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고전 : 한국편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김욱동 지음 / 비채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에는,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무젓가락을 만들기 위해 아마존의 삼림이 파괴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모르고 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막상 문자로 접하고나니 그 충격이 상당했다. 영화나 여타 영상으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충격이라고 할까. 어쩌면 그 때 내가 나무젓가락이나 종이컵을 사용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보면서 ‘고작 이따위 물건을 만들기 위해 아마존의 나무들이 잘려나가고 있다는 말이야?’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평소 에코컵을 사용하고 카페에 갈 때도 텀블러를 준비하기도 하지만, 어쩐지 커피 한 잔은 종이컵에 마셔야 더 맛있는 것 같기도 하고 밖에서 배달된 음식을 먹을 때는 나무젓가락을 사용하기도 한다.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의 무게가 몸 전체로 다가왔었다.  

 

[녹색 고전]은 그 동안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배웠거나 혹은 대강 넘겨왔던 우리의 고전문학들을 환경과 연결하여 다른 시각에서 소개해준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지만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을.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기상이변과 그로 인한 자연재해, 그리고 각 국가별로 발표하고 있는 지구의 잔여수명. 어쩌면 2050년쯤에는 지구는 황폐화되고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갖춘 행성으로의 대이동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영화로만 봤던 그런 장면들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진다면...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작가는 전체적으로 인간들의 이기심을 지적하며 자연 앞에서 겸손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간들은 스스로를 사고할 수 있는 능력과 언어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그들만의 언어가 존재하며(<새들도 말을 하고>) 결코 그들이 우리보다 열등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작가가 소개하고 있는 연암 박지원의 <호질>에는 호랑이가 인간을 꾸짖는 장면이 등장한다.

 

너희가 이(理 )를 말하고 성(性)을 논할 적에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이지만, 하늘의 소명으로 보자면 범이나 사람이나 다 같이 만물 중의 하나이다......너희들이 먹이를 얻는 것이란 불인(不仁)하기 짝이 없도다! 덫이나 함정을 놓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모자라서 새 그물․노루망․큰 그물․고기 그물․수레 그물․삼태 그물 따위의 온갖 그물을 만들어냈으니, 처음 그것을 만들어낸 놈이야말로 이 세상에 가장 재앙을 끼친 자이다. -p76

호랑이의 꾸짖음의 내용의 대부분은 인간이 자연에 행하는 지나침에 대한 것이다.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탐욕이 지나쳐 그릇된 결과를 가져왔다는 질책. 조선 시대의 연암 박지원 선생은 일찍부터 인간들의 욕망에 대한 경계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베르나르의 [제3인류]는 지구에게 의식을 부여해 지구가 인간들로 인해 느끼는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지구가 고통을 느끼는 한, 인간들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 이제는 자연을 존경하고 지구와 공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물론 현대의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등장한다. 이규보의 <이와 개에 관한 생각>에는 개와 이의 죽음은 한가지이며 각기 기운과 숨을 받은 자로서 어찌 죽음을 좋아하는 존재가 있겠느냐는 내용이 나온다. 어떤 길손에게 ‘나’가 어떤 사람이 이글이글하는 화로의 불 속에 이를 던져 넣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이 아파서 다시는 이를 잡지 않기로 맹세했다는 말에, 길손이 자신을 놀리느냐며 화를 내는 것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에게 있어 이는 당연히 잡아야 하는 생물이다. 나도 어렸을 때 반 친구에게 이가 옮아 이약을 뿌리고 한동안 보자기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던 추억 아닌 추억이 있다. 그런 이의 생명조차 소중하다 여기고 함부로 죽이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터무니없이 들린다. 하지만 그것은 ‘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것은 우리 인간뿐만이 아니니 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환경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어렵다. 사소한 것을 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라 더 어렵다.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물질에 사로잡히지 말기 등 대부분 우리 삶의 편리함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렵다. 그냥 눈 한 번 딱 감으면 되는 일이기 때문에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감았던 한 번의 눈을 떠야 할 때인 것 같다. 후손들의 일까지는 너무 멀어서 상상도 안 되지만 잘못하다가는 우리 젊은이들이 노년이 되었을 때 타행성으로의 이전이 시작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중에 살아남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환경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우리가 지금 직면한 위기의 해법을 찾기 위한 ‘녹색’ 고전 읽기는 그래서 고무적이다.

 

일 년에 백만 종의 영혼이 지구를 떠나고 있다. 매연과 소음과 농약으로 썩어가는 지구에서 살 수가 없어서 다른 별들로 이민을 떠나고 있다.  

-김백겸 <멸종>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