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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직지 1~2 세트 - 전2권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평점 :
주택가에서 은퇴한 노교수가 참혹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귀는 잘리고 가슴은 창 같은 것으로 관통당했다. 사회부 기자 기연은
중세풍의 기괴한 살해방식에 의문을 품고 사건을 알아보는데, 교수가 죽기 전 교황청의 비밀 수장고에서 발견된 편지를 해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편지가 과거 교황이 고려에 보내진 것이라 추측했지만 죽은 교수는 그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냈다는 것도. 결국 살해동기가 직지와 연관이 있음을
짐작한 기연은 교수의 서재에서 두 개의 이름을 찾아내고 그 이름들이 사건에서 크게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교수가 기록한 대로 길을
떠난 기연. 그 곳에서 밝혀진 직지와 관련된 엄청난 사실들.
김진명 작가의 작품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후로 항상 챙겨보고 있다. 때로는 이것이 소설이 아니라 진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생생함을 느낀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자들의 역사적 열망에 불을 지피는 작가가 이번에는 금속활자 발명, 구텐베르크, 한글 그리고 지금의
반도체 발명으로 연결되는 작품을 발표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이름인 '직지심경'은 잘못 전해진 것으로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이 본래
명칭이다. 백운화상이 편찬한 마음의 실체를 가리키는 선사들의 중요한 말씀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직지와 구텐베르크의 활자는 나타난 시기를 두고
오랫동안 논쟁을 거듭해왔는데 지금은 직지가 구텐베르크의 활자보다 78년 앞선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01년 9월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고려 말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상, 하 두 권으로 인쇄되었지만 하권만 프랑스의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작품은 어느 정도의 사실에 입각해 작가 자신의 상상이 더해져 완성되었다. 실제로 교황 요한 22세가 고려 충숙왕에게 보내진
것으로 보여지는 편지가 발견되었고 연구를 통해 안타깝지만 이 편지와 고려왕은 연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소설 안에서는 이 편지를 통해 고려의
금속활자가 몽골을 통해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확증을 기대했지만 죽은 교수가 그럴 가능성을 배제함으로써 직지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그를 살해했을
거라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살해현장은 내국인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모순. 결국 기연은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죽은 교수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1권에서는 사건수사에 중점을 두었다면 2권에서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직지가 구텐베르크에게 전해진 경로가 드러난다.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 그런 그의 뜻을 따르려던 은수. 세종대왕을 저지하려는 세력에 의해 그녀는 아버지를 잃고 갖은 고난 속에 로마에
다다른다. 그 곳에서 우리 활자의 우수성을 선보인 은수지만, 결국 그 곳도 조선과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집권층에 해당하는 로마 교황청이 활자를
이용하면 많은 책을 만들 수 있고 그 많은 책이 결국 사람들을 무지에서 깨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를 고문하고 죽이려 한 것이다. 결국
독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도움을 받아 활자의 원리를 구텐베르크에게 전수하게 되고, 그녀는 '카레나'라는 이름으로
수녀원에서 성모로 추앙받으며 생을 마감했다.
생각했던 내용과 약간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교수의 사망원인에 대한 해설이 조금 미흡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한글창제와 직지가
애민사상을 바탕에 두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감동적이었다. 지배세력이 백성을 장악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글자를 몰라서였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은
일찍이 그 점에 주목했고, 백성들이 글자를 알아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그 글자가 활자를 통해 더 널리 알려진다면 더 이상
백성들을 무지몽매한 존재가 아니요, 때문에 예전처럼 그들을 장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조선에서 보여지는 집권층의 모습과 은수가 활자를
선보였을 때 드러난 로마 교황청의 모습은 안타까울 정도로 동일했다.
직지와 한글에 담긴 정신이 동일함을 보여주고,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큰 뜻을 전달하는 소설 [직지]. '템푸스 푸지트 아모르
마네트'. 세월은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 시간이 흘러도 백성에 대한 사랑은 여전히 남아 우리에게 전해진다.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우리문화의
우수성과 자부심을 가슴에 담고 이제는 우리가 전달해나가야 하는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