는 책을 좋아하게 된 건 가끔 답답함을 느끼기도 해서일 거에요. 글자들이 빼곡한 책들은, 물론 예전에도 지금도 그런 책들이 싫다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여유를 갖지 못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숨이 가빠져 오기도 하거든요. 그림이 있고 여백의 미가 살아있는 책의 맛을 진정으로 알게 되는 건 이렇게 나이를 먹고나서야 가능해지나 봅니다. 

혹시 [똥친막대기] 읽으셨어요? 전 [달나라 도둑]을 읽기 전에 작가의 그 책을 먼저 읽었습니다. 나뭇가지가 어떻게 똥친막대기가 되었는지,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나기 위해 어떤 여정을 거치는지를 아기자기하게 그려낸 이야기랍니다. 노란빛이 섞인 표지 때문인지 희망적인 느낌도 들어요. 그런데 그런 기분으로 이 [달나라 도둑]을 펼친다면 아마 '어라' 하실지도 모르겠어요. 

[달나라 도둑]은 우화집으로 <길>, <소년과 소녀>, <이야기>, <인생>, <꿈> 이라는 다섯 가지 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챕터 속에 수많은 이야기가 펼쳐져 있습니다. 총 62가지 이야기이지만 책의 두께는 그리 두껍지 않으니 아마 또 한 번 '어라' 하실지도. 저는 책을 읽을 때 ' 이 작가는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를 생각하곤 해요. 그건 추리소설이든 단순히 오락을 위해 읽는 책이든 변함이 없죠.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으로 내놓은 게 아닐까-라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건 이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게 되니 어쩐지 책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물론 뭔가를 느끼게 하고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이 책을 읽는 최고의 방법은요, 그냥 작가의 상상력에 몸을 맡기는 거에요. 우리가 생각할 수 없었던 이야기, 그럴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온갖 이야기 속으로 두둥실 떠서 슉슉 맛보고 다니는 겁니다. 

가끔은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허황된 이야기,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툴툴대기보다 '상상력'이라는 즐거운 세상 속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는 작가의 손길을 느낀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물론 우화집인만큼 무언가를 배운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배우고 느낀 것이 없으면 어때요~이 책과 함께 나는 상상력의 바다를 마음껏 헤엄쳤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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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의 싸움 - 세상에서 나를 지켜주는 위로의 심리학
앨버트 엘리스 지음, 정경주 옮김 / 북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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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는 잡생각이 많은 사람이랍니다. 일어날 가능성이 어쩌면 10%도 되지 않을 상황을 설정해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는 형태로요. 그 중에는 좋은 공상들도 있지만 들여다보면 좋지 않은 생각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그럴 땐 이렇게 하면 될까? 저렇게 하면 될까?' 를 생각하면서 저를 마구 괴롭히는 거지요. 그것은 좋게 말하면 위험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나쁜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는 '그래, 그럴 줄 알았어'라며 납득하게 되어버리는 근거가 될 때도 있어요.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고, 순순히 포기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거지요.  

저란 사람은, 강해지려고 발버둥을 치는, 약한 사람이에요. 겁도 많고요. 스스로에게 '난 강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몇 번은 고민해야 하고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한 후에야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생각과 말이 좀 느린 편이랍니다. 경험으로 그런 일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무작정 어떤 일을 밀고 나가기에는 불안하다고 할까요. 그렇습니다. 불안이에요. 실패에 대한 불안, 다른 사람의 비난을 받을까 봐 걱정하는 불안, 상처에 대한 불안, 내 삶이 불행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요. 아마 여러분도 이런 불안을 적어도 한 번쯤은 겪어보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고보면, 우리는 늘 불안을 안고 살아왔던 걸까요. 

[불안과의 싸움]은 '불안' 중에서도 '부정적인 불안', 즉 우리 삶을 결코 경쾌하고 밝게 이끌어가지 못할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살면서 어느 정도의 불안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불안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성공으로 이끌며, 도덕적 가치관을 견고하게 다질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들고, 우리 삶을 어둡게만 바라보게 하며, 폐쇄적인 생활을 하도록 하는 불안은 우리가 잘 다스려야 할 숙제일 거에요. 

이 책의 저자 앨버트 엘리스는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합리적 정서-행동 치료 REBT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역경과 결과 사이에는 우울과 불안에 훨씬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생각이나 신념이 있기 때문인데 어떤 신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거지요. 역경에 관한 신념, 즉 역경을 만났을 때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종류가 달라진다는 겁니다. 부정적 신념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해로운 부정적 정서를 갖게 되고, 또 거기에 깊이 빠져들면 앞으로 나아가기가 무척 힘이 들겠죠. 저자는 이 REBT를 주축으로 불안을 이겨내는 충고를 계속합니다. 그가 치료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실례가 같이 실려있으니 이해하는 데 아마 큰 도움이 될 거에요. 저는 교육학 시간에 배운 내용들이어서 조금 더 쉽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답니다. 

이 책을 집어들었을 때는 제 마음이 아주 불안한 시기였어요. 제가 실수를 했거든요. 저는 그다지 큰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주위 사람들의 격한(?) 반응에 깜짝 놀랐고, 급기야는 살짝 우울해져서 내가 무사히 여름을 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까지 이르렀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책 내용이 쏙쏙 들어오더라구요~물론 책을 읽고 실행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어느 때는 그저 이런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또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들여다 보는 데도 도움이 되었답니다. 제 일이 일인지라 '그 행위를 한 사람을 그대로 판단하지 말고, 그 행위만을 판단하라'라는 말은 조금 생각해 볼만 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불안'이란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거에요. 그렇지만 이 몸의 주인은 나, 이 감정의 주인은 나. 그런 생각으로 불안을 다스리며 힘차게 살아갈 수는 있을 거에요. 우리 모두 '불안과의 싸움'에서 승자가 되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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