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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카드는 그녀에게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권혁준 옮김 / 해냄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오늘 그는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할 예정이에요. 멋진 저녁식사와 수줍은 고백의 말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로부터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들의 그 어떤 말도 믿지 말라는 말만 남기고 제대로 들리지 않는 그녀의 목소리. 그리고 그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그에게 그녀가 사고를 당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지금 그녀와 통화를 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고, 그 날 이후 그의 삶에서 그녀와 평범한 일상이 사라져버립니다. 지금 그는 101.5 방송을 내보내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그녀를 되찾기 위해 7명의 인질들과 캐시콜 게임을 시작합니다. 그의 이름은 얀 마이, 그가 원하는 것은 죽은 약혼녀 레오니 뿐.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 부엌에서 입 안에 총구를 밀어넣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 사라가 자살하고 둘째 딸 카타리나와의 관계마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 엄마인 자신이 사라를 구할 수 없었다는 오랜 좌절감과 상실감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녀에게 삶을 포기하라고 종용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순간, 독약 캡슐로 작전을 변경한 그녀는 순전히 레몬향이 나는 콜라를 사기 위해 아주 잠시 자살을 멈춥니다. 지금 그녀는 101.5 방송을 내보내는 방송국에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이라 자민, 그녀의 직업은 범죄심리학자입니다.
인질극을 벌이는 범인이 라디오 방송국에 난입하여 캐시콜 게임을 벌이는 이 작품은 일견 유지태와 수애 주연의 <심야의 FM>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유지태의 캐릭터가 그저 무서운 사이코패스에 불과했다면, 이 작품의 인질범 얀은 사이코패스도 아닐 뿐더러 지극히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계획 아래 레오니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자죠. 이 작품은 불필요한 자극적인 요소, 잔인한 묘사 없이 얀과 이라의 대화, 그들의 심리상태만으로도 더없이 훌륭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게다가 얀이 원하는 단 하나, 죽은 약혼녀 레오니에 얽힌 비밀과 이라의 죽은 딸 사라가 간직한 비밀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짜릿한 소재가 되죠.
이 작품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은 점은 세세함과 앞서 언급한 심리묘사입니다. 이 소설은 간단한 작품은 아니에요. 오히려 이것저것, 온갖 수수께끼가 얽혀 있죠. 레오니는 정말 살아있는 것일까, 살아있다면 어째서 얀 앞에서 자취를 감춘 것일까, 얀은 정말 정신이 온전한 상태인가, 이라의 딸 사라는 어째서 자살했나, 언니가 자살했다고 동생인 카타리나가 엄마를 그토록 증오한 이유는 무엇인가 등 책을 읽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문들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눈을 부릅뜨게 되죠. 어디 이 모든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제대로 제시하나 보자! 하고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한다면 내 용서치 않으리!-라는 비장한 마음과 함께요. 그러나 작가는 이런 독자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마지막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해줍니다. 전혀 어색하지 않게 퍼즐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처럼요. 그 과정에서 얀과 이라의 심리에 대한 묘사는 최근 읽은 스릴러 중 가장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배신자와 최후의 긴장감을 만들어내기 위해 제시한 트릭은 조금 식상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리 나쁘지는 않았어요. 책을 읽고 있었지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과연. 영화화 전격 결정이라는 홍보문구가 보이네요. 잔인한 묘사, 흥분한 사이코패스가 없는 스릴을 맛볼 수 있어 상콤하기까지 한 기분입니다. 영미소설의 자극적인 묘사와 장면보다 유럽의 심리에 치중한 전개 방법이 저에게는 더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바스티안 피체크, 팬이 될 것 같은 기분입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