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의 신
아가와 다이주 지음, 이영미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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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막차를 타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아빠가 귀가시간을 독촉하시기도 한 탓도 있지만, 제 자신이 밤길 다니는 걸 무척 무서워했거든요. 그래서 학창시절은 물론 대학에 들어간 후,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후에도 저는 ‘알아서’ 집에 일찍 일찍 들어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막차를 타기 위한 급박함, 놓칠 새라 빠르게 달리는 역동적인 숨들을 목격해보지 못했습니다. 막차라고 하면 조바심, 서두름 등의 단어가 생각나기 마련인데 [막차의 신] 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은 이상하게도 따뜻함, 여유로움, 한숨돌리기 같은 편안함이었어요. 한구석에 달님이 자리잡고 있는, 뭔가 애잔한 표지 때문이었을까요. 막차와 관련된 사람들의 아직 늦지 않은 이야기가, 우연한 사고로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총 일곱 사람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K역에서 발생한 인사사고로 인해 한밤의 지하철 운행이 잠시 멈춥니다. 누구 하나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답답한 분위기 속에서 그저 사고가 정리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 안에서 느껴지는 시선과 숨결. 누군가는 그 와중에도 치한을 만나고, 누군가는 아버지가 위독해 급히 병원으로 가야하며, 납기가 코앞에 닥친 IT 업계 엔지니어도 있고, 연인에게 이별의 편지를 보내고 마지막 만남을 준비한 여성도 있습니다.

 

겨울이라 그런 걸까요. 원래 스릴러와 미스터리 장르를 즐겨보지만 요즘에는 이렇게 따뜻하고 사연 있는 이야기들에 끌리더라고요. 한 편 한 편을 정말 오랜만에 음미하며 읽었습니다. 사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약간 어리둥절하기도 했습니다만. 전 <고가 밑의 다쓰코>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사람을 웃기고 싶었대.

웃는 얼굴이 없는 집에서 커서 웃는 얼굴 보는 게 좋았대. 그

래서 시설에서 나와 개그계의 문을 두드린거래.

p222

자신의 슬픔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다쓰코. 그 수많은 슬픔의 시간을 뒤로한 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의 이야기가 이렇게도 가슴을 후벼파는 것은, 소설 속 인물이지만 부디 앞으로는 그에게도 웃을 수 있는 일들만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겁니다. 늘 죽음과 가까웠던 그지만 죽음이 그에게는 아주 나중에, 훨씬 나중에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그런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우리의 지나간 시간과 앞으로 남은 날들을 되짚어봅니다.

 

 

다른 이야기들도 좋았지만, 전 이 <고가 밑의 다쓰코>만으로 이 책에 만점 주고 싶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을지 모르지만 아우, 전 이 이야기 왜 이렇게 좋은 거죠. 뭔가 가슴에 팍 와 닿아서 퍽 꽂혀버렸는데 이 감정을 제대로 풀어낼 수 없어 방안을 서성거릴 뿐입니다. 고통과 슬픔에 찬 인생임에도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의지,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성숙함에 대한 존경이라고, 일단은 그리 적어보겠습니다.

 

‘아가와 다이주’라는 매우 낯선 이름의 작가이지만, 이 겨울에 포근한 책이 필요하다면 이 작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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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톰 말름퀴스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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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은 후 가장 두려운 것은 어느 순간 예기치 못하게 남편과 이 아이들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인명은 재천이라,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의 의지대로 어쩌지 못하니 걱정해도 소용없겠지만 첫째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그 두려움은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무서운 것은, 내가 이 아이들과 남편을 두고 먼저 떠날 수도 있다는 것. TV에서 중병에 걸린 엄마가 아이들이 다 크는 것을 못보고 가는 것에 대해 무척 마음아파하는 장면을 몇 번 봤는데 그런 일이 나의 일이 될까봐, 생각만으로도 너무 두렵다. 저자인 톰은 그런 순간을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와 함께 할 미래를 꿈꾸고 있었을 뿐, 그 아내가 급성 백혈병으로 딸만 남겨둔 채 먼 길을 떠날 거라고 감히 생각이나 했을까.

 

내가 네 몫까지 아이를 사랑한다는 걸 너는 알 테지만,

그래도 좋은 시절은 다 지나고

이제 내 앞에는 중요한 일들밖에 남지 않았다는

기분이 든다.

p372

임신 33주, 톰의 아내 카린이 급성 백혈병으로 병원에 입원한다. 급작스러운 아이의 출산, 제왕절개 수술 후에도 카린의 상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아픈 아내는 병마와의 싸움에서 기진맥진한 순간에도 힘겹게 '리비아'라는 아이의 이름을 전달한다. 결국 출산 5일 만에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며칠 전만 해도 곁에서 웃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의 부재.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책임져야 하는 생명의 무게를 느낀다. 현재와 교차되는 과거의 톰과 카린의 대화들, 말다툼마저도 그립게 여겨질 그 순간들이 현재 톰이 느끼고 있는 슬픔과 대비되어 더욱 큰 아픔을 전달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그녀와 나누었던 아름다운 추억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톰은 급박했던 순간들, 상실과 괴로움으로 가득찬 기억을 덤덤하게 서술한다. 소설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자신의 경험이 녹아들어있는만큼 전해지는 슬픔은, 덤덤한 기술 방식에도 사무치게 마음을 압박해온다. 모두 건강이 최고라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정작 그것을 항상 새기며 살아가지 못한다. 잃고 나서야 건강이 있어야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할 뿐. 죽음으로 헤어진 사람은 이제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 어디에서도 다시는 만날 수 없다.

 

나에게 만약 저런 일이 생긴다면 남은 나의 삶은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리비아에 대한 책임과 사랑. 오직 그것만이 톰의 버팀목이 되었지만, 아무리 리비아를 사랑한다고 해도 카린이 주었던 온기와 사랑하는 감정은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은 흑백으로 변하고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만을 떠올리며 하루하루 버티지 않았을까. 아이가 주는 기쁨과 희망을 마음 속 깊이 느끼기에는 수없이 많은 시간의 흐름이 필요하게 될 터이다. 그러니 우리는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따뜻한 체온을 나누고 순간순간의 행복에 집중해야 한다. 톰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은 단 한 가지는 바로 그것이다. 바로 지금,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전달해야 한다고. 아낌없이. 주저없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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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의 생일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책 1
이와사키 치히로 지음, 엄혜숙 옮김, 다케이치 야소오 기획 / 창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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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곰돌군은 케이크 위의 촛불 끄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자신이 태어난 후 100일 단위의 기념일과 생일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생일 케이크 위의 촛불마저 첫째 곰돌군 몫이에요. 언제부터인가 케이크 위에 초를 꽂으면 불을 끄라며 '불, 불' 외치기 시작했고, 이제 제법 말이 트인 지금은 '불 꺼~!'라며 부엌과 거실 천장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촛불을 끄는 그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자신의 초를 기꺼이 넘겨주게 되죠. 그리고 엄마인 저는 어떻게든 기념일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 작은 케이크 위에 초를 꽂아주게 됩니다.

 

치이는 이제 다섯 살이 되는 여자아이에요. 촛불 다섯 개 한꺼번에 끌 거라며 다음 날 올 자신의 생일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오늘은 동무의 생일. 치이는 생일 카드를 써서 파티가 열리는 동무의 집으로 갑니다. 흔들리는 촛불을 바라보던 치이는, 그만 동무의 촛불을 대신 꺼버려요. 실수한 치이와 그런 치이를 놀리는 동무들. 당황하고 부끄러운 치이는 그 자리를 벗어나 도망칩니다. 너무 창피한 나머지 자신의 생일날 아무도 보고싶지 않아, 하지만 태어났던 그 날처럼 새하얀 눈을 보고 싶다고 별님에게 기도하는 치이. 그리고 드디어 아침이 됩니다. 과연 치이가 기도한 대로 새하얀 눈이 내렸을까요. 그리고 동무들은 치이의 생일을 축하하러 와주었을까요.

[눈 오는 날의 생일] 은 [창가의 토토]를 그린 이와사키 치히로 작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재출간 된 책입니다. 따뜻하고 순수한 색감으로 토토를 저의 마음 속에 데려단 준 작가의 동화책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첫째 곰돌군이 좋아할 것 같아 저도 마음이 설레었어요. 이와사키 치히로는 수채화와 수묵화를 결합한 화풍으로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가입니다. 평생 어린이를 작품 테마로 삼았던만큼, [눈 오는 날의 생일] 에서도 작가의 매력이 여과없이 발휘되어 있어요. 생일을 맞이한 치이의 두근거림, 동무의 생일에 가서 실수로 촛불을 불어버린 당혹감, 너무 창피한 나머지 아무하고도 어울리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 그럼에도 생일날 자신이 태어났을 때처럼 하얀 눈이 내리기를 기도하는 순수함이 따뜻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촛불을 끄는 아이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어른이 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일들이 아이에게는 아름답게, 빛나게, 기쁘게 다가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런 행복감이 [눈 오는 날의 생일] 로 인해 더 가슴 따뜻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책을 받아든 첫째 곰돌군은 역시 한 장 한 장 펼치며 촛불 그림을 발견하더니 '하나, 두울~' 세기 시작합니다. 조금 있으면 첫째 곰돌군이 태어난 지 1000일이 되는데 그 때도 커다란 케이크에 초를 가득 꽂아주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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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변해야 아이도 변한다
김경집.이시형.이유남 지음 / 꿈결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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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흔한 부모교육 내용이 실려있으려니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 안 읽었으면 어쩔 뻔 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요즘 시대에 맞는 내용이 재미있고 알차게 실려 있었어요. 서울특별시 교육청 주최로 열린 엄마 인문학 특강 내용인데 만약 다시 이런 특강이 있다면 직접 가서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이렇게 많이 고민하고 예전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공부해야 하는 줄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아이는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해주기만 하면 다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튼튼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첫째 아이의 태명은 튼튼이, 한 번의 유산 후 얻은 둘째 아이의 태명은 튼튼하게 잘 붙어있으라는 뜻으로 튼풀이라고 지었는데요, 이런 저도 튼튼이가 세 살이 되면서부터 학습과 공부에 귀가 열리더라고요. 분명 튼튼하고 행복하게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는데 말이에요.

아무래도 학교에 있다보니 그 동안 봐왔던 아이들의 모습을 저희 아이들에게 투영해서 볼 때가 가끔 있습니다. 밝고 행복한 아이들도 있지만, 무기력하고 침울하고 우울한 아이들도 많았죠. 우리 아이들에게 바라는 모습은 무엇일까, 어떤 표정으로 살길 바랄까 생각해보면 답은 딱 나와있는데 제가 어떻게 뭘 해줘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분명 공부만을 강요하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은데 그렇다고 공부를 완전히 배제해서는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벌써부터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공부 말고 뭔가 중요한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는데 딱 이 책이 제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세 분의 강연자들은 전부 '아이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해요. 김경집님은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아이가 공부하는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존재하는 직업 중 수십 만개는 10년 후에는 사라지게 될 것이고 새로운 직업이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에요. 질문하는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렇기 때문에 독서는 또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설명하는데요, 그 중 욕을 들으면 왜 불쾌한지, 아이들은 왜 욕을 하는지, 왜 욕설이 문제인지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해주셔서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아이들의 언어 사춘기 때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예도 들어주셔서 앞으로 기억해두었다가 꼭 실천해야겠다 마음먹었어요.

이시형님은 '부모의 자기감정 조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실 요즘 제가 고민되는 부분이기도 해요. 둘째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첫째에게 감정조절을 잘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거든요.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늘고, 조금만 실수해도 아이를 다그치는 제 모습이 괴물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데 이런 저의 모습을 아이가 보고 그대로 따라할까봐 겁이 났습니다. 저의 감정조절에 대한 반성은 물론, 아이를 내버려두어야 할 때와 그렇지 않아야 할 때, 아이가 성장할 때 엄마가 해주어야 하는 것, 그리고 어릴 적 운동이 평생 건강과 두뇌 발달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주의 깊게 읽었어요.

이유남님의 강연 내용이 제일 마음에 와 닿았는데요, 아무래도 같은 엄마이고 또 교사이기 때문일까요. 이유남님의 아이들은 어디 내놓아도 남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모범생이었는데 어느 날 두 명 모두 학교를 그만두고 방안에 틀어박혀 게임에 빠져 살아갑니다. 엄마는 속이 터지죠. 아무리 혼을 내고 하소연을 해도 소용없던 어느 날, 아들로부터 우리가 이렇게 된 건 모두 엄마 아빠 때문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어요. 항상 공부만을 강요하고 칭찬과 지지보다는 꾸중과 경멸의 말만 들어온 아이들이, 결국 참다참다 반란을 일으킨 겁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해요.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너희를 위해 안 해준 게 뭐가 있냐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딸이 자해소동을 벌이고 난 뒤에는 방문을 열어준 것, 밥을 먹어준 것 등의 사소한 일들에 감사하게 되었고 자신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모질고 독한 엄마였는지 반성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물이 [엄마 반성문]이라는 책으로 나왔다고 하니 이 책도 꼭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 '얼른, 빨리' 라는 말이었다는데, 으아, 저 요즘 튼튼이에게 -얼른 먹어, 빨리 일어나, 얼른 좀 해- 라는 말을 하는 빈도가 늘지 않았나 반성해봅니다.

책 제목으로 짐작하셨듯이 이 책은 아이를 어떻게 하면 똑똑하고 훌륭하게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아닙니다.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부모가 변해야 아이도 변할 수 있다는, 부모와 아이의 관계변화,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지지에 관한 내용이에요. 살아서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오는 사랑하는 아이들이잖아요. 그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겠습니다. 아이들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겠죠.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꼭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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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듣던 밤 - 너의 이야기에 기대어 잠들다
허윤희 지음 / 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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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들으며 하얗게 밤을 지새우던 때가 있었다. 입시준비를 하던 그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책을 읽거나 문제를 풀었고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때는 말할 것도 없이, 그리고 라식수술을 해서 눈도 제대로 못뜨고 누워있을 때도 라디오를 곁에 두었다. 외출했다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라디오를 켜는 일. 낮에 듣는 방송은 낮의 묘미가, 밤에 듣는 방송은 밤의 묘미가 있었다. 그 중에서 애정하는 주파수는 CBS. 천주교이기는 하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고정해놓은 것은 아니고, 그저 흘러나오는 음악들이 내 취향과 맞았을 뿐이다. 아침에는 팝송, 오전에는 클래식과 영화음악, 정오에는 가요, 오후에는 다시 팝음악과 조금 오래된 노래들, 저녁에는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음악. 그리고 하루의 끝에 허윤희님의 <꿈과 음악사이에>가 있다.

<꿈과 음악사이에>를 듣게 된 것은 고3 담임을 하면서부터였다. 아침 7시 반 출근, 야자감독까지 마치고 다시 학교를 나서는 시간은 밤 10시. 시동을 걸고 라디오를 틀면 꿈결처럼 허윤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도로 위를 달리는 차 안에서의 달콤하고 차분한 목소리는 피곤을 씻어주었고, 어느 때는 어서 빨리 내려 샤워하고 잠자리에 들어야함에도 사연을 듣느라, 음악을 듣느라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추억의 한조각을 차지하는 그녀의 라디오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돌보면서 몇 년간 듣지 못했다. 아이를 재우고 집을 정리하고 나면 어느 새 밤은 깊어있었고, 심신이 지쳐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다 조금 책을 읽다보면 시계는 금방 새벽을 향하는 날들. 깨닫지 못했는데 그리웠나보다. 그녀의 목소리가, 그녀가 전달해주는 이야기가, 그 라디오 방송이 주던 먹먹함과 설레임과 몽환이.

 

[우리가 함께 듣던 밤]은 하루의 끝에서 나를 위로해주던 허윤희님의 첫 에세이다. 차마 소개하지 못한 사연들, 그녀의 마음 속에만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이 글자의 힘을 빌려 마음 속을 파고든다. 노련한 기교보다는 투박함과 주저함이 느껴지는 글들을 보며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 육아와 고된 일상에 치여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타인의 이야기가 이렇게 힘을 갖게 된 것은 오롯이 그녀의 덕이다.

그날의 나도, 지금의 나도

모두 나지만

어제의 내가 부끄러워 견딜 수 없는

오늘의 나는

어쩌면 전혀 다른 사람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P32

이 문구를 읽으며 과거의 나를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도 허점투성이면서, 나는 왜 그들에게 그렇게 냉정하고 모질게 굴었을까. 절대 두 번째 기회를 주지 않고 칼처럼 잘라내버린 인연들이, 이제와서야 아프게 마음을 때리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조금은 쉽게 생각했던 내가 받는 벌은 아닌지, 요즘에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상처주고 아프게 했던 사람들에게 직접 미안하다는 말을 건넬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꼭 그래보고 싶다.

소설이 잘 써지지 않을 때면

난로 앞에 앉아 작은 오렌지 껍질을 짜서

불꽃 위에 끼얹고는

파란 불이 소리 내며 타는 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린다.

"걱정할 것 없다 지금까지 써왔다. 지금도 쓸 수 있다.

계속 문장 하나만 쓰는 것이다. "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문장이 나와서

그때부터는 계속 쓸 수 있게 된다.

 

P80. 어니스트 허밍웨이

언제나 '노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대문장가의 일화. 생애에 걸쳐 그것을 증명해보인 어니스트 허밍웨이. 그저 첫발을 뗄 뿐. 끝이 보이지 않는 육아의 터널 속에서 매일매일 생각하는 것은 '오늘 하루만 잘 지내보자'. 수많은 오늘이 보여 아름다운 날들이 될 거라는 믿음을, 유명작가의 글로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내가 해온 일들이 틀리지 않았어, 나의 믿음들이 보답받았다는 기쁨.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인정도 때로는 위안이 된다.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다시 밤에 라디오를 틀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배경삼아 책을 읽는 시간이 그동안의 노고를 보상받는 것 같아 행복했다. 잊고 있던 기억들, 잃어버린 줄 알았던 감성들이 다시 되살아나는 기분. 앞으로도 정신없는 날들은 반복되고 힘에 겨운 시간들은 계속되겠지만, 나를 나로 있게 해주는 것들을 잊지 말아야겠다 다짐해본다. 하루의 끝에 라디오가 있다는 기대, 그녀의 목소리로 다시 시작될 밤의 시간들에 마음이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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