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침묵
토머스 해리스 지음, 공보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FBI 연수생 클라리스 스탈링. 존 크로포드 부장의 호출로 희대의 식인살인마인 한니발 렉터의 인터뷰를 맡게 된다. 그와의 대화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연쇄 살인 사건의 단서를 얻기 위해서. 아홉 명을 살해하고 그들의 인육을 먹는 엽기적인 사건을 벌였던 한니발 렉터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였다. 여성들을 납치, 살해하고 살가죽을 벗긴 후 유기하는 연쇄살인마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한 만남이었지만 한니발과의 대화를 통해 스탈링은 자신의 과거, 자신 안의 어둠과 조우한다. 감옥 안에 있으면서도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으로 대화의 주도권을 쥐려 하는 한니발의 모습은 그가 희대의 살인마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로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그와의 면담을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얻은 스탈링. 그리고 납치된 또 한 명의 여성. 과연 그녀를 시간 안에 구출할 수 있을 것인가.

아주 오래 전 본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렉터 역을 맡은 안소니 홉킨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서늘하면서도 자신감에 차 있던 미소. 이리저리 대화를 이끌어가며 자신 앞에 앉은 스탈링을 '요리'하는 것처럼 보여 '뭐지, 스탈링이 양을 상징하는 것인가'라고 생각했던 그 때. 렉터가 저지른 살인과 그 후 인육을 먹는 행각은 엽기적이지만, 스탈링을 앞에 둔 그의 모습은 마치 그녀의 멘토를 자청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소 위협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대화를 통해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보려하고 스탈링이 간직한 상처, 어둠을 대면하게 만드는 렉터. 아이러니하게도 스탈링은 렉터와의 만남을 통해 혁혁한 공을 세우고 내면적인 성장까지 이루는 인물로 비춰진다. 여성이기에 받아야 했던 모멸과 차별, 영화와 마찬가지로 원작 안에서도 팽배한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도 렉터는 그녀를 마치 애정하는 딸처럼 대할 뿐이다.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시종일관 궁금했는데 이 궁금증은 작품을 다 읽은 지금까지도 시원하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한니발]과 [한니발 라이징]을 읽으면 알게 될 지.

작품이 출간된 지 벌써 30년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스릴러다. 사건의 묘사와 행적이 잔인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렉터와 스탈링의 대화가 빚어내는 심리 묘사 또한 흥미롭다. FBI 내에서 약자로 나타나는 스탈링과 사회에서 약자이자 암적인 존재로 나타나는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이 둘의 대조 또한 의미심장하다. 토머스 해리스의 신작 [카리 모라]도 출간되었던데, 사실 이 작품보다 출간 30주년 기념 에디션으로 나온 한니발 시리즈에 더 마음이 간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어쩐지 매력있는 캐릭터인 한니발 렉터. 작품을 읽으니 영화도 한 번 더 보고 싶어지는데, 일단 [한니발]과 [한니발 라이징]부터 정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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