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지 오웰 지음, 김욱동 옮김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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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는 실로 따뜻함과 정감이 우러나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어쩌다 일찍 일어나는 일요일에는 나도 꼭 시청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동물농장이니까. 귀엽고 사랑스러운(가끔 혐오하는 동물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동물들이 등장하면 그 앞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도 나니까. 그런데 그런 [동물농장] 표지 한 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것은, 먹을 때 아니면 잘 쳐다보지도 않는 돼지다. 그것도 사랑스러운 아기돼지3형제가 아니라 욕심많고 고집센 돼지의 모습. 게다가 주위 동물들보다 못해도 2배는 되어보일 것 같은 액자를 차지하고 있다. 책을 읽기 전부터 괜히 밉살스럽다.

이 책의 동물들은, 어린 시절의 우리가 소원했던대로, 말도 하고 생각도 한다. 두 발로 걷는 인간을 몰아내고 '장원농장'에서 '동물농장'이라는 이름 아래 획기적인 변혁을 꾀한 동물들이다. 인간에게 핍박받던 생활에서 벗어나 모두가 평등한 생활을 꿈꾸면서 잘 먹고 잘 사는 미래를 다짐하고 있다. 돼지, 개, 말, 당나귀, 닭, 양 등이 모여 행동강령을 정하고 절대로 두 발 달린 인간과는 거래하지도 않고 신뢰하지도 않으면서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 수 있다고 희망한다. 그 안에서, 돼지들이 머리를 든다. 우리는 너희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거야, 그러니 이 정도의 이익은 봐도 되지 않겠어?, 내가 나쁜 게 아니라 쟤가 나쁜 거였어, 너희들 설마 인간인 존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건 아니겠지, 등등의 말로 동물들을 세뇌시키고 결국은 또 다른 계급 사회를 만들어내는 돼지들이다.

이 책, 참 친절하다. 편집도 그렇지만 작품 자체의 성향이 그렇다.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주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책을 읽을 때 조금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작품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때문에 스스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우리들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지만, 설사 그런 주석들이 없었다 해도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메세지가 무엇이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될 정도로 작품 자체가 친절하다. 평등하고 살기 좋은 사회를 꿈꿨던 동물들에게, 돼지들이 옷을 입고 두 발로 걷는 장면 하나로 모든 것은 설명된다. 이것보다 더 무서운 광경은, 동물들에게 없었을 것이므로. 
  

동물사회를 통해 인간들의 삶을 풍자한 우화다. 세계문학이라 불려 다가가는 데 어색함이 없었다면 거짓이겠지만, 그런 어색함을 모두 지워줄 정도로 흥미로운 작품이다. 무엇보다 한 체제 안에서 그것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꿰뚫고 있는 사람의 객관적인 시선이랄까, 그런 날카로움이 느껴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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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 -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김해용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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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가든>의 김주원은 길라임과 혼인신고를 한 후, 그 사실을 알고 쓰러진 어머니의 병실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언젠가 한 번은 후회할 거라고. 하지만 후회하면 후회하는대로 그 여자와 살아갈 거라고. <내 이름은 김삼순>의 현진헌은 삼순이에게 가기 위해 옛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하며, 너 가면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그녀에게 또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죽을 걸 알면서도 산다-고. 사랑,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라며 뻥 날려버리기에는, 우리 모두 사랑에 너무 길들여져 버렸다. 사랑을 하지 않을 때도, 사랑을 하고 있을 때도. 시간이 흐를수록 농도와 깊이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마음을 괴롭히는 감정. 사랑했다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도 줬다가, 결혼해도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걱정도 하는 그 수많은 시간 속에서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정말 내 운명의 짝인지 확신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 말을 듣고서야 도카이 씨는 한 번도 향수를 보여준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함께 살면서 늘 그 좋은 냄새에 싸여 있었기에 오히려 아키오는 그 향수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아키오에게 그 냄새는 도카이씨 그 자체였다.    -p174

이 작품의 표제작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에서 일견 우유부단하고 아무 특징없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아키오는, 운명의 상대를 발견했을 때는 이 사람이 틀림없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을 거라고 믿는 남자이다. 그는 그 운명의 증거가 '향기'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 사람' 자체가 증거였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을 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증거'를 쫓아가다 보면 운명의 상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표식은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을 터. 저마다의 매력은 존재할 테니 말이다. 눈에 띄게 아름답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농담의 대상이라고만 생각할지라도 내 마음 안에서 빛나는 단 한 사람. 증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결국은 그 사람 자체였음을 깨닫게 하는 사람이 바로 운명의 짝이 아닐까.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의지가 되고 행복을 가져다 주는 사람.

나, 왔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길밖에는, 그렇게 각오하고 왔어요.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에요?   -p292

단순하고 평범한 사랑을 그린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에 비해 <둘도 없이 소중한 너에게>는 건조하고 퇴폐적인 냄새를 풍기는 커플의 이야기다. 약혼한 남자가 있으면서 예전의 불륜관계를 지속하는 미하루와 구로키. 약혼자에게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구로키를 통해 맛보면서 그와의 관계를 지속하는 미하루는 그를 사랑하면서도 좀처럼 마음을 인정하지 않는 여자다. 구로키 또한 입으로는 쿨한 관계, 서로 책임을 지지 않는 관계를 선호하는 척 떠들지만 내 눈에는 그들 모두 사랑 앞에서 겁내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런 부족한 나와 결혼해줄 거냐고 묻지 못해 늦게 사랑을 깨닫는 커플. 약간 변태적인 관계를 갖는 커플임에도 그 몸부림들이 어쩐지 애달파서, 기묘한 느낌이 들게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과연 나오키상의 선정 기준은 무엇일까를 궁금하게 만든 작품들이기도 했다. 섬세한 감정 묘사가 뛰어나서 남자 작가임에도 여성으로 자주 오인받는다는 시라이시 가즈후미. 그 감성이 잘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원어로 접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이야기인 거다. '혼을 부르는 걸작'이라거나 '아찔할 정도로 감동했다' 거나 하는 느낌은 받지 못했으니까. 그럼에도 자꾸 이 작품에 마음이 가고 신경이 쓰이는 것은 그 주제가 '사랑'이기 때문일까. 

사람들 얼굴에 사랑표지판이 있어서 '나는 너를 사랑해' 라거나 '내가 너의 운명의 짝이야'라거나 '너와 결혼하고 싶어' 와 같은 말들이 감정에 따라 드러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같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결국 우리가 고민하는 것은 그 한 가지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면 좋겠다는 것. 그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우리는 상처입고 아파한다. 나중에 후회하면 어때.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일에서조차 후회는 있는걸. 후회해도 좋다고, 그 후회까지 떠안고 같이 가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운명의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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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선물 - 커피향보다 더 진한 사람의 향기를 담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이야기
히말라야 커피로드 제작진 지음 / 김영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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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는 마법이 숨어있다. 굳이 마시지 않아도 그 향만으로도 기분을 포근하게 만들어주는 커피. 맛이 어떤지, 무엇 때문에 빠져있는지 정확히 설명하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커피를 즐긴다. 나도 언젠가부터 하루일과에서 커피가 빠지면 어쩐지 허전함을 느끼는 커피 마니아가 되었다. 쉬고 싶고 여유를 즐기고 싶을 때 커피와 함께 하면 남은 하루를 더 씩씩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그런 커피가 어디서 오는지, 누가 만들고 있는지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 자신이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참 신기하다. 그저 막연히 브라질 어디선가 오겠거니 했던 커피가 네팔의 말레 마을에서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히말라야 산맥에 깊숙이 자리한 마을, 아스레와 말레(좋은 사람들이 여기 정착하다라는 뜻). 네팔의 카트만두에 도착해서도 차를 타고 낭떠러지 길을 쉼없이 달려가야 한다. 마을 입구로 가기 위해서는 중간에 차를 포기하고 험한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 말레 마을은, 그래서 외지인의 손길이 닿을 수 없었고 도시의 온갖 소음에서 벗어나 천연의 그늘 아래서 커피 농사를 할 수 있었다. 해발 2,000 미터에 자리한 데다 (고지대일수록 커피 열매는 단단해지고 밀도도 높아진다고 한다), 이른 아침 마을 전체를 덮는 안개까지, 농작물의 수확은 어렵지만 커피 농사에 필요한 최적의 환경이 갖추어진 그 곳에서 몇 가구가 커피를 희망으로 여기며 커피 농사에 매진하고 있다. [히말라야의 선물]에는 이런 말레 마을 사람들 각각의 슬픔과 애환, 희망이 담겨 있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미나. 그녀는 먹성 좋은 네 아이와 장난꾸러기 두 마리의 염소를 책임져야 한다. 남편이 떠나고 어려운 살림에 매일의 양식을 걱정해야 하지만 그녀에게는 네 명의 아이와 커피 농사가 희망이다. 커피를 잘 재배해서 수입이 생기면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도 있고 학용품을 사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한창 젊음을 즐길 나이에 미나는 황무지에 커피 묘목을 심기 위해 잡초를 뽑고 돌을 골라냈다. 말레 마을에서 가장 꼭대기 집에 사는 움나트와 수바커르, 꺼멀라와 그들의 어머니 다니사라. 우등생이었던 움나트는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커피 농사에 매달리지만 폭우로 커피 나무를 잃은 뒤 인도로 이주 노동을 떠났다. 그 뒤를 이어 열네 살 수바커르가 당당한 소년 커피 농부로 거듭난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가족과 떨어진 멋진 남자 다슈람. 그는 커피가 두 번 익으면 돌아온다고 가족들에게 약속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두 딸을 위해. 말레 마을에 처음으로 커피를 들여온 데브라스, 가장 많은 커피 나무를 소유한 둘씨람, 커피 농사에 모든 열정과 노력을 바치는 이쏘리. 열 살 아들에게 글을 배우면서도 행복한 서른 여덟(으로 추정되는) 로크나트.

비록 힘들고 어려운 살림이지만 그들의 웃음은 눈부시다. 어쩌면 이렇게도 순박하게 활짝 웃을 수 있는지. 가지고 있으면서 더 많이 가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가족의 행복을 위해 정성스레 커피 나무를 돌보는 말레 마을 사람들. 나는 그 중에서도 이쏘리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가난한 살림에 몇 그루 밖에 커피 나무를 가지지 못했던 이쏘리. 하지만 커피 나무에 대한 그의 열정은 말레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뜨겁다. 그런 그의 커피 나무가 폭우로 인해 다 쓸려가고 한 그루밖에 남지 않았다. 살아남은 한 그루의 커피 나무를 '희망의 나무'라 부르며 이쏘리는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다가온 수확의 시기. 1kg에 불과한 수확량을 들고 이쏘리는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절망의 시간을 견딘 후 얻은 눈 앞의 수확에 감사하는 이쏘리의 순박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공정무역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저개발국 생산자에게는 정당한 몫, 공정한 대가가 돌아가도록 하고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에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한다. 특히 책에 소개된 '아름다운커피'는 저개발국 농부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도록 공정무역 원칙 아래 커피를 생산하고 수입하는 곳이다. 말레 마을 사람들의 커피도 공정무역을 통해 올바른 대가를 받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 좋겠다. 그래서 이주 노동을 떠난 움나트가 돌아와 상급학교에도 진학하고, 슬픔을 참으며 가족들과 헤어져야 했던 다슈람도 돌아와 가족들과 행복한 웃음을 짓게 되기를.

말레 마을에는 펄핑 (수확할 시기가 된 빨간 커피 열매의 껍질과 과육을 제거하는 과정) 기계도 들어왔다. 이제 그들의 커피는 더욱 좋은 품질로 거듭 태어나 말레 마을 사람들의 열정에 한층 불을 지필 것이다. 내가 커피 한 잔 하며 글을 쓰는 지금도 그들은 커피 나무에 온 신경을 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남일같지 않다. 이 책을 통해, 그리고 지금 마시는 커피 한 잔을 통해 나는 가지 않아도 그 곳 사람들과 친구가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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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걷기여행 - On Foot Guides 걷기여행 시리즈
프랭크 쿠즈니크 지음, 정현진 옮김 / 터치아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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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그 중에서도 프라하는 저의 로망입니다. 이렇게 되면 여기도 로망, 저기도 로망이냐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그렇습니다. 제가 가고 싶어하는 곳은 모두 저의 로망인 거죠. 여러분도 그렇지 않으세요? 겨울의 홋카이도만큼이나 겨울의 프라하는, 저에게는 말로 다 할 수 없을만큼의 로맨틱함을 가져다 줍니다. 그 로망의 시작은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눈 덮인 카를교. 그리고 겨울밤을 밝히는 반짝이는 불빛들. 저도 그 사진 속에서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으니 배경으로나마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제가 프라하에 가고 싶어하는 이유는 단지 그것 뿐이지만, 떠나기에는 더없이 충분한 이유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올 여름에는 꼭! 프라하에 가자고 친구랑 새끼 손가락 걸고 약속까지 했습니다!

[프라하 걷기여행]이라고 해서 여타의 다른 여행에세이 같은 글을 기대하셨다면 조금, 읽기가 수월하지 않으실 수도 있어요. 제가 그랬거든요. 살살 감성을 어루만져주는 말랑말랑한 책이 아니라 지리책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었으니까요. 마치 지리 공부를 하는 것 같은 심정이었어요. 이 책에 수록된 지도는 지도 전문 제작팀이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를 이용해 디지털로 완성했다고 합니다. 건물들이 위치한 평면도를 스케치하고, 인위적으로 거리 너비를 확대한 후 항공 촬영으로 확보한 실사 사진을 이용해 평면 지도에 3차원 건물을 삽입, 각 건물의 세부 사항과 색을 추가하여 지도를 마무리한 거죠.  

이런 지도를 바탕으로 각 번호에 해당되는 설명이 책에 쓰여 있습니다. 지도를 따라가면서 그 곳에 무엇이 있을 지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책을 읽게 되는 겁니다. 어쩐지 어렵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저는 이 책의 색다른 매력에 그만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정말 프라하의 거리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만 같았거든요. 

[프라하 걷기여행]의 걷기 코스는 모두 12가지-요세포프, 카를교에서 구시가 광장까지, 구시가 광장에서 프라하 시민회관까지, 바츨라프 광장, 성 정문에서 말로스트란스카 역까지, 흐라드차니, 페트르진 언덕, 비셰흐라드 순회, 말라 스트라나, 캄파 공원에서 카를 광장까지, 플로렌스에서 바츨라프 광장까지, 국립극장에서 식물원까지-입니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책을 읽어나갔는데요, 각 지역마다 특색이 있더라고요. 어떤 곳은 도시의 기원을, 또 다른 곳은 긴장을 풀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휴식처를, 혹은 역사의 상처를. 각 코스마다 지닌 특징이 무척 뚜렷해서 어느 한 곳이라도 놓치면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지명이나 사람 이름, 문화재의 이름이 조금 어려워서 그렇지 마지막까지 책을 읽고나면 아마 뿌듯하실 거에요. 

저와 친구의 원래 계획은 이왕 체코까지 간 김에 프라하 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들까지 둘러보자는 거였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생각이 확 바뀌었습니다. 이 책을 지침서로 프라하를 둘러보려면 무리해서 하루에 두 코스씩 한다고 해도 적어도 6일, 최대 12일이 필요한 셈이니까요. 지금은 저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지만 아마 친구가 이 책을 읽어보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아웅, 여름까지 열심히 일하고 어서 빨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벌써부터 살랑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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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탑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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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김전일의 할아버지 긴다이치 코스케입니다. 저는 긴다이치 코스케하면 일본 SMAP의 멤버 이나가키 고로가 생각나요. 제가 처음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드라마로 접했을 때의 주인공이 바로 이나가키 고로였거든요. 새가 집을 지은 듯한 더벅머리에 어눌한 말투까지, 소설 안에서 묘사된 긴다이치 코스케는 고로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긴다이치 코스케도 김전일처럼 평소에는 어벙한 모습이지만 사건이 터지고 작은 단서라도 손에 넣으면 실마리를 따라 끈질기게 사건을 추적하죠. 김전일이 항상 외치던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가 생각납니다. 저 <소년탐정 김전일> 팬이거든요. 홍홍. 

[삼수탑] 은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중 여덟 번째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품인 듯 합니다. 그 중에서도 이 [삼수탑] 은 네 번의 드라마와 한 번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히 짐작되고도 남습니다. 삼수탑. 어떤 생각이 드세요? 삼수탑 중 '삼수'는 '三首'의 한자를 사용합니다. 즉, 세 개의 머리가 있는 탑이란 뜻이 될텐데요, 저도 처음에 제목의 뜻을 알고 오싹했지만 다행히(?) 실제 머리가 아니라 머리의 모양을 본 뜬 조각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해요. 그 삼수탑을 둘러싸고 마침내, 또, 사건이 벌어집니다. 

작품의 주인공은 미야모토 오토네. 어린시절 양친을 잃고 백부 (그러나 큰이모의 남편) 의 양녀가 되어 교양을 쌓아온 여성입니다. 어느 날 그녀 앞에 변호사가 나타나 먼 친척에 해당하는 사타케 겐조가 그녀를 백 억엔이라는 유산 상속자로 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단,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다카토 슌사쿠라는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얼마 후 백부의 회갑연에서 벌어진 잔혹한 세 건의 살인사건. 피해자 중에는 오토네의 정혼자로 알려진 다카토 슌사쿠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건을 시작으로 백 억엔이라는 유산을 둘러싼 피의 참극이 시작됩니다. 오토네와 슌사쿠의 결혼이 무산되었을 때는 겐조의 혈육들에게 재산이 분배된다는 사실이 공표된 후 친척들이 하나 둘, 끔찍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 와중에 다카토 고로라는 남자와 연을 맺고 사건의 중심에 뛰어든 오토네. 이 작품은 그 오토네가 사건이 전개되던 시기부터 마무리 될 때까지 집필한 일기 (혹은 유서) 의 형식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책으로 접한 것은 [팔묘촌] 이후 처음입니다. 기본적으로 탐정소설을 좋아하기도 하고 시대물에도 흥미가 있어 꾸준히 관심은 가지고 있었지만요.  [삼수탑] 은 특별히 트릭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용 전개는 흥미로운 편이에요. 연달아 사건이 터지고 과연 이 사건이 어떻게 정리되는가를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이거든요.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기본적으로 진실을 알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트릭이나 동기가 적합하다면 주인공이 비호감이라든가 단어 사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낮은 평가를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럭저럭 읽을만 했다'에 비해 조금 짜게 별점을 준 이유는 이 오토네에 대해 호감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종일관 존슨즈 베이비 로션의 모델인양 '맑고 바르고 아름답게'를 외치는 오토네는 그저 신파극의 주인공에 지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초반에 오토네는 한 남성에게 겁탈을 당하는데 '아아'하며 탄식만 할 뿐 나중에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도 그저 굴복하고 말아요. 입으로는 백부님과 친구들을 볼 면목이 없네 어쩌네 하면서도 말하는 것과는 달리 행동하는 그녀를 보면 어쩐지 정이 가지 않는다고 할까요. 오토네가 화자이고 극의 중심이기 때문에 그녀가 작품의 전체를 총괄한다고 보아도 무방한 상황에서, 인물에 대한 비호감은 작품 평가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오토네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쓰는 단어들도 눈에 걸리는 게 좀 있어서-핥듯이 쳐다보는 시선이라는 표현은 꽤 여러번 나와요-완전히 몰입하기는 힘들었습니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저의 이러한 소소한 이유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긴다이치 코스케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도 그리 크지 않았고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적어서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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