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로 인해 부유한 생활을 하는 고등학생 소녀 캄빌리. 소녀의 아버지는 밖에서는 자애와 봉사,
헌신으로 빛나는 인물이지만 가정 내에서 보여지는 그의 모습은 밖의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폭력에 물들어있다. 주기적인 폭력으로 어머니는
유산을 반복하고, 캄빌리와 그녀의 오빠 또한 잘못한 것이 있을 때면 아버지가 생각하는 합당한 처벌을 받는다. 심지어 아버지는 딸의 발에 뜨거운
물을 붓거나 허리띠를 풀어 남매를 때리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아이들의 생활은 일과표로 촘촘히 짜여있고 어머니를 비롯해 그 누구도 아버지에게
반항은 커녕 말대꾸 한 번 제대로 못하는 무거운 분위기가 집 안을 감싸고 있다. 그런 가정에서 오빠 자자가, 어느 날 영성체를 거부한다. 그
날을 기점으로 아버지는 무너졌던 것일까. 캄빌리는 앞으로의 가족의 모습이 예전과는 같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는 한편, 마침내,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자각하고 가족이라는 억압된 테두리 안에서의 정신적 독립을 꿈꾼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난 그녀는 나이지리아의 엄격한 상류 가정 출신 소녀의 정신적 독립 이야기를 담은 첫
장편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로 영연방 작가상과 허스턴 라이트 기념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두 번째 장편소설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로 오렌지
소설상과 10년 간의 오렌지 소설상 수상작 중 최고의 작품에 수여하는 '최고 중의 최고 상'을 받았고 '천재 상'으로 불리는 맥아서 펠로로
선정되었으며 <뉴욕 타임스>선정 '올해의 100대 도서' 목록에 올랐다. 그 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화려한 수상이력을 자랑하는 작가의
[아메리카나]는 동시대 나이지리아 출신 청년들의 아메리칸 드림과 그 명암을 사랑과 우정을 소재로 재치 있게 그려낸 작품으로, 이 작품 역시
엄청난 명성을 쌓고 있는 중이다. 그런 작가가 우리나라를 방문한다. 요즘 가장 핫한 작가 중 하나인 그녀가 우리나라에서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가.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그녀의 자전적 요소가 포함된 작품으로 우리에게 자신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전달한다. 다만,
그녀의 아버지는 작품 속 캄빌리의 아버지처럼 폭력적이거나 가부장적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으로 귀의해 자신의 아버지마저 이교도라고 비난할 정도로 광신적이고 통제적이며 가학적인 아버지 유진의 모습은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숨이 막히게 한다. 자신을 가정 내에서 신격화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그는 그 자체로 신, 불멸의 존재와 같았다. 하지만
그 틈을 파고드는 자유로운 성향의 고모와 그녀의 아이들로 인해 유진과 자식들의 사이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것은 급기야 할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파국을 맞이하기에 이른다. 나이지리아 내의 가부장적 모습과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고, 고유어가 자주 등장해 읽는 흐름이 끊길 때가
많아 생각보다 읽는 데 시간이 많이 들었다. 게다가 작가가 제시하는 결말이 생각보다 속시원하지는 않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소설이기에 바랄
수 있는 뭔가가 해소되어야 하는 욕구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막힌 채 목을 꽉 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캄빌리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면 이전과는 다른 생활을 누릴 수 있을까. 오빠와 어머니는 좀 더 자유롭게 숨통이 트인 채
살아갈 수 있나. 답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저 그들이 다른 방향의 인생을 향해 한걸음을 내딛었다는 것뿐. 안타깝지만 어쩌면 이 작품은
어느 작품보다도 더 현실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어지는 삶 속에서 끝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듯, 작품 속 인물들의 삶도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변화를 향해 움직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는 단 하나,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후의 삶이 어떤 모습이든 지금의 삶이 힘들고
괴롭다면 한 번이라도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작가가 과연 우리나라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