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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스의 라이벌들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태원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평점 :
제가 추리소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때부터-라고 기억합니다. 집에 전집-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이 있었는데 그 전집에 셜록 홈스와 그의 친구 왓슨이 활약하는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거든요. 어린이용으로 출간된 책이라 알맞게 삽화도 들어가 있던 그 책은 너도밤나무집의 사건과 바스커빌가의 사냥개를 다루고 있던 것으로 기억나요. (그 때는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 이러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능;;) 순진무구한(쿨럭;;) 소녀였던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할까요.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아드레날린이라 불리는 물질이 마구 분출되면서, 사건을 뚝딱 해결하는 셜록 홈스에게 한방에 반해버렸다죠. 그 때부터 저의 이루지 못할 꿈 중 하나인 탐정이 장래희망 목록 속에 쏙 들어갔습니다. 그 꿈은 후에 CSI 요원으로 발전했지만요.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는데요-특히 저희 어무니께요-저는 잔인한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전 잔인한 장면을 보거나 읽거나 하면 꿈 속에서조차 괴로워하는 아주 마음 여리고 섬세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추리소설, 스릴러를 읽는다고 하면 의혹의 눈초리를 잔뜩 보내는 분이 계세요. 저는 그 분께 그 의혹의 눈초리를 돌려드리고 싶어요. 아니, 당신은 호기심도 없단 말입니까!-하고요. 셜록 홈스와 왓슨의 이야기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단 말입니까!-라고도요. 전 잔인한 장면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 그 사건에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할 뿐이랍니다. 추리소설과 스릴러를 비하하는 당신, 그럼 셜록 홈스와 그 외 탐정들이 대거 등장하는 이 책의 매력을 절대절대 알 수 없을 거라 말씀드리고 싶네요. 안타까운 당신.
이야기가 잠깐 옆으로 샜습니다만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은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입니다. 제가 아는 탐정이라고는 고작 셜록 홈스와 그의 친구 왓슨이 전부이고, 아서 코난 도일 외의 추리소설작가라고 해도 아가사 크리스티 정도일 뿐이거든요. 그 점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셜록 홈스 외에도 이렇게 많은 탐정들이 활동하고 있었을 줄이야,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을 비롯 총 10인 작가의 30편의 추리고전을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총명하고 당당한 여탐정이 있으면, 젠틀한 느낌의 신사 탐정도 있고, 신문과 들리는 이야기에 의해 사건을 추리해나가는 영민한 노인도 있습니다. 그 중에는 탐정은 아니지만 탐정 뺨치게 똑똑한 사기꾼도 있었네요. 개인적으로는 이 노탐정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현대의 추리소설과는 느낌이 많이 다른 작품들입니다. 스피디하게 진행된다기보다 차근차근 조목조목 따져가며 사건과 해결이 연결된다는 느낌이에요. 잔인한 묘사 등의 자극적인 요소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고 트릭,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사건의 원인과 결과가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점이 고전의 맛인 걸까요? 마음대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총이나 칼등의 무기 없이 명석한 두뇌 하나로 사건의 처음과 끝을 통찰력있게 밝혀내는 모습은, 오랜만이라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서 사회상이 반영된 모습-경마, 사교계 등-도 보여서 고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 오기도 했고요.
다만 전개방법이 비슷비슷한 면은 있어요. 사건발생-조사-추리-해결. 어떤 추리소설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워낙 짧은 분량 안에서 모든 것이 보여지다보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이 책에 있는 이야기들도 하루에 두 세편 정도만 접하시길 권해드립니다. 한꺼번에 읽어버리면 그 사건이 그 사건 같고, 그 탐정이 이 탐정 같은 오묘한 세계를 경험하실 수도 있거든요. 감히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이라 칭해지는 그들의 실력을 조금씩 조금씩 즐겁게 누려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