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해줘 카카오프렌즈 한국사 1 - 큰★별쌤 최태성과 떠나는 초등한국사 대탐험 구해줘 카카오프렌즈 한국사 1
최태성.조윤호 지음, 도니패밀리 그림 / 메가스터디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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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관련해 수많은 학습만화가 출간되고 있다. 어린 아이 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역사는 어려운 분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만화를 읽으면서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여겨지는데, 그 수많은 종류 속에서 어떤 책을 고를지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집에는 박시백 작가님의 [조선왕조실록]과 초등 한국사 학습 용으로 알려진 한국헤르만헤세 출판사의 <HOW SO 한국 역사탐구 시리즈>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예전부터 재미있게 읽어 소장중이고, <HOW SO 한국 역사탐구 시리즈>는 나중에 아이들이 읽기 전에 일단 우리가 먼저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구매했는데 어린 아이용 학습만화라 해서 쉽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전문적인 지식이 들어가는 순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문제들이 여기저기 산재되어 있기 때문. 이 와중에 큰별쌤! 최태성 선생님과 떠나는 한국사 대탐험이라니, 읽어보고 싶은 게 당연하다! 게다가 귀여운 카카오 프렌즈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더 신나는 여행이다.

카카오프렌즈 친구들에 대한 설명부터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저 귀엽다고만 생각했던 캐릭터들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크게 놀라고 만 상황. 라이언이 곰이 아니라 갈기 없는 수사자였다니! 원래 아프리카 둥둥섬의 왕위 계승자이기까지 했지만 자유로운 삶을 동경해 탈출, 꼬리가 길면 잡히기 때문에 꼬리가 짧다는 웃음 빵 터지는 설명이 압권이다! 복숭아인 줄은 알았지만 자웅동체인 사실까지는 몰랐던 어피치는 그렇다 쳐도 무지와 콘의 정체는 놀랄 노자다! 귀여운 토끼인 줄 알았던 무지가, 사실은 토끼 옷을 입은 단무지라니! 게다가 친구인 줄 알았던 둘의 관계가 사실은 콘이 단무지를 키워 무지로 만들었다는 이 설명에 아연실색했다. 부잣집 도시개 프로도와 패셔니스타 네오, 공포를 느끼면 미친 오리로 변하는 튜브와 힙합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제이지에 관한 내용은 이에 비하면 평범한 수준이다. 그리고 등장하는 큰별쌤. 카카오프렌즈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둥둥반 담임선생님으로 도서관에서 라이언을 구하려다 신비한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탈출문을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카카오프렌즈에게 궁금증이 생기면 언제 어디서든 나타나 해결해준다. 큰별쌤을 책 속으로 끌어들인 구석기인과 카카오프렌즈가 다니는 학교의 도서관 사서 선생님인 쪼리쌤이 함께 해 역사적 궁금증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카카오프렌즈의 궁금증과 답이 제시되어 있다. 청동거울로 얼굴을 볼 수 있는지, 진짜로 곰이 사람으로 변한 건지, 왜 삼국이 한강을 두고 다투었는지, 가장 늦게 발전한 신라가 어떻게 삼국 통일을 이루어낼 수 있었는지, 왕건이 결혼을 많이 한 이유, 고려가 강화도로 수도를 옮긴 이유와 과정, 왜 고려 왕의 이름이 '충'자가 붙었는지, 법전을 보고 어떻게 조선 백성들의 생활을 알 수 있는지 등, 현직 초등 교사가 수업 중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BEST 20을 뽑은 것으로 재미있지만 제법 심오한 질문들이 펼쳐진다. 들여다보니 내가 답할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 어떻게 초등학생의 관점에서 설명하면 좋을지 연구하게 되는 질문들도 있어서 그런 점에서는 '학습'만화의 역할에 충실하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게다가 조선의 '경국대전'을 다룬 파트는 어른인 내가 봐도 눈이 핑 돌 지경인데, 용어는 생소해도 만화로 보니 한결 이해하기 쉬웠다고 할까.

이제 책에서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던 큰별쌤은 구석기인에 의해 2권으로 연결된 연결문으로 밀쳐진다. 임진왜란에서 한국사를 끝낼 수는 없으므로. 독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도움을 주듯 안 주는 구석기인의 정체도 궁금해진다. 콕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지만 만화로 구성된 역사책들은 책마다 특징이 있는 것 같아 자신의 취향에 맞는다면 여러 전집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특히 친근한 카카오프렌즈들을 내세워 아이들이 무척 좋아할 것 같은데, 어른인 내 취향에도 아주 잘 맞았다. 어떻게 하면 시험 점수를 잘 받을 수 있을까에 치중하지 않고 역사를 좋아하게 만드는 마음이 먼저라는 점을 생각해 양질의 역사 학습만화가 많이 출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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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보는 그리스신화 - 오늘, 우리를 위한 그리스신화의 재해석
박홍순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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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든 철학이든 서양 고전을 읽을 때면 어느 때든 툭툭 튀어나오는 그리스 신화. 단순한 비유의 역할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제공한다. 수없이 많은 세대에 걸쳐 축적되어 왔기 때문에 서구적 사고방식의 DNA라 불려도 과언이 아닌, 그렇기 때문에 서구적 사고의 원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신화에는 그리스 철학의 모태가 되는 원초적 세계관과 인생관이 들어 있다. 이 신화를 통해 그리스 철학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10세기 이상의 사유 방식의 축적과 전환 과정의 산물임을 발견할 수 있다고. 구전에 의해 정보가 전달된 시대에 신화는 가장 훌륭한 기록의 방식으로, 이 시대의 사유 방식을 이해하는 데 신화는 매우 유익하다. 이런 신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철학적 맥락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데, 신화는 언제나 특정한 역사적 배경 아래서 탄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신화를 배경으로 사유의 세계가 펼쳐진다. 인간과 세계를 살펴보고, 문명과 국가를 돌아보고, 이성과 감성에 관해 묻고, 여성과 남성을 생각하는 과정. 신화의 기본적인 재미난 이야기들을 기반으로 그 안에 묻혀 있는 메시지들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시시포스의 형벌>을 바라보며 쳇바퀴 인생의 희망에 대해 질문하고, 나르키소스가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어째서 저주였는지 되묻는 신선한 시각. 그동안은 나르키소스가 자신만을 사랑하게 된 것에 대해 보다 큰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삶 자체가 불행한 것이라고 여겼지만, 국가를 최우선으로 하는 시대에 개인을 앞세우는 것 자체가 금기로 취급받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놀랐다. 저자는 개인에 대한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한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현명한 나르키소스로 살아갈 것을 조언한다.

<이카로스>를 통해 무모한 도전인지 무한한 도전인가에 대해 토론하고, 인정에만 치우쳐 크레온을 악한 왕이라 평가했던 방식을 버리고 법과 정의라는 관점에서 그를 재조명한다. 영웅적인 서사시로 평가받는 [일리아스] 속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를 소환해 전쟁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묻고, 희대의 악녀로 불리는 헬레네를 통해 선과 악을 딱 잘라 구분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남편에게 버림받아 복수심에 눈이 멀어 자식들의 목숨을 빼앗은 것으로 알려진 메데이아를, 적에게 처참한 죽음을 당하느니 어미인 자신이 마지막을 거두어주는 것이 의무라 여겼다 재평가하며 여성성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도 제공한다. 개인에서부터 국가까지, 여성으로부터 남성까지, 법과 질서, 사회와 개인을 넘나들며 다양한 시각에서 서술된 새로운 그리스 신화를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다.

어렸을 때부터 신화를 접해왔고 일종의 향수같은 감정마저 느껴온 세월들을 되돌아보며 어째서 신화를 읽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로만 끝나는 것에 대한 목마름들을, 신화와 명화를 바탕으로 한 인문학적 소견들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신화에 대한 재해석. 이 새로운 시도의 결과야말로 '지금, 여기'를 이해하는 통로로 기능하는 살아있는 신화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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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와 빈센트 (반양장)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스페셜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지음,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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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이런 조합을 보게 될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다. 별을 노래한 시인 윤동주와 별을 그린 화가 빈센트 반 고흐라니. 124편의 시와 129점의 그림이 수록된 이 시화집은 아마 누구라도 탐내지 않을까.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가고 자꾸만 알고 싶은 두 사람의 매력적인 콜라보가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스페셜>로 출간되었다. 시를 쓰며 조국의 독립을 염원한 윤동주와 평생을 그림 속에 파묻혀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해낸 그들의 영혼이, 이렇게 보니 조금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가 장식된 표지가, 윤동주라는 이름을 만나 더 아련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이 가득하다는 것을 대충 훑어만 보아도 알겠다. 시 하나와 그림 한 점을 매칭하는 작업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 하나하나를 다시 읽어보고, 그림 한점한점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을 편집자의 나날들이 눈에 보이는 듯 선명하다. 제일 먼저 반겨주는 시는 역시 <서시>다. 고흐의 그림은 <별이 빛나는 밤>. 이어지는 <자화상>이라는 시에는 고흐의 <자화상>이 함께하고, <돌아와 보는 밤>에는 <아를의 고흐의 방>이 나란히 붙어 있다. 어찌 이리 하나하나가 잘 어울리는지. 조금 과하게 이야기하자면 서로가 서로에게 '여보게, 친구, 자네는 시를 쓰게. 난 그림을 그리겠네. 알겠네, 우리 한 번 해보세'라고 말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활동한 시대와 장소도 달랐던 그들이 평생의 친구를 가까이 두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림은 말없는 시이고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는 문구에 저절로 눈이 가는 시화집이다. 그들이 과연 시와 그림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한층 더 귀기울이게 되는 책. '열두 개의 달 시화집'은 달마다 어울리는 화가를 선정하여 그림과 시를 매치한 시화집 시리즈인데 이번에 이렇게 귀한 책을 내주었다. 몇 세기가 흘러도 변하지 않을 가치를 지닌 책을 소장하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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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하지 않는 남자 사랑에 빠진 여자
로지 월쉬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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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난 에디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 사라. 멋진 일주일을 보내고 각자의 일정에 따라 잠시 이별하지만 다시 만날 것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혀 연락이 되지 않는 에디. 전화에도 SNS에도 응답하지 않고 마치 연기처럼 증발해버렸다. 사라의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사이 친구 조와 토미는 그저 한순간의 유희였을 뿐, 에디가 사라를 진지한 인연으로 생각한 것 같지 않다며 그냥 잊으라 조언한다. 하지만 사라 뿐만 아니라 에디와 스페인에 가기로 한 알란도, 마틴이라는 사람도 에디의 근황이 궁금하다고 SNS에 글을 남겼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상한 전화와 문자들. 에디에게서 멀리 떨어지라는 경고에 사라는 이 만남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지만 여전히 이 남자의 존재가 궁금하다!

달콤한 사랑의 밀어들도 에디가 연락하지 않으면서 아무 소용 없게 되었다. 그가 한 말들, 그가 한 행동들을 곱씹어보며 대체 무엇이 잘못된 건지 계속 따져보는 사라다. 그녀의 행동은 사랑에 빠진 여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행동들이다. 내가 여자기 때문에 남자도 그런 것인지 잘 모르니 '여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행동'이라는 단서를 달아둔 것일 뿐, 남자들도 사랑에 빠지면 사라처럼 행동할 수 있다. 전화를 기다리고, 연락이 되지 않는 상대를 답답해하고, 나에게 질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메시지를 보내고. 어쩌겠는가. 나는 이미 그에게 빠져버린 것을. 파탄난 결혼 생활 속에서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에디를 만나버린 것을. 혹시 내가 결혼했었던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이 원인인가, 아니면 나의 비밀을 에디가 알아버린 것일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연락하지 않은 그가 정말 이상하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니겠지. 불안과 두려움 속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라에게 마침내 에디가 찾아온다. 그들의 오랜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로맨스 스릴러-라는 홍보문구에 에디가 말도 못할 짓을 저지른 범죄자라도 될 줄 알았다. 사실은 그가 킬러이며 우연히 사라를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중이라 연락을 못한 것이라고. 혹은 에디가 연쇄살인마로 사라는 그의 정체를 모르고 사랑하게 된 가련한 여인이거나. 하지만 밝혀진 진실은 더 뼈아픈 것이었다. 사라가 아끼고 지켜주고 싶어했던 동생 한나와 관련된 그들의 인연. 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했던 행동이 커다란 비극을 낳아 그 일과 연관된 누구의 삶도 온전치 못하게 했다. 게다가 과거의 행동이 이번에는 에디와 사랑의 행보에 커다란 족쇄를 채운다. 그 족쇄를 부수고 그들은 과연 함께할 수 있게 될까.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게 될까.

사랑과 용서에 관한, 기적같은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도저히 있을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미래가 또 다른 한 생명으로 밝게 빛난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한 순간의 쾌락에 열중하고 상대를 차버리는 남자와 그런 남자에게 끈질기게 매달리는 여자를 그리는 상투적인 내용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런데 만약 제목이 뒤바뀌었다면 어떤 느낌이 날까. 전화하지 않는 여자, 사랑에 빠진 남자였다면. 문득 이런 제목으로 후속작이 나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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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온 - 잔혹범죄 수사관 도도 히나코
나이토 료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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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가 두려울 정도로 잔혹하고 엽기적인 범죄의 묘사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대학원에 진학해 기숙사비를 아끼기 위해 값싼 방을 구하던 한 청년. 지은 지 35년 정도 되었지만 거실에 작은 방과 부엌이 딸린 집세 3만 엔의 싼 방을 구경하러 간 부동산업자와 청년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은 잔인하게 살해된 한 소녀의 시신이었다. 설령 그것이 어떤 숭고한 목적을 위해 신이 허락한 행위였다고 해도 자신만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한 청년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비명이 쏟아져나온 후 5년. 도도 히나코는 하치오지 니시 경찰서의 형사 조직범죄 대책과에서 사건파일을 뒤적이면서 수사 개요나 피해자의 상황을 머릿속에 입력시키고 있다. 그녀는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형사가 되기를 희망하는데, 그런 그녀를 응원하는 것은 친구 히토미와 돌아가신 어머니가 주신 고향의 고춧가루.

 

아직 풋내기에 불과한 도도는 간씨와 함께 어떤 사건 현장으로 향한다. 피해자는 택배기사였던 미야하라 아키오. 스토커, 강제외설 혐의 등으로 세 번 검거된 전과가 있고 2010년 8월 하치오지 니시 인터체인지 아래에서 발견된 여고생 교살 시체의 용의자였다. 발견된 미야하라의 시신은 처참했는데 그 모습은 도도의 기억 속에서 2010년 교살된 여고생의 사건파일과 비슷하다는 기록을 불러왔다. 발견된 그의 휴대폰 동영상에는 그가 살해당할 당시의 정황이 찍혀 있었는데 마치 누군가로부터 위협을 당하는 모습과는 달리 미야하라 외의 다른 인물을 찍혀 있지 않은 상태. 의문만 더해지는 가운데 연이어 벌어지는 사건들의 피해자들은 과거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똑같은 방법으로 살해당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복수인가, 죄책감으로 인한 자해인가. 이론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수사가 난항을 거듭하는 가운데 만난 심료내과의 나카지마 다모쓰. 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 그와의 만남으로 마음 한켠에 따스한 온기를 간직하게 된 도도의 앞에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다가오면서 그녀는 한 가지 예상으로 머리가 번뜩인다.

 

으아.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나지만 정말 오랜만에 읽기 힘든 작품을 만났다. 잔혹 엽기 범죄 사건. 시신의 모습과 사건 정황을 이리도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묘사하다니, 가능하면 건너뛰고 싶을 정도로 처참하다. 처참한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것인가, 나를 둘러싼 세상 전체를 의심하게 될 정도로 잔혹한 소설. 무서움과 두려움을 넘어 이건 밤잠을 설칠 정도에 이 정도면 급기야 몸까지 아파온다. 그 잔인함이 나카야마 시치리의 충격적인 작품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시리즈>에 비견된다고 하면 짐작이 될까. 그 시리즈를 읽고 처음에는 내 다시는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을 읽지 않으리라 결심했을 정도였는데 인간의 악의와 섬뜩함의 강도는 [온]이 더 강한 것 같다. 아무렇지 않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을 몇 번이나 머릿속에서 재생하는 범죄자의 극악무도함. 피해자의 애원과 망가져가는 모습에서만 느낄 수 있는 쾌락. 어째서 인간은 이리도 잔인할 수 있는 것인가, 씁쓸한 맛에 입술이 바싹 말라온다.

 

단순한 엽기 범죄 잔혹 소설이 아니라 작품 안에서는 제법 심오한 논리가 펼쳐진다. 살인하는 유전자가 정말 있을 수 있는 것인지, 뇌의 어느 한 부위에 스위치가 켜지면 인간이 살인범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이 이어지는데 이 부분을 무시할 수 없어 꽤 찬찬히 시간을 들여 읽었다. 적당한 분량인데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읽는 시간이 걸렸던 것은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인데, 여전히 나는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사실 쾌락을 위해 동족을 죽이는 것은 인간 뿐으로, 사람을 죽이는 상황에서 이미 범인은 미쳐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그 와중에 '형광등 베이비'였던 오토모 쇼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만약 그가 자신을 사랑해주는 부모를 만났더라면, 그가 제대로 된 돌봄을 받았더라도 범죄를 저질렀을까. 하지만 누구나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떠올리면 역시 범죄는 범죄일 뿐 그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는 생각이다.

 

잔혹한 사건들 가운데 도도 히나코의 풋내기 경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순수함과 감동적인 감정이입 모습은 청량감을 전달한다. 엄청난 일을 겪으면서 그 일을 발판으로 더 단단해지는 도도의 모습은 앞으로 그녀가 보여줄 활약이 더 커질 것임을 암시한다. 2014년에는 동명의 드라마가 제작되기도 하는 등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 아무래도 제목이 의미하듯 시리즈에서 잔혹 범죄에 대한 묘사가 멈출 것 같지은 않지만, 그래도 도도 히나코가 활약하는 모습은 계속 지켜보고 싶다. 쉬엄쉬엄 읽기는 했으나 책장을 펼치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어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소설. 잔혹한 사건들 가운데서도 청량감을 잃지 않도록 '가라! 히나코!'라는 응원을 나 또한 그녀에게 보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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