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거짓말 모중석 스릴러 클럽 14
리사 엉거 지음, 이영아 옮김 / 비채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우리의 삶은 무수히 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오늘은 이 길을 걸을까 저 길을 걸을까, 점심은 늘 가던 식당에서 해결할까 새로운 맛을 발견해볼까, 이 일을 지금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 것인가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인생을 결정지을만한 일부터 사소한 일까지 모든 것이 선택의 연속이다. 하지만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작은 선택이 뒤의 큰 그림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의식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단 30초의 시간이 우리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미리 알 수 있다면 그래도 우리는 그 때 했던 그 결정을 아무 거리낌 없이 다시 '선택'할 수 있을까.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공포는 사실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영화나 책에서야 주인공들의 엄청난 모험을 그리고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모진 고통을 멋지게 견뎌내는지 화려하게 묘사하지만, 평범한 나같은 사람에게 공포는 익숙했던 것이 어느 날 낯설어지는 것,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가슴이 서늘할 정도의 다른 면을 보게 되는 것이다. 늘 다녔던 길이 갑자기 미로처럼 느껴져서 헤매게 되는 것 같은 느낌. 그 미로는 다름 아닌 타인의 마음이다. 

리들리 존스의 공포도 그런 것이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 그녀의 삶은 뿌리를 잃는다. 자신의 부모라 생각했던 사람, 한 때였지만 연인이라 믿었던 사람이 사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짓을 하면서 살아왔는지 알게 되면서 흔들리는 세상. 단 몇 초의 선택으로 그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고 그녀를 연결고리로 하는 진실이 그녀를 압박하면서 리들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채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이다. 그리고 리들리는 이제 진실을 파헤치고 고통을 감내할 것인지, 자신을 둘러싼 아름다운 거짓말을 묵인한 채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상에서 살아갈 것인지 다시 선택해야 한다. 

그 동안 읽은 스릴러는 모두 힘세고 건장한 남자들이 주인공이었다. 때로는 피가 튀는 끔찍한 묘사에 얼굴을 찡그린 적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장면은 없다. 대신 한 여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나선 여정(비록 시작은 타인에 의한 것이었지만) 에서 원치 않은 진실을 알게 되는 와중, 적인지 아군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이들에게  쫓기게 되는 긴박감이 작품을 가득 채운다.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묘사와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를 느끼게 해주는 설명, 범인에 관한 추측을 자꾸 뒤집게 만드는 전개 또한 인상적이다. 하지만 '어쩌면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할 작품일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여자라면 수긍할만한 리들리의 마음이 남자에게는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할까. 

몇 가지 흠이 있다면 사건의 마무리가 약간 흐지부지 하다는 점이다. 작가는 여운을 남기고 싶었거나 궁금한 점 한 두 가지는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점이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는 작가가 완벽하게 수수께끼를 설명해주는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 흐름상 어색한 번역이 간혹 눈에 띈다. 예를 들면 '거의 2년 전에 맥스 삼촌이 죽지 않았다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p26)' 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는 맥스 삼촌이 죽었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은 살만하다는 뜻이 아닌가.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맥스 삼촌이 죽지 않았다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는 문장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받침 하나 빠졌을 뿐이지만 그 조그만 차이가 내용 이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이런 점들만 제외한다면 흡입력도 있고 작가의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꽤 재미도 있다. 모중석과 비채의 인터뷰 장면을 보니 리들리를 주인공으로 한 다른 작품도 있는 것 같은데 그 작품도 기대된다. (물론 비채에서 번역해주리라 믿어요! +_+ ) 무엇보다 리들리의 멋진 연인,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강하게 자신을 지켜온 제이크씨를 다시 만나고 싶으니까.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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