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도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4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은하영웅전설] 로 엄청난 매니아를 확보하고 있는 다나카 요시키의 연작소설집입니다. 저도 십 몇년 전에 도서관에서 이 [은하영웅전설] 1권을 대출했었지만, 그 당시에는 특히 SF에 관심도 없었거니와 뒤에 남아있는 권수에 지레 겁을 먹고 포기했던 기억이 나요. 1권이 아무리 재미있다고한들, 소녀의 감성에 그리 어울리는 책은 아니었다고 믿으렵니다. 얼마 전 인터넷 서점에 나들이를 가보니 [은하영웅전설] 이 십 몇년 만에 재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려오더군요. 한정판으로서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은 듯 한데 얼마 전 선보인 표지가 열화와 같은 비난을 받고 쏙 들어가 새표지를 강구중이라고 합니다. [은하영웅전설] 을 기다리는 열혈독자나 [은하영웅전설] 의 명성은 알지 못하지만 대체 어떤 소설인가가 궁금한 사람에게는 이 [일곱 도시 이야기] 가 소소한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축이 90도 뒤바뀌는 '대전도'에 의해 인류의 태반이 멸망한 시점. 가까스로 살아남은 인류는 달로 도망가고 지구에 7개의 도시를 건설하며 새로운 역사의 기틀을 마련하죠. 그들은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하늘을 날 수 없게 만드는 '올림포스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경쟁을 흥미롭게 지켜봅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월면인들은 미지의 바이러스에 의해 전멸당하지만 '올림포스 시스템'은 2백년 후에나 정지되리라 예측한 지구. 그 지구 위에서 일곱 도시-아퀼로니아, 프린스 해럴드, 타데메카, 쿤론, 부에노스 존데, 뉴 카멜롯, 산다라-가 2190년을 기점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격전을 펼칩니다.

 

[일곱 도시 이야기] 의 전투 장면이 흥미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가장 큰 장점은 캐릭터와 예측할 수 없는 문구, 정치에 대한 작가의 비판력입니다. 일곱 도시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저마다 개성을 간직하면서도 비슷한 면이 없지 않아요. 전투에서 가장 큰 책임을 맡고 있는 아퀼로니아의 알마릭 아스발, 뉴 카멜롯의 케네스 길포드, 프린스 해럴드 시의 유리 크루건은 사는 도시는 다르지만 비슷한 성격의 군간부입니다. 그들에게서 받는 인상은 얼음왕자?! 상관과 부하, 한 쪽에서만 존경을 받고 있거나 양 쪽 모두에게 배척당하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으면서 제 갈길 가는 인물들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들이지만 조금 어린아이같은 면이 있다고 할까요? 여섯 도시가 연합해 부에노스 존데를 공략할 때도 절대 자신의 잘못은 있을 수 없으며 만약 전투가 패배한다면 그것은 다른 두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자처럼 등장하는 류 웨이와 귄터 노르트가 형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각각의 도시에 살고 있지만 만약 지구가 하나로 합쳐져 그들이 모두 하나의 도시에 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누구의 편도 들 수 없게 만드는 캐릭터들이라고 할까요.

 

두 번째는 문장인데요, 이 문장들이 또 빠져나올 수 없게 매력적입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장이 등장하기 때문일까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의 빵을 누군가가 훔쳐갑니다. 당연히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은 화를 내겠죠. 그래서 다들 그가 곧 분노하리라 예측하지만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아니, 대체 여기 있던 빵, 누가 먹어도 돼!' 조금 어처구니 없기는 하지만 이런 문장들이 반복되다보면 은근히 기대를 품게 됩니다. 다음은 또 어떤 재미있는 문구로 즐겁게 해줄까. 예가 적절했는지는 모르지만 다나카 요시키만의 위트넘치는 문장만은 직접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일곱 도시의 전투를 다루지만 약간 코믹하게도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서도 정치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비판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해요. 작가의 생각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문장은 아마도 다음의 것이 아닐까 유추해봅니다.

 


민주공화정치체제의 바른 모습으로서 군사는 정치에 종속되어야만 한다. 그 반대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길포드는 정부 명령에 따르고 있지만, 사실 만성적으로 불쾌감을 느끼는 날들이었다. 특히 병사에게 생명의 위기를 강제하는 입장에 있는 놈들이,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에 지나지 않는 권력을 자신의 사유물로 착각하고 일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에 광분하는 모습에는 진절머리가 났다.   -p268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집어든 책이기에 저로서는 월척을 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에요. 저처럼 한 권으로 끝난 것에 일본독자들도 아쉬움을 느꼈는지 2005년에는 후배작가들에 의해 [일곱 도시 이야기 Shared Worlds] 가 출간되었다는데, 다나카 요시키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저에게는 큰 의미가 없으므로 패스. 다만 [은하영웅전설] 도 이런 문장과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한가득 등장한다면 꼭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한정개정판은 세트로 판매할 듯 하던데, 지름신을 모셔야 할지 어째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큰 일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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