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위한 세계 미술관
이유민 지음, 김초혜 그림 / 이종주니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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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곰돌군들에게 바라는 것 중 하나는, 명화와 클래식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욕심일까요. 흐흣. 정통하지는 못해도 어떤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듣고 누구의 무엇이다 정도는 알아줬으면 하는 것. 누군가에게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명화와 클래식을 즐기게 되면 관련 역사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자연히 여러 분야로 시각이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정통하지는 못해도 명화와 클래식을 좋아해요. 곰돌군들을 임신했을 때는 일부러 클래식을 더 많이 찾아 듣기도 했고요. 집에는 모 출판사의 <돌잡이명화> 전집이 있는데, 여러 그림들을 소개하면서도 아기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런저런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첫째 곰돌군이 자주 보는 편입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이 약간 들어있는 책을 좋아하는데 명화와 클래식을 같이 접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할까요. 명화와 클래식을 즐기는 멋진 청년. 아들 있는 엄마들의 로망아닐까요, 라고 감히 말해봅니다요.

그리하여. 이 [어린이를 위한 세계 미술관] 책에 끌린 것입니다. 둘째 곰돌군은 고사하고, 첫째 곰돌군에게도 아직은 이해하기 어려운 책인 것 같긴 하지만, 무엇보다 명화들이 큼지막하게 실려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화가의 이름은 물론 배경지식도 간단하게나마 설명되어 있어 찬찬히 넘겨보면서 읽기에 참 좋았습니다. 게다가 곰돌군이 좋아하는 동물 중 하나인 고양이가 등장! 요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니 곰돌군이 눈이 초롱초롱해지며 '엄마, 야옹이야!'하며 손가락으로 짚어보기도 했어요. 프랑스와 영국,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와 독일, 스페인과 러시아, 미국까지 총 9개 나라의 24 곳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다양한 그림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하면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하면 모나리자죠. 곰돌군이 읽는 영아수학동화 중에 미술관 관련 책이 있는데 그 책에도 모나리자 그림이 등장해요. 자주 읽는 책이라 기억이 났는지 '엄마! 이거!'라며 아는 척을 합니다. 이렇게 다른 책과도 연계해서 읽을 수 있어 저는 뿌듯하더라고요.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 다른 미술관 책이나 명화 관련 도서와는 달리 쉽게 쓰여져있기는 하지만 어른이 읽어도 매우 좋은 책입니다. 그림들이 페이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글밥의 수가 적어 명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 혹은 접해보기는 했지만 어쩐지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 들어 멀리하고 있던 사람이 읽는다면 어느새 명화의 세계로 빠져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에요. 이 책에 소개된 여러 미술관의 다양한 그림들을 보니 곰돌군들과 여행을 계획하고 싶어집니다. 집에서 함께 명화 관련 책을 열심히 읽다가, 곰돌군들이 초등학생 정도 되면 이 책에 있는 미술관들을 탐방해야겠습니다. 곰돌군들이 부디 즐거워해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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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엄마 - 세 아들 모두 스탠퍼드에 보낸 스탠퍼드 출신 엄마의 자녀 교육법 50가지
천 메이링 지음, 강초아 옮김 / 서교출판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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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세 아들을 모두 스탠퍼드 대학교에 보냈다는 문구 때문이었다. 스탠퍼드처럼 구체적으로 대학 명칭까지 생각해본 것은 아니어도 나는 내심 우리 곰돌군들이 공부를 한다면, 이왕이면 좀 잘해서 외국에 있는 대학에 다녔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늘 남편에게 '우리 아이들은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 받고 외국에 있는 대학에 다닐거야. 그러니 걱정마'라고 얘기하곤 하는데, 남편은 그 말을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듣는 상황. 물론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못해도 상관없다. 자신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어디서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무척 감사할 따름이다. 외국에 있는 대학에 다니면 좋겠다-는 것은 단지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이 개입된 희망일 뿐, 희망은 희망으로 남겨두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엄마로서 세 아들을 모두 스탠퍼드 대학에 입학시켰다는데, 그 방법이 어찌 궁금하지 않겠는가, 이 말이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이 엄마 또한 스탠퍼드 출신이었다는 것. 게다가 세 아들은 모두 국제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있는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해 스탠퍼드 대학에 진학했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힘이 빠졌다. 어떤 조건이든 스탠퍼드 대학에 진학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나의 기준에서의-평범한 가정의 세 아들 교육 이야기였다. 홍콩 출신인 한 여인이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낳은 세 아들들이 기본 교육과정이나 혹은 그녀만의 특별한 노하우로 스탠퍼드 대학에 진학했다는, 그런 이상적인 이야기. 물론 저자 또한 50가지 교육법을 제시하고는 있으나 그녀의 집안이 평범하지는 않지 않나. 그녀 또한 홍콩에서 태어났지만 가수로 활동하다가 스탠퍼드 대학에 진학했고, 현재 가수 겸 방송인으로 활동하면서 유니세프 아시아 홍보대사를 역임하기도 하는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일본의 조치 대학과 캐나다의 트렌토 대학까지 졸업한 인재가 낳은 아들들 또한 인재였던 것이다!

 

내 마음이 비뚤어진 것인지 모르겠으나,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책이라 그런지 그녀가 제시한 50가지 교육법은 크게 감흥을 주지 못했다. 다만 <다툰 뒤에는 정면으로 소통하자>는 챕터에서 큰아들과의 대화가 마음에 걸려 중요한 회의를 뒤로 하고 아들의 기숙사를 먼저 찾은 이야기에는 공감했다. 나도 평소에 아이들에게 잘못했을 때 마음 속 깊이 미안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엄마가 되자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외의, 바쁜 와중에 모유수유를 했다거나 냉동식품이나 패스트푸드를 만들지 않고 세 아들의 체질을 따져 늘 음식을 준비했다는 일화조차 심한 자기자랑처럼 다가왔다. 사정이 안되서 모유수유를 못하는 엄마들도 많고, 일상에 치여 살고 있지만 요리하는 시간보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더 늘리고 싶어 끼니는 간단하게 때우기도 한다는 엄마들도 있다. 읽는 사람마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겠지만, 저자의 이야기는 나에게는 너무 자기과시처럼 보여 무척 불편했다. 다른 독자들은 어떤 시각에서 읽었을지 궁금하지만, 음, 글쎄 내가 이 책을 다시 들여다 볼 일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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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미스터리 1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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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작품 외의 개인정보가 베일에 가려진 작가. '후지마루'라는 단 네 글자만 무심히 툭 내세워 발표한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은 일본에서 20만부가 팔리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보다도 우리나라에서는 [내일 나는 죽고 너는 되살아난다]라는 소설이 먼저 발표되었는데요, 저의 기준에 한참 못미치는 표지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미 절판되었더라고요.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같은 작품이라면 인기가 없었을 리가 없는데 뭔가 아주 아쉬운 기분이에요. 그만큼 읽는 동안 내내 저는 이 작품 속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이 아르바이트는 최악이지.

시간 외 수당은 안 나와.

교통비도 없어.

아무렇지도 않게 이른 아침부터 불러내지.

게다가 유령 같은 '사자(死者)'를 저 세상으로 보낸다는 상식 밖의 일을 시켜.

무엇보다 시급이 300엔이야.

300엔이라고.

어이없는 수준을 넘어서 웃음이 날 정도지.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너한테 이 아르바이트를 추천할게"

"알아주었으면 해. 이 세상에 멋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분명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

흩날리다 사라지는 눈 같은 이야기.

 

어느 날 현관 앞에 나타나 느닷없이 사신으로 채용하겠다는 말을 듣는 사쿠라. 눈 앞에는 동급생 하나모리 유키가 서 있습니다. 시급 300엔에 시간 외 수당도 없고 근무 스케줄 조정도 어려운, 이 사신이라는 아르바이트. 하나모리의 말에 황당해하면서도 사쿠라는 어떤 일에 대한 매듭을 짓기 위해 사신 일을 받아들입니다. 그가 맡은 첫 번째 임무는 예전에 교제했던 아사쓰키의 바람을 들어주는 것. 그녀는 입원한 동생에게 언니 노릇을 제대로 못한 것을 사과하고 늘 고마웠다는 마음을 전달해 소원해진 사이를 회복하고 싶다고 말해요. 아사쓰키가 동생의 병원을 다녀온 그 날 밤, 오랜만에 사쿠라와 아사쓰키는 대화를 나누고, 하나모리는 '오늘 밤을 소중하게 간직하라'며 자리를 비켜줍니다. 그리고 찾아온 깨달음. 그 날 이후 사쿠라의 본격적인 사신 아르바이트가 시작됩니다.

 

가벼운 라이트노벨이라 생각해 읽기 시작한 소설. '일상의 소중함'을 주제로 하는, 그저 그런 진부한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읽어가는 동안 흐트러져있던 자세를 바로 하게 되었고, 어느새 가슴을 짓누르는 감동과 고통에 눈물이 났습니다. 사쿠라와 하나모리는 사신 일을 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요. 잃어버린 지갑을 찾고자 그들을 하인처럼 부리는 구로사키, 아기를 낳다가 세상을 떠난 히로오카, 엄마에게 학대당해 목숨을 잃은 시노미야 유. 이 세상에서의 시간이 다 한 후 사자로서의 새롭지만 가상의 세계에서 살게 된 그들은, 나름대로 깨달음을 얻거나 반성하며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 끝에 자리잡은 하나모리의 비밀. 6개월이면 사신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그 동안의 기억은 모두 사라지는 사쿠라에게, 일생일대의, 절대 잊고 싶지 않은 일들이 벌어져요.

 

이 작품에 제가 더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엄마로서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만드는 에피소드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난 히로오카가 가진 미련은, 같은 여자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가상의 시간 속에서 그녀는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100%의 사랑이 아니라 누군가를 향한 분노가 섞인 감정이라는 자각 속에서 그녀는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아들을 향한 사랑을, 가상의 시간이 지나가면, 어린 아들은 기억조차 못할 거라는 현실에 제 마음이 미어졌습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학대당한 시노미야 유의 사연은 지금 저의 행동들을 돌아보게 해주었어요. 교사인 유의 엄마, 스트레스에 취약한 유의 엄마, 스트레스를 유에게만 푸는 유의 엄마. 요즘 첫째 곰돌군에게 화를 내는 일이 늘었는데, 혹시 이것이 나의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푸는 것이 아닌가, 가벼운 엉덩이 팡팡이 언젠가 심각한 폭력을 초래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드러나는 하나모리의 비밀은, 정말, 엄마로서 산다는 것, 아이가 나라는 사람을 엄마로 두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하는 부분까지 생각하게 해주었죠. 읽는 내내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진부하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반복되는 일상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육아에 지치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 같아 문득문득 힘에 부치더라도 사랑하는 남편과 아기들의 얼굴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것, 아침에 헤어진 가족이 저녁시간이면 모여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이 소중한 시간들을 헛되이 쓰지 않도록, 매일매일 마음을 다잡으며 살아야겠어요.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마음 깊이 느끼고 생각하게 해준 이야기. 후지마루 작가의 다음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추가시간을 통해 '사자'는 미련을 풀 방도가 없다는 걸 받아들인다.

그러고 나서야 '사자'는 비로소 청산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후회로 점철된 인생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조그마한 행복을 찾아내는 청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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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네가 나를 그리워했으면 좋겠다
그림은 지음 / 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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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해야겠다. 아무래도. 책을 읽고난 후부터 수십 번 고민했지만, 그래서 이 책의 리뷰를 남기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솔직한 리뷰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온 나로서는, 나의 이 대전제를 어길 수가 없다. 성실하고 소중하게 자신의 그림과 글을 꾹꾹 눌러담은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에게 이 책은 큰 의미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책을,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할 수는 없다. 나처럼 별로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굉장히 좋았다고 말해줄 독자도 분명 있을 터이니 작가가 나름대로 갈무리해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왜 이 책이 나에게 의미있게 다가오지 못했는가-하면,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30대,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지만 직장생활 10년차, 한 남자의 아내, 아들 둘 엄마. 여기에 딸과 며느리의 역할이라는 것도 추가할 수 있겠지만, 사실 지금의 나에게 이 역할은 매우 미미하다. 왜냐. 나는 나 자신은 커녕,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남편 소홀히 챙기기>를 몸소 실현 중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 우리는 다짐했었다. 아이가 생겨도 우리는 서로를 먼저 챙기자고, 당신과 내가 일번이라고. 바뜨. 첫째 곰돌군과 둘째 곰돌군이 태어나면서 생각보다 서로를 먼저 챙기는 일이 매우 힘든 일임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가는 존재님들이다, 이 녀석들은. 게다가 둘째 곰돌군은 이제 5개월. 더더욱 손이 많이 간다. 옆에 앉아 흘러내리는 침만 닦아도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또한 게다가. 첫째 곰돌군은 동생을 본 후 다시 아기가 되길 희망한다. 우유도 누워서 젖병에 먹여달라하고 온 바닥을 기어다니며 옷으로 깨끗이 청소하며 안아줘, 업어줘를 늘 달고 산다. 또또한 게다가. 나의 멘탈은 <내 머리속의 지우개>를 시현 중이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챙기다보니 놓치는 게 생기는데 그 횟수가 굉장하다. 삶에 치이는 나에게 사랑을 노래하고 감성적으로 호소 하는 책들은, 뭐랄까, 정말 다른 세상의 일처럼 느껴진다고 할까.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것이다.

 

내가 대학생이었다면, 아니 결혼하기 전의 직장인만 됐어도 이 책을 이렇게까지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때의 나도 고민이 많았고, 사랑에 울고, 새벽의 감성충만한 공기를 사랑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시간이 흐르고 이런 저런 일을 겪은 지금의 나에게는, 이 책은 그저 어리광처럼 느껴진다. 겪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라 생각한다. 그 시절의 아픔과 그 때의 외로움이 한때는 세상 무너지게 아프게 다가왔어도, 현재의 나에게는 그저 인생의 한 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물론 극복하지 못할 아픔도 존재하겠지만.

 

그러니 작가여. 너무 상처받지 마시라. 나의 상황과 마음에 이 책이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지 그대의 작품이 훌륭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니. 그저 나의 취향에 맞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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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라일락 걸스 1~2 세트 - 전2권 걷는사람 세계문학선 3
마샤 홀 켈리 지음, 진선미 옮김 / 걷는사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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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세 명의 여성, 캐롤라인, 카샤, 헤르타. '프랑스 영사관을 위한 가족 후원자 대표'로 자원봉사 일을 하는 캐롤라인. 프랑스의 문화와 사람들에 매력을 느끼는 그녀는 후원을 위한 행사에서 폴 로디에르를 만나고, 그에게 매력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에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죠. 품어서는 안되는 마음이라며 자신을 다잡지만 어느새 사랑하게 되어버린 두 사람. 그 와중에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고 폴은 프랑스에 있는 아내를 혼자 둘 수 없다며 돌아갑니다. 편지로나마 안부를 전하던 폴의 소식이 끊기고 전전긍긍하던 캐롤라인 앞에 폴의 소재가 적힌 편지가 도착하고,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향해요. 카샤는 폴란드 소녀로 나치에 대항하는 활동을 하다가 언니 수산나, 엄마, 사랑하는 피에트릭의 동생 루이자와 라벤스브뤼크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실험들. 생체실험을 당한 여성들은 '래빗'이라 불리고, 그 실험을 주도하는 사람들 가운데 독일인 헤르타가 있습니다.

 

전쟁 한 가운데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은 카샤입니다. 힘없는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고, 수용소에 끌려가 고통스러운 실험을 당했으며, 사랑하는 엄마와 친구, 선생님을 잃었으니까요. 언제 죽을 지 알 수 없는 삶. 그런 생활 속에서도 우정은 피어나고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더욱 굳건해지지만 역사에 휘말린 한 소녀의 운명은 비참할 뿐입니다. '래빗'은 생체실험을 당한 사람들이 제대로 걸을 수 없어 한쪽 발을 뛰면서 움직여야했기에 붙여진 명칭입니다. 이 별명에서조차 그들을 한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각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헤르타를 포함한 독일인들은 스스럼없이 래빗이라 부르며 병들거나 움직이지 못하거나 약해진 사람들의 생명을, 아무 거리낌없이 이런 저런 방법으로 빼앗아버렸죠. 지옥과도 같은 시간 속에서 목숨을 건 탈출에 성공한 카샤였지만, 그 후의 삶이 그리 행복해질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자신이 아니었다면 엄마가 끌려가지 않았을 거라는 죄책감, 엄마가 정말 죽었는지 단순히 실종된 것인지 알 수 없는 현실, 아빠의 옆자리를 지킨 다른 여인에 대한 적대감은 카샤를 냉정하고 건조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렸어요.

 

우린 여자들입니다. 미스 패리디.

래빗이라 불리길 원치 않았던 여자들입니다.

우리에 갇힌 놀란 토끼들이 아닙니다.

선물을 받을 수 없는 나라에 살고 있는 여자들입니다.

그래도 모르겠습니까?

미국산 새 핸드백?

사람들이 슬그머니 사라지는 곳에서?

 

캐롤라인과 헤르타는 카샤를 중심에 두고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여인들입니다. 캐롤라인은 전쟁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데 여생을 바친 데다, 수용소 생활을 한 엄마의 친구로부터 '래빗'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녀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배상하는 데 전심전력을 다합니다. 폴을 향한 마음조차 그녀의 선한 본성을 거스를 수 없었는데요, 죽은 줄 알았던 폴의 아내가 살아돌아온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들의 딸을 찾아달라는 도움을 뿌리치지 못하고 아이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캐롤라인의 모습에서는 경건함마저 느껴질 정도였어요. 반면 헤르타는 독일인으로서 자신이 해야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해야 하는 일이었는지 묻고 싶어요. 멀쩡한 한 인간의 다리를 절개하고 뼈와 근육을 제거한 후 이물질을 넣어 상태를 지켜보고, 일부러 바이러스를 몸 속에 주입해 추이를 관찰하는 것이 정말 해야만 하는 일이었는지를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카샤와는 달리, 전쟁이 끝난 후 일정 기간 복역했지만 지금은 의사로 자리잡은 헤르타의 모습에 분노를 느낀 것은 비단 저뿐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엄마에 대한 죄책감, 게다가 엄마와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떠나보냈다는 것에 힘든 시간을 지나온 카샤는, 그러나 헤르타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로 조금은 마음의 짐을 덜어낸 듯 합니다. 그녀가, 마침내, 진정한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거든요. 사랑하는 피에트릭을 이제서야 겨우 평온하게 끌어당길 수 있을 정도로.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살아남은, 정말 대단하고 훌륭한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점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살아남는 것 그 자체가 위대한 일일 수 있으니까요.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간혹 있었지만, 기나긴 아픔의 강을 건너 묵묵히 삶을 이어온 카샤는 물론, 자신의 시간을 바쳐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자 했던 캐롤라인의 모습은 묵직한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녀들의 라일락 같은 삶을, 그리고 거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응원하고, 응원받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라일락이 거친 겨울을 지낸 후에만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사랑하셨어.

그런 어려움을 거친 후에야 이 모든 아름다움이 나타나게 되다니

기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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