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 교수의 조선 산책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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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다닐 때 신병주 교수님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3시간짜리 강의였는데 거의 쉴 틈도 없이 필기하고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렇게 강의하시려면 교수님도 힘드셨을 텐데 전혀 그런 내색 없이, 마치 대본을 보고 말씀하시는 듯 막힘없이 술술 수업을 진행하시는 모습에 감탄하기도 했었죠. 수업이 끝나면 뭔가 하나 이루었다는 성취감에 기분이 참 좋았었는데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마음 한 구석이 가득 차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금은 그 수업 내용이 뭐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해도 역사에 본격적으로 재미를 붙였던 건 아마도 그 시간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 후로 교수님이 쓰신 책이나 방송은 가급적 챙겨보려고 노력 중이랍니다.

 

[신병주 교수의 조선산책] 역시 그 관심 덕분에 읽게 된 책입니다. -민초의 삶부터 왕실의 암투까지-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요, 그래서인지 챕터 하나하나가 짧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방대한 500년의 역사를 어떻게 전부 책 한 권에 넣을 수 있겠어요. 그 동안 읽어왔던 조선관련 역사책이 대부분 왕실의 역사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이번 책에서는 왕과 시대의 위인, 현재를 되새기게 하는 사건과 현장, 조선의 빼어난 기술과 문화재, 풍류가 넘치는 일상생활사, 조선의 정책 등 다양한 방면에서 조선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선배의 육아일기>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16세기의 학자 이문건이라는 사람이 지은 [양아록]이란 책이 소개되어 있는데, 흥미롭게도 아들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손자의 양육 일기입니다. 제 자신이 현재 육아 중이고, 친정 부모님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서인지 보자마자 바로 관심이 갔어요. 아이들 대부분을 천연두로 잃고 그나마 유일하게 장성한 둘째 아들도 어릴 때 앓은 열병의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와중에 얻은 손자이니 얼마나 귀하게 여겼겠어요. 이에 손자가 자라나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는데-손자 아이가 커 가는 것을 보니 내가 늙어가는 것을 잊어버린다-고 하며 큰 기쁨을 표시했다고 합니다. 현존하는 거의 유일한 할아버지의 양육 일기인데, 그 안에는 손자를 생각하는 큰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손자가 13세 때부터 술을 탐하여 이 할아버지로 하여금 매를 들게 하였으니, 육아의 고충 또한 엿볼 수 있었답니다.

 

이 외에도 살인 코끼리와 관련된 일화, 세종대왕 시대에 있었던 국민투표, 임금님이 선물한 한강 얼음, 기억해야 할 여성 독립운동가들 등 흥미로운 내용이 다수 실려 있습니다. 사진과 기록 관련 자료도 풍부하게 첨부되어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어요. 각각의 내용 끝에 날짜가 적혀 있는데 강의하신 날인지, 집필하신 날인지 궁금하네요. 오랜만에 교수님의 책을 읽었더니 마치 다시 그 강의실에 앉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강의를 육성으로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진 학생 여러분, 즐거운 수업 시간이 되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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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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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지인인 이석의 소개로 선도병원의 관리부 구매담당으로 근무하게 된 무주. 이석은 개원초기부터 선도병원에서 이런 저런 일을 맡아 진행해온 경험도 있고, 누구보다 빨리 출근해서 환자들과 인사도 나누며, 다섯 종의 조간신문까지 읽어 아는 것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아픈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의 수술을 원장이 집도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의사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은, 아버지이기도 했죠. 그런 이석이 무주의 정의감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병원에서 해고당했다, 는 소문이 돕니다. 반은 진실, 반은 사실무근이라 할까요. 그 일을 진행한 건 무주가 맞지만 그것이 정말 이석의 해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그 일 이후로 무주는 이석을 배신했다는 자책감, 자신은 옳은 일을 했다는 정의감 사이에서 힘들어하며 병원 내에서도 이질적인 존재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이인시는 호황이던 조선 사업의 불황으로 위기를 맞이하여 폐업이 속출, 이탈 인구수가 급증했고, 도심에는 빈집이 늘어난 상태예요. 그 안에서 선도병원 또한 위태위태하고요. 쇠락해가는 도시와 병원은 이석의 명성과도, 이석을 고발한 후 차츰 무너져가는 무주의 생활과도 같아 보입니다. 병원에 입원해있던 이석의 아이가 결국 잘못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무주는 그마저도 전부 자신의 탓인 듯 여겨지죠. 그리고 무주에게도 아내의 뱃속에 있던 아기의 죽음이 찾아오고, 이석을 고발한 이후로 소원했던 아내는 서울의 친정으로 떠나버립니다. 어느 날, 다시 병원에 나타난 이석. 무주는, 이석은 각자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걸까요.

 

책의 뒷면에는 위태로운 오늘의 시대, 문학이 희망에 관여하는 방식!-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고, 작가 편혜영님이 보는 한국사회의 진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평도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런 문학적 의미에 관해서는 전혀 모르겠어요. 제가 독서를 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재미. 어떤 장르, 어떤 분야의 책이든, 책은 저에게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로 다가올 뿐이라 사회적 의미, 문학이 감추고 있는 그 무엇에 대해서는 사실 관심을 크게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이 작품이 저에게 준 것은 각 개인의 삶의 모습일 뿐이었어요.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이석을 고발할 수밖에 없었던 무주의 마음, 무주를 떠나간 그 아내의 마음, 그리고 안개처럼 가려져 있는 이석의 마음만을 감히 짐작할 따름입니다.

 

저에게 문학은 사회적으로 가지는 커다란 메시지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일이었어요. 저는 문학을 통해, 부족하나마, 사람의 마음 속 어둠을 들여다보는 것, 아픔을 추측해보는 것,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는 일들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책도 많이 읽으면서 왜 그러냐등등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더 노력해왔던 것 같아요. 제 주변에는 은근히 책도 많이 읽으면서 이상한 평가를 받는 사람들도 꽤 있었거든요. 혼자만의 세상에 갇히지 않고 타인의 마음을 한 번 더 생각해보는 법을, 책은 가르쳐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이 부족한 자신을 봅니다.

 

그러니 이 [죽은 자로 하여금] 이 갖는,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나 거창한 문학적 의미는 작품 뒤 해설을 참고하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느낀 것은 각각의 개인이 가진 고민, 외로움, 이인시와 더불어 쇠락해가는 사람들의 마음일 뿐이라, 깊은 지식을 원하시는 분은 제 리뷰가 많이 부족하게 여겨지실 겁니다.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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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나라 엄마 펭귄
이장훈 지음, 김예진 그림 / 51BOOKS(오일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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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손예진님과 소지섭님이 나온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보지 못했지만, 일본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감동은 지금도 여전히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엔딩 장면에서는 정말 숨이 헉 하고 막혔던 것 같아요. 그 때는 곰돌군은 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시기여서,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겠다, 그저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요, 지금은 짝꿍에 곰돌군까지 있다보니 다른 선택지는 생각할 수조차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녀는 비와 함께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떠나지 않았어도 됐을지 몰라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 그녀의 사랑이었겠죠.

 

[구름 나라 엄마 펭귄]은 한국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 등장한 책이라고 합니다. 엄마가 아들을 위해 직접 만들어준 책이라고 해요. 하늘 나라와 지상 세계 사이에는 하얀 구름 나라가 있는데, 하늘 나라로 가는 사람들이 지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 때까지 머무는 곳이랍니다. 그 곳에서 엄마 펭귄은 기억을 잃은 채, 지상 세계를 바라보며 어째서인지 자꾸 눈물을 흘려요. 어느 날 갑자기 많은 비가 쏟아지고 엄마 펭귄은 그 틈을 타 빗방울 열차를 타고 지상 세계로 향합니다. 지상 세계에서 그 누구를 만나도 멈추지 않던 눈물은, 엄마 펭귄이 똑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던 아기 펭귄을 만나고, 그 아기 펭귄이 엄마 펭귄을 꼭 안아주자 뚝 멈춥니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구름이 없어지기 전에 돌아가야 다시 지상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엄마 펭귄은, 눈물을 꾹 참고 환하게 웃으며 항상 아기 펭귄을 지켜볼 것을 약속하며 다시 구름나라로 떠납니다. 아기 펭귄도 엄마 펭귄이 지켜볼 것을 알고 있기에 전보다 더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어떤 분들은 그저 가슴 먹먹함만을 느끼고 책을 덮으실지도 몰라요. 그런데 전 역시 엄마인지라, 이 얇은 동화책 한 권을 읽다가 그만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습니다. 짝꿍도 짝꿍이지만, 제가 곰돌군을 낳고 키우지 않았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 있어요. 나를 위해서가 아닌 곰돌군을 위해, 짝꿍과 내 자신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부디 가능한 한 오래오래 곰돌군 곁에 있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되죠. 이렇게 어리고 사랑스러운 곰돌군을 두고 떠나야한다는 건, 으아,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그러니 영화 속에서 엄마가 아들을 위해 이 동화책을 만든 그 마음이 오죽했을지, 저는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누군가, 혹은 어느 책에선가 그러더군요. 부모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무보로서의 할 일을 다 한 것이라고. 곰돌군을 키우면서, 우리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요즘입니다.

 

사실 이 동화책, 곰돌군과 함께 읽고 싶었어요. 그런데 읽어주다 제가 펑펑 울어버릴 것 같아 평소에는 못 읽어주겠네요. 오히려 이 책을 곰돌군과, 그리고 지금 제 안에서 자라고 있는 튼풀군과 읽을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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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랑 뭐하고 놀지? - 한 뼘만큼 놀아 주면 한 폭만큼 행복해요
임미정 지음 / 학지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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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놀아줄 것인가-하는 문제는 곰돌군이 태어난 후부터 저의 고민 중 하나입니다. 곰돌군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뭘 잘 모를 때라 하루 종일 TV를 켜두기도 했었어요. 아직 뭘 모르는 곰돌군만 멀뚱히 쳐다보고 있기에는 제가 너무 심심했거든요. 효효. 그러다 어떤 기사를 접하고 영유아에게 너무 일찍, 많이 영상매체를 접하게 하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되도록 TV는 많이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럼에도 어떻게 알았는지 요즘은 어린이집을 다녀오면 ‘TV’ 소리가 입에 붙어서 간식을 먹일 때 잠깐씩 뽀로로를 보여주곤 한답니다.

 

그런데 비가 오거나 너무 춥거나, 너무 덥거나, 아파서 어린이집을 못가는 경우에는 하루 종일 집에서 뭘 하고 놀아줘야 하나 정말 너무너무 고민이에요. 책도, 스티커북도, 장난감 자동차도 한 번씩 가지고 놀아도 겨우 오전이 지나있을 뿐이거든요. 대체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아이와 놀아주는지 검색해도 저와 같은 고민을 가진 엄마들이 많을 뿐, 현실적인 조언을 얻기는 어려웠습니다. 결국 놀이와 관련된 이런저런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내 아이랑 뭐하고 놀지?]에는 0세부터 만 2세까지의 영아를 둔 부모를 위한 육아놀이 126가지가 실려 있습니다. 인상적인 건 어린이집 표준보육과정에 기초한 놀이들이라는 거예요. 저도 곰돌군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데요, 물론 이 책에 나오는 모든 놀이를 다 할 거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충 어떤 놀이들을 할 수는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책에서 강조하는 점은 영아와 부모의 상호작용입니다. 제가 TV를 보여주는 것에 부정적인 이유 또한, 영상매체들은 대부분 상호작용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이 책의 저자 또한 영아기가 인생의 큰 틀을 마련하는 기초가 되는 시기라는 점에서 부모와의 상호작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상호작용의 기본원리부터 상호작용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방법, 각 연령에 맞는 상호작용 놀이법이 소개되어 있어요. 얼마 전 곰돌군이 만 2세가 되었기에 저는 당연히 이 부분부터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기본생활부터 신체운동, 의사소통, 사회관계, 예술경험, 자연탐구 놀이에 걸쳐 다양한 놀이들이 실려 있었는데, 그 중에는 이런 것도 놀이가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있었어요. 내 이불과 베개 정리하기, 소매 올리고 손씻기, 식사 전·후 인사하기 등이 좀 의아하게 여겨졌지만 상호작용에 원리를 둔만큼 어쩌면 기본생활 놀이가 가장 중요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 곰돌군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집에서 꼭 한 번 실천해봐야겠어요. 그 외에도 그림책 읽기, 엄마 아빠랑 발바닥 맞대기, 야외활동 등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런 저런 책을 읽어도 저에게는 아직 놀이가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이 놀이가 우리 곰돌군에게 잘 맞을까, 즐거워할까 반응부터 생각하게 돼요. 일단 기본생활 놀이부터 하나씩 실행해봐야겠습니다. 중요한 건 상호작용이니까요.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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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3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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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겨울, 체코와 헝가리를 포함해 오스트리아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힘든 학기를 보낸 터라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고, 오랫동안 동경해온 동유럽 지역을 선택한 거였어요. 그 선택을 할 당시에 클림트라든가, ‘키스는 물론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때의 여행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 중에는 오스트리아 벨베데르 궁전에서 만난 클림트의 <키스> 도 있답니다. 그 외의 다른 그림들을 보면서 가이드의 설명도 열심히 듣고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기도 했지만, 사실 그 내용들이 전부 기억나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그 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라는 느낌은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이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에 클림트-가 포함되었다는 것을 알고 주저 없이 그와의 여행에 동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1918년 뇌출혈로 쓰러져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쭉 빈에서만 살았던 화가입니다. 저자는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데요, 당시에는 다양한 사조가 나누어지던 파리, 표현주의가 싹트기 시작한 베를린 같은 도시에 살았다면 <키스><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등과 같은 그의 대표작들은 결코 탄생할 수 없었을 거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자신의 작품에 황금을 녹여 얇게 바르는 기법을 사용했던 클림트는 흔히 황금의 화가로 불리지만,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부유하지만 시대착오적이고 허세에 빠져 있던 도시 빈의 모순을 클림트의 그림들이 표현하고 있다고 해요.

 

저자는 클림트의 전 생애를 더듬으며 그의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가난한 보헤미안 이민자 가정의 장남이자 7남매의 둘째였던 구스타프 클림트는, 형제 두 명과 함께 장식공예학교에 들어갑니다. 열일곱 살이 되면서 동생 에른스트, 친구 프란츠 마치와 예술가 컴퍼니를 결성하고 일감이 몰리면서 차츰 명성을 떨치기 시작해요. 책에서 본 초기 그의 작품은 클림트의 그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만, 누구에게나 시작이 있으니까요. 본격적으로 클림트 스타일이라 불리는 최초의 작품은 <팔라스 아테나>입니다. 과거의 예술과 문화에 기대, 황금으로 장식된 여신의 모습은 분명 인상적입니다. 클림트가 처음으로 금을 얇게 펴 바른 금박 기법을 사용한 작품은 <유디트> 이고요.

 

그리고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키스>에 대한 언급이 빠질 수는 없겠죠. 남녀가 입술을 맞대기 직전 서로를 포옹하고 있는 이미지를 10년 이상 반복해 그렸다고 해요. 이 작품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다양한 해석이 난무한다고 하는데요, 그것은 클림트의 복잡한 연인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평생의 연인이라 일컬어지는 에밀리가 있었음에도, 클림트는 자신의 그림의 모델이었던 수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가졌다고 합니다. 저자는 <키스>가 한 인간으로서, 완연한 생의 후반기로 들어선 클림트의 심정을 모두 토로한 작품이라고 해석합니다.

 

<키스>외의 다른 유명한 작품들도 풍부하게 소개하고 있어 혹시 오스트리아, 특히 빈, 그리고 특히 클림트의 그림을 보러 가기 전에 읽어두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찬찬히 저자의 글줄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빈의 거리를 걸으며 클림트의 그림들을 감상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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