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의 베이커리 2 - 새벽 1시의 사랑 도둑 한밤중의 베이커리 2
오누마 노리코 지음, 김윤수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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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중 블랑제리 구레바야시에 미모의 아가씨가 나타났다! 커다란 가방을 들고 생글생글 웃으며 갑자기 등장한 그녀의 이름은 유이 요시노. 그녀가 품에서 꺼낸 것은 블랑제리 구레바야시에서 블랑제로 일하고 있는 야나기 히로키와의 혼인신고서! 중학교 2학년 때 잠깐 교제한 적이 있던 그들이 어렸을 때 작성한 혼인신고서를 들고 등장한 요시노는, 무슨 사정인지는 밝히지 않은 채 혼인신고서를 들이밀며 잠시만 머물 수 있게 요청한다. 사람 좋은 구레바야시씨와 자신도 얹혀살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괜찮다라고 생각한 노조미는 결국 요시노에게 거처를 마련해주고, 노조미와 요시노는 블랑제리 구레바야시의 2층에서 함께 살게된다. 요시노는 그녀만의 매력으로 꼬맹이 고다마와 변태 각본가 마다라메 뿐만 아니라 블랑제리 구레바야시에 들르는 남자 손님들의 인기를 독차지한다. 그런 그녀를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노조미. 요시노에게는 뭔가 있다! 노조미의 여자로서의 촉이 그렇게 이야기한다.  

 

밤에 책을 읽게 된 것을 주린 배를 움켜쥐고 후회하게 만든 훈훈한 작품 [한밤중의 베이커리]가 2권으로 돌아왔다. 각본가 출신의 작가 오누마 노리코의 [한밤중의 베이커리]는 일본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모으며 TV 드라마로도 방영되었고, 신인 작가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시리즈로 출간되어 현재 3권까지 합계 90만 부 판매를 돌파했다고 한다. 2권도 1권만큼 굉장히 재밌어서 무엇보다 3권까지 출간되었다는 게 굉장히 기뻤다. 이런 달콤하고 따뜻한 책을 아직 한 권은 더 읽을 수 있다는, 순수한 기쁨이라고 할까. 1권을 읽을 때 한 번 경험했던지라 이번에는 책을 읽기 전에 미리 빵을 한가득 사다놓았다. 그럼에도 코끝에서 감도는 빵냄새며 히로키가 만들어내는 크루아상을 먹어보고 싶다는 욕망을 어쩌지 못해서, 오늘도 빵이 가득 찬 배를 움켜쥐고 괴로워하는 중이다.  

 

1권에서는 모든 등장인물이 한 편씩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소개되는 느낌이었다면, 2권에서는 사건다운(?) 사건이 벌어진다. 히로키와 인연이 있는 아야노가 등장하면서 블랑제리 구레바야시 식구들 주변이 시끌시끌해지는 것이다. 아야노의 행실이 약간 여우같은 면이 있어서 처음에는 노조미의 시각으로 나 역시 그녀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지만, 역시 이 작품, 정말 따뜻하다. 아야노가 숨기고 있는 상처, 그녀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과제들을 제시하며 사람을 대할 때 한 쪽 눈으로만 쳐다보지 말라는 교훈을 새삼 일러준다. 약간 미스터리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흥미진진하면서도 마음 깊이 번져가는 이 느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의 따스함이 넘쳐난다. 사랑스럽고, 맛있는(?) 책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구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구원한다는 건 구원받는 것과 통하니까. -p18

속죄도 구원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문장도 가슴 깊이 박혔다.  

 

시즌 1에서 소개했듯 구레바야시와 노조미는 진짜 형부-처제 사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점점 진짜 가족이 되어간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구레바야시의 부인이었던 미와코로부터 구원받았고 미와코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의 우산이 되기를 자청한 히로키, 변태 각본가이지만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무엇이든 다 바칠 수 있는 순수한 마다라메, 꼬맹이 고다마도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블랑제리 구레바야시 속에서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가족이란, 핏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서로를 생각하느냐, 사랑하느냐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런 가족이라면, 세상에 이런 사람들만 있다면 우리가 사는 시간들은 더 아늑하고 따스해질텐데. 가슴 속이 뭔가 몽실몽실한 것이 즐거운 것도 같고 안타까운 것도 같은, 아주 복잡한 마음이다.  

 

미와코를 잃고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 구레바야시씨도 노조미와 히로키, 다른 사람들을 통해 조금씩 변해 간다. 미래를 생각한다. 3권에서는 어떤 에피소드들이 등장할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그 때는 꼭 잊지 말고 크루아상을 준비해야겠다. 히로키가 블랑제가 되어 제일 먼저 레시피를 익힌 크루아상. 언젠가 나도 빵을 만드는 블랑제가 되고 싶다. 꼭 빵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통해 누군가에게 따스함을 전달할 수 있는 그런 우산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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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밤에 본 것들
재클린 미처드 지음, 이유진 옮김 / 푸른숲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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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P라는 색소성 건피증을 앓고 있는 앨리와 줄리엣, 로브. XP는 햇빛에 치명적인 알레르기 반응으로 햇빛에 노출되면 화상, 염증 등의 증상을 유발하는 병이다. 평생 햇빛을 쬘 수 없기 때문에 비타민D는 약으로 복용하고 낮에는 단 한 걸음도 밖에 나갈 수 없다. 해가 지는 석양 무렵에라도 나가기 위해서는 선글라스와 모자, 긴 팔 옷은 물론 몇 겹의 천으로 꽁꽁 싸매는 수밖에. 필연적으로 낮에는 자고 밤에는 활동하는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아주 친한 친구지만, 주인공 앨리는 로브에게 친구 이상의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아름답고 당당하며 활동적인 줄리엣은 앨리와 로브에게 파쿠르라는 운동을 선보이고, 그들은 밤마다 이 건물, 저 건물에 뛰어오르고 점프하고 착지하는 연습을 시작한다. 파쿠르를 실행하던 어느 밤, 앨리는 한 건물에서 수상한 남자와 시체같은 형상의 여자를 발견하지만, 친구들은 그녀가 잘못 본 것이라며 앨리의 말을 믿지 못하고, 그 후로 앨리의 주변에 섬뜩한 일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자유를 향한, 혹은 낮을 향한 그들의 바람은 간절하다. 병에 걸리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수명이 짧은 그들에게는 이미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결정되어 있다. 이미 XP로 인해 마음의 한 구석은 죽어가고 있었기에 그들은 파쿠르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을 자유를 향한 도약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알기에 그들의 부모 또한 조용히 그들을 지켜볼 뿐이다. 스포츠 용품점을 운영하는 로브의 아버지는 햇빛 차단을 위해 각종 메이커의 점퍼를 로브에게 선물하고, 경찰서장인 줄리엣의 아버지는 아이들이 밤에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하면 조용히 순찰차를 돌려 멀어져간다. 앨리가 XP라는 것을 알고 떠나버린 아버지와 달리 그녀의 엄마는 간호사로서 딸의 곁을 지키며 앨리의 의견을 존중하고 마치 친구처럼, 앨리가 원한다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강한 마음의 소유자다.

 

꿈꾸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던 미래를, 줄리엣과 앨리는 각자 다른 방법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운명에 커다란 갈림길을 만들어 놓는다. 수상한 남자를 목격한 밤 이후, 앨리는 로브와 줄리엣과 멀어진다. 예전부터 줄리엣을 선망하던 로브를 사랑하는 앨리. 그녀의 마음은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친구들에 대한 원망과 로브를 향한 사랑으로 빚어진 줄리엣에 대한 질투심으로 인해 괴롭다. 하지만 앨리는 질투와 원망으로 슬퍼할지언정 망가지지는 않는다. 줄리엣과 로브가 없는 세상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내딛는 길을 택했다. 그래서 완벽한 개인으로 독립하는 힘을 그 어느 때보다 갈망하게 된 앨리는, 줄리엣이 무언가를 감추고 있으며 수상한 남자와 줄리엣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 친구 줄리엣은 무엇을 감추고 있는가, 그녀는 내가 알던 친구가 맞나.

 

수상한 남자의 등장과 여러 가지 사건들로 섬뜩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하는 이 작품은, 그러나 스릴러 이상의 그 무엇이다. 스릴러 같은 분위기는 앨리와 줄리엣, 로브의 인생을 조망하기 위한 도구였을 뿐 이 작품은 오히려 이 세 명의 성장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듯 하다. 앨리가 아니었다면 줄리엣은 가장 소중한 친구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고 간단히 그들을 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줄리엣이 아니었다면 앨리는 자신의 꿈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고, 로브가 아니었다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로브 또한 앨리가 없었다면 체념한 채 그저 그런 현실을 살아냈을 뿐, 미래를 꿈꾸는 앨리 곁에서 자신 또한 진심으로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는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미래’로 향하는 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스릴러와는 다르기에 작가가 결말을 맺은 방식이 마음에 든다. 그들은 더 강해질 수 있고 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그들이 가는 길이 곧 자신들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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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케이스 속의 소년 니나보르 케이스 (NINA BORG Case) 1
레네 코베르뵐.아그네테 프리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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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관해서는 작품 결말 부분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로 인해 온전한 가정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니나 보르. 깡마른 몸매에 짧은 머리, 약간 소년같은 외모를 한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이며 한 남자의 아내이고 난민을 위한 적십자캠프에서 일하면서 불법체류자들을 위한 의료봉사에까지 뛰어들고 있다. 어느 날 친구 카린의 부탁으로 기차역 보관함에서 슈트케이스 하나를 찾아오며 사건은 시작된다. 열어본 슈트케이스 안에는 어린 아이가 마취되어 죽은 듯이 누워있다. 이 아이는 누구이며 어째서 카린이 자신에게 맡긴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니나는 누군가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이미 피와 폭력으로 물든 잔인한 남자로부터 아이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니나.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의 아이를 찾기 위해 제 발로 뛰기 시작한 시기타의 이야기가 불행한 개인사와 얽혀 함께 펼쳐지고, 결국 니나와 시기타의 만남으로 인해 어두운 진실이 밝혀진다.

 

작가가 여성 두 명인 것과 크게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슈트케이스 속의 소년]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니나 보르와 아이의 엄마 시기타이다. 철모르던 어린 시절 남자친구와의 사이에 아이를 갖게 된 시기타는 차마 그 사실을 가족에게 이야기하지 못한 채 떨어져 사는 이모를 찾아가 아이를 낳고, 낳은 아이를 입양보내게 된다. 그리고 다시 얻게 된 아이가 바로 슈트케이스 속에 있던 아이 미카스다. 이미 미카스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남편과는 별거 상태였고, 그렇게 단 둘이 지내는 생활에 외로움을 느끼기는 했지만 시기타는 무엇보다 아이를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 시기타와 미카스가 공원에서 여유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을 때 미카스에게 초콜릿을 건네는 수상한 여자. 그 이후로 시기타는 기억을 잃은 채 병원에서 눈을 뜨고 미카스 또한 자취를 감춘다. 수사에 진전이 없고 기다릴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시기타는 더는 참지 못하고 미카스를 찾아나선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니나 보르 시리즈를 계속하기 위해 중심적인 인물로 니나 보르를 내세웠을 뿐 실제적인 주인공은 시기타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모성으로 가득차 아이를 찾아나선 시기타라는 인물이 인상적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에서 선과 악의 구분은 뚜렷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목적을 이루려는 남자와 역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폭력과 살인도 불사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전자의 남자는 돈이 많고 후자의 남자는 돈이 없다. 이 둘의 차이는 그것 뿐이다. 만약 전자의 남자가 돈이 없었다면, 하지만 문제는 동일하게 발생했다면 그는 어떻게 했을까? 살아온 환경에 따라 취한 행동이 달라졌을 수는 있겠지만 후자의 남자와 같은 선택을 하지 말란 법도 없다. 결국 이 둘에게 결여된 것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다. 남이야 어떻든 자신의 문제만 해결하면 되고 자신만 많은 돈을 챙겨 오직 눈앞의 여인과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대상들에게 설명할 것이다. 사랑하는 너를 위해 그랬노라고, 이 모든 것이 너를 위한 것이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으니까. 그런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시기타를 응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시기타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므로.

 

주인공인 니나 보르는 슈트케이스 속에 있던 아이를 피신시키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한다. 이 아이가 고아원에 있던 아이였는지, 아니면 납치당한 아이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동유럽 여자를 만나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그 과정 속에서 니나 보르의 가족들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남편과 아이들이 자신을 기다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작품을 따라가다보면 그녀에게 가족은 오히려 벗어나고 싶은 대상처럼 보인다. 그리고 과연 니나처럼 다른 사람 일에 이리 목숨 걸고 홀로 대항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싶다. 지켜야 할 대상이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말이다. 형사도 아닌 가녀린 여자 간호사가 이런 시련들을 모두 감당해내다니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중심인물인 니나의 캐릭터가 조금 빈약하기는 하지만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이미지는 나쁘지 않다. 여성 콤비의 작품이라 그런지 어쩐지 더 섬세한 것 같기도 하고 차분한 가운데 긴장을 조율할 줄 아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시기타가 미카스에 대해 느끼는 감정, 아이를 찾기 위한 눈물겨운 여정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시리즈인만큼 첫 작품만 읽고서는 완전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책날개에 예고된 다른 작품들을 통해 여성 콤비의 섬세하면서도 세련된 스릴러를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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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고전 : 한국편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김욱동 지음 / 비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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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에는,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무젓가락을 만들기 위해 아마존의 삼림이 파괴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모르고 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막상 문자로 접하고나니 그 충격이 상당했다. 영화나 여타 영상으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충격이라고 할까. 어쩌면 그 때 내가 나무젓가락이나 종이컵을 사용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보면서 ‘고작 이따위 물건을 만들기 위해 아마존의 나무들이 잘려나가고 있다는 말이야?’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평소 에코컵을 사용하고 카페에 갈 때도 텀블러를 준비하기도 하지만, 어쩐지 커피 한 잔은 종이컵에 마셔야 더 맛있는 것 같기도 하고 밖에서 배달된 음식을 먹을 때는 나무젓가락을 사용하기도 한다.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의 무게가 몸 전체로 다가왔었다.  

 

[녹색 고전]은 그 동안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배웠거나 혹은 대강 넘겨왔던 우리의 고전문학들을 환경과 연결하여 다른 시각에서 소개해준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지만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을.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기상이변과 그로 인한 자연재해, 그리고 각 국가별로 발표하고 있는 지구의 잔여수명. 어쩌면 2050년쯤에는 지구는 황폐화되고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갖춘 행성으로의 대이동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영화로만 봤던 그런 장면들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진다면...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작가는 전체적으로 인간들의 이기심을 지적하며 자연 앞에서 겸손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간들은 스스로를 사고할 수 있는 능력과 언어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그들만의 언어가 존재하며(<새들도 말을 하고>) 결코 그들이 우리보다 열등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작가가 소개하고 있는 연암 박지원의 <호질>에는 호랑이가 인간을 꾸짖는 장면이 등장한다.

 

너희가 이(理 )를 말하고 성(性)을 논할 적에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이지만, 하늘의 소명으로 보자면 범이나 사람이나 다 같이 만물 중의 하나이다......너희들이 먹이를 얻는 것이란 불인(不仁)하기 짝이 없도다! 덫이나 함정을 놓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모자라서 새 그물․노루망․큰 그물․고기 그물․수레 그물․삼태 그물 따위의 온갖 그물을 만들어냈으니, 처음 그것을 만들어낸 놈이야말로 이 세상에 가장 재앙을 끼친 자이다. -p76

호랑이의 꾸짖음의 내용의 대부분은 인간이 자연에 행하는 지나침에 대한 것이다.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탐욕이 지나쳐 그릇된 결과를 가져왔다는 질책. 조선 시대의 연암 박지원 선생은 일찍부터 인간들의 욕망에 대한 경계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베르나르의 [제3인류]는 지구에게 의식을 부여해 지구가 인간들로 인해 느끼는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지구가 고통을 느끼는 한, 인간들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 이제는 자연을 존경하고 지구와 공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물론 현대의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등장한다. 이규보의 <이와 개에 관한 생각>에는 개와 이의 죽음은 한가지이며 각기 기운과 숨을 받은 자로서 어찌 죽음을 좋아하는 존재가 있겠느냐는 내용이 나온다. 어떤 길손에게 ‘나’가 어떤 사람이 이글이글하는 화로의 불 속에 이를 던져 넣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이 아파서 다시는 이를 잡지 않기로 맹세했다는 말에, 길손이 자신을 놀리느냐며 화를 내는 것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에게 있어 이는 당연히 잡아야 하는 생물이다. 나도 어렸을 때 반 친구에게 이가 옮아 이약을 뿌리고 한동안 보자기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던 추억 아닌 추억이 있다. 그런 이의 생명조차 소중하다 여기고 함부로 죽이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터무니없이 들린다. 하지만 그것은 ‘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것은 우리 인간뿐만이 아니니 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환경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어렵다. 사소한 것을 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라 더 어렵다.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물질에 사로잡히지 말기 등 대부분 우리 삶의 편리함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렵다. 그냥 눈 한 번 딱 감으면 되는 일이기 때문에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감았던 한 번의 눈을 떠야 할 때인 것 같다. 후손들의 일까지는 너무 멀어서 상상도 안 되지만 잘못하다가는 우리 젊은이들이 노년이 되었을 때 타행성으로의 이전이 시작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중에 살아남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환경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우리가 지금 직면한 위기의 해법을 찾기 위한 ‘녹색’ 고전 읽기는 그래서 고무적이다.

 

일 년에 백만 종의 영혼이 지구를 떠나고 있다. 매연과 소음과 농약으로 썩어가는 지구에서 살 수가 없어서 다른 별들로 이민을 떠나고 있다.  

-김백겸 <멸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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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공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에리카 종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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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이 더 중요한 작품이지만 결말 부분이 언급되어 있으니 주의하세요~!!

 

어렸을 때는 어른만 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공부를 싫어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성적을 걱정하는 것보다 더 생산적인 일에 마음을 쓰고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죠. 지금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현실의 삶은 생각처럼 그리 녹록하지 않고 어째서인지 때때로 마음이 공허해질 때도 있어요.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인생은 더 복잡해지고 생각해야 할 것들은 늘어나며 하고 싶은 일들은 더 많아지고 학창시절보다 더 나의 존재 이유에 대해 탐구하게 됩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결혼을 하면 하는대로, 안 하면 안 하는대로 나름대로 짊어지고 가야 하는 인생의 무게는 존재하기 마련이거든요. 역시 남자면 남자인대로, 여자면 여자인대로 느껴야 하는 삶의 비애는 저마다의 몫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역사와 상황들을 보면 여자가 더 살기 힘든 세상인 건 맞는 것 같은데요, 그건 제가 여자여서 그런 걸까요? 갑자기 어떤 이의 -남자가 직장을 다니는 이유는 다녀야 하니까, 안 다니면 이상하니까 다니는 거지만, 결혼한 여자가 직장을 다니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는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내달리는 한 여성-이사도라-의 이야기입니다. 무역상 아버지와 화가였으나 외할아버지에 의해 꿈을 좌절당한 어머니, 레바논 남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을 거의 찬양하다시피 하는 언니와 그 뒤를 따르는 여동생들 사이에서 유난히 독특한 취급을 받는 그녀는, 두 번째 남편 베넷과 오스트리아 빈의 정신분석학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 안에 있죠. 거기서부터 시작된 그녀의 과거에 대한 회고와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지퍼 터지는 섹스의 대상과의 환희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빠르게 진행됩니다. 부정하면서 살아왔지만 떨쳐버릴 수 없었던 나치에 대한 혐오와 분노, '여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 자연스레 생리가 멈춰버린 몸, 그 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정신과 상담, 결국 정신병자가 되어버린 첫 번째 남편 브라이언, 현재의 남편인 베넷이 곁에 있음에도 늘 외로움과 방황에 힘들어했던 시간들, 그리고 마침내 환상을 채워주기 위해 나타난 남자 에이드리언까지 그녀의 성찰은 굉장한 성적묘사와 함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사도라는 자유를 원하지만 남자-의존하고 함께 있어줄 사람-를 떠나지 못하는 딜레마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에요. '지퍼 터지는 섹스'라는 말의 대상으로 인해 그녀가 원하는 것이 환상적인 섹스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오해할 수 있겠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섹스가 아니라 교감과 따뜻한 입맞춤입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베넷이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시절, 한없이 차갑게 침묵했던 베넷에게 이사도라는 희망합니다. 말을 걸어주기를, 따뜻하게 키스해주기를. 하지만 이런 친밀한 행위는 그녀 뿐만 아니라 모든 여자(남자도 원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들이 갈망하지 않을까요. 아기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기를 낳고 기르는 것'만'을 강요하는 사회에 부당하고 외치죠. '여자'가 되는 것으로 인해 강요받아야 하는 것들,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작가로서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녀를 '여자'에서 멀어지게 만든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그녀는 한 인간으로서 자립하고 싶어하지만 그럴 수 없음에 절망하고 계속적인 내적 고민을 끌어안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에이드리언을 만나 인생에 한 획을 그을 일탈을, 그제서야 처음 해보게 되는 거죠.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반영되어 1973년 발표된 이 작품은, 그러나 지금 읽어도 시간의 간극을 느낄 수 없을만큼 현실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오히려 이 작품이 그 시대에 나왔다는 게 더 놀라울 정도로 여성이 성에 대해 갖는 환상, 비유들이 거침없이 묘사되어 있어요. 프로이트상 문학부문을 수상했다고 해서 처음에는 굉장히 어렵고 형이상학적인 소설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고민해왔던 것들, 그리고 고민할 수 있었을 일들이 생생하게 쓰여 있고, 아마도 많은 여성 독자들이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고민해왔던 시간들을 반추할 수 있고 공감하는 기회를 갖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페미니스트의 진짜 의미는 뭘까요?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이라면 아마 이 사회는 페미니스트로 넘쳐날 겁니다. 하지만 저는 [비행공포]를 어떤 면에서는 인간적인 고민이 담긴 책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을 둘러싼, 그다지 반갑지 않은 환경에 저항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하며 앞으로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작품이라고 봅니다. 다만 이 작품의 화자가 여성이었을 뿐, 그래서 여성의 시각에서 쓰여졌고 또한 그래서 섹스에 대한 묘사가 많은 것에 어쩌면 보수적인 독자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많은 남성 독자들도 이 부분-행복과 잘 살아기를 추구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에이드리언과 함께 떠났던 이사도라는 결국 그와 헤어져 다시 베넷을 만나러 갑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평소 자신이 상상했던 '지퍼 터지는 섹스'의 상황과 맞닥뜨리지만 이 때의 그녀의 반응이 또 재미있어요. 아직 베넷과 마주치지 못한 상태로 결말을 맺는 방식에서 어쩌면 이사도라의 고민은 종지부를 찍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차라리 그 편이 더 마음에 드네요. 그녀의 긴긴 이야기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고민에 대한 해결책은 등장하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우왕좌왕하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욕조 속에 들어가 있는 그녀의 모습이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으니까요. 우리 존재에 대한 고민, 우리의 행복에 대한 고민의 답은 없으며, 그저 순간순간 마주한 상황을 헤쳐갈 뿐이라는 의도가 담긴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이사도라는 결국 늘 자신의 존재에 대해 탐구하며 고민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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