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주영아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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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이고 기묘한 분위기로 압도하는 미스터리!]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엘러리 퀸 콜렉션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도서는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 앞으로도 계속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즐거움이 한참은 남았다고 여겼는데, '공식적인' 엘러리 퀸 함시도는 이 작품이 마지막이 되었다. 아쉽지만 중요한 것은 '엘러리 퀸'이라는 작가의 작품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는 것. 그 동안 이름만 들어왔지 읽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함시도를 통해 작가와 작품에 푹 빠지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권씩 자율적으로 읽어나갈 예정!

 

제목부터 흥미로운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다! 이집트 유물이나 고대 이집트학과 관련해 관심이 많아서 이번 작품에 거는 기대가 컸는데, 등장하는 첫 살인사건부터 오컬트적인 분위기가 물씬! 크리스마스 날 아침,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작은 마을 아로요에서 끔찍한 모습의 시체가 발견된다. T자형 교차로의 T자형 도로 표지판에 목이 잘린 채 T자 모양으로 매달린 시체. 거기에다 피살자의 집 문에는 피로 휘갈겨 쓴 T자가 남아 있다. 희생자의 신원은 교사로 재직 중이던 앤드루 반. 엘러리는 이 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이번 작품에서는 아버지와 떨어져 독자적으로 사건을 수사해보기로 하지만 범인은 마치 연기처럼 그 정체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아무 성과 없이 뉴욕으로 돌아간 엘러리 퀸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야들리 교수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보.

 

엘러리가 야들리 교수로부터 전보를 받은 것은 앤드루 반 사건이 일어나고 6개월 뒤. 뉴욕 주 롱아일랜드에서 똑같은 유형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백만장자인 토머스 브라드가 목이 잘린 채 T자형 토템 포스트에 못 박혀 사망했고, 역시 시체 주변에는 수수께끼의 T자가 피로 쓰여 있다. 사건은 미치광이 예언자와 광신도, 나체주의자 등 기괴한 인물들과 엮여 점점 더 오리무중으로 빠지는 가운데, 반과 토머스, 그리고 토머스의 사업 파트너였던 스티븐을 둘러싼 비밀이 밝혀지면서 이 사건이 아주 오래 전 시작된 피의 복수극임을 알린다.

 

초반에 앤드루 반이 매달려 있던 십자가와 하라크트라는 남자의 존재로 인해, 이 작품은 영락없이 이집트와 연관이 있다, 뭔가 고대의 저주와 관련된 것이 아닌가-하며 마음이 설레었다(?). 하지만 엘러리가 초반에 세운 이 가설은 후에 야들리 교수와의 대화로 사건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으로 증명된다. 사실 그 동안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를 읽으면서 굳이 제목에 국명을 넣을 필요가 있었는가-의문을 가질 정도로 연관이 없다 생각해왔는데,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는 더욱 그러하다! 심지어 엘러리 퀸과 야들리 교수가 아주 친절하게 이집트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설명해주는 마당에야. 사건은 그런 오컬트적인 면이 아니라 이제 가문과 가문 사이에 벌어진 잔인한 복수극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결말은! 이집트 십자가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피해자들의 머리를 자른 이유는 '그것 뿐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런 이유라 내심 놀랐다. 다만 범인 색출에는 실패. 후보에는 올라 있었지만 이 사람 저 사람 갈팡질팡하다가 마지막에 결정을 못한 탓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읽은 엘러리 퀸 작품 중에서는 나와 가장 잘 맞았던 작품.

 

작품 속에서 엘러리 퀸이 펼치는 논리에 집중하다보면 글자 하나하나가 뇌리에 박히는 느낌이 든다.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특히 이렇게 논리적으로 펼쳐지는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내가 독자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한지. 나는 트릭을 고안해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짤 필요도 없이, 그저 단순히 이 책 읽는 시간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공식적인 함시도는 막을 내렸지만, 앞으로 읽어나갈 <엘러리 퀸 콜렉션>에 대한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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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컬렉션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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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편지 조작'이었다. 그것을 과연 단순히 '장난'이라 치부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소의 악의가 들어간, 소녀들의 짖궂음이 반영된. 사람의 마음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그것의 향방이 어찌될 지 지켜보며 킬킬거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 속에서 분노가 치솟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행위를 범죄라 지칭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경우에는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작은 행동 하나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 지, 우리는 감히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사람들이므로. 장난이라고 하는 모든 행위가 모두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녀들의 시작은 장난이었다.

 

조해너의 일생은 외로웠다. 부모님도 계시지 않았고 누구 하나 친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딸처럼 보살폈던 새비서조차도 그녀와 헤어질 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눈물이 다 뭐란 말인가. 새비서가 떨어져 지내는 아빠에게, 조해너가 쓴 것처럼 꾸민 편지를 집어넣으면서 친구인 이디스와 작은 모의를 꾸민 것을 보면, 조해너는 결코 새비서의 마음을 얻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 조해너의 삶 속에서 새비서의 아빠, 부드로가 보낸 편지 하나만이 작은 위안이 되어주었다. 그것이 거짓일 거라고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은 채, 조해너는 부드로를 향해 떠난다. 사랑이라 믿으면서, 자신에게 그가 소중한 존재가 된 것처럼 그에게도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일 것이라 굳게 믿으면서.

 

앨리스 먼로의 작품을 접하게 된 것은 아주 오래 전이었지만 좀 더 주의깊게 읽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의 작품이 쉽다고는 결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마음을 빼앗긴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아직 이 의문에 대한 답을 확실히 찾은 것 같지는 않지만 작가만의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되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일상. 연못에 돌이 떨어지듯 생기는 에피소드. 그 에피소드가 만들어내는 작은 파문에 마음이 깊게 잠겨들어간다. 에피소드가 작품 속 주인공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만큼인지, 사실 나는 가늠도 못하겠다. 중요한 것은 그런 사건들이 그녀들에게 어느 때는 일종의 즐거움을, 어느 때는 삶의 경이를 깨닫게 한다는 데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파문은 곧 사라져간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섬세함.

 

촘촘한 작품집이다. 한 번에 읽어내려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하나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쉬지 않고서는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는. 그럼에도 왜 나는 이 작가를, 이 작품을 이렇게 품고 끙끙거리는 것인가. 답은 모르겠다. 그저 빠져들었고, 읽을 뿐이고, 앞으로도 읽어나갈 것이라는 점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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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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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의 두 번째 도서는 [잠자는 숲]. 일본드라마 중 < 眠れる森>라는 작품이 있어, 혹시 동일작품인가 싶어 찾아봤지만 별개의 내용. 전편인 [졸업]에서 소중한 친구들의 죽음으로 더욱 성숙해진 가가 교이치로가, 다음부터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사건 속에 뛰어들게 될 지 내내 궁금했었다. 경찰보다는 교사의 길을 택했던 가가. 그래서 이번에 교사가 된 가가의 모습을 만나는 것인가 내심 기대했는데, 그 부분은 훌쩍 건너뛰고 형사가 된 가가가 독자들을 맞이한다.

 

다카야나기 발레단에서 발견된 한 구의 남성 시체. 피의자인 사이토 하루코는 사망한 남성인 가자마 도시유키가 발레단의 사무실에 침입, 갑자기 자신을 공격했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살해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정당방위라 말하는 하루코의 의견에 따라 사건 수사를 시작한 가가와 경찰들. 하지만 어째서 가자마가 하필 발레단에 침입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없다. 그것도 화가로서 뉴욕행을 코앞에 둔 지금 시점에서. 하루코와 가자마의 접점도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레단의 안무가인 가지타 야스나리도 살해당하고, 이제는 범인이 발레단 내부에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와중에 발레리나인 아사오카 미오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녀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가가.

 

발레리나-의 모습을 동경한 적이 있었다. 소녀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마음. 작은 새처럼 무대 위를 날아오르며 아름다운 동작을 뽐내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마법'이라는 단어를 표현할 수 있다면 바로 저런 것이 아니겠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언젠가 방송에 등장했던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울퉁불퉁, 고목의 뿌리를 연상하게 만든 그 발에 그녀가 수십 년간 이뤄온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쉼없는 연습, 끊임없는 체중 조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프리마 발레리나가 아니라면 겪어야 하는 생활고. 그렇기 때문에 쉽게 발레를 포기할 수 없었던 다카야나기 발레단원들의 모습에 가슴이 묵지근해질 수밖에 없다.

 

[졸업 : 설월화 살인 게임]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사토코에게 무뚝뚝하게 프로포즈를 했던 가가 교이치로다. -나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내 마음만은 말해두고 싶었다-며 사토코에게 일격(?)을 날렸던 때와는 달리, 미오를 향한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포함된 배려가 담겨 있다. 가가라는 인물을 알고 있기에 망정이지 아무리 사건 수사 연장선에 있다고 해도 다소 스토커 같은 모습으로 연습 중인 그녀를 살펴본다든가, 낯간지러운 대사를 한 마디씩 던지는 그를 보고 있자니 약간 닭살이 돋았다. 과연 이 사랑이 끝까지 지켜질 수 있을지,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면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안타까움마저 느껴진다.

 

아직은 초보 형사의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사건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베테랑의 모습을 보이게 될 지 기대가 크다. 교사였던 그가 학생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을 지 무척 궁금했는데, 혹시 다른 작품들에서 잠깐이라도 엿보게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모으는 뿌듯함이 있는, 멋진 표지의 <가가 형사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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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없는 나는?
기욤 뮈소 지음, 허지은 옮김 / 밝은세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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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기욤 뮈소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 [당신 없는 나는?] . 생생한 장면 구성과 스피디한 전개로 독자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그의 작품은, 이 책에서도 영화 같은 장면들이 연출되며 매력이 빛을 발한다. 늘 스릴러와 로맨스를 결합시켜 진부한 듯 하면서도 묘하게 끌리는 작품들을 선보여온 기욤 뮈소. [당신 없는 나는?] 에서도 가브리엘과 마르탱의 사랑, 가브리엘의 아버지이자 미술품 절도범인 아키볼드의 사연, 그가 자신의 아내이고 가브리엘의 어머니인 발랑틴에게 일평생 바쳐온 사랑 이야기가 애틋하고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버클리대학생 가브리엘과 소르본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사회의 안팎을 두루 경험하고자 샌프란시스코를 두 달 간의 일정으로 방문한 프랑스 청년 마르탱. 두 사람은 카페테리아에서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났다. 계획된 일정이 모두 끝나고 프랑스로 돌아가야 하는 마르탱은 가브리엘에게 사랑을 담은 편지를 전달하고, 편지를 통해 자신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고통까지 꿰뚫어보는 마르탱에게 애정을 느낀 가브리엘은 떠나려는 그를 막아서며 잠시만 출발을 미뤄줄 것을 부탁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를 아낌없이 사랑하는 두 사람. 프랑스로 돌아간 마르탱은 가브리엘을 잊지 못해 괴로워하고 결국 자신의 전재산이나 마찬가지인 경비를 들여 비행기표를 구입, 가브리엘에게 뉴욕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보낸다. 지정된 장소에서 하염없이 가브리엘을 기다리는 마르탱. 그러나 그녀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13년이 흘러 경찰이 된 마르탱은 OCBC(프랑스 문화재 밀거래 단속국)에서 일하게 되고, 그는 희대의 절도범 아키볼드를 잡기 위해 잠복 중이다. 지난 3년간 쫓은 아키볼드. 그는 항상 화가의 생일과 동일한 날짜에 작가들의 작품을 훔쳐왔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을 훔쳐 달아나는 아키볼트를 미행하던 마르탱은, 이번에야말로 그를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아키볼트가 준비한 덫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그를 쫓아 다시 샌프란시스코를 찾은 마르탱. 가브리엘과 재회하고 또 다시 운명같은 사랑을 나누지만, 그들의 앞길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다. 아키볼드 역시 가브리엘을 만나기 위한 준비를 끝마쳤다.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고작 3개월. 모든 진실을 알게 된 가브리엘은 과연 마르탱과 아키볼드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사랑하는 두 사람을 다시 찾게 되었다고 기뻐한 것도 잠시, 선택의 기로에 선 가브리엘의 고뇌가 깊어진다.

 

가브리엘은 왜 13년 전 마르탱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일까. 그녀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하는 과거는 무엇인가. 무엇이 마르탱을 고독에 몸부림치게 만들었는가. 아키볼트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이런 저런 수수께끼가 밝혀져가는 가운데, 이번 작품에서도 판타지같은 설정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절대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하는 기적, 누구나 한 번쯤 원하게 되는 그런 일이 결말을 장식해 또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결국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사랑. 작가는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중간중간 웃음 터지는 번역이 등장해 즐거웠다. 예를 들면 ''사랑해'의 답을 3주씩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p25)', '바로 여기서 네 엄마와 나는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었다. 아마도 네 엄마가 널 잉태한 장소가 여기이지 싶다-너무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p259)' 같은 문장들이 왜 그렇게 재미있던지. 조금 시대착오적인 발언도 눈에 띈다. '자네는 여자가 '싫다'고 표현할 때에는 좋지만 두렵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이해 못하지(p313)'를 읽으면서는 아주 그냥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저씨!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발언을! 여자의 싫다는 말은 정말 '싫다'일 수도 있다고요! 단정짓지 말라고요! 이 작품이 프랑스에서 발표된 게 2009년인데 그 때는 프랑스에도 이런 인식이 퍼져 있었던 걸까.

 

반가운 인물도 눈에 보인다. 시리즈 도서로 처음 읽은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의 엘리엇 쿠퍼. 이 양반은 다른 작품에서도 나왔던 것 같은데, 여기저기서 많이 활약하신다. 그리고 마르탱의 성은 보몽인데 [구해줘]에 등장한 여주인공 줄리에트의 성도 '보몽'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잠시 생각했지만, 작품 속 설명에 의하면 마르탱에게는 형제남매가 없는 것으로 보여 패스.

 

이런 저런 사항을 따지며 나름 꼼꼼하게 읽다보니 더 재미나게 읽은 것 같다. 항상 비슷한 내용인 것 같으면서도 매번 재미있게 읽는 기욤 뮈소의 작품들. 이 작가도 마성의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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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 7년간 100여 명의 치매 환자를 떠나보내며 생의 끝에서 배운 것들
고재욱 지음, 박정은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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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에 걸린 가족을 돌보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일텐데, 여기 몸과 정신이 온전치 않은 어르신들을 정성을 다해 돌보는 사람이 있다. 생의 끝에 선 치매 환자들을 돌보며 인생에 대해 묻고 답하는 이야기. 이제 우리 부모님 세대도 점점 건강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 이 와중에 뭔가 깜빡깜빡하는 모습을 보이시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하다. 설마, 아니겠지, 그래도 검사를 받아보tl라고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는 때가 온 것이다. 가족이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돌보아야 하나, 요양원으로 모셔야 하나, 요양원 비용은 얼마나 되나.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과 함께 가족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부모님의 모습. 자식들 뿐만 아니라 어르신들 또한 점차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시간 속에서 묵묵히 그 뒤를 맡아주는 요양보호사 분들이 계신다.

 

 

저자는 7년간 100여 명의 치매 환자를 떠나보내며 자신이 깨달은 것들에 대해 담담히 기술한다. 용변을 보면 손을 들어달라고 요청한 할아버지께서, 유독 바쁜 어느 날 여러 번 손을 드는 모습을 외면했더니 그 후로 다시는 손을 올리지 않으셨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부터, 밥 대신 새우깡만 그렇게 찾아 드시는 할머니, 남편을 일찍 저 세상으로 보내고 홀로 아이들을 키워냈지만 이제는 자주 찾아오지 않는 그들을 그리워하는 어르신들, 막내에게 새 옷 한 번 사주지 못한 미안함에 매일밤 유품이라며 보따리 안에 사탕 하나, 자신 옷 몇 벌을 싸놓는 할머니, 어려울 적 막내를 등에 업고 감자밭에서 일하다가 농약이 묻은 씨감자를 언제 집어먹었는지 먹어버리고 소리 없이 죽어버린 아이를 그리워하는 분, 한국 전쟁을, 일제강점시기를, 오늘보다 아주 먼 옛날의 기억이 더 선명해져 가는 분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인생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혹사당해온 몸과 머리가 이제는 쉬고 싶다고 외치는 것일까. 왜 인간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일까. 이런 우리들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요양원에도 일상이 있다. 바깥세상과 다르지 않다. 조금 느리고 조금 단순할 뿐이다. 거창한 희망과 열정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이든, 자세히 보아야만 보일 정도로 작은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든, 결국 모두 오늘을 살아간다. 건강하면 건강한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같은 하루를 살아간다. 이곳에서 지내다 보면 알게 된다. 지나버린 어제나 아직 오지 않은 내일보다 오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오늘이라는 희망은 모든 이에게 가장 공평하게 주어지는 희망이라는 것을.

p54

저자는 그 분들의 이야기를 단순히 연민만 담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치매라는 말 대신 '인지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우리나라 치매 환자들이 요양원에 들어오면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는 달리, 일본의 요양원은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 한국의 치매관련 예산은 OECD 국가 중 최하, 가정에서 보살필 수 없어 요양원에 보호를 위탁한 노인 십수 명을 요양보호사 한 명이 보살펴야 하는 열악한 환경, 치매환자들을 격리하기에 바쁜 현실. 2008년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었지만 정부는 준비가 덜 된 이 제도를 민간에 넘겨버렸고 그 결과 일정 시설 조건만 갖추고 설치 신고를 하면 누구나 요양원을 개설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복지를 위한 시설이 단순히 이윤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인식의 개선, 양심의 부활이 기반이 되어 이제는 우리의 고령화 사회를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삽화들이 함께 실려 있지만 그래서 더욱 가슴 한 쪽이 먹먹해온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결국 한 번은 겪게 되는 죽음. 그 죽음에 이르는 길이 부디 고통스럽지 않기를 누구나 바라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게 되는 한 가지는, 어제보다 오늘을 더 행복하게, 내일 일을 걱정하기보다 오늘에 더 충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점이다.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아낌없이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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