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야 가의 전설 - 기담 수집가의 환상 노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5
츠하라 야스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귀신이 등장하는 무서운 영화나 책을 싫어하면서도 이상하게 일본 요괴 이야기나 기담에 끌리는 이유는 뭘까. 꽤 오래전부터 궁금하게 생각해 왔지만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주로 원한이나 복수 등으로 표현되는 한국의 정서와는 달리, 무작정 나타나 사람을 위협하고 해를 끼치는 서양과도 달리, 일본의 이야기에는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어쩌면 그렇지 않은 이야기는 일부러 피했을지도;;)  무서운 이야기지만 무서움만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으스스한 본래의 목적을 잊은 것도 아닌 적당한 분위기의 신비하고 괴이한 녀석들인 것이다.

 

일본 요괴나 기담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 [샤바케] 나 만화 [백귀야행] 을 보면 기담이라는 것이 꼭 먼 세상의 이야기인 것만은 아닌 듯 하다. 우리 생활 속에 녹아들어있지만 정작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것들, 딱히 무서워해야 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들이 늘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꿈, 이승과 저승, 실제와 허상을 명백히 구분할 수 없는 그런 환상의 세계를 쓰하라 야스미는 코믹하면서도 으스스하게,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섭지만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은 사루와타리(20대 중에 불운한 일을 여러 번 당했다고는 하나 서른이 넘은 지금도 일정한 직업이 없는 놈팡이에 불과한) 와 백작 (물론 별명으로 생업이 괴기소설 집필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으로 자동차의 기억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상한 터널에서 우연히 만난 후 같이 두부를 먹으러 다니며 기이한 이야기를 취재하는 형식을 띄고 있다.

 

똑같은 얼굴들로 가득한 집과 고양이 등을 한 여자, 벌레를 먹는 남자, 쥐와 게에 관한 이야기, 결계와 쌍둥이에 대한 터부와 관습, 사루와타리가 힘든 일을 겪은 후로 경험하게 되는 환상과 고뇌의 이야기들이 매번 색다른 분위기로 다가온다. 이 작품들은 평범한 일상 중의 독특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괴기만화가 생각나게도 하며, 만화 [백귀야행]을 연상시키도 하는 등 단정지을 수 없는 매력들로 가득하다.

 

매력은 이야기들 뿐만 아니라 캐릭터에서도 뿜어져 나오는데, 괴기소설 작가인 백작과 되는대로 살아가는 듯한 사루와타리 콤비. 두부를 먹으며 맛있다고 서로 눈물을 흘리고 취재동행을 부탁하며 곤약으로 사루와타리를 구슬리는 백작의 모습은 이것이 기담집인가 만담집인가 헛갈릴 정도로 코믹하다. 중간중간에 숨어있다가 얼굴을 내미는 익살적인 문장들도 무척 마음에 든다. 독특한 것은 이야기들의 주인공이 백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어느 순간 사루와타리가 백작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백작이 사루와타리에게 건넨 말로도 알 수 있다. "사루와타리 씨는 이 세상 것이 아닌 걸 불러내곤 하니까요. 늘 그렇습니다."(p260)

 

추리소설의 창시자이자 환상소설의 대가인 에드거 앨런 포에 종종 비견되곤 한다는 쓰하라 야스미는 <아시야 가의 몰락>과 <송장벌레>로 포를 향한 자신의 경외심을 잘 보여주었다고 한다. <어셔 가의 몰락>과 <황금벌레>의 오마주이든 뭐든,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모두 무척 만족스러웠다. 독자인 나로서는 그것이면 충분하다. 사루와타리와 백작의 모험이 [피카르디의 장미]라는 작품에서 이어진다는데 으흠, 출간되어 주지 않으면 당연히 곤란하다고 엄포를 놓고 싶다. 이것저것 길게 말했지만 전하고 싶은 것은 단 하나. 재미있다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