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
세오 마이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스토리텔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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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카이 선생님이 고민이나 힘든 일이 있어도 이야기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알 수 있을 리 없다고 말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유코는 엄마가 두 번, 아빠가 세 번 바뀐 경험이 있으니 분명히 남모르는 고민이 있으리라 짐작한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말씀드린대로 유코는 전혀 불행하지 않았고 고민이나 골칫거리로 여길만한 일들도 없어서 면목이 없을 지경인 상태다. 세 번째 아빠인 모리미야 씨와 아주 잘 지내고 있으니까. 시업식, 시험날은 말할 것도 없고 늘 유코가 힘낼만한 요리를 만들어주는 데다, 엉겁결에 고등학생인 딸이 생겼음에도 진심을 다해 유코를 보살펴주는 37세 모리미야 소스케. 그리고 두 번의 엄마와 두 번의 아빠를 거쳐 세 번째로 모리미야에게 정착하게 된 유코. 피가 섞이지 않은 부모 사이를 릴레이 경주하듯 이어 가며 네 번이나 이름이 바뀌었지만 유코는 늘 사랑받았다. 기억해야 할 것, 중요한 사실은 그 하나 뿐.

 

이 작품을 읽기 전 부모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라 해서 고통스럽고 가슴 아픈 내용이면 어쩌나 걱정했었다. '부모 역할'이라는 키워드에 끌려 읽게 되었지만 아이들과 관련해서 되도록 슬픈 이야기는 읽고 싶지 않다. 당연하게도 감정이입이 너무 쉽게 되서 읽으면서 대성통곡을 하거나 거센 후폭풍을 겪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우려했던 바와 달리 [그리고 바통은 이어졌다]는 사람에 따라 불우하게도 생각할만한 상황이 예상 외로 경쾌하고 담백하게 그려져 있다. 비록 두 번의 엄마와 세 번의 아빠를 거쳤지만 유코가 만난 엄마와 아빠들은 모두 그녀를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사랑해주었고, 유코 또한 그 마음을 가슴 깊이 간직한 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올 수 있었으므로.

 

친엄마는 유코가 기억도 못하는 시절 사고로 돌아가셨고, 그 후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그녀를 키워주었다. 리카가 나타나 유코의 새엄마가 되어주었고, 아빠가 브라질로 파견나가면서 두 사람이 이혼하게 되었을 때에도 리카는 유코를 자신이 맡겠다고 결정하는 데 서슴치 않았다. 풍족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유코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한 마디에 어떻게든 피아노를 치게 해주겠다면서 자신이 생각한 최선의 방법을 찾았다. 리카의 재혼상대인 이즈미가하라 씨는 아버지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묵묵하게 유코를 지켜봐주었고, 마지막으로 만난 아빠인 모리미야는 젊은 나이임에도 아빠가 된다는 것에 각오를 다진다. 상황이 쉽게 흘러갔을 뿐이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쉬웠을 리 없다. 드러나지 않은 장면 속에서 모두 자신만의 고민을 떠안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유코를 최우선으로 두고 나머지를 선택했다.

지켜야 할 것이 생겨 강해진다거나, 자기보다 소중한 존재가 있다거나 하는 간지러운 대사들이 노래 가사나 영화, 소설에 넘쳐나잖아. 그런 건 모두 허풍이라고 생각했었어. 아무리 연애를 해도 전혀 느낌이 오지 않았거든. 그렇지만 유코짱이 온 뒤에 깨달았어. 나보다 소중한 존재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고 나를 위해서는 할 수 없는 일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다고.

어떤 부부들은 아이 때문에 산다고도 한다. 예전의 나는 -어떻게 아이 때문에 내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 있지-라고 생각했었다. 미련하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이 때문에 산다는 그 한 문장에 얼마나 깊은 다짐과 희생이 담겨 있는지. 부모인 이상 아이를 낳은 것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 아이가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내 자신의 삶은 뒤로 밀린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됐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렇지 않은 삶은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순간순간 힘들고 부족한 자신을 탓하며 혼자있음을 갈망하지만, 모리미야의 말처럼 나를 위해서는 할 수 없는 일도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 아이를 최우선으로 두는 것, 아이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존재라고 느낄 수 있게 듬뿍 사랑해주는 것이다.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도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을 통해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는 모리미야와 유코의 모습이 소소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이의 성장을 최우선으로 두고 자기 삶의 목표로 삼은 어른들. 그들의 모습을 가슴에 담으면서 다시 한 번 진정한 부모의 역할에 대해 되짚어본다. 2019년 일본 서점대상을 수상한 작품답게 재미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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