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나랑 - 배려 네 생각은 어때? 하브루타 생각 동화
세바스티앙 브라운 지음, 전성수 감수 / 브레멘플러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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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첫째 곰돌군이 유독 저만 찾기 시작한 것은 둘째 곰돌군이 태어난 시기와 맞물립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죠. 엄마 아빠는 물론 외가와 친가의 사랑을 독차지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병원에 가서 2주 동안 자리를 비우고, 엄마가 돌아오기는 왔는데 모르는 아기가 동생이라며 안방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제가 조리원에 있던 2주 동안 아빠와 더 친밀해졌다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출산휴가 1주일에, 큰맘 먹고 기본 주어진 휴가를 1주일 더 써서 2주 내내 첫째 곰돌군과 붙어 있었거든요. 놀이공원은 물론 악어가 보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직접 악어를 보여주기 위해 대전에 있는 동물원까지 다녀오기도 했어요. 덕분에 그 2주 동안 어린이집은 근처도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점이 있었어요. 바로 곰돌군이 '어린이집은 엄마랑 갈래'라고 줄곧 얘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의 등하원은 휴직 중인 제가 당연히 맡아 했고, 아이의 마음 속에 '어린이집은 엄마랑 가는 것, 엄마와의 영역'이라고 구분지어진 것은 아닌가 싶었죠.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 곰돌군의 껌딱지 증상은 한층 깊어졌습니다. 예상한 결과였지만, 모든 것이 리셋되었어요. 목욕도 엄마, 밥도 엄마, 같이 자는 것도 엄마. 이런 상황에서 둘째 곰돌군을 돌보는 것은 자연스럽게 남편 몫이 되었고, 결국 남편은 퇴근해서 아침까지 둘째 곰돌군을 전담 마크해야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새벽에 깨는 일 없이 첫째 곰돌군 옆에서 나름 충실한 수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덧 둘째 곰돌군이 8개월. 조금 괜찮아지기는 했지만 아이에게 여전히 우선순위는 엄마인 저입니다. 어느 때는 하도 아빠 대접을 소홀히 해서 남편이 무척 서운해한 적도 있어요. 아이가 자기를 싫어한다면서요. 그러면서도 밖에 나가면 꼭 아빠에게 안아달라, 목마 태워달라하며 붙어 있습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만, [아빠랑 나랑]을 봤을 때부터 꼭 이 책은 아이와 함께 읽고 싶었습니다. 아니, 아빠와 아이가 함께 읽기를 바랐어요. 잠들기 전 책도 주로 제가 읽어줬지만, 요즘은 은근슬쩍 남편에게 떠밀고 아이와 함께 책을 읽도록 하고 있는데요, 아이가 이 그림책을 통해 아빠에 대한 애정을 깨닫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요즘 자신을 아기 곰돌군 1호, 동생을 아기 곰돌군 2호라 칭하고 있기도 해 그림 속 아기 곰돌군과 자신을 동일시하기에도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이 그림책에 등장하는 것은 아빠곰과 아기곰입니다. 아침에 다정한 목소리로 아기곰을 깨우는 것도 아빠곰, 맛있는 밥을 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숨바꼭질하고 들판을 달리는 것도 아빠곰입니다. 아빠곰은 아기곰이 춥지 않게 꼭 안아주고, 아빠곰이 하품을 하면 아기곰도 하품을 하며, 아기곰은 항상 자신을 지켜주는 아빠곰을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빠곰에게 사랑한다는 고백도 잊지 않아요. 파스텔톤의 따스한 색감이 아빠곰과 아기곰 사이에 흐르는 사랑의 기류를 한층 더 포근하게 만듭니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사랑이 마음 속 깊이 전달되는 느낌이에요.

 

이 그림책이 특별한 이유는 '하브루타 생각놀이터' 활용방법에 대해 가이드를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아빠곰이 아기곰을 깨우는 장면에서는 누가 아이를 깨우는 지, 누가 밥을 줄 때 기분이 제일 좋은 지, 자신이 아빠곰이라면 아기곰과 어떤 놀이를 했을 지, 아빠가 미울 때도 있는 지 물어보는 생각카드가 같이 들어 있습니다.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으면 꼭 독후활동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전 독후활동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책을 읽고 마음으로 깊이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기거든요. 그 책에 대해 감동과 여운에 젖어있는데 갑자기 독후활동을 하자며 무언가를 물어보고 만들고 하다보면 오히려 처음 느꼈던 그 감정이 희석될 수도 있다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동봉된 생각카드는 하브루타를 기반으로 하기도 하고, 아빠가 미울 때도 있는 지에 물어본다는 점 등이 서로 내밀한 속마음을 드러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 정도면 아이용 독후활동으로 괜찮겠다 싶습니다.

 

 

아이가 더 크면 엄마인 저보다 아빠와 공유하는 시간들이 더 많아지겠죠. 아무래도 아들과 아빠니까요. 아빠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싶어 고민하는 사람이 아빠라는 걸 우리 곰돌군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 남편이 없을 때 저도 아이와 꾸준히 여러 번 읽어줘야겠어요. 아이의 마음 속에 아빠가 멋진 모습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요 그림책이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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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권의 그림책 - 어린이 교육 전문가가 엄선한
현은자 외 지음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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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곰돌군과 함께 그림책을 읽으면서 책에 대한 욕심이 더 커져버렸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읽는 소설, 역사, 인문 분야로만 책탑을 쌓았는데, 그림책에 빠지다보니 전집을 사들이기 시작한 거죠. 네, 맞아요. 첫째 곰돌군을 위한 책이다, 그림책마다 읽어줘야하는 적정 연령대가 있다며 남편을 설득한 배경에는, 제 욕심을 채우려는 의도가 다분히 들어있습니다. 앞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글밥이나 그림의 수준에 따라 곰돌군이 읽을 수 있는 연령이 있고, 일정 시기가 지나면 너무 쉬운 책은 또 읽지 않으려고 하니 말이에요. 책을 좋아하는 엄마 밑에 태어났으니 아기 곰돌군들도 책을 좋아해주길 바라는 마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닐까요. 예측하지 못한 것은, 함께 그림책을 읽다보니 그 책이 주는 감동과 여운에 제가 오히려 더 젖어버려 눈물 짓거나 박장대소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겁니다.

그림책에 빠졌으니 그림책이 관련된 책에도 당연히 눈길이 갈 수밖에요. 추천하는 그림책은 뭐가 있나, 같은 그림책을 보고 이 사람은 무엇을 느꼈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 그림책을 읽었나 궁금한 것도 많아졌습니다. 그런 저이니 '어린이 교육 전문가가 엄선'했다고 하는, 이 '100권의 그림책'에 귀가 쫑긋, 눈이 번쩍하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100권이나 되다보니 그저 단순히 어떤 그림책들이 있고, 간단 줄거리 정도만 소개되어 있겠거니 하는 예상을 간단히 깨버리고, 책은 굉장히 촘촘하고 꼼꼼하게, 방대한 양을 다루고 있음에도 '나 성실'이라는 타이틀을 단번에 꿰어찼습니다.

100권의 책들이 표지와 작가소개, 줄거리와 서평, 독후활동 가이드까지 소개되어 있습니다. 책들은 세 가지 분류법에 따라 엄선되어 있는데요, 첫번째 분류는 [어린이의 세계와 그림 이야기책]에 근거해 '내적 세계, 가족 세계, 사회적 세계, 자연적 세계, 문화적 세계'로 나누어졌습니다. 두 번째' 분류법은 그리스도인 부모와 교사를 고려하여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참고했다고 되어 있고요. 출판사 자체가 기독교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 책 날개에는 하나님을 소재로 한 책들이 소개되어 있기도 한데요, 딱히 종교와 관련해서 거부감 가질 것 없이 저처럼 그림책 자체만 중심에 놓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 분류법은 만 5세 누리과정의 생활주제를 사용했다고 하네요.

꼼꼼하게 적힌 줄거리와 서평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그림책을 다 읽은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책의 묘미는 역시 직접 읽어보는 데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 5세를 기준으로 했다고 하니 저희집 만 3세 곰돌군이 읽기에는 조금 어려운 책들도 있겠지만, 미리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네, 책 욕심에 또 불이 붙은 제가 먼저 읽어보렵니다. 전 지금까지 단행본 보다는 전집 구매 비율이 높았었는데 이번 기회에 단행본 세계에도 흠뻑 빠져들어볼까 해요. 저처럼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는 부모님, 홀로 그림책의 바다를 유영하시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백과사전처럼 길잡이가 되어 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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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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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일을 하며 자유롭게 생활하는 나루세 마사토라. 지하철에서 자살을 시도하던 아사미야 사쿠라의 목숨을 구해 준 것을 계기로 그녀와 교제하게 되면서, 여러 여자와 잠자리를 해온 것과는 달리 진실한 사랑을 갈망하던 나루세는 사쿠라에게 점점 빠져든다. 한편 고등학교 후배인 기요시의 부탁으로 그가 짝사랑하는 구다카 아이코의 할아버지, 구다카 류이치로의 뺑소니 사건을 조사하게 된 나루세. 기요시의 부탁이기도 했지만 얼치기 탐정으로 일한 전력이 있는 그는, 류이치로가 호라이 클럽이라는 유령회사와 연관이 있었으며 그 회사로부터 고가의 물건들을 사들이고 있었고, 최근에 든 생명보험이 모두 호라이 클럽 앞으로 되어 있는 것에 의구심을 느낀다. 나루세는 그의 사고 경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조사에 착수, 예상치 못한 전개와 반전은 독자들을 멍-한 상태로 만들어, 결국 또다시 첫장으로 돌아가 문장 하나하나를 꼼꼼히 읽어보게 만드는 현상을 초래한다.

1판 1쇄 발행은 2005년.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이다. 일본 미스터리에 빠져들면서 입소문으로 들어왔던, 그 유명한 베스트 반전 작품을 리커버 개정판으로 이제서야 만났다. 책을 사들이는 병이 한창일 때 이 작품의 구판도 구입했었지만, 누군가에게 빌려 준 뒤 받지 못한 채 일단 포기. 그런데 이번에 개정된 책의 표지가 너무 예뻐 자연히 손이 갔다고 할까. 봄과 무척 잘 어울리는 색감과 여성과 남성이 나란히 앞과 뒤 표지를 장식하고 있어 언뜻 연애소설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은 미스터리 소설이다. 출간 당시부터 제목과 아련한 표지로 연애소설로 오인한 사람들이, 여전히 베스트로 꼽히는 반전 덕분에 뒷통수를 맞고 얼얼해 했다는 소문의 그 작품.

 

이야기는 크게 현재 나루세가 조사에 착수한 구다카 류이치로 뺑소니 사건과, 호라이 클럽에 걸려들어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만 후루야 세쓰코라는 노부인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호라이 클럽의 강매 수법에 넘어가 큰 빚을 지고, 그들이 일삼는 악행을 돕는 역할을 하게 된 세쓰코 부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갑갑증이 몰려온다. 이 부인이 구다카 류이치로 사건에 연관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간간히 나루세가 탐정으로 일하던 시절의 이야기, 컴퓨터 강사로 일하며 술 한잔을 기울이게 된 안도 시로 노인과의 일화, 달빛을 받으며 구멍을 파는 남자의 모습이 묘사되기도 하지만, 나루세의 과거 이야기는 그저 그의 성격을 규정하는 에피소드 뿐으로 여겼다. 수상한 남자의 모습은 반전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아 촉각을 곤두세우고 읽으며 대체 어떻게 연결이 되는 것인지 무척 궁금했지만 작가가 제시한 트릭의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 그저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

십 몇년의 시간 속에 꽤 많은 미스터리 작품을 읽어왔기 때문에 그 십 몇년 전의 작품 속 트릭에 당하지 않으리라, 이 반전을 나는 꼭 밝혀내고 말리라, 두 주먹 불끈 쥐며 눈에 불을 켜고 읽었지만, 결과는 무참하게도 나의 참패. 하지만 미스터리 작품의 묘미는 반전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그 얼얼함을 즐기는 것에 있다-고도 생각한다. 국내독자 리뷰 중 -책으로 읽어야만 진가를 알 수 있는, 영상화될 수 없는 저주받은 명작-이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소설을 읽기 전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다 읽고 나니 고개를 크게 끄덕거릴 수밖에 없는 명리뷰라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많은 분들이 반전을 맞닥뜨리고 나서 책의 첫 장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아하, 이래서 이했구나, 아하, 저래서 저랬구나 손뼉을 쳐가며 반전의 묘미를 음미했다. 아하, 더 쓰고 싶지만 글이 길어지다가는 스포를 대량 방출할 것 같아 이쯤에서 요 작품의 리뷰는 마쳐야겠다. 그저, 한 번 읽어보십시오-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작품. 지금도 머리가 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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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2 세트 - 전2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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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본편을 접하고 난 후부터였다. 그 전에 출간된 우리나라 편을 읽자니 내용도 방대하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한국사보다 세계사에 더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때라 소홀히 한 탓도 있었다. 일본편이 출간된 후 우연히 유홍준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사실 그 강연이 아니었다면 이 시리즈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갖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열린 사고방식, 아직도 답사를 다니며 각국의 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열정, 깊은 지식에서 우러나오는 자신감 등에 매료되었고, 결국 작품 전체 시리즈에 대해 드디어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편을 읽은 후에 중국편도 나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요렇게 가제본으로 먼저 읽을 수 있게 되어 반갑다.

중국편은 1부 : 돈황과 하서회랑, 2부 : 막고굴과 실크로드의 관문이라는 부제의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의 경우는 규슈와 아스카, 나라와 교토라는 한정된 지역을 답사하는 데 그쳤지만, 중국의 경우에는 지리적인 범위도 너무 넓고 그 역사도 무려 3천년이나 되어 처음 기획하는 단계부터 몇 권으로 완성될 지 교수님 또한 몰랐다고 한다.

책의 서두에는 중국 문화를 바라보는 우리 시각에 대해 몇 가지를 명확히 하고 있는데, 문화의 영향 문제와 자연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을 문화 역량으로 생각해서 불필요한 열등감을 느낄 필요 없다는 것, 중국의 압도적인 문화적 스케일에 주눅들지 말고, 스케일이란 그때그때의 필요에 의해 나타난 현상이지 크다고 위대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역설한다. 국제적인 무게 중심이 중국에 쏠리는만큼 중국을 더욱 깊이 알고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 답사기는 중국 문화가 가지는 세계적인 위치의 확인, 동시에 우리 문화의 특질을 동아시아의 지평에서 재인식하는 현장, 오늘날 국제사회 속에서 우리의 좌표를 생각하게 하는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담겨있다.

두 권의 책은 거의 돈황과 실크로드 답사에 그 내용이 치우쳐 있는데 교수님은 이 답사를 '로망'이었다 지칭한다. 나도 어렸을 적 TV를 통해 다큐멘터리 <실크로드>를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그 때는 뿌연 사막만 나오는 저 길이 왜 대단하고 유명한 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었다. 돈황은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의 타클라마칸사막 동쪽 끝자락에 있는 실크로드의 관문으로, 여기에는 모래 구릉이 연이어 펼쳐지는 명사산과 전설적인 석굴사원인 막고굴이 있다. '실크로드'라는 말은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중국의 비단을 매개로 하여 동서교역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에서 비단길이라 이름 지어진 것이다. 리히트호펜은 실크로드를 크게 동쪽, 중앙, 서쪽 세 구역으로 나누었는데 교수님이 관심을 가진 지역은 동쪽과 중앙 구역으로, 동쪽 구역은 하서회랑이라는 넓고 긴 협곡을 따라 하서사군을 관통하는 길이고, 중앙 구역은 중국 사람들이 일찍부터 서역이라 불러왔던 곳으로 곤륜산맥, 천산산맥, 타클라마칸사막을 아우른다.

일반적인 기초 중국사 책은 몇 번 읽었지만 집중적으로 실크로드에 관해 다룬 책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익숙하지 않고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교수님의 강의가 그러했듯, 이번 답사기 또한 답사의 시초부터 과정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고 조근조근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어 흐름을 따라가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실크로드에 대해 별 생각 없었던 나조차도 언젠가 한 번 가본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답사기의 내용은 흥미롭다. 다만 가제본이다보니 사진이 흑백으로 되어 있어, 그 생생함을 느끼는 데 조금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웠다. 완전한 출간본이 나오면 다른 독자들은 아마도 현장감을 느끼는 데 어려움 없이, 더욱 재미있게 이 답사기를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음에는 대중에게 익숙한 곳들의 중국 답사기도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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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아메리카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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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쇠망을 알리는 20세기 중반에 드러난 불안한 징조들. 세계의 에너지 자원, 석유와 석탄과 찬연가스의 소비 속도가 급증하고 있으며 그때까지 확인된 매장량이 그들의 손자 세대에 들어서면 고갈되어 버릴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다. 개발도상국들의 산업화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유가는 급격히 뛰어올랐으며, 1990년대에 들어서자 해결 방법이 없는 전 지구적 규모의 에너지 위기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한 때 번영을 누리던 국가들의 경제가 주저앉았고, 전 세계의 공업 생산량은 감소했으며, 미국의 매장 원유는 고갈되어버렸다. 연료와 식량의 배급, 전기의 사용량 제한, 파국은 순식간이었다. 미국의 도로에서 자동차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2000년대 초반 교통은 완전히 정지된다. 결국 원시적인 농업에 의존하며 삶을 이어가지만 사람들은 점차 다른 나라로의 이주를 시작하고, 2030년에 이르러 미국은 완전히 버려진 땅이 되어버렸다. 이후 기후변화를 겪으며 동부 해안 구역은 사막화가 진행되고, 태평양 연안 지역은 빙하시대를 겪게 된다.

이후 약 100여년의 시간이 흐른 후 꾸려진 탐사대. 유럽에서 출발한 아폴로 탐사대에는 선장인 스타이너와 정치장교인 오를롭스키, 탐사대의 주 목적인 최근 증가한 방사능 수치를 조사하기 위해 참여한 서머스 박사와 리치 박사, 기술자인 맥웨어와 밀항자였지만 어느 새 어엿한 한 사람 몫을 해내는 웨인이 있다. 척박한 미국 땅에 도착하자마자 발견한 자유의 여신상과 햇빛에 의해 금빛을 내뿜는 청동가루로 일행은 흥분하지만, 탐사가 계속될수록 그들의 행로는 불투명하다. 웨인은 제2의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자신이 폐허가 된 미국을 재건해 새로운 지도자가 되어보겠다는 야심과, 몇 십년 전의 탐사대에 동행했던 자신의 아버지(라 알려진)를 찾아보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대륙 횡단길에 오른 탐사대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과연 무엇이 될 것인가. 각자의 마음에 서로 다른 욕망을 품은 이들의 탐사가 이어진다.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강대한 문화에 대한 밸러드풍 묵시록-이라는 문구에 어울리게, 작품이 드러내는 분위기는 황량하다. 가슴 속에 희망을 품고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 붙잡고자 하는 것은 한낱 신기루와 흡사하다. 몽환적이고 허무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다소 읽히기 쉽지 않은 밸러드풍 문장이 여기에 한몫한다. 그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쇠퇴,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버려진 땅으로 그려지는 묘사와 과거의 유물들은 기괴하고 낯설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문장이다. 탁월한 비유와 묘사로 눈 앞에는 어느 새 탐사대 일행이, 모래 바람에 파묻힌 아메리카 대륙이 떠오른다. 자꾸만 빠져드는 작품이었다.

SF소설이자, 미래를 그려내는 역사소설이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미래의 역사. 작가 자신이 -나는 나의 작품을 경고로 본다. 나는 길옆에 서서 '속도를 줄여!'라고 외치는 바로 그 남자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 작품은 일종의 경고이기도 하다. 눈 앞에 닥친 현실과 위기를 모른 척 하면 결국에는, 약소국 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조차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경고. 리들리 스콧 감독에 의해 넷플릭스에서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밸러드풍 문장을 어떤 영상으로 창조해냈을지 궁금하다. 수많은 작가들의 찬사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출간될 밸러드 문학에 대한 기대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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