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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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봤을 때부터 나한테는 당신 안의 차분함이 보였어요. 사람들이 책에 써놓았지만 실제로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은, 내면의 고요함 같은 것. 그래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죠. 저 여자는 어떻게 저럴 수 있지? 그러다가 저건 후회가 없는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결정을 내릴 때......아주 차분한 마음으로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는 사람만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 그게 나를 멈칫하게 했죠. 그래서 그걸 다시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p370-371

에이모 토울스의 [우아한 연인]속 등장하는 명대사 중 하나. 나는 이 장면을 읽고나서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당신에 대해 아무도 모르는 사실 하나만 얘기해줘요'. 이제 막 시작되는 감정을 숨기고 둘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기류를 해소하기 위해 장난처럼 던졌던 질문. 그 질문에 대한 상대의 대답은 시간이 조금 흐르고서야 들을 수 있었지만, 두 사람이 만나 다시 이 대화를 나누기까지 보내야했던 그 많은 시간들보다 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똑똑히 기억하는 대답. 읽는 순간부터 뇌리를 떠나지 않고 가슴 시린 눈물을 끝내 흘리게 만들었던 장면이었다. [우아한 연인]을 읽은 독자라면 어째서 내가 이 부분을 이렇게 사랑하는지, 왜 잠을 이룰 수 없었는지 이해할 것이다.

 

1966년 10월의 어느 밤, 중년의 끝자락에 이른 케이트와 밸 부부는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했다. 워커 에반스가 1930년대 말에 뉴욕 지하철에서 몰래카메라로 찍은 인물사진들을 처음으로 전시하는 자리. 밸과 함께 찬찬히 사진을 둘러보던 케이트는 그 안에서 예상치못한, 팅커 그레이의 사진을 발견한다. 그녀를 멈춰서게 한 두 장의 사진. 이미 3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단번에 기억 속에서 떠오른 그 남자.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녀를 휘어잡은 팅커의 사진은, 케이트를 다시 달콤했지만 불확실했던 과거로, 그 때의 우연한 만남들이 빚어낸 찬란하고 순수한 시대로 불러들인다.

 

재즈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1937년의 뉴욕. 서로를 사랑하는 친구 케이트와 이브는 젊고 능력있는 신사 팅커와 우연히 만나 맨해튼의 사교계에 발을 들인다. 멋진 음악과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각자 서로에게 이끌리는 세 사람. 만약 그 날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사고는 일어났고 이브가 얼굴과 다리를 다치게 되자, 팅커는 죄책감에 그녀의 인생을 책임지기로 결심한다. 조지 워싱턴의 '품위의 규칙'을 삶의 철칙으로 삼던 팅커의 결정으로 세 사람의 관계는 급변했다. 극장에서 누가 누구의 옆에 앉을지 결정하는 것으로 신경전을 벌이고, 케이트와 팅커 두 사람만 만나 커피를 한 잔 했다는 것에 이브가 질투했던 소소하고 아름다웠던 과거의 날들. 그 날들을 뒤로 한 채 이제 그들은 결정하고 받아들이고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

 

'데뷔 소설이 아니라 열 번째 작품같다'는 찬사를 들었던 것으로 유명한 에이모 토울스의 [우아한 연인]이 시대의 낭만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완벽한 표지와 판본으로 개정되었다.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은 뒤 그의 데뷔작이 궁금했지만 절판되어 읽을 수 없었던 아쉬움을 이 개정판으로 달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그 엄청난 찬사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나는 이 작품에 깊이 빠져버렸다. 서로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케이트와 이브, 팅커의 마음이 유치하고 치졸하지 않고 담백한 문체와 절제된 감정으로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작품을 읽는 내내 실제 틀어놓지도 않은 음악이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고, 케이트가 읽는 책들은 또 얼마나 인상적이었던가. 그녀가 무인도에 간다면 가지고 간다던 [월든]을, 팅커가 나중에 읽어보았다는 대목에서도 내 심장은 덜컹거렸다. 상대의 사소한 부분까지 기억하는 것. 어떤 매개를 통해 소통하고 싶어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뉴욕에는 아직 가 본 적이 없고, 1930년대의 분위기가 어떠한지는 더더욱 모르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영원히 잊지 못할 그 시간, 그 장소로 우리를 데려간다. 우연한 만남이 빚은 사랑, 사고, 그 만남들에서 파생된 또다른 만남들. 전쟁의 비극과 대공황의 시련들은 아직 오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젊은 그들은 자신들의 젊음을 만끽하며 음악과 문학을 자유롭게 즐기고 웃는다. 시대가 전하는 순수와 낭만. 아, 정말이지 나는 이 작품이 전달하는 이 분위기에 완전히 매료당했다. 마치 한 편의 흑백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가슴 설렘. 아련한 향수. 그리고 잊을 수 없는 한 사람.

 

에이모 토울스는 한 작품당 4년은 시간을 들인다고 했다. [모스크바의 신사]가 국내에 출간된 것은 2018년. [우아한 연인]은 데뷔작인만큼, 다음 작품을 읽으려면 2022년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 때까지 [우아한 연인]과 [모스크바의 신사]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열심히 기다리련다. 이제는 에이모 토울스와 사랑에 빠질 시간. 부디 이 작가와의 우아한 밀회를 여러분도 포기하지 마시기를. 올해 읽은 작품 중 TOP5 안에 들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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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위크
강지영 외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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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얻게 된 권총 한 자루. 이 권총을 어떻게 할 것인지 토론하기 위해 현우, 태영, 중식이 태영의 자취방에서 뭉쳤다. 인생은 한방, 권총은 기회. 현우의 제안으로 농협의 현금수송차량을 털기로 결심한 세 사람은 자신들이 보기에는 완벽하지만 타인이 보기에는 허술하기 그지없는 계획을 짜고 이를 실행한다. 하지만 완벽한 계획이어도 모자란 판에 이들이 벌인 탈취극은 점차 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변하고, 결국 막다른 길에 몰린 세 사람은 '어위크'라 쓰여진 편의점으로 돌진, 알바생을 인질로 삼아 경찰과 대치한다. 요구사항을 경찰에게 전달한 후 알바생의 제안으로 시작된 신비롭고 미스터리하며 경쾌하기도 하고 오싹한 일곱 가지 이야기들. 이야기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세 사람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여덟 명의 작가가 모여 '어위크'라는 편의점을 소재로 다양한 재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선시대 궁궐 화재의 비밀을 캐는 검사 이준, 어느 킬러의 방음 제로 아파트 잡입기, 평행우주 이론을 기반으로 하여 또 다른 나를 만난 남자의 이야기, 박과장을 죽이기 위한 살인계획, 사람을 집어삼키는 구멍과 게임의 비밀, 교통사고로 사망한 남편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아비에 뛰어든 한 여자의 비극적인 이야기, CEO 리스크에 맞선 편의점 점주들의 분투기. 미스터리와 호러, 코미디와 드라마, SF가 고루 곁들여져 골라 읽는 재미가 있는 단편집이다. 취향에 맞는 이야기를 골라 읽어도 좋지만 순서대로 처음부터 읽는 것도 좋겠다. 다음에 등장할 이야기는 과연 어떤 장르일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는 것도 멋진 일이니까.

 

읽기 전만 해도 과연 얼마나 독창적인 세계를 보여줄 지 반신반의했는데, 생각보다 정말 재미있었다. 일본문학에서 자주 보이는 기묘한 괴담집같다고 할까. 독서편식에 이런 저런 방면으로 부족한 지식을 갖고 있지만 우리나라 작품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와 문체에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미안해질 정도로 즐겁게 읽었다. 우리나라의 장르소설도 좀 더 흥하기를. 이 작가들의 다른 작품들도 골라골라 읽어봐야겠다.

 

그나저나 편의점 알바생의 정체는 뭐였을까. 이 책은 띠지도 독특해. 부디 띠지의 재미도 놓치지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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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침묵
토머스 해리스 지음, 공보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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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연수생 클라리스 스탈링. 존 크로포드 부장의 호출로 희대의 식인살인마인 한니발 렉터의 인터뷰를 맡게 된다. 그와의 대화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연쇄 살인 사건의 단서를 얻기 위해서. 아홉 명을 살해하고 그들의 인육을 먹는 엽기적인 사건을 벌였던 한니발 렉터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였다. 여성들을 납치, 살해하고 살가죽을 벗긴 후 유기하는 연쇄살인마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한 만남이었지만 한니발과의 대화를 통해 스탈링은 자신의 과거, 자신 안의 어둠과 조우한다. 감옥 안에 있으면서도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으로 대화의 주도권을 쥐려 하는 한니발의 모습은 그가 희대의 살인마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로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그와의 면담을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얻은 스탈링. 그리고 납치된 또 한 명의 여성. 과연 그녀를 시간 안에 구출할 수 있을 것인가.

아주 오래 전 본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렉터 역을 맡은 안소니 홉킨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서늘하면서도 자신감에 차 있던 미소. 이리저리 대화를 이끌어가며 자신 앞에 앉은 스탈링을 '요리'하는 것처럼 보여 '뭐지, 스탈링이 양을 상징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했던 그 때. 렉터가 저지른 살인과 그 후 인육을 먹는 행각은 엽기적이지만, 스탈링을 앞에 둔 그의 모습은 마치 그녀의 멘토를 자청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소 위협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대화를 통해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보려하고 스탈링이 간직한 상처, 어둠을 대면하게 만드는 렉터. 아이러니하게도 스탈링은 렉터와의 만남을 통해 혁혁한 공을 세우고 내면적인 성장까지 이루는 인물로 비춰진다. 여성이기에 받아야 했던 모멸과 차별, 영화와 마찬가지로 원작 안에서도 팽배한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도 렉터는 그녀를 마치 애정하는 딸처럼 대할 뿐이다.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시종일관 궁금했는데 이 궁금증은 작품을 다 읽은 지금까지도 시원하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한니발]과 [한니발 라이징]을 읽으면 알게 될 지.

작품이 출간된 지 벌써 30년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스릴러다. 사건의 묘사와 행적이 잔인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렉터와 스탈링의 대화가 빚어내는 심리 묘사 또한 흥미롭다. FBI 내에서 약자로 나타나는 스탈링과 사회에서 약자이자 암적인 존재로 나타나는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이 둘의 대조 또한 의미심장하다. 토머스 해리스의 신작 [카리 모라]도 출간되었던데, 사실 이 작품보다 출간 30주년 기념 에디션으로 나온 한니발 시리즈에 더 마음이 간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어쩐지 매력있는 캐릭터인 한니발 렉터. 작품을 읽으니 영화도 한 번 더 보고 싶어지는데, 일단 [한니발]과 [한니발 라이징]부터 정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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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
세오 마이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스토리텔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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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카이 선생님이 고민이나 힘든 일이 있어도 이야기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알 수 있을 리 없다고 말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유코는 엄마가 두 번, 아빠가 세 번 바뀐 경험이 있으니 분명히 남모르는 고민이 있으리라 짐작한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말씀드린대로 유코는 전혀 불행하지 않았고 고민이나 골칫거리로 여길만한 일들도 없어서 면목이 없을 지경인 상태다. 세 번째 아빠인 모리미야 씨와 아주 잘 지내고 있으니까. 시업식, 시험날은 말할 것도 없고 늘 유코가 힘낼만한 요리를 만들어주는 데다, 엉겁결에 고등학생인 딸이 생겼음에도 진심을 다해 유코를 보살펴주는 37세 모리미야 소스케. 그리고 두 번의 엄마와 두 번의 아빠를 거쳐 세 번째로 모리미야에게 정착하게 된 유코. 피가 섞이지 않은 부모 사이를 릴레이 경주하듯 이어 가며 네 번이나 이름이 바뀌었지만 유코는 늘 사랑받았다. 기억해야 할 것, 중요한 사실은 그 하나 뿐.

 

이 작품을 읽기 전 부모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라 해서 고통스럽고 가슴 아픈 내용이면 어쩌나 걱정했었다. '부모 역할'이라는 키워드에 끌려 읽게 되었지만 아이들과 관련해서 되도록 슬픈 이야기는 읽고 싶지 않다. 당연하게도 감정이입이 너무 쉽게 되서 읽으면서 대성통곡을 하거나 거센 후폭풍을 겪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우려했던 바와 달리 [그리고 바통은 이어졌다]는 사람에 따라 불우하게도 생각할만한 상황이 예상 외로 경쾌하고 담백하게 그려져 있다. 비록 두 번의 엄마와 세 번의 아빠를 거쳤지만 유코가 만난 엄마와 아빠들은 모두 그녀를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사랑해주었고, 유코 또한 그 마음을 가슴 깊이 간직한 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올 수 있었으므로.

 

친엄마는 유코가 기억도 못하는 시절 사고로 돌아가셨고, 그 후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그녀를 키워주었다. 리카가 나타나 유코의 새엄마가 되어주었고, 아빠가 브라질로 파견나가면서 두 사람이 이혼하게 되었을 때에도 리카는 유코를 자신이 맡겠다고 결정하는 데 서슴치 않았다. 풍족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유코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한 마디에 어떻게든 피아노를 치게 해주겠다면서 자신이 생각한 최선의 방법을 찾았다. 리카의 재혼상대인 이즈미가하라 씨는 아버지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묵묵하게 유코를 지켜봐주었고, 마지막으로 만난 아빠인 모리미야는 젊은 나이임에도 아빠가 된다는 것에 각오를 다진다. 상황이 쉽게 흘러갔을 뿐이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쉬웠을 리 없다. 드러나지 않은 장면 속에서 모두 자신만의 고민을 떠안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유코를 최우선으로 두고 나머지를 선택했다.

지켜야 할 것이 생겨 강해진다거나, 자기보다 소중한 존재가 있다거나 하는 간지러운 대사들이 노래 가사나 영화, 소설에 넘쳐나잖아. 그런 건 모두 허풍이라고 생각했었어. 아무리 연애를 해도 전혀 느낌이 오지 않았거든. 그렇지만 유코짱이 온 뒤에 깨달았어. 나보다 소중한 존재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고 나를 위해서는 할 수 없는 일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다고.

어떤 부부들은 아이 때문에 산다고도 한다. 예전의 나는 -어떻게 아이 때문에 내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 있지-라고 생각했었다. 미련하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이 때문에 산다는 그 한 문장에 얼마나 깊은 다짐과 희생이 담겨 있는지. 부모인 이상 아이를 낳은 것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 아이가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내 자신의 삶은 뒤로 밀린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됐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렇지 않은 삶은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순간순간 힘들고 부족한 자신을 탓하며 혼자있음을 갈망하지만, 모리미야의 말처럼 나를 위해서는 할 수 없는 일도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 아이를 최우선으로 두는 것, 아이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존재라고 느낄 수 있게 듬뿍 사랑해주는 것이다.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도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을 통해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는 모리미야와 유코의 모습이 소소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이의 성장을 최우선으로 두고 자기 삶의 목표로 삼은 어른들. 그들의 모습을 가슴에 담으면서 다시 한 번 진정한 부모의 역할에 대해 되짚어본다. 2019년 일본 서점대상을 수상한 작품답게 재미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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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버리기 기술 -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힘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 갤리온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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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발칙한 제목을 보았나! 희망을 가지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해도 모자랄 이 험한 세상에서 희망을 버리라니! 힘들고 어려운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희망인데 그런 희망을 버리라고 과감히 이야기하는 작가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제목이라 계속 입 안에서 맴돈다. 희망을 버리라니, 희망을 버리라고, 희망을 어떻게 버리지, 삶에서 희망을 버리면 과연 사람들은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지. 작가의 전작 [신경 끄기의 기술]을 읽어본 적이 없어 더욱 짐작할 수 없는 내용이고 평소 잘 읽지 않는 자기계발 서적이라 시큰둥했지만, 과연 어떤 이야기가 실려 있을지 궁금한 마음이 더 컸다고 할까.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던 시대에 등장한 과학혁명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았다. 과학혁명이 나타난 뒤로 '성장'을 경험할 수 있었던 세상에 진보는 계속됐다. 사람들은 전에 없이 풍요로운 시대를 누리고 있지만 우울과 불안으로 압도된 삶을 살아가며 자살률을 전세계적으로 치솟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작가는 옛날과 비교했을 때 기술의 진보로 수많은 고통이 해결됐지만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더 이상 삶의 의미를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제는 새로운 질문이 필요할 때라고. 성장과 진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류의 삶을 발전시킨 것은 무엇인지, 인간의 삶에서 희망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이 책은 역사, 종교, 철학적인 면에서 희망에 대해 묻고 '진짜 희망'이란 것에 대해 탐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희망은 온전히 긍정적인 개념으로만 여겨졌지만 저자는 희망 자체는 중립지대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희생자들이 비극적인 현실을 견디게 해준 것도 희망이고, 나치가 그들을 학살한 이유도 희망이었다.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열망. 나름의 가치관에서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열정. 작가는 희망을 현재를 거부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보았다.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거부하고, 현재의 고통을 거부한 채 현실을 저당잡히고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내달리는 것이 희망의 개념인 것이다.

 

작가는 희망을 바라지 말고 그저 행동하라고 이야기한다. 자유와 함께 오는 괴로움, 행복과 동반되는 고통을 거부하지 말고 온전히 받아들이라고. 물론 두렵겠지만 행동하라고. 더 나아지는 것을 희망하지 말고 더 나아지라고 말이다. 이런 조언은 다른 자기계발서에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작가의 말이 한층 무게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이유는 그가 희망에 대해 다방면에서 고민하고 생각한 흔적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가벼운 말 몇 마디로 '그러니까 그냥 행동해'가 아니라, 역사, 종교, 철학적인 면을 고찰하고 내놓은 무게감 있는 결론이라고 할까.

 

쓱 훑어볼 수 있는 내용인 줄 알았는데 첫장부터 오우, 쉽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견일 수도 있지만, 그 동안의 자기계발서에서 볼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라 마치 인문학 서적을 읽는 느낌까지 들어 더 좋아지게 만든 책. [신경 끄기의 기술]은 어떤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을지 연계해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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