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 식당의 밤
사다 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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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정겨운 선술집]

 

가쓰시카구 게이세이 요쓰기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요쓰기 일번가 한복판에 작은 술집이 하나 있다. 가게의 이름은 '은하 식당'. 이름은 식당이지만 카운터 석만 있는 선술집으로 술에 안주는 기본이고, 주인장을 둘러싸는 디귿자 모양 카운터와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실내조명, 가게 안쪽 귀퉁이에 소중하게 장식해 둔 진짜 첼로와 L자형 나무 후크에 달아놓은 굵은 활이 자아내는 운치, 벽에 걸린 괘종시계의 음색 등이 매력적인 장소다. 예순 살 안팎으로 보이는 댄디한 주인장과 어머니라고 하기에는 젊어보이고 부인이라고 하기에는 나이 차가 꽤 많이 나 보이는 여성의 뛰어난 손맛이 자랑인 곳. 이 가게를 찾는 단골들은 모두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동네 친구이자 같은 학교를 나온 동문이기도 해서 두 세명만 모여도 친근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된다. 저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편한 차림으로 어슬렁어슬렁 모여들어 하루를 마무리 하는 정겨운 곳이다.

[은하 식당의 밤]은 마스터와 거의 매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선술집을 찾는 메밀국수집 '요시다암'의 5대째 사장 요시다 테루오-일명 테루-와 컴퓨터 관리 회사의 수리 부서에 근무하는 테루의 초등학교 때부터의 친구 스가와라 후미로-일명 붐-, 가쓰시카 경찰서 소속 경찰관으로 생활안전과에서 일하는 야스다 히로시-일명 소녀 헤로시-를 중심으로 총 여섯 편의 이야기가 엮여 있는 단편집이다. 애달픈 첫사랑의 사연,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피해자 여성이 가해자를 용서하기까지의 이야기, 지지리도 복이 없이 한평생을 살다가 결국에는 어머니와 동반자살을 계획한 남성, 첫사랑인 커플이 역경을 이겨내고 결실을 맺는 내용, 전통적인 재즈 음반과 기묘한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지는 선술집의 마스터에 관한 비밀까지 아기자기하고 소소한, 그러면서도 가슴 벅찬 감동을 전달하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일본작품 중에는 이렇게 어떤 한 장소를 중심으로 그 장소와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놓는 소설들을 꽤 만날 수 있는데, 그런 이야기가 우리 주변에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만큼 더 깊게 감정이입이 된다. 이발소, 경찰서, 우체국, 선술집, 식당, 카페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대중적인 장소의 각각의 사람들이 간직한 사연. 비밀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안성맞춤의 장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쩜 그리 재미지는지. 이 작품 또한 한 번 펼친 후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내려갈 정도로 매력이 철철 넘친다. 실제로 은하식당이 있다면 직접 가서 술 한 잔 기울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작품들의 영향을 받은 덕분인지 나도 한 번 소박한 음식점이나 선술집을 마련해 정겨운 장소로 자리매김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꿈틀. 하지만 현실과 소설은 엄연히 다른만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이야기들은 일견 평범해보이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몇 줄이나마 아주 작은 반전을 선사한다. 때로는 감동을, 때로는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반전이라 일상 미스터리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특히 마지막에는 마스터의 이름과 식당 이름의 유래에 관한 힌트가 공개되는만큼 '은하 식당'이라는 이름을 보고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를 생각한 사람은 그 궁금증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술을 잘 못하는 나지만 이 소설을 읽고나니 오늘만큼은 꼭 술 한 잔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당인 신랑과 맛있는 안주를 준비해 한 잔 걸쳐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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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 사막의 망자들 잭 매커보이 시리즈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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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재미를 자랑하는 스릴러!]

 

'시인 사건'으로 인해 일약 스타기자가 된 잭 매커보이.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LA타임스에 스카우트 되어 기자로 활약하지만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과거의 명성일 뿐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저널리스트들의 입지도 점점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인터넷 세대에 뒤처지고 연봉이 많다는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은 잭은 마지막 한방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에 자신의 기사를 검토하던 중 얼마 전 작성한 '16세 소년 클럽 댄서 살인사건'에 대해 가해자 가족으로부터 억울하다는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뛰어난 추리력과 냉철함으로 이 사건이 연쇄살인 사건 중 하나라는 단서를 포착한 잭은 사건 뒤에 숨은 진짜 범인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런 잭의 모습을 포착한 진범 '허수아비'. 컴퓨터의 귀재인 그는 잭의 인터넷 정보를 조작하고 그를 고립시키면서 사지로 몰아간다.

 

크라임 스릴러 세계로 인도한 작가 마이클 코넬리. 그의 잭 매커보이 시리즈, 해리보슈 시리즈, 미키 할러 시리즈를 처음 접했을 때 이런 이야기들이 있구나! 하며 열광한 기억이 난다. 읽는 작품마다 너무 재미있어서 시리즈 전부를 모두 소장하고 있을 정도인데 요즘에는 그 출간속도가 조금 더딘 것 같아 아쉬워하던 참이었다. 그 아쉬움을 달래주듯 잭 매커보이 시리즈 중 하나인 [허수아비] 가 출간 10주년 기념을 맞아 리커버 개정판으로 돌아왔다. [시인]과 [시인의 계곡]을 읽은 독자라면 잭 매커보이의 캐릭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재미가 더 배가 될 수도 있지만, 앞의 두 작품을 읽지 않아도 [허수아비]를 읽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FBI 요원 레이첼 월링과의 관계도 행간을 통해 짐작이 가능하고, 오히려 시인 시리즈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 두 작품들을 찾게 될 지도 모른다.

 

[허수아비]에서는 고객들의 정보를 맡아 관리하는 천재 해커가 오히려 그 정보를 역으로 이용해 연쇄살인을 일으키는 이야기를 담았다. 새나 다른 동물들로부터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세워두는 허수아비의 이미지를 이용한 것일까. 범인은 그런 이미지를 시그니처로 이용해 희생자들의 마지막 모습을 연출하는데 그 가학성과 잔인함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아무리 어린 시절 상처가 있고 그로 인해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누구나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닌만큼 범인의 선천적인 범죄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범인을 상대로 레이첼과 함께 추적하고 끝내는 범인을 잡아내는 잭의 모습은 프로 기자이기 때문인 건지, 그의 피에 흐르는 해리 보슈의 영향 때문인 건지 조금 궁금하기도 하다.

 

10년 전에 유일하게 읽지 못한 작품 [허수아비]는 지금 읽어도 전혀 촌스럽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빠른 속도감과 각 챕터마다 드러나는 사건에 대한 정황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얼마 전 아이 그림책 때문에 내 책을 정리하면서 마이클 코넬리 작품도 다른 곳으로 치워야 하나 걱정했는데, 역시 그대로 꽂아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읽지 못한 예전 작품들, 최근 출간된 작품까지 소중하게 간직해야겠다. 역시 스릴러 소설의 제왕이라 불릴만한 작가와 그 명성이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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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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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로 인해 부유한 생활을 하는 고등학생 소녀 캄빌리. 소녀의 아버지는 밖에서는 자애와 봉사, 헌신으로 빛나는 인물이지만 가정 내에서 보여지는 그의 모습은 밖의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폭력에 물들어있다. 주기적인 폭력으로 어머니는 유산을 반복하고, 캄빌리와 그녀의 오빠 또한 잘못한 것이 있을 때면 아버지가 생각하는 합당한 처벌을 받는다. 심지어 아버지는 딸의 발에 뜨거운 물을 붓거나 허리띠를 풀어 남매를 때리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아이들의 생활은 일과표로 촘촘히 짜여있고 어머니를 비롯해 그 누구도 아버지에게 반항은 커녕 말대꾸 한 번 제대로 못하는 무거운 분위기가 집 안을 감싸고 있다. 그런 가정에서 오빠 자자가, 어느 날 영성체를 거부한다. 그 날을 기점으로 아버지는 무너졌던 것일까. 캄빌리는 앞으로의 가족의 모습이 예전과는 같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는 한편, 마침내,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자각하고 가족이라는 억압된 테두리 안에서의 정신적 독립을 꿈꾼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난 그녀는 나이지리아의 엄격한 상류 가정 출신 소녀의 정신적 독립 이야기를 담은 첫 장편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로 영연방 작가상과 허스턴 라이트 기념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두 번째 장편소설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로 오렌지 소설상과 10년 간의 오렌지 소설상 수상작 중 최고의 작품에 수여하는 '최고 중의 최고 상'을 받았고 '천재 상'으로 불리는 맥아서 펠로로 선정되었으며 <뉴욕 타임스>선정 '올해의 100대 도서' 목록에 올랐다. 그 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화려한 수상이력을 자랑하는 작가의 [아메리카나]는 동시대 나이지리아 출신 청년들의 아메리칸 드림과 그 명암을 사랑과 우정을 소재로 재치 있게 그려낸 작품으로, 이 작품 역시 엄청난 명성을 쌓고 있는 중이다. 그런 작가가 우리나라를 방문한다. 요즘 가장 핫한 작가 중 하나인 그녀가 우리나라에서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가.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그녀의 자전적 요소가 포함된 작품으로 우리에게 자신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전달한다. 다만, 그녀의 아버지는 작품 속 캄빌리의 아버지처럼 폭력적이거나 가부장적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으로 귀의해 자신의 아버지마저 이교도라고 비난할 정도로 광신적이고 통제적이며 가학적인 아버지 유진의 모습은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숨이 막히게 한다. 자신을 가정 내에서 신격화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그는 그 자체로 신, 불멸의 존재와 같았다. 하지만 그 틈을 파고드는 자유로운 성향의 고모와 그녀의 아이들로 인해 유진과 자식들의 사이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것은 급기야 할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파국을 맞이하기에 이른다. 나이지리아 내의 가부장적 모습과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고, 고유어가 자주 등장해 읽는 흐름이 끊길 때가 많아 생각보다 읽는 데 시간이 많이 들었다. 게다가 작가가 제시하는 결말이 생각보다 속시원하지는 않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소설이기에 바랄 수 있는 뭔가가 해소되어야 하는 욕구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막힌 채 목을 꽉 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캄빌리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면 이전과는 다른 생활을 누릴 수 있을까. 오빠와 어머니는 좀 더 자유롭게 숨통이 트인 채 살아갈 수 있나. 답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저 그들이 다른 방향의 인생을 향해 한걸음을 내딛었다는 것뿐. 안타깝지만 어쩌면 이 작품은 어느 작품보다도 더 현실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어지는 삶 속에서 끝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듯, 작품 속 인물들의 삶도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변화를 향해 움직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는 단 하나,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후의 삶이 어떤 모습이든 지금의 삶이 힘들고 괴롭다면 한 번이라도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작가가 과연 우리나라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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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호하게 살기로 했다 - 일, 관계, 인생 앞에 당당해지는 심리 기술
옌스 바이드너 지음, 장혜경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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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자기계발 책을 즐겨 읽지 않는다. '자기계발'이라는 단어에 부담감을 느끼는 데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가 전달하는 내용과 그 뉘앙스에 거부감이 있다. 뻔하지 않은가. 나는 이렇게 해서 성공했으니, 당신도 이렇게 해봐라, 그러면 성공할 것이다, 아니라고,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책임. 내가 좀 자격지심이 있나-하고 몇 권의 자기계발 책을 넘겨봤지만, 내가 심술딱지인 건지 빈정이 상할 때도 여러 번 있다. 하지만 가끔은 독서에도 별미가 필요한 때가 있는 법. 자기계발서이기는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살기로 했다]는 제목에 궁금증이 생겼다. 대체 어떤 책인가, 너는 나를 한 번 사로잡아볼래, 라는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띠지에 적힌 문구가 마음에 든다. '더 이상 착한 사람을 자처하지 말라'. 나는 호불호가 명확하고 성격이 까칠한 편이라 착한 사람은 못된다. 그런데도 마음 속 한구석에는 어느 정도의' 착함'을 버리지 못하는 내가 여전히 존재한다. 하기 싫은데 웃으면서 오케이 하고, 기분 나쁜데 아니라고 하고, 이 말을 해야 내가 속이 편할 것 같은데 애써 입술을 깨물며 참을 때가 있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못된 인간으로 폄하되는 우리 사회. 아니, 내가 나도 내 것 좀 챙기고 살겠다는데 그러면 안돼?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할 상황이 아니어서 못하겠다는데! 우와악! 이런 생각을 100퍼센트 상대에게 드러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그래서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관계의 기술. 이런 것은 좀 알아둘만하다.

저자는 '눈치 보지 않고 할 말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인생 기술'을 전수한다. 곤란한 부탁은 단호하게 거절할 줄 알아야 내 능력을 인정받고 의지를 관철할 수 있다고. 그러면서 내면에 존재하는 긍정적인 공격성에 주목한다. 그것은 바로 단호함이라 일컬어지는 것. 자신의 감정을 똑똑하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단호한 태도가 일을 보다 신중하게 처리하도록 도와준다고 조언한다. 심지어 자신 안에 있는 깨알같은 투지와 공격성을 깨워보자고까지 이야기하니, 초반에는 이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저자가 제시하는 단호함의 심리학은 총 9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1단계-8단계, <알아두면 좋지만 써먹으면 안되는 게임의 법칙>은 0단계로 분류되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부분은 <단호한 태도를 갖추는 8가지 전략>이다. 뚜렷한 목표를 정하라, 불가능한 일에 함부로 뛰어들지 말라, 답이 정해져 있다는 듯 자신있게 말하라, 불평꾼, 실패자, 겁쟁이를 멀리하라, 불리한 상황에도 겁먹지 않는 패기를 지녀라, 당황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는 언어순발력을 키워라, 나쁜 소문에는 즉각 대처하라, 정기적으로 경쟁자의 상태를 파악하라-라니! 말이 쉽지 언어순발력이 한순간에 키워지는 것이던가, 나쁜 소문에 즉각 대처할 정도면 애초에 착한 태도 유지는 어떻게 해왔겠나, 정기적으로 경쟁자의 상태를 파악하려면 부지런하기까지 해야하는데! 결국 이 책도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세상에 공짜 있던가. 책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본인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일인 것이다. 8단계에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심리 기술>이 소개되어 있으니 이 부분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초반부터 흥미를 자극한 0단계에서는 써먹어서는 안되는 기술까지 전수해주니 이 조합들을 적절히 사용해야 할 터다.

업무도 어렵지만, 그 업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인간관계다.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일이 더 쉬워지기도 어려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일을 더 쉽게 하기 위해 자신을 억지로 착한 사람으로 만들거나 상대보다 낮은 자세를 유지한다면 더 곤란한 상황에 빠지기 쉽다. 내면에 존재하는 순수하고 긍정적인 공격성을 자극해 상대에게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단호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업무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이 책은 '나도 이렇게 했으니, 너도 이렇게 해'라는 어조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처세술을 가르쳐준다. 자신을 돌아보고 나의 말과 행동이 어떠했는지 곱씹어볼 수 있었던 시간. 아주 오랜만에 괜찮은 자기계발서를 만난 것 같다. 요즘 인간관계에 있어 허무함을 느끼는 신랑에게도 일독을 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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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직지 1~2 세트 - 전2권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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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에서 은퇴한 노교수가 참혹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귀는 잘리고 가슴은 창 같은 것으로 관통당했다. 사회부 기자 기연은 중세풍의 기괴한 살해방식에 의문을 품고 사건을 알아보는데, 교수가 죽기 전 교황청의 비밀 수장고에서 발견된 편지를 해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편지가 과거 교황이 고려에 보내진 것이라 추측했지만 죽은 교수는 그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냈다는 것도. 결국 살해동기가 직지와 연관이 있음을 짐작한 기연은 교수의 서재에서 두 개의 이름을 찾아내고 그 이름들이 사건에서 크게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교수가 기록한 대로 길을 떠난 기연. 그 곳에서 밝혀진 직지와 관련된 엄청난 사실들.

 

김진명 작가의 작품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후로 항상 챙겨보고 있다. 때로는 이것이 소설이 아니라 진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생생함을 느낀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자들의 역사적 열망에 불을 지피는 작가가 이번에는 금속활자 발명, 구텐베르크, 한글 그리고 지금의 반도체 발명으로 연결되는 작품을 발표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이름인 '직지심경'은 잘못 전해진 것으로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이 본래 명칭이다. 백운화상이 편찬한 마음의 실체를 가리키는 선사들의 중요한 말씀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직지와 구텐베르크의 활자는 나타난 시기를 두고 오랫동안 논쟁을 거듭해왔는데 지금은 직지가 구텐베르크의 활자보다 78년 앞선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01년 9월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고려 말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상, 하 두 권으로 인쇄되었지만 하권만 프랑스의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작품은 어느 정도의 사실에 입각해 작가 자신의 상상이 더해져 완성되었다. 실제로 교황 요한 22세가 고려 충숙왕에게 보내진 것으로 보여지는 편지가 발견되었고 연구를 통해 안타깝지만 이 편지와 고려왕은 연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소설 안에서는 이 편지를 통해 고려의 금속활자가 몽골을 통해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확증을 기대했지만 죽은 교수가 그럴 가능성을 배제함으로써 직지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그를 살해했을 거라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살해현장은 내국인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모순. 결국 기연은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죽은 교수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1권에서는 사건수사에 중점을 두었다면 2권에서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직지가 구텐베르크에게 전해진 경로가 드러난다.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 그런 그의 뜻을 따르려던 은수. 세종대왕을 저지하려는 세력에 의해 그녀는 아버지를 잃고 갖은 고난 속에 로마에 다다른다. 그 곳에서 우리 활자의 우수성을 선보인 은수지만, 결국 그 곳도 조선과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집권층에 해당하는 로마 교황청이 활자를 이용하면 많은 책을 만들 수 있고 그 많은 책이 결국 사람들을 무지에서 깨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를 고문하고 죽이려 한 것이다. 결국 독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도움을 받아 활자의 원리를 구텐베르크에게 전수하게 되고, 그녀는 '카레나'라는 이름으로 수녀원에서 성모로 추앙받으며 생을 마감했다.

 

생각했던 내용과 약간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교수의 사망원인에 대한 해설이 조금 미흡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한글창제와 직지가 애민사상을 바탕에 두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감동적이었다. 지배세력이 백성을 장악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글자를 몰라서였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은 일찍이 그 점에 주목했고, 백성들이 글자를 알아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그 글자가 활자를 통해 더 널리 알려진다면 더 이상 백성들을 무지몽매한 존재가 아니요, 때문에 예전처럼 그들을 장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조선에서 보여지는 집권층의 모습과 은수가 활자를 선보였을 때 드러난 로마 교황청의 모습은 안타까울 정도로 동일했다.

 

직지와 한글에 담긴 정신이 동일함을 보여주고,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큰 뜻을 전달하는 소설 [직지]. '템푸스 푸지트 아모르 마네트'. 세월은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 시간이 흘러도 백성에 대한 사랑은 여전히 남아 우리에게 전해진다.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우리문화의 우수성과 자부심을 가슴에 담고 이제는 우리가 전달해나가야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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