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같은 나의 연인
우야마 게이스케 지음, 김수지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미용사인 미사키의 따뜻하고 다정한 모습에 반한 하루토.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리라 마음먹은 날, 예기치 않은 사고 덕분에 두 사람은 함께 벚꽃을 보러가자는 약속을 하게 된다. 상상하지 못한 거대 인파로 데이트는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지만, 어수룩하면서도 성실한 하야토의 사랑고백과 사진작가에 대한 미래 이야기에 미사키의 마음도 기분좋게 술렁인다. 결국 연인이 된 두 사람. 유명 사진작가의 어시스턴트로 들어가 바쁜 하루를 보내면서도 미사키를 세심하게 챙기는 하루토와 미용사로서 사람들을 예쁘게 변화시켜 행복한 기분을 맛보게 해주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미사키는 소중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미사키에게 찾아온 패스트포워드 증후군. 일반인보다 몇십 배는 빠른 속도로 노화가 진행되고 있는 미사키의 몸. 이번 겨울에는 이미 지금같은 자신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의사의 선고에, 미사키는 결국 거짓말로 하루토에게 이별을 고한다.

'벚꽃'이 상징하는 것처럼 결국 져버리게 될 사랑이야기일 줄은 알고 있었다. 사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사랑하는 연인에 관한 이야기에 그리 큰 감흥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요즘들어 로맨스 장르가 끌리지 않아 책도, 드라마도, 영화도 멀리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이상하게 이 소설만은 눈에 들어왔다. 유독 벚꽃에 심취해있는 성향 때문이었을까. 분홍색을 좋아하는 나에게 핑크핑크하게 반짝이는 표지는 매우 유혹적이었다. 어디 한 번 읽어볼까-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온 마음으로 이 책을 붙잡고 있었다.

주인공 미사키의 병은 패스트포워드 증후군, 조로증이다. 다른 사람에 비해 몇십 배는 빠른 속도로 노화가 진행되어 스물 넷 미사키가 할머니가 되어가는 병. 국내작품에서는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조로증에 대해 접한 적이 있는데, 젊고 귀여운 미사키가 순식간에 외모가 변해가면서 몇 달 만에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니 새삼 두려워졌다. 암같은 질병은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패스트포워드 증후군은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하루하루 거울을 통해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확인하게 된다. 노화에 따른 외모의 변화는 물론 요통과 신경통,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볼 때 절망감 외에 무엇을 느낄 수 있었을까. 그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 미사키는 헤어진 하루토를 그리워한다. 그 안타까움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이 무척 아팠다.

사실 하루토보다 미사키의 오빠가 보여주는 사랑이 더 크고 절절하게 다가온다. 부모님을 사고로 여의고 가게를 이어받아 동생을 뒷바라지 해 온 다카시. 하나밖에 없는 혈육이 병에 걸려 쇠약해지고 자신보다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오빠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세상에 그런 병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마음이 오그라드는 기분이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당연한 줄 알았는데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소중한 것을 잃게 된 후에야 알게 되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야마 게이스케의 작품은 [오늘밤, 로맨스 극장에서] 이후 두 번째다. 전작은 영화로 먼저 접했지만 [벚꽃같은 나의 연인]도 영화로 나온다면 꼭 한 번 보고 싶다. 벚꽃은 피어있는 시간이 짧아서 그렇게 예쁜 거라는 다카시의 말이 가슴에 박혀서 잊혀지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사카 사람의 속마음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2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 여러 곳을 여행했지만 그 중 오사카에서 받은 느낌은 사람들이 '일본사람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개인적인 이미지겠지만, 도쿄 사람들은 조용하고 개인적인 데 반해 오사카 사람들은 수다스럽고(좋은 의미에서) 남 일에 관심도 많았다. 적어도 여행 중 내가 만나 본 오사카 사람들은 그랬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버스나 덴샤에 오르는 도쿄 사람들과는 달리, 오사카 사람들은 웃고 인사하면서 사람들 사이를 지나쳤다. 도쿄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그 어디보다 도쿄=일본이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같은 나라 안에서 느끼는 문화적 충격은 예상보다 컸다고 할까. 덕분에 활기가득 찬 오사카와 고즈넉한 교토는 지금도 내 마음 속 한 구석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물론 오사카의 버스 안에서 만난 치한의 기억도 가끔 떠오르기는 한다.

[오사카 사람의 속마음]은 마스다 미리가 자신의 고향 오사카에 대해 소소하게 밝힌 즐거운 에세이다. 작가의 엄마가 좋아한다는 아카시야 산마(이 배우, 나도 무척 좋아한다! 오사카 사투리를 좋아하게 만들어준 배우)부터, 오사카 사람이라면 한 집에 한 대씩 있을 거라 오해받는 다코야키 기계에 관한 이야기, 리듬감 있는 오사카 사투리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신 타이커즈, 그로 인해 도톤보리 강에 다이빙하는 사람들, 전국을 접수한 개그계의 본산 요시모토, 붙임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정하고 흥 많은 오사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게 쓰이고, 만화로 그려져 있다. 오사카와 교토를 여행하고 돌아온 후 오사카 대학에 유학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이리저리 알아보던 때가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니 다시 한 번 오사카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치솟는다.

 

인상적으로 재미있었던 부분은 오사카 말을 도레미로 표현한 부분이었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도레미파솔을 잡아가며 따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마 나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모두 하나같이 따라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났다.

 

마스다 미리의 작품을 예전에는 잘 읽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그녀의 책에서 느껴지는 해학과 웃음이 좋다. 마냥 재미있고 웃기는 것만이 아닌 골계미가 있다고 할까. 생활 속 사소한 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안에 숨어있는 무언가를 찾아낸다.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 나도 생각해봤던 것에 대해 공감할 수 있고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으며 공유할 수 있는 추억거리들. 특히 이번 [오사카 사람의 속마음]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오사카 사투리에 대해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지 고심했을 번역가에게도 엄지 척!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링 미 백
B. A. 패리스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프랑스로 여행을 떠났던 연인 핀과 레일라. 어느 도로변 주차장에서 핀이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 차 안에 있던 레일라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핀이 말한 진실은 그랬다. 12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핀은 레일라의 언니 엘련과 사랑에 빠져 그녀와의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녹갈색 눈동자 말고는 레일라와 모든 것이 정반대인 엘런. 레일라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지만 평온하고 안정된 생활을 보내던 어느 날, 과거 레일라 사건의 담당자였던 토니가 핀에게 연락한다. 핀과 레일라가 살던 집 옆에 거주하던 노인이 레일라의 모습을 보았다 말했다고. 그 순간을 기점으로 핀의 몸과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때 맞춰 집 앞에는 엘런과 레일라의 추억이 서린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가 놓여있고, 핀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레일라가 살아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과연 레일라는 정말 살아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인형만을 가져다 놓았을까. 모든 것이 의심스럽고 주변 인물 모두가 수상하다.

 

처음부터 핀이 매우 의심스러웠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레일라가 사라졌던 날, 경찰에게 말한 것과 정말 발생했던 일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게다가 마트료시카의 인형이 등장한 후 레일라가 살아있는 것 같다며 당황스러워하면서도 반가운 기색을 내비치는 엘런과는 달리, 핀은 줄곧 레일라가 아직 살아있을 리 없다고, 누군가의 악질 장난이라고 우기기까지 한다. 심지어 그는 폭력적인 성향까지 갖추고 있었다. 핀이 레일라를 죽인 것은 아닐까. 그것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핀을 협박하기 위해 마트료시카를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그 인물은 누구이고 동기는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작품을 읽어나갔는데, 이런. 아무리 추리소설과 스릴러를 많이 읽어도 작가들을 넘어서기란 무리가 있는 모양이다.

 

작품 전체에 핀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가득 차 있다. 레일라가 보낸 메일에는 자신은 여전히 핀을 사랑하고 있으며 다시 돌아오고 싶다는 의견이 강하게 드러난다. 심지어 엘런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 같은 내용도 서슴치 않는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레일라의 존재를 느끼면서도 그녀를 찾아낼 수 없는 답답함과, 엘런을 자신이나 레일라가 해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 혼란스러움이 핀의 세계는 물론 나의 마음까지 어지럽게 했다. 엘런의 존재를 없애버리라는 레일라의 위협. 그 때까의 카운트다운은 작품을 어마어마한 긴장으로 몰아넣었고, 아, 이러다 핀이 아니라 내가 먼저 돌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 오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렸다. 레일라와 엘런이 느꼈을 외로움과 슬픔, 괴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반전 결말이다.

 

B.A.패리스의 작품은 [브링 미 백]으로 세 번째 만났다. [비하인드 도어]와 [브레이크 다운] 모두 재미있게 읽었지만, [브레이크 다운]은 [비하인드 도어]에 비해서는 조금 덜 인상적이었는데 이번 작품 [브링 미 백]으로 스릴러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게 된 듯 하다. 읽는 내내 결말로 바로 건너뛰고 싶은 마음과 싸우느라 힘들었지만,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긴장감과 속도감이 안겨주는 즐거움도 포기할 수 없었다. 이제는 괜찮은 스릴러 작가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그녀. 다음에는 또 어떤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줄 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만「」의「」비「」밀「 (일반판)
스미노 요루 지음, 김현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의 감정이 머리 위 마크로 보이는 쿄와 시소처럼 보이는 밋키, 심장박동수가 보이는 하라와 카드의 기호처럼 보이는 즈카,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정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 지 화살표가 보이는 엘이라는 다섯 소년소녀의 설레면서도 미스터리하고 풋풋한 이야기다. 마음에 두고 있는 소녀가 자신의 친구에게 '뭐 바뀐 거 없어?'하며 들이대면 '설마' 하면서도 차마 자신의 마음을 꺼내놓지 못하고, 히로인보다 히어로가 되고 싶고 모두를 사랑하는 밝은 여학생이지만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를 쥐어짠다. 냉정한 진짜 자신을 속이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필사적으로 연기하기도 하고, 타인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기를 꿈꾸며, 그런 그들을 지켜보며 '나는 과연 누구인가'를 고민했던 지난 날을 회상한다. 입시를 앞두고 있음에도 서로를 향하는 감정들. 그들의 울고웃는 세계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들, 뭘 알고 여러 사람들을 좋아하는 걸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밤의 괴물], [또 다른 꿈을 꾸었어]로 국내 독자들과 익숙한 스미노 요루의 신작이다. 사람의 감정을 어떤 기호나 화살표, 심장박동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약간 미스터리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누구나 지나간 자신만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청춘스토리라고 할까. 기존 출간된 작품들 중에서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에 조금 더 가까운 분위기인 것 같기도 하다.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한 데 모여있는 설정은 좀 과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소설인 것을. 결국에는 온전한 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개인들의 고민이 오롯이 담겨 있어, 비단 학창시절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나는 과연 누구에 가까울까. 굳이 꼬집어보자면 쿄나 엘이었을까. 지금보다 훨씬 소심하고 남 앞에 서는 것을 무서워하던 소녀. 그런 나를 발견하고 친근하게 다가온 친구를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그 시간이 떠올라 아련해진다. 어떤 캐릭터이든 고등학생이고 입시를 앞두고 있는만큼 미래와 진로, 존재의 이유 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다. 친구들, 그리고 그들과 보내는 시간. 앞으로 조금만 더 지나면 이들과 같은 공간에 지금처럼 있을 수 없다는 자각. 그것이 덩어리 진 슬픔처럼 가슴을 꽉 메워 오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 자신의 감정에 매듭을 지으려는 성숙한 모습들에 미소가 떠오르기도 한다.

 

암시와 비밀이 내재되어 있다. 문장이 드러내는 것에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한 챕터 한 챕터 읽어나가면서 그들의 감정을 추론할 뿐이다.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 상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소설의 기본소재가 각자가 지니고 있는 '비밀'인만큼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할까. 각자의 감정이 과연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지 궁금해서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지금의 나는 이들에 비해 얼마나 성숙해졌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다듬고 만들어나가야 할 길이 있는 이들과, 어느 정도의 길을 걸어온 나. 시간과 공간, 실제와 허구라는 간극 속에서 작품이 전하는 활기와 긍정적인 기운만은 두 팔 벌려 받아들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힘들 때 시 - 아픈 세상을 걷는 당신을 위해
로저 하우스덴 지음, 문형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한 10년 정도 전이었던가. 공허하고 그 공허함에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이상하게 그 때 시를 많이 읽었다. 시에는 문외한이라 좋다는 시가 한 데 묶인 시집을 읽기도 하고, 그 중 마음에 든 작가의 시집을 찾아 따로 읽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그 때는 소설도, 그 어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읽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주구장창 시만 읽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 마음이 괜찮아지자 더 이상 시가 읽히지 않았다. 즐겁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시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조금 마음이 힘들고 괴로울 때는 당연하다는 듯 시집을 떠올린다. 감정의 덩어리를 응축하고 꾹꾹 눌러담은 글자 자국이,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안다는 듯한 느낌을 주어서일까. [힘들 때 시]라는 제목을 보니, 아, 사람들은 모두 힘들면 시를 읽는구나-라는 생각에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이 책에 실린 시들 중에는 단순히 '개인의 힘듦'을 노래한 것은 거의 없다. 시작부터 압도적이다. 작가 매기 스미스의 <좋은 뼈대>. 처음 등장하기도 하지만 읽은 것들 중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챕터의 제목이 '우리 아이들에게 말하지 말라'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짧음과 세상의 어둠에 대해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잘 양육할 수 있는지, 아이들에게 세상이 끔찍한만큼 아름답기도 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염려하는 한 엄마의 시점에서 쓰여진 시는 지금의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 하다. 어떻게 해야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세상의 가장 나쁜 모습들을 비밀로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세상 모든 엄마가 동일한 것이다. 엄마의 시점에서 쓰여졌지만, 이 시는 개인의 고민만을 상징하지 않는다.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펄스 나이트클럽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영국의 정치인 조 콕스가 북부지역 선거구 모임 중 대낮에 저격당했을 때도, 2016년 미국 대선 다음날에도 회자된다.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한 정(情)을 표현하면서 이 세상에는 말못할 슬픔과 끔찍한 일이 가득차 있지만 그럼에도 이런 삶을 찬양하려는 사람들의 노래다. 끝 부분의 '당신이라면 이곳을 멋지게 만드실 수 있어요'라는 표현이 그 의미를 전달한다.  

 

이 시를 읽고났는데 최숙희 작가의 그림책 [너를 보면]이 떠오른다. 집을 잃은 여우, 파란 하늘을 잃은 나비, 메마른 땅의 코끼리, 쓰레기에 갇힌 바다생물, 어느날 갑자기 버려진 강아지를 보며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하다며 눈물 흘리는 여자아이의 모습, 그리고 그런 여자아이에게 자신들과 함께 울어줘서 고맙다고 하는 동물들. 세상은 이토록 잔인하고 어둡지만 그런 세상을 보며 눈물 흘리고 아파해주는 누군가가 있어 자신들을 긍정할 수 있는 존재들. 어둠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이 그림책과 매기 스미스의 시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매기 스미스를 비롯한 10명의 시인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인생의 쓸쓸함과 슬픔, 고독과 아픔은 물론 그것을 인정하며 삶의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려는 모습들이 담겨있다(고 여겨진다). 힘들 때 아니면 시를 잘 찾지 않고, 또 이렇게 시를 해설해주는 책은 학창시절 이후 처음이라 초반에는 낯설었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나의 존재를 압도하는 어떤 거대함과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내가, 나만이 혼자가 아니라는 안정감 같은 것. 힘듦을 노래하고 있음에도 그 힘듦이 밝히고 있는 것은 삶과 세상의 따뜻한 면이다. 아름다운 면이다. 얇은 책이지만 그 분량에 비해 전달되는 감동이 어마어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