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8, 우연히 데이브 거니 시리즈 1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창시절, 행운의 편지 한 두번은 받아보셨을 겁니다. 저는 최근에 문자 형태로 한 번 받았는데요, 저희 아부지께서는 그게 '진짜 행운'의 편지인 줄 알고 저를 비롯한 온 가족에게 보내셨더라구요  어렸을 때도 다른 사람에게 보내지 않으면 불행이 온다네 어쩐다네에 굴하지 않고 가볍게 패스해 온 인생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보내지 않으면 불행이 찾아온다'라는 말에 깊은 불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리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행운의 편지나 문자는 보내는 순간부터 불행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받은 사람이 혹시 내가 보낸 걸 알면 어쩌지, 내가 문자나 편지를 보낸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생기는 순간, 우리의 삶은 불안 속에서 흔들리게 되니까요. 저희 아부지는 '진짜 행운'의 문자인 줄 아셨던 관계로 당당하게 번호를 쾅 찍어서 보내셨답니다.

 

그런데 이런 편지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어투의 편지, 내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알고 있고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꿰뚫어보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요. 만약 그것 뿐이라면 장난이겠거니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지금 생각한 숫자를 정확히 알아낸 편지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지겠죠. 어떻게 내가 생각한 숫자를 알아냈을까, 이 사람이 나에 대해 또 뭘 알고 있을까, 과거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잘못이라도 있는 건가, 더 알고 싶다, 이 사람이 요구한 돈을 보내야겠다로 생각이 발전하는 건 정해진 수순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나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건, 전혀 로맨틱하지도 즐거운 일도 아니니 어떻게든 이 사람의 정체를 밝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요.

 

이 작품은 세 가지 미스터리를 간직한 채 진행됩니다. 수신자가 생각한 숫자를 범인은 어떻게 알아낸 걸까, 편지를 받은 사람을 살해한 범인은 누구이며 목적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전직 형사 데이브 거니가 간직한 삶의 고통은 무엇인가. 앞의 두 가지와는 달리 거니에 대한 의문은 전혀 관계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막바지로 치달아가면 결국 오묘한 인생의 굴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 됩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작가가 내세우고 싶었던 수수께끼'는 이 정도이지만 다른 분들은 또 다른 수수께끼를 발견하셨을 수도 있겠네요.

 

주인공 거니가 생각이 좀 많습니다. 그 생각에 제가 좀 침식당하는 느낌이었는데요, 지금까지 읽은 스릴러 소설 중에서 자신에게 이토록 집중하고 많은 생각을 간직한 캐릭터는 처음인지라 색다르기도 했습니다. '지겹다'는 기분보다는 작가가 사람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할 줄 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이 '편지 트릭'에서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에게서 받는 편지, 내가 생각한 숫자를 두 번이나 정확하게 알아내는 사람이 있고 그 자신이 과거에 조금 잘못한 경력이 있다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될테니까요. 작가가 인간의 심리에 집중한다는 인상은 결말 부분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릴러이기는 한데 스펙터클하고 최고의 긴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정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작품 안에 눈이 등장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서늘하기도 하고 그 서늘함 안에 감춰진 쓸쓸함이나 고독감이 사건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이야기였어요. 아웅, 요즘에는 이런 스릴러가 참 매력적인 것 같아요. 잔인한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작품에 비해 비중이 좀 적고 '사람'에게 집중한 소설이랄까요. 거니가 등장하는 다음 편도 출간 예정이라는데 그 작품에서는 거니와 그의 아내 매들린의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곱 도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4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은하영웅전설] 로 엄청난 매니아를 확보하고 있는 다나카 요시키의 연작소설집입니다. 저도 십 몇년 전에 도서관에서 이 [은하영웅전설] 1권을 대출했었지만, 그 당시에는 특히 SF에 관심도 없었거니와 뒤에 남아있는 권수에 지레 겁을 먹고 포기했던 기억이 나요. 1권이 아무리 재미있다고한들, 소녀의 감성에 그리 어울리는 책은 아니었다고 믿으렵니다. 얼마 전 인터넷 서점에 나들이를 가보니 [은하영웅전설] 이 십 몇년 만에 재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려오더군요. 한정판으로서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은 듯 한데 얼마 전 선보인 표지가 열화와 같은 비난을 받고 쏙 들어가 새표지를 강구중이라고 합니다. [은하영웅전설] 을 기다리는 열혈독자나 [은하영웅전설] 의 명성은 알지 못하지만 대체 어떤 소설인가가 궁금한 사람에게는 이 [일곱 도시 이야기] 가 소소한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축이 90도 뒤바뀌는 '대전도'에 의해 인류의 태반이 멸망한 시점. 가까스로 살아남은 인류는 달로 도망가고 지구에 7개의 도시를 건설하며 새로운 역사의 기틀을 마련하죠. 그들은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하늘을 날 수 없게 만드는 '올림포스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경쟁을 흥미롭게 지켜봅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월면인들은 미지의 바이러스에 의해 전멸당하지만 '올림포스 시스템'은 2백년 후에나 정지되리라 예측한 지구. 그 지구 위에서 일곱 도시-아퀼로니아, 프린스 해럴드, 타데메카, 쿤론, 부에노스 존데, 뉴 카멜롯, 산다라-가 2190년을 기점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격전을 펼칩니다.

 

[일곱 도시 이야기] 의 전투 장면이 흥미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가장 큰 장점은 캐릭터와 예측할 수 없는 문구, 정치에 대한 작가의 비판력입니다. 일곱 도시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저마다 개성을 간직하면서도 비슷한 면이 없지 않아요. 전투에서 가장 큰 책임을 맡고 있는 아퀼로니아의 알마릭 아스발, 뉴 카멜롯의 케네스 길포드, 프린스 해럴드 시의 유리 크루건은 사는 도시는 다르지만 비슷한 성격의 군간부입니다. 그들에게서 받는 인상은 얼음왕자?! 상관과 부하, 한 쪽에서만 존경을 받고 있거나 양 쪽 모두에게 배척당하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으면서 제 갈길 가는 인물들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들이지만 조금 어린아이같은 면이 있다고 할까요? 여섯 도시가 연합해 부에노스 존데를 공략할 때도 절대 자신의 잘못은 있을 수 없으며 만약 전투가 패배한다면 그것은 다른 두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자처럼 등장하는 류 웨이와 귄터 노르트가 형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각각의 도시에 살고 있지만 만약 지구가 하나로 합쳐져 그들이 모두 하나의 도시에 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누구의 편도 들 수 없게 만드는 캐릭터들이라고 할까요.

 

두 번째는 문장인데요, 이 문장들이 또 빠져나올 수 없게 매력적입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장이 등장하기 때문일까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의 빵을 누군가가 훔쳐갑니다. 당연히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은 화를 내겠죠. 그래서 다들 그가 곧 분노하리라 예측하지만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아니, 대체 여기 있던 빵, 누가 먹어도 돼!' 조금 어처구니 없기는 하지만 이런 문장들이 반복되다보면 은근히 기대를 품게 됩니다. 다음은 또 어떤 재미있는 문구로 즐겁게 해줄까. 예가 적절했는지는 모르지만 다나카 요시키만의 위트넘치는 문장만은 직접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일곱 도시의 전투를 다루지만 약간 코믹하게도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서도 정치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비판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해요. 작가의 생각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문장은 아마도 다음의 것이 아닐까 유추해봅니다.

 


민주공화정치체제의 바른 모습으로서 군사는 정치에 종속되어야만 한다. 그 반대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길포드는 정부 명령에 따르고 있지만, 사실 만성적으로 불쾌감을 느끼는 날들이었다. 특히 병사에게 생명의 위기를 강제하는 입장에 있는 놈들이,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에 지나지 않는 권력을 자신의 사유물로 착각하고 일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에 광분하는 모습에는 진절머리가 났다.   -p268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집어든 책이기에 저로서는 월척을 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에요. 저처럼 한 권으로 끝난 것에 일본독자들도 아쉬움을 느꼈는지 2005년에는 후배작가들에 의해 [일곱 도시 이야기 Shared Worlds] 가 출간되었다는데, 다나카 요시키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저에게는 큰 의미가 없으므로 패스. 다만 [은하영웅전설] 도 이런 문장과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한가득 등장한다면 꼭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한정개정판은 세트로 판매할 듯 하던데, 지름신을 모셔야 할지 어째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큰 일이 되겠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태원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가 추리소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때부터-라고 기억합니다. 집에 전집-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이 있었는데 그 전집에 셜록 홈스와 그의 친구 왓슨이 활약하는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거든요. 어린이용으로 출간된 책이라 알맞게 삽화도 들어가 있던 그 책은 너도밤나무집의 사건과 바스커빌가의 사냥개를 다루고 있던 것으로 기억나요. (그 때는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 이러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능;;) 순진무구한(쿨럭;;) 소녀였던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할까요.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아드레날린이라 불리는 물질이 마구 분출되면서, 사건을 뚝딱 해결하는 셜록 홈스에게 한방에 반해버렸다죠. 그 때부터 저의 이루지 못할 꿈 중 하나인 탐정이 장래희망 목록 속에 쏙 들어갔습니다. 그 꿈은 후에 CSI 요원으로 발전했지만요.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는데요-특히 저희 어무니께요-저는 잔인한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전 잔인한 장면을 보거나 읽거나 하면 꿈 속에서조차 괴로워하는 아주 마음 여리고 섬세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추리소설, 스릴러를 읽는다고 하면 의혹의 눈초리를 잔뜩 보내는 분이 계세요. 저는 그 분께 그 의혹의 눈초리를 돌려드리고 싶어요. 아니, 당신은 호기심도 없단 말입니까!-하고요. 셜록 홈스와 왓슨의 이야기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단 말입니까!-라고도요. 전 잔인한 장면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 그 사건에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할 뿐이랍니다. 추리소설과 스릴러를 비하하는 당신, 그럼 셜록 홈스와 그 외 탐정들이 대거 등장하는 이 책의 매력을 절대절대 알 수 없을 거라 말씀드리고 싶네요. 안타까운 당신.

 

이야기가 잠깐 옆으로 샜습니다만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은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입니다. 제가 아는 탐정이라고는 고작 셜록 홈스와 그의 친구 왓슨이 전부이고, 아서 코난 도일 외의 추리소설작가라고 해도 아가사 크리스티 정도일 뿐이거든요. 그 점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셜록 홈스 외에도 이렇게 많은 탐정들이 활동하고 있었을 줄이야,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을 비롯 총 10인 작가의 30편의 추리고전을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총명하고 당당한 여탐정이 있으면, 젠틀한 느낌의 신사 탐정도 있고, 신문과 들리는 이야기에 의해 사건을 추리해나가는 영민한 노인도 있습니다. 그 중에는 탐정은 아니지만 탐정 뺨치게 똑똑한 사기꾼도 있었네요. 개인적으로는 이 노탐정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현대의 추리소설과는 느낌이 많이 다른 작품들입니다. 스피디하게 진행된다기보다 차근차근 조목조목 따져가며 사건과 해결이 연결된다는 느낌이에요. 잔인한 묘사 등의 자극적인 요소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고 트릭,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사건의 원인과 결과가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점이 고전의 맛인 걸까요? 마음대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총이나 칼등의 무기 없이 명석한 두뇌 하나로 사건의 처음과 끝을 통찰력있게 밝혀내는 모습은, 오랜만이라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서 사회상이 반영된 모습-경마, 사교계 등-도 보여서 고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 오기도 했고요.

 

다만 전개방법이 비슷비슷한 면은 있어요. 사건발생-조사-추리-해결. 어떤 추리소설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워낙 짧은 분량 안에서 모든 것이 보여지다보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이 책에 있는 이야기들도 하루에 두 세편 정도만 접하시길 권해드립니다. 한꺼번에 읽어버리면 그 사건이 그 사건 같고, 그 탐정이 이 탐정 같은 오묘한 세계를 경험하실 수도 있거든요. 감히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이라 칭해지는 그들의 실력을 조금씩 조금씩 즐겁게 누려보시면 어떨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에 고함 - KBS 국권 침탈 100년 특별기획
KBS 국권 침탈 100년 특별기획 '한국과 일본' 제작팀 지음 / 시루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늘 조용한 적이 없죠. 잠잠하다 싶으면 들고 나오는 역사교과서에, 떼쓰는 아이들처럼 자기네 땅이라 주장하는 독도에, 동해 표기까지. 하지만 '잠잠하다'라고 느끼는 것은 이쪽일 뿐, 저쪽은 언제나 그 작업을 계속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영유권 문제를 회부하기 위해 계속 증거를 모은다는 일본에 비해 우리의 활동은 미미한 게 아닐까 불안한 가운데, 미국은 이미 동해가 아닌 일본해에 표를 던졌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뉴욕타임지에 독도와 동해의 올바른 소유권과 표기에 관한 광고를 낸다고 해도 국제적으로 정치적 이권이 개입되어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하지만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이성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때라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 점에서 당연, 이 책에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어요. K본부에서 국권침탈 100년 특별기획으로 제작한 5부작 다큐멘터리는 보지 못했지만 제목과 보도자료를 통해 뭔가 우리의 의지를 표명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 등을 제시할 것 같기도 했거든요. 한국과 일본의 2000년 관계를 인연, 적대, 공존, 변화, 대결이라는 5가지 키워드를 통해 살펴보면서 앞으로의 한일 관계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제 의견으로는 제목과 책의 내용도 맞지 않을 뿐더러, 현 시점에 그리 어울리는 책은 아닌 듯 합니다.

 

취향의 차이겠고, 제가 책에 대해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비롯된 오해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그저 단순한 역사책 같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그 동안 어떤 관계를 쌓아왔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역사책. 그런 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무척 필요하죠. 예전의 관계 속에서 앞으로의 길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일본에 고한다는 제목이 다소 자극적으로 다가오기는 했지만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한일관계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내용이기를 바랐어요. 현재 분쟁점이 되고 있는 것들-독도, 동해, 역사교과서-을 다루면서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우리들의 권리, 그 증거등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여타 다른 역사책과 비교했을 때 별다른 특징이 없는 이 책에 '일본에 고함'이라는 제목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뭘 고한다는 걸까요? 우리와 너희는 예전에 이런 관계였다, 서로 이런 피해를 입혔다, 너희가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해서 오랫동안 괴롭혔다로 끝을 맺는 이 책이 일본에 고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읽기 전에 책의 내용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기대와 달라 실망한 저에게 잘못이 가장 크겠죠.

 

이제는 실제적인 책들이 출간되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기본서는 이미 풍부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이들이, 아니 저를 비롯한 어른들조차도 어째서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있는지, 독도가 우리 땅이라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어떤 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는 감정적으로만 '독도는 우리 땅이야! 동해는 일본해가 될 수 없어!'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어떻게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대응해나가야 하는지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제대로, 구체적으로 알기'는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권혁준 옮김 / 해냄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오늘 그는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할 예정이에요. 멋진 저녁식사와 수줍은 고백의 말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로부터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들의 그 어떤 말도 믿지 말라는 말만 남기고 제대로 들리지 않는 그녀의 목소리. 그리고 그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그에게 그녀가 사고를 당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지금 그녀와 통화를 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고, 그 날 이후 그의 삶에서 그녀와 평범한 일상이 사라져버립니다. 지금 그는 101.5 방송을 내보내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그녀를 되찾기 위해 7명의 인질들과 캐시콜 게임을 시작합니다. 그의 이름은 얀 마이, 그가 원하는 것은 죽은 약혼녀 레오니 뿐.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 부엌에서 입 안에 총구를 밀어넣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 사라가 자살하고 둘째 딸 카타리나와의 관계마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 엄마인 자신이 사라를 구할 수 없었다는 오랜 좌절감과 상실감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녀에게 삶을 포기하라고 종용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순간, 독약 캡슐로 작전을 변경한 그녀는 순전히 레몬향이 나는 콜라를 사기 위해 아주 잠시 자살을 멈춥니다. 지금 그녀는 101.5 방송을 내보내는 방송국에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이라 자민, 그녀의 직업은 범죄심리학자입니다.

 

인질극을 벌이는 범인이 라디오 방송국에 난입하여 캐시콜 게임을 벌이는 이 작품은 일견 유지태와 수애 주연의 <심야의 FM>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유지태의 캐릭터가 그저 무서운 사이코패스에 불과했다면, 이 작품의 인질범 얀은 사이코패스도 아닐 뿐더러 지극히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계획 아래 레오니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자죠. 이 작품은 불필요한 자극적인 요소, 잔인한 묘사 없이 얀과 이라의 대화, 그들의 심리상태만으로도 더없이 훌륭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게다가 얀이 원하는 단 하나, 죽은 약혼녀 레오니에 얽힌 비밀과 이라의 죽은 딸 사라가 간직한 비밀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짜릿한 소재가 되죠.

 

이 작품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은 점은 세세함과 앞서 언급한 심리묘사입니다. 이 소설은 간단한 작품은 아니에요. 오히려 이것저것, 온갖 수수께끼가 얽혀 있죠. 레오니는 정말 살아있는 것일까, 살아있다면 어째서 얀 앞에서 자취를 감춘 것일까, 얀은 정말 정신이 온전한 상태인가, 이라의 딸 사라는 어째서 자살했나, 언니가 자살했다고 동생인 카타리나가 엄마를 그토록 증오한 이유는 무엇인가 등 책을 읽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문들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눈을 부릅뜨게 되죠. 어디 이 모든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제대로 제시하나 보자! 하고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한다면 내 용서치 않으리!-라는 비장한 마음과 함께요. 그러나 작가는 이런 독자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마지막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해줍니다. 전혀 어색하지 않게 퍼즐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처럼요. 그 과정에서 얀과 이라의 심리에 대한 묘사는 최근 읽은 스릴러 중 가장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배신자와 최후의 긴장감을 만들어내기 위해 제시한 트릭은 조금 식상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리 나쁘지는 않았어요. 책을 읽고 있었지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과연. 영화화 전격 결정이라는 홍보문구가 보이네요. 잔인한 묘사, 흥분한 사이코패스가 없는 스릴을 맛볼 수 있어 상콤하기까지 한 기분입니다. 영미소설의 자극적인 묘사와 장면보다 유럽의 심리에 치중한 전개 방법이 저에게는 더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바스티안 피체크, 팬이 될 것 같은 기분입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