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라일락 걸스 1~2 세트 - 전2권 걷는사람 세계문학선 3
마샤 홀 켈리 지음, 진선미 옮김 / 걷는사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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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세 명의 여성, 캐롤라인, 카샤, 헤르타. '프랑스 영사관을 위한 가족 후원자 대표'로 자원봉사 일을 하는 캐롤라인. 프랑스의 문화와 사람들에 매력을 느끼는 그녀는 후원을 위한 행사에서 폴 로디에르를 만나고, 그에게 매력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에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죠. 품어서는 안되는 마음이라며 자신을 다잡지만 어느새 사랑하게 되어버린 두 사람. 그 와중에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고 폴은 프랑스에 있는 아내를 혼자 둘 수 없다며 돌아갑니다. 편지로나마 안부를 전하던 폴의 소식이 끊기고 전전긍긍하던 캐롤라인 앞에 폴의 소재가 적힌 편지가 도착하고,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향해요. 카샤는 폴란드 소녀로 나치에 대항하는 활동을 하다가 언니 수산나, 엄마, 사랑하는 피에트릭의 동생 루이자와 라벤스브뤼크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실험들. 생체실험을 당한 여성들은 '래빗'이라 불리고, 그 실험을 주도하는 사람들 가운데 독일인 헤르타가 있습니다.

 

전쟁 한 가운데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은 카샤입니다. 힘없는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고, 수용소에 끌려가 고통스러운 실험을 당했으며, 사랑하는 엄마와 친구, 선생님을 잃었으니까요. 언제 죽을 지 알 수 없는 삶. 그런 생활 속에서도 우정은 피어나고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더욱 굳건해지지만 역사에 휘말린 한 소녀의 운명은 비참할 뿐입니다. '래빗'은 생체실험을 당한 사람들이 제대로 걸을 수 없어 한쪽 발을 뛰면서 움직여야했기에 붙여진 명칭입니다. 이 별명에서조차 그들을 한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각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헤르타를 포함한 독일인들은 스스럼없이 래빗이라 부르며 병들거나 움직이지 못하거나 약해진 사람들의 생명을, 아무 거리낌없이 이런 저런 방법으로 빼앗아버렸죠. 지옥과도 같은 시간 속에서 목숨을 건 탈출에 성공한 카샤였지만, 그 후의 삶이 그리 행복해질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자신이 아니었다면 엄마가 끌려가지 않았을 거라는 죄책감, 엄마가 정말 죽었는지 단순히 실종된 것인지 알 수 없는 현실, 아빠의 옆자리를 지킨 다른 여인에 대한 적대감은 카샤를 냉정하고 건조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렸어요.

 

우린 여자들입니다. 미스 패리디.

래빗이라 불리길 원치 않았던 여자들입니다.

우리에 갇힌 놀란 토끼들이 아닙니다.

선물을 받을 수 없는 나라에 살고 있는 여자들입니다.

그래도 모르겠습니까?

미국산 새 핸드백?

사람들이 슬그머니 사라지는 곳에서?

 

캐롤라인과 헤르타는 카샤를 중심에 두고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여인들입니다. 캐롤라인은 전쟁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데 여생을 바친 데다, 수용소 생활을 한 엄마의 친구로부터 '래빗'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녀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배상하는 데 전심전력을 다합니다. 폴을 향한 마음조차 그녀의 선한 본성을 거스를 수 없었는데요, 죽은 줄 알았던 폴의 아내가 살아돌아온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들의 딸을 찾아달라는 도움을 뿌리치지 못하고 아이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캐롤라인의 모습에서는 경건함마저 느껴질 정도였어요. 반면 헤르타는 독일인으로서 자신이 해야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해야 하는 일이었는지 묻고 싶어요. 멀쩡한 한 인간의 다리를 절개하고 뼈와 근육을 제거한 후 이물질을 넣어 상태를 지켜보고, 일부러 바이러스를 몸 속에 주입해 추이를 관찰하는 것이 정말 해야만 하는 일이었는지를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카샤와는 달리, 전쟁이 끝난 후 일정 기간 복역했지만 지금은 의사로 자리잡은 헤르타의 모습에 분노를 느낀 것은 비단 저뿐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엄마에 대한 죄책감, 게다가 엄마와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떠나보냈다는 것에 힘든 시간을 지나온 카샤는, 그러나 헤르타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로 조금은 마음의 짐을 덜어낸 듯 합니다. 그녀가, 마침내, 진정한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거든요. 사랑하는 피에트릭을 이제서야 겨우 평온하게 끌어당길 수 있을 정도로.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살아남은, 정말 대단하고 훌륭한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점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살아남는 것 그 자체가 위대한 일일 수 있으니까요.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간혹 있었지만, 기나긴 아픔의 강을 건너 묵묵히 삶을 이어온 카샤는 물론, 자신의 시간을 바쳐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자 했던 캐롤라인의 모습은 묵직한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녀들의 라일락 같은 삶을, 그리고 거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응원하고, 응원받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라일락이 거친 겨울을 지낸 후에만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사랑하셨어.

그런 어려움을 거친 후에야 이 모든 아름다움이 나타나게 되다니

기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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