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로 첫선을 보인 사와자키 탐정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다. 제 102회 나오키상을 받았고 같은 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의 랭킹 1위를 차지한 작품이라고 하니, 작가 하라 료와 주인공 사와자키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오키상을 수상한 이듬해에 번역본이 출간되었지만 그 후로 오랫동안 절판 상태였다고 한다. 나도 인터넷을 통해 [내가 죽인 소녀] 를 찾는 독자들을 보고 '대체 그 책이 뭐길래' 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만약 사와자키 탐정이 내뿜는 매력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나도 그 독자들 중의 한 명이 되어 있었을지도.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를 읽고 얼른, 재빨리, 냉큼 이 책이 나와주기를 기다리고 있던 터라 반가운 마음이었지만 섬뜩하면서도 매력적인 표지에 더 열광하고 말았다. 

이야기는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다. 남자인 듯 여자인 듯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사와자키를 인도한 곳은 딸 마카베 사야카를 유괴당한 마카베 가족의 집. 그 곳에서 유괴범의 공범으로 잡힌 사와자키는 범인의 명령으로 몸값을 전달하러 나가지만 역시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명의 남자에게 습격당한 채 정신을 잃는다. 깨어난 그 가 얼마 후 발견한 것은 마카베 사야카의 처참한 시신. 습격당해 정신을 잃은 사이에 소녀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성실한 죄책감을 갖게 된 사와자키는 책임감을 갖고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에서 등장한 니리고시 경부도 함께. (비중은 적다)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가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로서 사와자키라는 인물과 주변사람들 자체의 분위기, 내면, 행동 등에 치중했다면 [내가 죽인 소녀] 는 그보다는 사건 자체에 무게를 실은 듯 하다. 고독함을 솔솔 풍겼던 [그리고...] 에서와는 달리 사와자키는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의 탐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이올린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인 한 소녀의 납치와 죽음, 범인은 누구인가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이 [그리고...] 에서보다 한층 심도있게 그려진 반면 인물에 대한 매력은 살짝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에서 보여주었던 사와자키 탐정과 니시고리 경부, 그리고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인연을 맺게 된 하시즈메의 삼각관계(?) 를 은근 즐겼던 나로서는 ( 상상하시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하시즈메와 니시고리 경부의 등장이 너무 적었다는 점도 불만이라면 불만이다. 

1989년에 쓰여진 작품이라 '웬 옛날 이야기야?'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충격적 결말'이라고 하기에는 마지막이 살짝 추측도 가능하기에 나는 [그리고...] 보다는 약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등을 제외하고 이 작품이 지닌 장점, 사건에 무게가 실렸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또 그리 재미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위기는 끝나지 않고, 소녀는 죽음을 맞았지만 사와자키의 사건해결 능력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밝혀진 진실이 가슴 아플 뿐. 

이렇게 된 이상 사와자키 시리즈의 1기 완결편인 [안녕 긴 잠이여] 를 기다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설마 1기 완결인데 유령처럼 슥 나타나던 와타나베도 이대로 사라지진 않겠지. 부디 [안녕 긴 잠이여] 에서는 니시고리 경부와 하시즈메, 사와자키의 재미난 관계가 더 많이 그려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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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파이어 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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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읽고 나서 말을 어떻게 풀어야 할 지 가닥이 잡히지 않는 책이 있다. 너무 재미가 없어서 요걸 어떻게 돌려말해야 잘 했다고 할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책도 있지만 그럴 때는 생각만 할 뿐 대부분 솔직하게 쓰기 때문에 고민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재미있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침대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게 만드는 책이나, 혹은 이번 경우처럼 읽고 나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책이다. '요넘이 나쁜넘이야!'라고 콕 집어 비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미 책의 페이지수는 다했지만 내 마음에서는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는 그런 책. 

요즘들어 자꾸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이나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 그렉 허위츠의 [살인위원회] 같은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당하게 평가를 받지 않고 풀려난 범인들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과 심판을 그린 책들인데, 번역본들이니 딱히 요즘 시기를 노려서 작가가 글을 썼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법과 심판, 올바른 정의의 실현이란 무엇인가, 법 집행에 헛점은 없는가를 다루는 책들이 끊임없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법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또한 법이 공정하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보다 법으로 인해 억울한 경우를 당한 사례도 많아진다는 말도. 그리고  점점 잔인하고 무서워지는 현실 세상의 투영이기도 할 것이다. 

오랜만에 접한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이다.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괴이한 이야기와 초능력을 소재로 한 이야기, [모방범]과 [낙원]처럼 사회파 미스터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흥미로운 작품을 발표하는 그녀가 이번에는 염력 방화 능력과 사회문제를 결합시켜 머리는 복잡하게, 가슴은 먹먹하게 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미리 말해두자면 재미와 함께 작품성도 뛰어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영역 안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생각한다. 가족, 친구, 연인 정도 될까. 영역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가끔 무서울 정도로 무관심해지지만 영역 안에 있는 그들에게 털끝만큼이라도 상처가 생기면 안타깝고 분해서 어쩔 줄 몰라할 때도 있다. 나 자신도 만약 우리 가족이 밖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당장 달려가서 한 두마디 해 줄 결심(?)은 있으니까. 하지만 부당한 대우 정도가 아니라 억울하게 상처를 입거나 잔인한 범죄의 희생양이 된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런 범인이 미성년자라는 혹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풀려난다면. 게다가 죄를 뉘우치기는 커녕 웃고 떠들며 자신이 만들어낸 희생자들을 잊고 살아간다면. 

그들을 마주대할 때의 갈 곳 없는 분노를 풀어주는 사람이 바로 아오키 준코다. 어떤 도구도 필요없이 불을 낼 수 있는 염력 방화 능력을 가진 그녀는 자신은 장전된 총이라며 타고난 능력을 범죄자 처벌에 사용한다. 준코의 반대쪽에는 이시즈 치카코라는 경찰이 있다. 그녀는 '돌아서 가더라도 보행자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목적지로 가겠다'는 확고한 신념의 소유자다. 준코를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과연 이래도 될까' 라는 마음이 고개를 든다. 사회와 우리 마음의 양면성을 미미여사는 준코와 치카코 두 여성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에 해답은 없으며 뻔뻔스러운 범죄자들을 제외하고 이 책에서 나쁜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상처받고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며 처절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뿐. 결말부분은 납득할만한 것이었음에도 마음이 아프다. 

미미 여사는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이 작품을 통해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모방범]보다도 훨씬 깊이 있고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물과 인물이 깔끔하게 연결되고 슬픈 사건이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역시 미미여사!'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만감이 교차하지만 답을 낼 수 없다는 생각, 명확한 답이 없다는 생각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다만, 상처를 받는 사람이 적어지기를, 사람이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이 가슴 깊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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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파이어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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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서 말을 어떻게 풀어야 할 지 가닥이 잡히지 않는 책이 있다. 너무 재미가 없어서 요걸 어떻게 돌려말해야 잘 했다고 할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책도 있지만 그럴 때는 생각만 할 뿐 대부분 솔직하게 쓰기 때문에 고민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재미있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침대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게 만드는 책이나, 혹은 이번 경우처럼 읽고 나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책이다. '요넘이 나쁜넘이야!'라고 콕 집어 비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미 책의 페이지수는 다했지만 내 마음에서는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는 그런 책. 

요즘들어 자꾸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이나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 그렉 허위츠의 [살인위원회] 같은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당하게 평가를 받지 않고 풀려난 범인들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과 심판을 그린 책들인데, 번역본들이니 딱히 요즘 시기를 노려서 작가가 글을 썼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법과 심판, 올바른 정의의 실현이란 무엇인가, 법 집행에 헛점은 없는가를 다루는 책들이 끊임없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법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또한 법이 공정하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보다 법으로 인해 억울한 경우를 당한 사례도 많아진다는 말도. 그리고  점점 잔인하고 무서워지는 현실 세상의 투영이기도 할 것이다. 

오랜만에 접한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이다.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괴이한 이야기와 초능력을 소재로 한 이야기, [모방범]과 [낙원]처럼 사회파 미스터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흥미로운 작품을 발표하는 그녀가 이번에는 염력 방화 능력과 사회문제를 결합시켜 머리는 복잡하게, 가슴은 먹먹하게 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미리 말해두자면 재미와 함께 작품성도 뛰어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영역 안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생각한다. 가족, 친구, 연인 정도 될까. 영역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가끔 무서울 정도로 무관심해지지만 영역 안에 있는 그들에게 털끝만큼이라도 상처가 생기면 안타깝고 분해서 어쩔 줄 몰라할 때도 있다. 나 자신도 만약 우리 가족이 밖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당장 달려가서 한 두마디 해 줄 결심(?)은 있으니까. 하지만 부당한 대우 정도가 아니라 억울하게 상처를 입거나 잔인한 범죄의 희생양이 된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런 범인이 미성년자라는 혹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풀려난다면. 게다가 죄를 뉘우치기는 커녕 웃고 떠들며 자신이 만들어낸 희생자들을 잊고 살아간다면. 

그들을 마주대할 때의 갈 곳 없는 분노를 풀어주는 사람이 바로 아오키 준코다. 어떤 도구도 필요없이 불을 낼 수 있는 염력 방화 능력을 가진 그녀는 자신은 장전된 총이라며 타고난 능력을 범죄자 처벌에 사용한다. 준코의 반대쪽에는 이시즈 치카코라는 경찰이 있다. 그녀는 '돌아서 가더라도 보행자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목적지로 가겠다'는 확고한 신념의 소유자다. 준코를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과연 이래도 될까' 라는 마음이 고개를 든다. 사회와 우리 마음의 양면성을 미미여사는 준코와 치카코 두 여성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에 해답은 없으며 뻔뻔스러운 범죄자들을 제외하고 이 책에서 나쁜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상처받고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며 처절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뿐. 결말부분은 납득할만한 것이었음에도 마음이 아프다. 

미미 여사는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이 작품을 통해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모방범]보다도 훨씬 깊이 있고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물과 인물이 깔끔하게 연결되고 슬픈 사건이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역시 미미여사!'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만감이 교차하지만 답을 낼 수 없다는 생각, 명확한 답이 없다는 생각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다만, 상처를 받는 사람이 적어지기를, 사람이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이 가슴 깊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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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퇴마사 펠릭스 캐스터 1
마이크 캐리 지음, 김양희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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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이 책을 펼치면 잔잔한 음악이 들린다. 그 음악은 책의 중반까지 계속되다가 중후반부로 들어서면 비트가 강한 빠른 음악으로 바뀐다. 음악에 대해서는 듣기 좋다, 별로다로 판단하는 터라 잘은 모르지만 아무튼 이 책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그렇다. 주인공 캐스터가 틴 휘슬로 유령을 퇴치해서 그런가. 

이 책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고 싶다면 우선 캐스터에 대해 알아두어야 한다. 케밥집 위에서 '캐스터 유령 퇴치소'를 운영하며 빚에 허덕이고 얄미운 사람을 유령의 존재로 살짝 위협하는 그는 이른바 퇴마사다. 유령을 볼 줄 알고 그들을 다른 세상으로 인도하는(혹은 쫓아내는) 능력은 그가 여섯 살 때 나타났다. 그의 누이 케이티가 트럭에 치여 죽은 후 유령으로 나타나 그의 침대를 함께 쓰는 것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캐스터가 케이티에게 욕지거리 노래를 퍼부어서 쫓아 보낸 후부터 그의 운명이 결정되었다고 할까. 

캐스터는 그 분야에 정통했던 나머지 호기심 많은 그의 친구 라피가 데몬을 불러내고 그로 인해 요양원에 갖히게 되는 데 살짝 일조했다. 물론 본의는 아니었으나 자신의 탓이라 여기며 죄책감을 느끼고 있지만. 글쎄. 내가 보기에는 괴로워하는 한편 그 사건에 이제는 익숙해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캐스터에게 보닝턴 기록보존소 소장으로부터 여자 유령을 퇴치해달라는 의뢰전화가 걸려오고, 방세를 갚을 능력도 없었던 캐스터는 자의반, 타의반(타의가 더 컸으나)으로 일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등장하는 루가루(늑대인간)와 좀비와 서큐버스(수면 중인 남성과 성교한다는 마녀) 줄리엣과 벌이는 밤의 혈투!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한 편의 환상이야기는, 그러나 약간 느리다. 나에게만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지만 1/3 정도까지는 '대체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무슨 등장인물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거야, 이 사건과 저 사건 그리고 이 사람들과 저 사람들은 대체 어떤 연관이 있다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언급했던 잔잔한 음악은 바로 여기까지다. 그 부분만 넘기면 이야기는 급변, 사건과 사건이 이어지고 인물과 인물이 연결되면서 원숭이가 뜀뛰기를 하듯 이야기가 통통 튄다. 코트를 휘날리며 멋지게 싸워야 할 캐스터지만 때로는 얻어터지고 때로는 서큐버스의 먹이가 될 뻔 하는 그는 표지의 쿨한 이미지와는 달리 약간 맹해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또 그런 점을 미워할 수 없다고 할까. 

이 책의 다른 매력은 온갖 종류의 이물(異物)이다. 인간의 혼령이 짐승의 몸으로 들어가 이루어진 루가루, 좀비, 데몬과 하나의 영혼으로 살아가는 라피, 아름다워서 거부하기 힘들지만 죽음으로 이끄는 서큐버스 등 이 책이 만들어내는 다른 세계의 모습은 무척 흥미롭다. 또한 유령보다 더 잔인하고 무서운 인간들까지 등장하고 그 인간들을 캐스터가 (물론 혼자 하지는 못한다) 말끔히 청소해주시니 절정 부분 또한 그 나름대로 만족스럽다. 게다가 다음 편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결말이란! 

캐스터는 유령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일을 하지만 아직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았다. 그 부분은 아마도 이 시리즈가 계속되는 한 그의 숙제로 남을 듯. 문득 작가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책날개를 펼쳤다. 오옷! 깊숙히 푹 들어간 두 눈에, 짧은 회색 머리를 한 그의 포스가 강렬하다. 으음. 이런 책을 쓸만해. 괜히 인정하게 된다. 마이크 아저씨, 2권으로 빨리 돌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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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거짓말 모중석 스릴러 클럽 14
리사 엉거 지음, 이영아 옮김 / 비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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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의 삶은 무수히 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오늘은 이 길을 걸을까 저 길을 걸을까, 점심은 늘 가던 식당에서 해결할까 새로운 맛을 발견해볼까, 이 일을 지금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 것인가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인생을 결정지을만한 일부터 사소한 일까지 모든 것이 선택의 연속이다. 하지만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작은 선택이 뒤의 큰 그림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의식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단 30초의 시간이 우리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미리 알 수 있다면 그래도 우리는 그 때 했던 그 결정을 아무 거리낌 없이 다시 '선택'할 수 있을까.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공포는 사실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영화나 책에서야 주인공들의 엄청난 모험을 그리고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모진 고통을 멋지게 견뎌내는지 화려하게 묘사하지만, 평범한 나같은 사람에게 공포는 익숙했던 것이 어느 날 낯설어지는 것,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가슴이 서늘할 정도의 다른 면을 보게 되는 것이다. 늘 다녔던 길이 갑자기 미로처럼 느껴져서 헤매게 되는 것 같은 느낌. 그 미로는 다름 아닌 타인의 마음이다. 

리들리 존스의 공포도 그런 것이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 그녀의 삶은 뿌리를 잃는다. 자신의 부모라 생각했던 사람, 한 때였지만 연인이라 믿었던 사람이 사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짓을 하면서 살아왔는지 알게 되면서 흔들리는 세상. 단 몇 초의 선택으로 그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고 그녀를 연결고리로 하는 진실이 그녀를 압박하면서 리들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채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이다. 그리고 리들리는 이제 진실을 파헤치고 고통을 감내할 것인지, 자신을 둘러싼 아름다운 거짓말을 묵인한 채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상에서 살아갈 것인지 다시 선택해야 한다. 

그 동안 읽은 스릴러는 모두 힘세고 건장한 남자들이 주인공이었다. 때로는 피가 튀는 끔찍한 묘사에 얼굴을 찡그린 적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장면은 없다. 대신 한 여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나선 여정(비록 시작은 타인에 의한 것이었지만) 에서 원치 않은 진실을 알게 되는 와중, 적인지 아군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이들에게  쫓기게 되는 긴박감이 작품을 가득 채운다.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묘사와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를 느끼게 해주는 설명, 범인에 관한 추측을 자꾸 뒤집게 만드는 전개 또한 인상적이다. 하지만 '어쩌면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할 작품일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여자라면 수긍할만한 리들리의 마음이 남자에게는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할까. 

몇 가지 흠이 있다면 사건의 마무리가 약간 흐지부지 하다는 점이다. 작가는 여운을 남기고 싶었거나 궁금한 점 한 두 가지는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점이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는 작가가 완벽하게 수수께끼를 설명해주는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 흐름상 어색한 번역이 간혹 눈에 띈다. 예를 들면 '거의 2년 전에 맥스 삼촌이 죽지 않았다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p26)' 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는 맥스 삼촌이 죽었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은 살만하다는 뜻이 아닌가.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맥스 삼촌이 죽지 않았다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는 문장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받침 하나 빠졌을 뿐이지만 그 조그만 차이가 내용 이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이런 점들만 제외한다면 흡입력도 있고 작가의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꽤 재미도 있다. 모중석과 비채의 인터뷰 장면을 보니 리들리를 주인공으로 한 다른 작품도 있는 것 같은데 그 작품도 기대된다. (물론 비채에서 번역해주리라 믿어요! +_+ ) 무엇보다 리들리의 멋진 연인,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강하게 자신을 지켜온 제이크씨를 다시 만나고 싶으니까.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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