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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온 - 잔혹범죄 수사관 도도 히나코
나이토 료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읽기가 두려울 정도로 잔혹하고 엽기적인 범죄의 묘사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대학원에 진학해 기숙사비를 아끼기 위해 값싼 방을
구하던 한 청년. 지은 지 35년 정도 되었지만 거실에 작은 방과 부엌이 딸린 집세 3만 엔의 싼 방을 구경하러 간 부동산업자와 청년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은 잔인하게 살해된 한 소녀의 시신이었다. 설령 그것이 어떤 숭고한 목적을 위해 신이 허락한 행위였다고 해도 자신만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한 청년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비명이 쏟아져나온 후 5년. 도도 히나코는 하치오지 니시 경찰서의 형사 조직범죄 대책과에서 사건파일을
뒤적이면서 수사 개요나 피해자의 상황을 머릿속에 입력시키고 있다. 그녀는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형사가 되기를 희망하는데, 그런 그녀를 응원하는 것은 친구 히토미와 돌아가신 어머니가 주신 고향의 고춧가루.
아직 풋내기에 불과한 도도는 간씨와 함께 어떤 사건 현장으로 향한다. 피해자는 택배기사였던 미야하라 아키오. 스토커, 강제외설
혐의 등으로 세 번 검거된 전과가 있고 2010년 8월 하치오지 니시 인터체인지 아래에서 발견된 여고생 교살 시체의 용의자였다. 발견된
미야하라의 시신은 처참했는데 그 모습은 도도의 기억 속에서 2010년 교살된 여고생의 사건파일과 비슷하다는 기록을 불러왔다. 발견된 그의 휴대폰
동영상에는 그가 살해당할 당시의 정황이 찍혀 있었는데 마치 누군가로부터 위협을 당하는 모습과는 달리 미야하라 외의 다른 인물을 찍혀 있지 않은
상태. 의문만 더해지는 가운데 연이어 벌어지는 사건들의 피해자들은 과거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똑같은 방법으로 살해당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복수인가, 죄책감으로 인한 자해인가. 이론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수사가 난항을 거듭하는 가운데 만난 심료내과의 나카지마 다모쓰.
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 그와의 만남으로 마음 한켠에 따스한 온기를 간직하게 된 도도의 앞에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다가오면서 그녀는 한 가지
예상으로 머리가 번뜩인다.
으아.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나지만 정말 오랜만에 읽기 힘든 작품을 만났다. 잔혹 엽기 범죄 사건. 시신의 모습과 사건
정황을 이리도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묘사하다니, 가능하면 건너뛰고 싶을 정도로 처참하다. 처참한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것인가, 나를 둘러싼 세상 전체를 의심하게 될 정도로 잔혹한 소설. 무서움과 두려움을 넘어 이건 밤잠을 설칠 정도에 이 정도면
급기야 몸까지 아파온다. 그 잔인함이 나카야마 시치리의 충격적인 작품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시리즈>에 비견된다고 하면 짐작이
될까. 그 시리즈를 읽고 처음에는 내 다시는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을 읽지 않으리라 결심했을 정도였는데 인간의 악의와 섬뜩함의 강도는 [온]이
더 강한 것 같다. 아무렇지 않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을 몇 번이나 머릿속에서 재생하는 범죄자의 극악무도함. 피해자의 애원과 망가져가는
모습에서만 느낄 수 있는 쾌락. 어째서 인간은 이리도 잔인할 수 있는 것인가, 씁쓸한 맛에 입술이 바싹 말라온다.
단순한 엽기 범죄 잔혹 소설이 아니라 작품 안에서는 제법 심오한 논리가 펼쳐진다. 살인하는 유전자가 정말 있을 수 있는 것인지,
뇌의 어느 한 부위에 스위치가 켜지면 인간이 살인범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이 이어지는데 이 부분을 무시할 수 없어 꽤
찬찬히 시간을 들여 읽었다. 적당한 분량인데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읽는 시간이 걸렸던 것은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인데, 여전히 나는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사실 쾌락을 위해 동족을 죽이는 것은 인간 뿐으로, 사람을 죽이는 상황에서 이미 범인은
미쳐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그 와중에 '형광등 베이비'였던 오토모 쇼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만약 그가 자신을 사랑해주는 부모를 만났더라면, 그가 제대로 된 돌봄을 받았더라도 범죄를 저질렀을까. 하지만 누구나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떠올리면 역시 범죄는 범죄일 뿐 그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는 생각이다.
잔혹한 사건들 가운데 도도 히나코의 풋내기 경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순수함과 감동적인 감정이입 모습은 청량감을 전달한다. 엄청난
일을 겪으면서 그 일을 발판으로 더 단단해지는 도도의 모습은 앞으로 그녀가 보여줄 활약이 더 커질 것임을 암시한다. 2014년에는 동명의
드라마가 제작되기도 하는 등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 아무래도 제목이 의미하듯 시리즈에서 잔혹 범죄에 대한 묘사가 멈출 것 같지은 않지만,
그래도 도도 히나코가 활약하는 모습은 계속 지켜보고 싶다. 쉬엄쉬엄 읽기는 했으나 책장을 펼치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어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소설. 잔혹한 사건들 가운데서도 청량감을 잃지 않도록 '가라! 히나코!'라는 응원을 나 또한 그녀에게 보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