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보는 그리스신화 - 오늘, 우리를 위한 그리스신화의 재해석
박홍순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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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든 철학이든 서양 고전을 읽을 때면 어느 때든 툭툭 튀어나오는 그리스 신화. 단순한 비유의 역할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제공한다. 수없이 많은 세대에 걸쳐 축적되어 왔기 때문에 서구적 사고방식의 DNA라 불려도 과언이 아닌, 그렇기 때문에 서구적 사고의 원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신화에는 그리스 철학의 모태가 되는 원초적 세계관과 인생관이 들어 있다. 이 신화를 통해 그리스 철학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10세기 이상의 사유 방식의 축적과 전환 과정의 산물임을 발견할 수 있다고. 구전에 의해 정보가 전달된 시대에 신화는 가장 훌륭한 기록의 방식으로, 이 시대의 사유 방식을 이해하는 데 신화는 매우 유익하다. 이런 신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철학적 맥락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데, 신화는 언제나 특정한 역사적 배경 아래서 탄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신화를 배경으로 사유의 세계가 펼쳐진다. 인간과 세계를 살펴보고, 문명과 국가를 돌아보고, 이성과 감성에 관해 묻고, 여성과 남성을 생각하는 과정. 신화의 기본적인 재미난 이야기들을 기반으로 그 안에 묻혀 있는 메시지들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시시포스의 형벌>을 바라보며 쳇바퀴 인생의 희망에 대해 질문하고, 나르키소스가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어째서 저주였는지 되묻는 신선한 시각. 그동안은 나르키소스가 자신만을 사랑하게 된 것에 대해 보다 큰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삶 자체가 불행한 것이라고 여겼지만, 국가를 최우선으로 하는 시대에 개인을 앞세우는 것 자체가 금기로 취급받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놀랐다. 저자는 개인에 대한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한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현명한 나르키소스로 살아갈 것을 조언한다.

<이카로스>를 통해 무모한 도전인지 무한한 도전인가에 대해 토론하고, 인정에만 치우쳐 크레온을 악한 왕이라 평가했던 방식을 버리고 법과 정의라는 관점에서 그를 재조명한다. 영웅적인 서사시로 평가받는 [일리아스] 속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를 소환해 전쟁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묻고, 희대의 악녀로 불리는 헬레네를 통해 선과 악을 딱 잘라 구분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남편에게 버림받아 복수심에 눈이 멀어 자식들의 목숨을 빼앗은 것으로 알려진 메데이아를, 적에게 처참한 죽음을 당하느니 어미인 자신이 마지막을 거두어주는 것이 의무라 여겼다 재평가하며 여성성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도 제공한다. 개인에서부터 국가까지, 여성으로부터 남성까지, 법과 질서, 사회와 개인을 넘나들며 다양한 시각에서 서술된 새로운 그리스 신화를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다.

어렸을 때부터 신화를 접해왔고 일종의 향수같은 감정마저 느껴온 세월들을 되돌아보며 어째서 신화를 읽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로만 끝나는 것에 대한 목마름들을, 신화와 명화를 바탕으로 한 인문학적 소견들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신화에 대한 재해석. 이 새로운 시도의 결과야말로 '지금, 여기'를 이해하는 통로로 기능하는 살아있는 신화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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