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파이어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고 나서 말을 어떻게 풀어야 할 지 가닥이 잡히지 않는 책이 있다. 너무 재미가 없어서 요걸 어떻게 돌려말해야 잘 했다고 할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책도 있지만 그럴 때는 생각만 할 뿐 대부분 솔직하게 쓰기 때문에 고민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재미있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침대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게 만드는 책이나, 혹은 이번 경우처럼 읽고 나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책이다. '요넘이 나쁜넘이야!'라고 콕 집어 비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미 책의 페이지수는 다했지만 내 마음에서는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는 그런 책. 

요즘들어 자꾸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이나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 그렉 허위츠의 [살인위원회] 같은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당하게 평가를 받지 않고 풀려난 범인들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과 심판을 그린 책들인데, 번역본들이니 딱히 요즘 시기를 노려서 작가가 글을 썼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법과 심판, 올바른 정의의 실현이란 무엇인가, 법 집행에 헛점은 없는가를 다루는 책들이 끊임없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법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또한 법이 공정하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보다 법으로 인해 억울한 경우를 당한 사례도 많아진다는 말도. 그리고  점점 잔인하고 무서워지는 현실 세상의 투영이기도 할 것이다. 

오랜만에 접한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이다.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괴이한 이야기와 초능력을 소재로 한 이야기, [모방범]과 [낙원]처럼 사회파 미스터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흥미로운 작품을 발표하는 그녀가 이번에는 염력 방화 능력과 사회문제를 결합시켜 머리는 복잡하게, 가슴은 먹먹하게 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미리 말해두자면 재미와 함께 작품성도 뛰어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영역 안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생각한다. 가족, 친구, 연인 정도 될까. 영역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가끔 무서울 정도로 무관심해지지만 영역 안에 있는 그들에게 털끝만큼이라도 상처가 생기면 안타깝고 분해서 어쩔 줄 몰라할 때도 있다. 나 자신도 만약 우리 가족이 밖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당장 달려가서 한 두마디 해 줄 결심(?)은 있으니까. 하지만 부당한 대우 정도가 아니라 억울하게 상처를 입거나 잔인한 범죄의 희생양이 된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런 범인이 미성년자라는 혹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풀려난다면. 게다가 죄를 뉘우치기는 커녕 웃고 떠들며 자신이 만들어낸 희생자들을 잊고 살아간다면. 

그들을 마주대할 때의 갈 곳 없는 분노를 풀어주는 사람이 바로 아오키 준코다. 어떤 도구도 필요없이 불을 낼 수 있는 염력 방화 능력을 가진 그녀는 자신은 장전된 총이라며 타고난 능력을 범죄자 처벌에 사용한다. 준코의 반대쪽에는 이시즈 치카코라는 경찰이 있다. 그녀는 '돌아서 가더라도 보행자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목적지로 가겠다'는 확고한 신념의 소유자다. 준코를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과연 이래도 될까' 라는 마음이 고개를 든다. 사회와 우리 마음의 양면성을 미미여사는 준코와 치카코 두 여성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에 해답은 없으며 뻔뻔스러운 범죄자들을 제외하고 이 책에서 나쁜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상처받고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며 처절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뿐. 결말부분은 납득할만한 것이었음에도 마음이 아프다. 

미미 여사는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이 작품을 통해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모방범]보다도 훨씬 깊이 있고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물과 인물이 깔끔하게 연결되고 슬픈 사건이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역시 미미여사!'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만감이 교차하지만 답을 낼 수 없다는 생각, 명확한 답이 없다는 생각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다만, 상처를 받는 사람이 적어지기를, 사람이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이 가슴 깊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