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시 - 아픈 세상을 걷는 당신을 위해
로저 하우스덴 지음, 문형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한 10년 정도 전이었던가. 공허하고 그 공허함에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이상하게 그 때 시를 많이 읽었다. 시에는 문외한이라 좋다는 시가 한 데 묶인 시집을 읽기도 하고, 그 중 마음에 든 작가의 시집을 찾아 따로 읽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그 때는 소설도, 그 어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읽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주구장창 시만 읽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 마음이 괜찮아지자 더 이상 시가 읽히지 않았다. 즐겁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시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조금 마음이 힘들고 괴로울 때는 당연하다는 듯 시집을 떠올린다. 감정의 덩어리를 응축하고 꾹꾹 눌러담은 글자 자국이,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안다는 듯한 느낌을 주어서일까. [힘들 때 시]라는 제목을 보니, 아, 사람들은 모두 힘들면 시를 읽는구나-라는 생각에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이 책에 실린 시들 중에는 단순히 '개인의 힘듦'을 노래한 것은 거의 없다. 시작부터 압도적이다. 작가 매기 스미스의 <좋은 뼈대>. 처음 등장하기도 하지만 읽은 것들 중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챕터의 제목이 '우리 아이들에게 말하지 말라'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짧음과 세상의 어둠에 대해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잘 양육할 수 있는지, 아이들에게 세상이 끔찍한만큼 아름답기도 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염려하는 한 엄마의 시점에서 쓰여진 시는 지금의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 하다. 어떻게 해야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세상의 가장 나쁜 모습들을 비밀로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세상 모든 엄마가 동일한 것이다. 엄마의 시점에서 쓰여졌지만, 이 시는 개인의 고민만을 상징하지 않는다.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펄스 나이트클럽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영국의 정치인 조 콕스가 북부지역 선거구 모임 중 대낮에 저격당했을 때도, 2016년 미국 대선 다음날에도 회자된다.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한 정(情)을 표현하면서 이 세상에는 말못할 슬픔과 끔찍한 일이 가득차 있지만 그럼에도 이런 삶을 찬양하려는 사람들의 노래다. 끝 부분의 '당신이라면 이곳을 멋지게 만드실 수 있어요'라는 표현이 그 의미를 전달한다.  

 

이 시를 읽고났는데 최숙희 작가의 그림책 [너를 보면]이 떠오른다. 집을 잃은 여우, 파란 하늘을 잃은 나비, 메마른 땅의 코끼리, 쓰레기에 갇힌 바다생물, 어느날 갑자기 버려진 강아지를 보며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하다며 눈물 흘리는 여자아이의 모습, 그리고 그런 여자아이에게 자신들과 함께 울어줘서 고맙다고 하는 동물들. 세상은 이토록 잔인하고 어둡지만 그런 세상을 보며 눈물 흘리고 아파해주는 누군가가 있어 자신들을 긍정할 수 있는 존재들. 어둠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이 그림책과 매기 스미스의 시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매기 스미스를 비롯한 10명의 시인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인생의 쓸쓸함과 슬픔, 고독과 아픔은 물론 그것을 인정하며 삶의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려는 모습들이 담겨있다(고 여겨진다). 힘들 때 아니면 시를 잘 찾지 않고, 또 이렇게 시를 해설해주는 책은 학창시절 이후 처음이라 초반에는 낯설었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나의 존재를 압도하는 어떤 거대함과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내가, 나만이 혼자가 아니라는 안정감 같은 것. 힘듦을 노래하고 있음에도 그 힘듦이 밝히고 있는 것은 삶과 세상의 따뜻한 면이다. 아름다운 면이다. 얇은 책이지만 그 분량에 비해 전달되는 감동이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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