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엣 1 - 관 속에서 만난 연인
앤 포티어 지음, 서현정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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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셰익스피어 하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두 가문의 관계로 인해 맺어지지 못한 비극적인 사랑의 대명사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닐까 합니다. 레오나르도 화이팅과 올리비아 핫세로 기억되는 고전영화에서부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오랜 시간, 저의 로망이었습니닷!!) 클레어 데인즈로 기억되는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 뮤지컬까지 모든 분야를 섭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많은 사람들이 셰익스피어의 이 비극에 열광하는 이유는, 누구나 가슴 속에 한 번쯤은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담겨있기 때문일까요. 게다가 멋쟁이 셰익스피어 아저씨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입술을 빌어 읊어대는 그 매혹적이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들에는 순식간에 사람의 마음을 홀랑 빼앗아버리는 마력이 숨어있음이 분명합니다.

 

앤 포티어의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극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비극적인 결말을 맺은 1340년부터 600 여년이 지난 현대에 줄리엣과 로미오의 이름과 핏줄을 물려받은 젊은이들의 러브 스토리입니다. 책 표지에는 -셰익스피어가 감추었던 광기의 줄리엣-이라는 말도 있고, 주인공 줄리에타가 기록을 통해 만나게 되는 줄리엣의 첫인상이 '잔인하다'는 느낌을 주어, '뭬야! 설마 줄리엣이 광녀였던 것이야!'하며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제가 상상했던 것만큼 줄리엣은 이상한 여인으로 등장하지 않으니, 혹시나 저와 같은 이상한 상상 속에 책을 펼쳐드는 분이시라면 안심하셔도 될 듯 하옵니다. 설사 작가가 줄리엣을 정도가 지나칠 정도로 무서운 여인으로 묘사했다 해도, 그 광기가 사랑의 비극으로 인한 것이라 생각하면, 이해되지 않을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스릴러적 요소도 분명히 들어있지만, 이 작품에서 그런 요소들은 스릴러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일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시에나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분명 할리우드 색채가 짙은 작품들과는 차이가 있다고 할까요.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고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온 악연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는 임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느닷없이 찾아간 이탈리아에서 그 때까지는 생전 얼굴도 이름도 몰랐던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미혼이든 기혼이든 여성이라면 그 로맨틱함에 홀딱 빠져버릴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결말 부분에서는 많이 접해본 듯한 장면임에도 저도 모르게 '으헉!'하며 감동을 받고 말았거든요. 그야말로 작품 속 줄리에타가 '나'가 되는 것이죠. (하필 시점도 1인칭 시점이니.) 그러니 이 작품이 남성 독자에게 어느 정도 어필할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하겠습니다.

 

그 로맨틱함에 반하기는 했으나,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이성을 되찾고 분석해보면, 식상한 점이 있기도 하고,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던 줄리에타와 제니스가 갑자기 2권에서는 서로 없으면 못사는 사이가 되는 것도 개연성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로미오와 줄리엣>과는 다르게 전개되는 그들의 이야기와 챕터마다 소개되어 있는 연극적인 대사들, 2권 뒤에 실린 시에나의 역사 등은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내 입술에서 옮겨간 죄란 말이오? 오, 달콤한 꾸짖음이오. 내 죄를 다시 돌려주시오.-같은 고전적인 대사들은 곱씹을수록 자꾸만 빠져들게 되니, 이런 기회를 또 어디서 만날 수 있겠습니까. 크하하. 이탈리아, 특히 시에나로 강렬히 떠나고 싶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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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자살 노트를 쓰는 살인자,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2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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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하지만, 쏟아지는 재미난 책들의 홍수에 정신줄 놓고 휩쓸려 지내던 세월이었습니다. 올해는 마음을 다잡고 저의 머리와는 따로 놀던 손가락들을 제압한 후, 제가 책장을 너무나도 예쁘게 장식해주던 시리즈들을 눈으로만 훑어주며 뿌듯해하던 날들 속에서 혼자 속울음을 삼켰을 [시인]을 골랐는데요, 스릴러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가슴 설레어하고, 중요하다싶은 장면이 나오면 맑은 정신으로 읽어야해-하며 아쉬움을 달래며 책장을 덮었던 적이 언제였나 싶네요. 맘 먹고 읽었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다 읽었을테지만 어쩐지 한번에 몰아쳐 끝내버리기에는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요. 마치 처음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마냥 들떠서 아직도 읽을 부분이 있다는 것에 행복했던 하루하루였습니다.

 

장점이 참 많은 작품입니다. 우선 소재로 쓰인 '에드가 앨런 포'의 시구 사용이 전혀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을 들고 싶네요. 저의 편견인지도 모르겠지만 스릴러 소설이나 추리소설에는 유독 에드가 앨런 포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데, 그 모든 작품을 전부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표지에 그런 언급만 있어도 전 어쩐지 피해지곤 했어요. 근거도 없으면서 에드가 앨런 포의 작품에 묻어가려는(?) 인상도 받았고, 작가만의 자의적인 해석은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시인]은 에드가 앨런 포의 시를 소재로 내세웠으면서도 그것에 전혀 밀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사건이 진행된다고 할까요. 오히려 에드가 앨런 포의 시가 작품의 분위기를 이끌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해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작가의 세심하고 차분한 설명이 마음에 듭니다. 제가 공간구성능력이 부족하고 이해를 잘 못해서인지도 모르지만 책을 읽다보면 가끔 당췌 이 트릭이 어떻게 이루어진 건지 알 수 없게 쓰여진 장면을 접할 때가 있어요.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 건너뛸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되면 작품을 이해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고 작품에 대한 이미지 또한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기도 하죠. 이 작가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세상에서 묘사하는구나-라는 인상을 받게 되면 그 다음 작품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하구요. [시인]은 600페이지를 자랑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그 분량이 부끄럽지 않게 장면 하나하나, 원인과 결과 하나하나까지도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지루하거나 처지는 느낌도 없었습니다.

 

또 마음에 들었던 점은 '번역' 부분이었어요. 음, 번역 부분에 대해서는 좋았던 점과 의문을 갖게 된 점이 하나씩 있는데요, 우선 좋았던 점은 스릴러 소설이고 형사, FBI, 기자를 내세운만큼 충분히 거친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을텐데도 욕설의 비중이 낮았다는 점입니다. 한국영화, 특히 액션이나 형사물을 볼 때도 자주 느끼는 거지만 지나친 욕설은 독자들이 작품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저급한 이미지를 갖게 되기 때문에 부디 다른 작품들에서도 적당히 번역해주십사 하는 마음이에요.

 

번역에 대한 의문은 작품의 주인공인 잭 매커보이가 FBI요원인 레이철 월링과 므훗한 사이가 되는 부분부터 시작되었어요. 잭과 레이철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상대에게 존댓말을 쓰다가 관계를 맺고 난 뒤부터 반말을 쓰기 시작하는데요, 관계를 맺은 다음에도 존댓말을 써서는 안 되는 건가요? 영어공부는 이미 오래 전에 두손두발 다 든 상태이고, 제가 원문을 본다해도 어찌 번역할 지는 잘 모르겠지만 살짝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이었습니다. 하긴 어떤 책에서는 관계를 맺고 난 다음, 남자는 반말을, 여자는 여전히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번역하기도 했지만요.

 

섬세한 전개와 끊임없는 긴장감에 즐거워하고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알고 싶은 욕망으로 한껏 달아올라 있었지만, 마지막 반전이 아니었다면 별을 다섯 개까지는 주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는 나도 예상하고 있었는데-하며 시큰둥하게 누워서 읽던 저를, 마지막 부분은 벌떡 일어나게 만들었으니까요. 많은 분들이 이 -벌떡 일어남의 즐거움-을 누리시길 바래요. 아아, 오랜만에 느낀 독서의 즐거움으로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아직도 읽을 수 있는 마이클 코넬리'님'의 작품이 남아있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껴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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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부름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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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미 작가의 유명한 작품들은 전부 책장에 꽂아놓고 읽지 않은 지 어언 몇 년. 책장 어디쯤에 꽂혀 있는 지도 가물가물하던 차에 따스해보이는 표지에 끌려 읽기 시작한 책입니다. 책의 내용을 놓고 생각해봤을 때 그리 좋은 표지는 아닌 것 같아요. 표지 자체로는 좋은데, 이야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할까요. 전작들을 읽어보지 않아서 기요미 작가의 스타일이 어떤 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팽팽한 긴장감과 숨 쉴 틈 없는 스피드는 맞는데 예측불허의 결말도 아닌 것 같구요. 에헹. 이상하게 오늘 리뷰는 자꾸 딴지가 걸고 싶어지는군요. 앞으로의 이야기가 칭찬과는 조금 거리가 있기 때문일까나요.

 

재미있게는 읽었습니다. 뒤바뀐 핸드폰으로 인해 사랑에 빠지고 사건까지 해결하게 되는 로맨틱함. 캬~좋지 않습니까! 로맨틱 코메디의 단골 소재처럼 조금 식상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흐름도 막힘이 없고 읽는 동안은 즐거웠어요. 저는 제 핸드폰조차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입니다. (스마트폰이 아니어서일까요;;) 집에 돌아오면 그냥 팽개쳐두고 생각이 나면 확인하기 때문에 메세지를 늦게 전달받을 때도 있어요. 아마 저는 누군가와 핸드폰이 뒤바뀌고 그 핸드폰이 며칠 동안 제 손안에 있다 해도 전원을 끈 뒤 서랍 속에 넣어두었을 겁니다. 소소한 호기심으로 버튼을 눌러보더라도 요즘 시대에는 비밀번호가 걸려 있기 마련이므로 금방 포기하고 잊어버렸을 거에요.

 

그런 저의 상식으로 이 남녀 주인공을 이해하기란 어려웠습니다. 이 둘은 마치 편집증 환자 같았거든요. 특히 남자 주인공 조나단이요. 뒤바뀐 핸드폰으로 인해 밤잠도 이루지 못하고 매들린(여자 주인공입니다)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핸드폰부터 조사하고, 비밀번호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비밀번호를 풀어서는 그녀의 정보를 샅샅이 조사한 뒤에 숨겨진 파일까지 보기 위해 끙끙거리는 모습은, 맙소사! 무서웠어요. 만약 여러분 주위에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조나단은 아름다운 사랑이 예고된 주인공이니까 괜찮다고 해도, 실제로 그런 사람이 우리의 핸드폰을 조사한다고 하면 오싹하지 않을까요. 그것을 조나단은 운명, 즉 '천사의 부름'이라 하더이다. 현실과는 꽤 차이가 있죠.

 

게다가 이 작품에는 우연이 난무합니다. 뒤바뀐 핸드폰의 주인이 매들린과 조나단, 하필 이 둘, 어떤 소녀와 관계가 있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을 너도 안다, 네가 아는 사람을 나도 안다-하는 우연은 요즘같은 세상에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다른 우연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필 그 장소에서 그 사람이 뭘 산다거나, 어떤 사람을 발견한다거나 하는. 저는 이야기니까 어느 정도의 우연은 감수한다고 해도 지나친 우연은 오히려 현실과 이야기를 동떨어트려 작품에 완전히 몰입하는 걸 방해한다고 생각해요. 깊이가 부족하다고 할까.

 

장면장면이 예측 가능하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래요, 읽는 동안 재미는 있었어요. 그래서 별 네 개 드렸어요. 그런데 기요미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이런 식이라면 어느 순간 곧 질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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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카세론
캐서린 피셔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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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영화 <큐브> 시리즈의 처음을 보면서, 저는 그게 감옥의 하나의 형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중죄를 지은 죄수들만 수감시켜 놓은 감옥이요. 그래서 처음에 깨어난 방에서 벗어나려하거나 감옥 자체를 벗어나려 해도 목숨을 잃고, 움직이지 않고 한곳에만 머물러도 물러설 자리가 없는 장소를 만들어놓은 거라구요. 그들이 죽음을 맞는 방법들이 하나같이 잔혹하고 무서워서 정작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지만, 소재 하나만은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이 바깥에서 이토록 자유롭게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에 새삼스레 감사하면서요.

 

캐서린 피셔의 [인카세론]은 미래사회의 감옥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어 마침내 감옥 안을 장악하게 된 감옥. 아주 오랜 옛날에 만들어져 이제는 존재하는 장소조차 모르게 된 그 곳에 정체불명의 소년 핀이 3년 전부터 생활하고 있어요. 그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문신을 의지삼아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밝혀내기 위해 끊임없는 모험을 감행하죠. 감옥 밖에서는 교도소장의 딸인 클로디아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맞서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기 위해 미약하게나마 싸우고 있습니다. 그 둘을 연결시켜주는 것은 인카세론. 암투와 모략으로 가득찬 세상 속에서 운명은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그들을 이끌고, 그들에게는 이제 선택의 순간만이 남아있습니다.

 

소재면에서나 재미면에서나 전반적으로 괜찮은 느낌의 작품입니다. 감옥 속에서 핀은 어떻게 될지, 감옥 밖에서 클로디아는 어떻게 될지, 그들의 운명이 과연 어떻게 이어질지 흥미진진합니다. 게다가 이 책의 주인공(?)격인 인카세론에 대한 설정도 꽤 독특해요. 처음에는 완벽한 사회로서 만들어진 감옥이지만 어느 순간 인간들이 통제할 수 없게 되고 제멋대로 움직이게 된 인카세론, 생명체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말살시키기도 하는 인카세론은 정말 감옥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로 느껴졌습니다. 핀과 클로디아를 제외한 인물설정도 궁금증을 자아내며 긴장감을 증폭시켰는데요, 저는 정작 남자주인공인 핀이 아니라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주는 역할을 맡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케이로에게 눈길이 더 갑니다. 핀보다는 케이로의 캐릭터가 한층 더 입체적이에요. 기억이 없는 핀이라 그 존재도 투명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그런데 이 [인카세론]이 시리즈인지, 아니면 단권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네요. 책날개의 작가 소개글에는 시리즈라고 나와있지만 맨 마지막 장에는 '끝'이라고 나와있거든요. 만약 이것이 단권이라면 용두사미격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아직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많고, 모든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으며, 핀과 클로디아가 해야 할 일도 많이 남아있으니까요. 그런 것들을 배제한 채 작품을 끝냈다면 이 작가, 용서할 수 없습니다! @.@ 그렇다면 별, 안 드리렵니다. 하지만 아마도, 시리즈겠죠?! [인카세론]의 스타트를 끊은 이 책을 뛰어넘는 이야기들로 다시 찾아올 것이라 믿으며 기다려보고 싶어요. 이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전체적인 별점은 이 책 이후의 이야기들로 결정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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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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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주로(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 읽는 분야는 문학 쪽이지만, 더 나이 들어서 머리가 딱딱해지기 전에 어려운 책도 읽어봐야 한다는 강박증에 못내 인문이나 사회 쪽 책을 집어들기도 한다. 설사 읽다가 한 쪽으로 미뤄진 책을 못본 체하며 꿈나라로 떠날지라도. 그런데 문학 분야에서도 이 인문사회 쪽 책만큼이나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으니, 그건 바로 노벨문학상 수상작들이다. '~상 수상'이라는 수식어에 그리 현혹되지 않는다 자부하면서도 매년 그 해의 수상작들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책 읽는 사람으로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관심인 걸까-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헌데 이 수상작들을 읽어내기란 나에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기와 끈기로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덤벼보기도 하지만 결국-이건 아닌 것 같아, 내 소중한 시간을 이해 되지 않는 책들을 읽으며 괴로워하기 싫다!-로 끝맺음하기 일쑤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16인의 작가군 중에서도 내가 아는 이름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인터뷰 내용을 읽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사고의 폭을 넓혀가는 데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세운 계획은, 다른 책을 읽을 때의 목적과 다르지 않았다. 바로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얻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들의 작품을 단순한 글자로만이 아닌 행간까지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얻고 싶었다. 어쨌든 노벨문학상이라는 건 참으로 매력적인 타이틀이니까.

 

이 책에 실린 16인의 작가들은 '거장'이라는 말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을만큼 한 점의 사진에서조차 거대한 기운이 느껴진다. (요건 사진작가의 능력?) 개인이 처한 정치적 상황과 의견, 주력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일상의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도 있다. 문학을 통해 자신이 가진 상처를 치료하고, 더 큰 희망의 날들을 꿈꾼다는 것. 오로지 문학만을 추구하며 그 세계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과 정면으로 맞부딪히면서 자신만의 이데아를 실천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가고 있었다.

 

아들의 장애로 인해 깊은 실의를 겪었지만 또한 그를 통해 더 깊은 문학세계를 추구할 수 있었던 오에 겐자부로, 터키 극우민족자들의 협박을 받으면서도 뛰어난 재치와 유머로 새로운 세계를 갈구하는 오르한 파묵, 인간에 대해서, 현실에 대해서 깊은 사유의 세계를 헤엄치는 도리스 레싱,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에 맞서며 에이즈와의 한판 싸움에 한창인 나딘 고디머, 지난날의 과오와 죄책감 속에서 미래를 보기를 마다하지 않는 귄터 그라스, 괴한의 습격을 받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몸이 되었지만 여전히(그 당시에)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나기브 마푸즈, 홀로코스트를 겪고 살아남아 다시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추구하는 임레 케르테스와 이미 흘러가버린 시간들을 유유히 바라보며 삶의 오묘함을 되새기고 있는 비슬라바 쉼보르스카까지. 그들의 삶은 그들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라는 타이틀이 없더라도 충분히 아름답고 경탄할만 하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어요. 내 책에서만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그래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에요. 그것을 아니라고 거부하는 건 아주 잘못된 거예요. 우리는 각자가 외롭지 않기 위해서 함께 살기를 원하는 두 종류의 인간일 뿐이예요. 그게 바로 내가 보는 관점이고요.

 

구약을, 복음서를, 신약을, 코란을 읽다 보면 우리는 그것들이 똑같은 사람을, 똑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을 알게 돼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들처럼 말이에요. 유대교든, 그리스도교든, 이슬람교든, 그것들은 서로 다른 시기와 배경으로 인해 유일한 종교로 보일 뿐인데, 그런데도 그것들은 서로 질투를 하고 자기들만이 진짜로 유일하다고 확신하고 있어요.

-도리스 레싱

 

문학은 상업적인 것을 훨씬 뛰어넘는 가치들을 지니고 있어요. 문학은 인간이 의미하는 것을 심오하게 일깨워주는 도구이지, 다른 것을 얻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돼요. 실제로 예술가는 세상을 구원하지 못했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자신의 내적인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구현하는 존재니까요.

-가오싱젠

 

우리는 반드시 얘기해야 해요. 치명적인 트라우마까지, 그 모든 것을. 지금까지 나로서는 할 수도 없었고 알 수도 없었지만, 기왕에 이렇게 된 것에 대해 무척 만족하고 있어요. 내가 겪었던 젊은 시절은 얘기하는 게 썩 유쾌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어요. 우리 세대는 이 문제를 결코 뛰어넘을 수 없고, 어떤 종지부도 찍을 수 없을 거요. 그러나 나는 그것에 관해 계속해서 쓸 거라고 약속할 거요. 나는 계속해서 입을 열 것이고, 나의 적들은 참을 수밖에 없을 거요.

-귄터 그라스

 

누가 되었든지, 어떤 중요한 사안에 대해 하루 정도 생각할 시간을 갖지 않으면 제대로 된 논리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어요. 이처럼 이 세상에는 즉답을 요구하는 자들이 많아요. 어리석은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에요. 여전히 나는, 잠시만 생각하면 된다고 믿는 사람들 중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어요.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그들이 살아온 몇 십년의 삶을 단지 몇 페이지의 인터뷰만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나처럼 그들의 작품세계를 이해하지 못해 허둥거렸던 독자, 작가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사람들의 바람을 채워주는 의미있는 책이다. 흑백으로 처리된 사진들 때문인지, 그들의 모습이 허상이 아니라(당연한 말이지만) 실제였다는 것을 이제야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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